2005년 5월 24일 새벽예배
“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행 10:44-48).
이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나니까 그다음에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이 성령님이 임하신 이것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경험했던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하신 것과 똑같은 현상을 경험한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충만하여지고 그리고 방언을 말하고 그 방언을 말할 때에 그 방언의 내용 자체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말했던 거죠. 그 하나님의 위대한 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그리스도 예수를 말미암은 구속을 가리키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결국 이 모든 일을 이루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높이 찬양하는 이러한 역사가 나타 난거예요. 이것은 거기에 베드로를 따라온 할례 받은 신자 곧 유대인들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죠. 어떻게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인 유대인들인 우리에게 임했던 그 성령님이 이방인이 모인 이 자리에도 똑 같이 임하실 수 있을까?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놀랐습니다. 엄청나게 놀랐죠. 이렇게 큰 충격을 받으면서 엄청나게 놀랐는데 이것은 사실은 아주 명백하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려는 일들에 대해서 무지했기 때문이죠.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그러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된다면 그들의 증거를 통해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생각해보면 너무 명료하지 않습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에 있는 사람들, 사도들이 충만한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니까 그들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다만 믿기만 했습니까? 아니죠. 제자들이 전해주는 그 복음을 듣고 그들이 놀랍게 은혜를 받고 믿은 다음에는 똑같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되었던 거예요. 똑같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고 외치는 사람들이 되었던 거죠. 그러면 그렇게 복음 증거를 받는 곳이 땅 끝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겠어요? 그러면 성령이 임하시고 그 성령의 임하심과 함께 복음을 증거 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유대인이 그랬던 것처럼 또한 복음의 증인이 되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 성령 부어주시는 일이 똑같이 예루살렘에서도 온 유다에서도 사마리아에서도 땅 끝에서도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보여주는 거란 말이죠. 주님을 만나고 또 부활 하신 주님을 뵈옵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거, 자기들의 죄를 위해서 고난을 받으신 거, 복음의 놀라운 비밀들을 다 깨달았는데도 여전히 민족주의적인 편견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던 거예요. 편견이라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거예요. 이들이 사로잡히고 있었던 편견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신학적인 편견이고, 하나는 심리적인 편견이에요. 신학적인 편견은 나사렛에서 자라난 예수가 메시아일 수가 없다는 편견이에요. 그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다 깨뜨려졌어요. 그런데도 여전히 심리적인 편견, 유대민족은 우월하고 나머지는 모두 다 쓸모없는 민족이라고 하는 이 심리적인 편견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이것들이 사라지는 역사가 여기에서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아주 중요한 사건이에요. 단순히 선교 적으로 중요한 것만 아니라 선교 적으로는 물론 중요하지만 성령이 임하셔서 복음을 전하게 되는 이 사건이 중요하지만, 또 하나는 이제 복음으로 말미암아서 인종 간에 존재하던 편견의 벽이 무너지는 것이죠. 그래서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이제 유대인들이 하찮게 여기던 그 이방인들을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는 충격적인 변화가 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 성령의 역사함으로써 그들 간에 하나의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이에요. 이게 바로 복음에 위대한 힘이에요. 오늘날 북한을 비롯한 많은 폐쇄된 나라들이 기독교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에요? 기독교에서 무슨 총칼을 들고 가서 공격합니까? 아니죠. 기독교가 들어가면 정권을 모두 무너뜨려버리라고 선동을 하는 정치적인 일들을 합니까? 그거 아니죠. 그런데 왜 그렇게 무서워하죠? 그 사상이 물들게 되면 그러면 이처럼 놀라운 사회변혁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근대화 과정만 보더라도 여자들을 얼마나 무시했습니까? 그런데 그 여자들을 존중히 여기는 사상들을 어디서 배웠습니까? 교회에서 사람들이 배우는 거예요. 동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를 가르치면서 그러면서 여성을 하찮게 여기는 것들이 잘못되었다는 민주적인 교육을 교회에서 시키는 거예요. 봉건제도가 타파되는데도 교회가 기여한 것은 말할 수도 없잖아요. 그죠. 교회밖에 나가서 동네로 돌아가면 도저히 마주할 수 없었던 양반과 상민이었던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그 양반과 상민의 구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예수를 통해서 우리 안에 이루신 구속, 성령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신 이 평등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는 거예요. 그래서 복음이 이러한 놀라운 오래된 사회의 인습과 이 편견들을 무너뜨려버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하나로 만드는 위대한 힘이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하나 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거부하는 거예요. 이슬람이나 힌두교 나라 같은데서 복음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총 칼 들지 않아도 복음이 들어가는 것은 마음의 장벽들이 무너지면서 자기들이 지배하기 편하도록 만들어 놓은 모든 불평등한 구조들을 타파하는 놀라운 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참다운 복음의 힘으로 돌아가야만 이 세상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복음을 자기 나름대로 적절하게 변형시켜서 그래서 자기가 유지하고 싶은 이 불평등한 사회의 구조, 올바르지 않은 이 모든 사회의 도덕체계 같은 것을 합리화하고 그것들을 계속 지탱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정말 죄를 짓고 있는 거예요. 복음이 복음 그대로 역사하게 내버려두어서 그래서 우리들 하나하나를 그 복음이 변화시키도록 만들어 주는 것 이것이 비록 복음을 받은 우리들이 해야 할 일들이에요.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부름을 받은 것이에요.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성령이 임하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고백을 하는 것이죠.
‘아,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나! 정말 하나님이 이제는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착한 삶을 사시고, 마지막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시고, 심판주로 이 세상에 오시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유대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방인들 그들 가운데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유대인과 동일하게 사랑하시는 구나’ 깨달은 거죠. 무릎을 꿇는 거예요.
‘아,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구나!’
그리고는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행하시는 데 이 사람들을 세례 주는 것을 누가 금하리오!’
왜냐하면 사도들이 외친 선포에 의하면 ‘회개하라, 그리고 주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죄 사함을 받을 것이고 성령이 임하실 것이다’라는 것이었거든요. 이들이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이미 회개했다는 이야기고, 믿었다는 이야기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인정해주셨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거에요.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어떻게 세례를 주지 않을 수가 있겠냐 이거죠. 그리고 세례를 주도록 명령하는 거죠. 그래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이로서 베드로의 마음에 있던 커다란 편견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곤 이방인들을 향해서 마음이 활짝 열리면서 ‘아, 그렇구나! 이제 이렇게 그리스도예수의 복음이 전해져서 이제 혈통과는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지게 하시고, 믿어지게 하시고, 죄 사함을 받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그래서 결국은 유대인이냐 비유대인이냐는 혈통으로 하나 되게 만드시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예수의 보혈, 그리고 그리스도예수의 보혈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성령님의 위대한 강림을 통해서 그 모든 백성들을 하나로 묶으시는 구나!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머리되시는 교회이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이제 베드로가 정말 참된 복음 신앙을 소유하게 되는 거예요. 얼마나 하나님이 면밀 주도 하셔요. 다른 사람이 만약에 이렇게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모두 모였을 때 예루살렘교회의 가장 큰 우두머리인 베드로가 “아니야” 라고 말했으면 교회에 엄청난 분쟁이 일어났을 거예요. 근데 그 사람을 미리 맛보고 경험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후일 베드로가 예루살렘교회에 돌아갔을 때 비난을 받을 때 베드로가 그걸 전부다 해명합니다. 모든 오해가 풀리면서 그들이 하나님이 행하신 이 위대한 일들을 찬송하게 되는 것이에요.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성령의 강력한 은혜, 우리들이 한마음이 되지 못하고, 교회가 나누어지고, 그리고 교회에 대해서 지체에 대해서 악한 마음을 품고,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그러한 모든 악한모습들이 결국 무엇 때문입니까? 성령의 은혜가 그를 충만하게 지배하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분쟁을 일으키는 많은 사람들 결국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주님이 그 사람들이 행한 모든 것을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셔요. 심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 땅에 살아 있는 동안에 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이교회는 그리스도예수의 몸이니 몸인 그리스도예수를 해코지하지 아니하고 그것을 깊이 사랑하고 그리고 이 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영혼들을 보며 가슴아파하며 그리스도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이 일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거예요. 거기에 뭔가 기여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