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3. 24 새벽설교
저희가 일자를 정하고 그의 우거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의 일로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행28:23-25)
녹취자:이춘수
사도바울은 굉장히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고 핍박을 받았던 과거를 생각을 하면서, 여기에 와서 바울이 가이사 황제에게 호소를 한다고 하니까, 어쩌면 유대인들이 이 사람도 같은 유대인데, 유대인을 걸어서 고소를 하는 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사도바울의 원뜻은 유대인들이 잘못했다고 하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서 황제에게 고소한 것이 아니라, 이제껏 그랬던 것처럼 재판정에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복음을 전파하려고 스스로 황제에게 호소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로마 시민 이었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황제 앞에 설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또 황제 앞에 선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고는 자기 의견을 그렇게 길게 피력하고, 그 소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그런 일들이 있기가 어려우니까 이런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황제에게 호소를 했다고 그랬는데, 그러면 피고가 누구냐? 처음에는 사도바울을 피고로 해서 유대인들이 고소를 했지만, 죄 없음이 드러났습니다. 이번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난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피고가 유대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법적인 형식이 그렇게 되고 보면,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아 이놈이 같은 동족 인 줄 알았는데, 이 재판의 목적이 결국 유대인들을 해치기 위한 것이구나 이렇게 오해를 하기 십상 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바울의 생각에는, 틀림없이 자신들이 도착하는 것보다 먼저 예전에 소송을 했던 그 쪽에서, 유대인들에 의해서 전갈이 내려왔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제 거기에 유대 지도자들을 오라고 불러 놓고, 그 지도자들에게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 이러이러하다는 이야기를 쭉 그 이야기를 하면서, 사실을 그런 게 아니다 라는 것을 쭈_욱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이해를 시켰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하는 얘기가, 그러냐 사실 우리는 그런 생각이 없고, 또 네가 전하는 교가 조금 잘못되고 반대를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러나 우리 형제들에게서 너에 관한 이야기를 특별히 전가를 받은 게 없다, 그러면서 그러면 네 사상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우리가 알아야 되겠으니까 좀 들어보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에 입장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기막힌 기회 였겠습니까 오늘 여기 보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나라를 강론 하였더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결국 무엇을 의미하냐하면, 단순히 우리 기독교 교리의 어느 일부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체계 전체를 구약을 가지고 풀어 낸 것 입니다. 그래서 모세와 선지자들의 글들을 이용해서 예수의 관해서 증거 하리라 그랬습니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 예수입니다.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느냐? 또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가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는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그 사람에 그 죽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될 수 있느냐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러면서 이제 통탄하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이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주인공입니다. 이 성경자체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의 계획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 가장 중심이 되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선지자와 율법이 증거하고, 또 오늘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으로서, 이미 성경에 중심이 되셔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 이것을 통하여 신구약 성경이 모두 완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 신약이 다 씌여지지 않은 그때이지만, 어쨌든 그렇게 완성되어 가는 것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사도바울의 강론은, 하나님 나라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경륜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시는 그 중심에, 예수그리스도께서 계셨고, 그러니까 당연히 그 예수그리스도께 관해서 증거하고 있는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들은, 예수에 관한 풍부한 증거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사도 바울도 예수그리스도를 믿기 전까지는, 구약성경에 풍부한 예수에 관한 계시가 담겨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예수그리스도의 관한 계시가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올,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도래하게 하실 그 지혜와 그 사랑이 거기에 담겨 있다 라고 하는 것을 몰랐습니다.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똑같이 그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정말 이런 기회를 너무나 너무나 원했던 사도바울이었으니, 이 기회가 왔을 때에 그가 얼마나 최선을 다해서 설명을 했겠습니까 예전에는 말만 몇 마디만 해도 돌이 날라 오고 죽이려고 덤벼들었는데 ,이제 얘기를 해보라 들어보자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듣겠다고 그랬으니, 얼마나 정성을 다해서 그것을 증거를 했겠습니까 아마 풍성한 말씀이 쏟아져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들으면서 아 참 맞다 야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척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집에 돌아가면서 이야기할 때 오히려 의견에 차이를 서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이렇게 정황을 다해서 그 큰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하나님이 시키신 분부를 따라서, 여기에 와서 이렇게 말씀을 전할 때 왜 이렇게 실망스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우리들이 복음사역에 있어서 결과가 실망스러우면, 항상 전하는 사람의 능력이 부족이다, 이렇게 생각하기가 일반적인데, 그런데 사실은 여기에서 보며는 그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강팍한 겁니다. 그래서 이 큰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을 최선을 다해서 증거 했지만, 그들 속에 스며들 수 없었습니다. 무지와 교만, 편견과 더러운 욕심, 이런 것들이 함께 뒤범벅이 되어서 그들에 마음에 복음의 참된 광채가 비췰 수 없게끔 그렇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똑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도 어떤 때는 전혀 감동이 없고, 어떤 때는 가슴에 깊이 스며들어오면서 그 말씀이 믿어지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이 들을 때에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마음으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마음이 겸비하고 낮아지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말씀의 빛들이 막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이 교만하거나, 아니면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거나, 아니면 자기만의 생각으로 편견에 차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들에게 흘러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붙들리냐 이것이 매우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