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향하여 그 이를 가는도다”(시 37:11-12).
예수님도 말씀 하셨죠?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그러면 우리는 온유하지를 않아서 땅이 없나 그런 생각 들잖아요? 이 세상에 땅은 한정되어 있고,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들은 많고, 또 땅 중에서는 아무리 줘도 쓸모없는 땅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갖고 사용할 수 있는 땅은 지극히 일부이죠. 여러분들에게 저 시베리아에 땅을 잘라 준다든지, 사막 한 복판의 땅을 몇 만평 잘라준다든지 하면 그걸 어디다 쓰겠어요?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러면 여기서 땅을 차지한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할 것이요, 이 무슨 이야기인가? 신앙의 사람이 박해를 당하거나, 혹은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혹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인생을 살아갈 때에 그 고통이라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래서 인생의 어떤 곤고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의 대부분이 대게 사람들과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 속에서 올바르지 못할 때, 그때 많은 고통과 괴로움들이 생겨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런 고통과 괴로움들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데 그러니까 땅이라고 할 때의 이 땅은 어떤 재산으로서의 땅이라기 보다는 사람이 사는 거처로서의 땅이에요. 사람이 사는 거처로서의 땅이죠. 그래서 이것은 어떤 돈이나 칼로 이 땅을 지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어떤 정신이나 영혼으로서 이 땅을 차지하는 것, 그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래서 찰스 스펄전 목사님은 이 대목을 해설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온유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감화력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이 바로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 땅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 영향력이 바로 정신적이고 영적인 영향력이에요. 이 땅을 차지하게 되는 거죠. 그거죠. 그러니까 믿는 사람들이 땅을 차지하는 이 영향력은 자기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에요. 결국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때에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영향력, 정신적인 영향력, 영적인 영향력을 미쳐요. 그러면 그 영향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마음속에서 파문을 그리면서 퍼져나가는 영향력이에요. 그러면 그런 경건하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 한 가운데 뭐가 있겠어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통치를 받는 거죠. 그러면서 살아가니까 파문을 그으면서 그래서 그 사랑이 번져가는 거예요. 퍼져가는 거예요. 그것이 그것이 바로 이제 가슴 안에 있는 하나님의 통치가 뻗어나가는 거죠.
그럼 뒤집어서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리고 예수님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그러면 온유하지 않다면 반대가 될 거 아니에요? 온유하지 않은 자는 결코 땅을 기업으로 얻지 못할 것이요. 그러니까 온유하지 않다면 그가 구원을 받았을지는 모르지만, 온유하지 않다면 이 세상에서 결코 영향을 미칠 수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근데 신자의 본분은 이 상호교통의 회복을 통해서 생명과 사랑이 이 사람들 속에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 그것이 신자의 사명이에요. 그게 참 인간으로 사는 비결이에요. 그것이 참 인간으로 사는 비결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참 인간으로 살아야 할 그 신자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정말 신자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가 되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팔복을 말씀하시면서 아무렇게나 막 생각나는 대로 말씀하시는 게 아니에요, 차례대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니까 이미 주님을 믿은 후에도 가난해 지는 적이 많이 있지만 회심하기 전에 마음이 정말 가난해 지죠. 그래서 주님 밖에는 정말 의지할 분이 없는 그런 철저함을 느끼게 되죠. 주님밖에는 없는 그런 처절함을 아주 깊이 느끼게 되죠. 그거죠.
그렇게 깊이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그 갈급하고 간절한 마음이 생기면, 그 다음에 자신의 죄를 향해 애통하게 되죠. 자신의 죄를 향해 애통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이 온유는 특별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그 인격적인 특징이거든요. 부드러움과 친절함, 이런 거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을 온유하게 대하지 못하는 것이 자기 안에 사랑이 없는 것이고, 근본적으로 또 하나는 사랑이 없기 때문에 자기의 질서를 따르고 잘 해주는 사람은 잘해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올바르게 대해주지 못하는 거죠. 그러면서 사실은 사이가 벌어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애통하고 나면 용납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가 하나님 앞에 애통하며 죄를 고백할 때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진짜 누군가를 정죄하고 용납하지 못하는 것은 그 십자가 앞에서 통회하던 자기의 그 모습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죠.
요새는 그런 거 안 써 붙이고 다니는데, 우리 운전할 때는 ‘초보운전’ 이라는 것을 많이 써 붙이고 다녔잖아요. 저도 한 15년 전에 잠깐 써 붙이고 다녔는데, 대접을 안 해줘요. ‘초보운전’이라고 써 붙이면 길도 좀 비켜주고, 뭐 잘 못해도 좀 봐주고 그럴 줄 알았더니 ‘초보 운전’이라고 하면 짜증스럽게 ‘초보가 앞으로 가’ 하며 빵빵 하며 지나가요. 그러니까 제가 운전면허 따고 나서 한 2 ~ 3년 뒤에 그런 것들이 유행을 했는데, ‘초보운전’, 아니면 ‘죄송합니다’ 이렇게 써 붙이고 다니던 사람들이 ‘당신도 한때는 초보였다’ 그렇게 써 붙이고 다녀요. 굉장히 도전적이죠. 너도 맨 처음에 버벅거리며 운전하던 때를 기억해라 그거죠. 당신도 한 때 초보였다. 기억하라. 그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넓은 땅을 가지고 있고 그럼 좋지요. 그러나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들에게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로서 그것을 차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이상적 이죠. 오늘 성경에 보니까 악인이 그런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칼을 갈며 준비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비웃으시죠. 왜냐하면 그들은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을 죽여 버리기 위해서 생명을 노리지만, 그러나 진짜 인간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생명을 거두시기도 하시고, 그리고 보호하시기도 하시는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것이에요. 최악의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죽는 건데 그것이 결국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아주 훌륭한 도구가 되잖아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이죠.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은혜를 주옵소서. 능력을 주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주님이 주시는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차서 그것을 이 세상 수많은 사람에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