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하시는 하나님
“주께서 저를 웃으시리니 그 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기어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 칼은 자기의 마음을 찌르고 그 활은 부러지리로다”(시 37:13-15).
하나님의 자녀들보다는 이 세상의 자녀들이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는 훨씬 지혜로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악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하나님의 자녀보다 세상의 자녀들이 훨씬 슬기로운 때가 많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객관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자녀는 희망이 없는 것 같고,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닐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그 오늘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악인이 의인을 해하기 위해서 계획을 짜고, 또 그 계획이 상당히 성공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는 거죠. 그런 것이 없다면 의인의 고난, 믿는 자의 환란, 시련, 그런 게 없겠죠. 그런데 그런 게 있거든요. 그러나 이제 그 모든 상황을 하나님은 보고 계시는 거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시며’, ‘하나님이 웃으시며’ 하나님이 웃으시는 이유는 ‘그날의 이름을 보심이로다’. 여기에서 그날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이죠. 그래서 구약 성경 전체의 흐르고 있는 이 그날, 즉 여호와의 날에 대한 그 사상은 하나님이 찾아오시는 거죠. 그러면 그것이 양대성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주님이 오시는 그것이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그리고 은혜, 감격의 날이 되는 것이고, 또 그렇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수치와 그리고 심판의 날이 되는 거죠. 그래서 주님을 바라보면서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하나의 행복이 될 수 있었던 거죠. 그것이에요. 그래서 그 악한 사람들이 이제 칼을 준비하고, 활을 준비해서 그래서 하나님을 따르는 그 백성들을 죽이고자 목숨을 노리는 거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은 삶의 질서가 틀리거든요. 그러면 그 질서는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기가 이루어 놓은 그 질서에 순순히 복종하면서 자기 질서를 포기하고 들어가는 것을 제일 좋아하죠. 그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죠. 그러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다 자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각자 자기 사랑의 질서를 펼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렇게 순순히 굴복하고 그럴 리가 없죠. 더욱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의 질서를 가지고 있어요. 그것은 총체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총체적으로 다르거든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아니면 고난을 주고 그래서가 아니라 총체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감정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뜻대로 살려는 사람들을 향해서도 미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의인의 고난이 있는 것이죠.
그래서 칼과 활을 준비해요. 아시다시피 칼은 근접하여서 사람을 살해하는 무기예요. 찌르거나 베이지 않으면 그 칼은 사람을 죽일 수 없어요. 그러나 활은 아주 먼 곳에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시대마다 조금씩 틀리기는 하지만 조선시대를 기준으로 보면 한 350m까지 날아갔다고 해요. 굉장한 거죠. 그런 화살을 그렇게 쏘면 사실은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거죠. 그런 화살을 준비하는 거죠. 그러니까 근접해서는 칼에 맞고 멀리 떨어져서는 화살에 맞아서 표적이 되는데 대게 화살을 보라는 듯이 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숨어서 화살을 쏘는 기록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숨는다는 거죠. 숨어서 화살을 쏘는 거예요. 푝 하고 쏘는 거죠. 그게 허공을 가르고 날아가서 사람의 가슴에 혹은 등에 꽂히는 거예요.
그렇게 살해할 목적으로 철저하게 준비한 거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방패를 주셔서 그것을 막게 하시는 대신에 하나님이 상황을 바꾸셔서 그들이 준비한 칼로 그들을 찌르게 하시고 그들이 예비한 활로 그들에게 맞게 하셔서 그래서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자들의 생명을 하나님이 거두시는 거죠. 그러면 마지막에 결국은 하나님이 이렇게 자기의 백성들을 향해 행하시는 이 보호의 일,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행동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될까요? 그것은 뭐냐 하면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적들의 수, 우리가 놓여있는 상황의 어려움, 고난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진짜 자신이 자기를 그렇게 보호하시고 위하여 싸우시는 하나님 편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래서 한 사람이 환란이 많이 일어나는 그 속에서도 여호와는 내 편이시니 나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그럴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정말 그럴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정말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사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을 의지하는 자의 마음 안에서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시는 거죠. 그래서 당신 의지하지 않고 씩씩하게 사는 사람보다는 당신을 의지하면서 연약하게 사는 사람들을 훨씬 기뻐하셔요. 신앙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거예요. 신앙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거죠. 그게 믿음이에요. 그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거죠. 환경에 의해서 요동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모든 광경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우리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죠. 거기에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넓은 마음, 환경에 의해 충동질을 당하지 않는 온유함, 그리고 그 속에서 자기의 작은 이익을 초월하는 이 영혼에 대한 안정감에서 오는 평정, 이런 것들이 생겨날 수가 있는 거죠. 이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자신의 마음의 중심이 항상 하나님께 향하고 여러분 이렇게 새벽기도 나와도 하루 종일 충분하지 않을 때 많죠. 그래서 매 순간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가슴에 손을 얹고 그것이 신앙이에요. 그 마음 안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렇게 주님을 의지하며 살 때에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는 거예요. 그 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어요.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나아와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와 함께 해 주시옵소서.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잘 깨닫도록 우리를 힘주시고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저희들이 주님만을 의지하며 살 수 있도록 매 순간 저희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