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5일 새벽예배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행 11:1-4).
그렇게 충격적인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그래서 이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1장에 다시 베드로의 입을 통해서 10장에서 일어난 일이 재 진술되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단순히 말씀을 들으니까 성령이 내려왔다고 되어있지 않고 이방인들에게도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고넬료의 집 사람들이 베드로가 선포하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들으면서 커다란 회개를 경험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죠.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그러한 역사가 나타나게 된 거에요. 베드로는 이 사건이 생애 최대의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거예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실 뿐 아니라 그분이 행한 모든 것은 옳은 것이었다. 라는 사실을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경험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것이 베드로에게 있어서 가장 커다란 신학적인 충격이었어요.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이 생명을 얻는 회개를 주시는 구나! 그리고 회개한 후에는 우리 유대인들이 받은 것과 꼭 같은 강림하시는 성령의 은혜를 주시는 구나!’ 충격적으로 깨달은 거예요.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거예요. 난리가 난거에요. 예루살렘에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졌다.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이게 엄청난 충격의 파장이 그들에게까지 미치게 된 거에요. 그들이 이제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었고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을 경험하기도 했지만은 여전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유대주의의 틀은 아직 벗어버리지 못한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 그분이 행하신 일중에는 옳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죽으신 그 비참한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고난의 죽음이었다는 것 이런 것들은 이제 다 깨달았는데 유대 민족주의의 틀을 넘어설 수가 없었던 거죠. 그걸 통해서도 유대주의는 상당히 많이 깨뜨려진 거죠. 그런데 유대민족주의라고 하는 유대교라고 하는 것과는 좀 다른 유대주의라고 하는 그 민족주의 그걸 넘어설 수 없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어떻게 되죠. ‘진짜 이방인에게 성령이 부어진 것일까? 하는 사실에 대한 회의부터 시작해서 ’그렇게 부어진 것이 성령님의 진실한 역사라면 그렇게 하도록 한 베드로의 이 행위는 옳은 것인가?’ 많은 혼란들이 예루살렘에 가득한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니까 이제 그 중에 용기 있는 사람들이 비난을 한거죠.
‘당신이 무 할례자의 집에 가서 그들과 함께 기거하고 밥도 먹고 며칠 묵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하는 거죠. 이게 얼마나 웃기는 질문이에요? 그게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들 가운데도 회개하고 예수 믿는 일들이 일어났으며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신일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에요? 그런데 여전히 유대주의에 민족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죠. 구약의 율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거죠. 그때에 베드로의 온유한 모습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에게 시사점이 참 많아요. 여러분, 이미 지나갔지만 5장에 나타났던 아냐니아와 삽비라의 사건 기억하시죠? 아냐니아와 삽비라가 땅을 판돈 얼마를 감추고 그리고 사도들에게 왔을 때 베드로가 “이것이 전부냐?” 이렇게 물었을 때 그들이 죽는 역사가 일어나잖아요.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 엄청난 비난을 받아요. 사실 자기는 정당하잖아요. 그러면 “너희들이 어찌 이리 믿음이 없느냐” 책망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안하고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게 베드로의 인격을 보여주는 장면이에요.
그리고 이렇게 인격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놀라운 목회의 권한을 주시고 예루살렘교회의 머리의 지도자를 삼으셨지만 이 베드로가 이 일들을 처리함에 있어서 얼마나 합리적이었는가 하는걸 보여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형제들에게 자기가 경험한 것을 상세히 설명해서 공감을 얻도록 그렇게 조치하는 거예요. 이것이 지도자로서의 인격이라고 전 여겼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베드로는 확고하게 자기 자신이 경험한 그 일이 자의적으로 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놀라운 섭리 가운데 이미 오래전에 구약 안에서 준비한 바이고 때가 되매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부어주신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향해서 어째서 무 할례자의 집에 어가서 먹고 마셨느냐고 비난할 때에 베드로는 무지로 말미암아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깊이 이해했던 것이죠. 자신이 바로 그 무지 속에 있었는데 주님께서 그 보자기의 환상을 통해서 자기를 깨우쳐 주시고 또 고넬료를 만나게 하셔서 그들을 회개케 하고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었던 모든 편견을 벗겨버리고 복음을 통한 위대한 역사의 새 시대를 직접경험하게 만들어 주셨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 베드로가 이렇게 자기를 힐난하는 유대인들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던 거죠. 뭔가 좀 바뀌었다 생각하지 않으세요. 예전 같았으면 어땠겠어요. 혈기 방자한 사람이었죠. 그래서 “네가 감히 누구관데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막으려고 하느냐.” 혹은 “네가 감히 예루살렘교회의 머리 지도자로 삼은 나를 대적하려하느냐. 네 죄를 알렸다.” 이렇게 외칠 것 같잖아요. 그런데 놀랍게 변했어요. 성령이 오시고 나서 베드로를 어루만지시고 베드로는 놀라운 성품의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혈기 방자한 모습이 사라지고 그 성령의 온유함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었어요. 그래서 ‘놀라지 말라. 두려워 말라. 하나님께서 내게 행하신 그 위대한 일들을 너희에게 상세히 설명하리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굉장히 길게 나와요. 내일 보겠지만, 그걸 다시 입이 아프도록 자기가 경험을 다 다시 말해요. 그래서 그걸 따뜻하게 설명해서 그들의 마음에 그 모든 것들이 이해되도록 만들어 주는 거예요. 이게 바로 베드로의 변화된 인격이에요.
저는 교회를 해나가면서도 항상 이런 베드로의 성품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뭘 조금 하나님께서 맡겨주면 독단과 독선에 빠지기 굉장히 쉽고 어떻게 보면 그렇게 할 때 그 지도자가 강력한 지도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강력한 지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이렇게 회중들이 이해가 떨어질 때 그 시기시기마다 상세하게 설명해서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두 가지를 함께 잘 조화를 이루면서 나가는 그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은 지도자일 수 있는 거죠.
이렇게 됨으로 말미암아서 이제 예루살렘교회는 온 교회가 한마음이 되어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복음의 새 역사에 대한 전망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엄청난 시너지가 나타나는 거예요. 누구도 의심하는 사람이 없고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막 감동하면서 주님의 그 위대한 역사에 대해서 가슴 떨려하는 거예요. 가슴 설레어하는 거예요. 그러니 새로운 위대한 역사가 펼쳐지는 거죠. 너무 너무 놀라워요. 그래서 우리가 이런 점들을 깊이 본받아야 합니다. 베드로가 그 모든 것을 설명했을 때 선두에 서서 베드로를 비난하던 그 유대인들이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그죠. 그렇게 힐난할 때에 좋은 태도로 그랬을 리 없잖아요? 그런데 베드로가 그것을 받아서 온유하게 그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할 때에 그때에 모든 성도들이 정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자기들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행하신 그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얼마나 높이고 찬송했겠어요? 그때 목소리높이고 비난 했던 사람들은 얼마나 부끄러웠겠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썰렁했겠어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항상 자기 아집에 사로잡힌 사람이 되어서는 안돼요. 항상 자신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도 귀를 귀 울일 줄 아는 아량과 폭넓음 이런 것들이 있어야 되요. 가끔 저도 사회생활을 했고 목회도하고 그러잖아요. 뭘 하든지 간에 어떤 때에는 제 의견과 다른 사람을 만나요. 기분이 좋을 리 없죠.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해. 항상 내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있어요. ‘그렇지 누가 다 나를 좋다고 하겠냐. 저마다 생각이 있는 데, 무조건 다 좋다고 하면 그 사람이 기계지 인간일까?’ 이 생각을 합니다. 보편적인 거예요. 그래서 탈무드에 보면 회의를 할 때 ‘만장일치는 무효’ 라는 규정이 있어요. 뭐냐 하면 그건 인간적으로 조작한거라 이거에요. 사람은 다 생각이 틀리기 때문에 각기 자기에 생각을 다 이야기 한다 이거에요. 그것이 하나의 차이에요. 생각의 차이
그래서 이 베드로를 보면 그런 걸 많이 배워야 돼요. 야, 드디어 진짜 그 혈기 방자하던 사람이 이제 드디어 그 거대한 예루살렘교회를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어거해 갈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인격으로 변모한거에요. 사실 사람들이 가득 모였는데 그 중에서 몇 명이 소리를 높이면서 “너, 무 할례자의 집에 갔었다며, 거기서 먹고 거기서 잤다며, 진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그럴 수 있느냐” 하며 막 목소리를 높일 때에 항상 지도자를 반대하는 사람은 용감하고 지도자를 사랑하고 지도자 편에 선 사람들은 온순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후자의 사람들의 목소리는 다 묻혀요. 그 사람들이 막 그럴 때에 베드로의 그 마음이 어땠겠어요. 그런데 지극한 온유함으로 그들을 비난하지 아니하고 담담하게 자기가 경험한 것을 상세하게 풀어서 설명하며 그리고 온 교회의 일치를 이끌어내는 거예요. 얼마나 놀라워요.
그래서 오늘 저녁에 저를 위해서 기도할 마음이 생기죠? 베드로하고 저하고 누가 혈기 방자한지 내기하면 제가 훨씬 이기죠. 그래도 하나님이 성화의 길을 걷게 하셔서 이만큼 섰는데 은혜가 떨어지고 나면 옛날의 그 방자한 모습이 다 살아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은혜로 붙들어주셔야지.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혈기 방자한 우리목사님을 성령님이 굳게 붙들어주셔서 그래서 가끔 우리가 비난하는 사람처럼 된다고 할지라도 지극한 온유함으로 베드로처럼 목회하도록 도와달라고 그렇게 기도 하셔야 되요.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되요. 그렇게 붙드시는 담임목사만을 믿고 우리도 혈기방자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그렇게 해가지고 교회가 일치를 이루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거예요. 정말 아름다운교회죠. 오늘 아침에 참 감동받았어요. 여러분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