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시 37:27-28)
녹취자: 박지성
결론만 내립니다. 결론이 무엇이냐 하면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라’는 것입니다.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악에서 떠나고 선을 행하라는 이 말의 기준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통해서 당신이 뜻하고 있는 바가 무엇인지 당신의 의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지가 바로 성경의 계명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철학을 모르고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지 몰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결국 선하게 살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계명들은 어렵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이 뭘까?’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둑질 하지 말라, 남에게 악한 일을 하지 말라, 네 자신의 죄를 보라, 회개하라’는 계명들은 모호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 아니라 너무나 분명해서 핑계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명령하시지 않으면 우리들은 스스로 깊은 사색을 통해 선한 길이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아주 명료한 계명과 분명한 계명의 지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쫒아 행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이끌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계명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의 때에 악한 사람들은 핑계할 수가 없습니다. 성경은 아주 깊은 사색을 하고 철학을 하는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아주 분명하게 우리의 갈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화)우리가 흔히 어린아이들을 양육할 때 부모는 그 이유를 다 설명해주지 않고 지시를 내릴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도 그랬습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선생님께서 구체적인 설명 없이 학교 앞 길가에서 파는 것은 나쁜 것이니까 먹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 초등학교는 7천 명이 모이는 학교여서 장사꾼들도 아주 많았습니다. 그 조금조금한 좌판에다 번데기부터 시작해서 풍선까지 별것을 다 가지고와서 팔곤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처음에는 사먹지 말라는 선생님의 명령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가게에서는 사먹어도 됐는데 이상하게도 좌판에 있는 것이 가게에도 있는 것이었습니다. 위생 상태나 모든 것을 볼 때도 똑같아서 ‘왜 그럴까?’하고 혼란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이들을 양육할 때에도 하나하나 모두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설명해 주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왜 어른들은 자기들만 영화를 보고 애들은 들어오지 말라고 할까?’ 어렸을 때 이것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일까? 만약에 우리가 봐서 나쁜 것이라면 어른들 도 보지 말아야지 자기들은 보면서 왜 우리들은 들어오지 말라고 할까?’ 이런 것들이 너무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것을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담배 피우는 행위가 악한 행위라면 왜 어른들은 그 나쁜 것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못하게 하는 것일까? 만약에 우리에게 못하게 할 정도로 나쁜 행동이라면 아예 이 세상에서 담배를 없애야하지 않을까?’라고 어려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그것을 설명해 주지 않았고 그냥 하는 말이 “애들은 그런 거 하면 못쓴다.”라며 야단을 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나는 그것이 왜 그런가에 대해서 어른들도 잘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설명을 친절이 안 해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말할 수 있겠습니까? 애들은 담배를 피우면 안 되는 것이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저 아프리카 쪽에는 한 여섯, 일곱 살이 되면 아이들이 담배를 배우기 시작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스무 살이 넘으면 그것은 애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 어른이 되면 그런 것은 안하는 거라면서 끊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것은 또 어떻게 설명을 하겠습니까? 담배가 몸에 해롭다. 그러면 몸에 해롭지 않은 담배가 나오면 피워도 괜찮은 것입니까? 이렇게 쉽지 않은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것을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설명할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고 그것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생각이고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권위로 누르며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 그러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권력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어른이 말하는데 말대답하지 마라.” 우리들이 아이들을 양육할 때에도 그 모든 것을 다 가르쳐주지 않지만 아이들에게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라고 분부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주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믿고 어떻게 행동해야 될 것인지를 아주 선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오는 계명들입니다.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선한 삶이라는 것은 따라서 계명을 지키는 삶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계명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이 생명을 누리도록 보호하십니다. 이렇게 계명을 행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악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파멸하십니다.
이것은 그 당사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자손들에게까지 해당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의 자손은 하나님에 의해 보호를 받으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자손은 버림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부모가 악을 행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선을 행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자식을 파멸시키신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면 하나님이 어떤 개인이 잘못을 했을 때 그를 징벌하고 파멸하고자 마음을 먹지 않으셔도 악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창조의 목적을 떠나 교만하게 사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자식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거슬러 사는 것을 부모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 계명을 따라 살려고 해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화) 어렸을 때 황당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벌써 굉장히 오래된 일인데 교통사고가 많이 나니까 학교 앞에 육교를 놔줬습니다. 선생님은 입이 닳도록 “건널 때 반드시 육교로 건너라”고 가르치셨는데 육교 건너는 것은 사실 귀찮은 일입니다. 어렸을 때는 “구름다리 놨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좋아서 올라가 밑으로 차 지나가는 것도 보고 침도 뱉고 그러면서 육교로 항상 다녔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엄마들이 학교로 도시락을 가져다주는 등 하여튼 그렇게 부모들이 자주 왔습니다. 가방을 맨 1, 2학년쯤 된 아이와 엄마가 육교 밑에서 한참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리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육교 밑을 엄마가 뛰려고 폼을 잡으니까 아이는 그러면 안 된다고 위로 올라가야한다고 말했고 엄마는 “잔소리 말고 따라와” 하면서 오른손을 붙들고 뛰어서 건너려고 하니까 애는 싫다고 선생님이 위로 건너라고 했다고 하자 엄마는 그 아이를 붙들고 “시끄러워 따라와” 그러면서 몸빼를 입은 그 엄마가 달음질을 치며 중앙선을 건너 가로지르면서 무단횡단을 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아이가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선생님을 하늘처럼 알고 선생님이 “그리로 건너지 마라. 위험하다. 나쁜 거다. 항상 육교로 건너라. 건널목에서는 항상 손을 들고 건너라.”하고 가르쳐줬을 것입니다. 건널목도 아니고 육교도 아닌데 선생님이 절대 하지 말라고 나쁜 짓이라고 한 것을 엄마 손에 이끌려서 횡단을 하게 될 때 아이가 느끼는 도덕적인 혼란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올바르고 사람답게 사는 부모를 만나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첫째는 법이 법대로 통용되는 나라, 둘째는 인간다운 행동을 하는 부모, 그 다음은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친구들. 이 셋에 의해서 어린아이들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부모입니다. 아이들이 바깥세상을 알게 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립니다. 그리고 적어도 유치원을 가야 바깥세상을 알게 되는데 그전 최소한 여섯 살까지는 엄마·아빠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엄마·아빠가 올바르게 사람답게 살면 선이 무엇이고 악이 무엇인지를 사변을 통해가 것이 아니라 직관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치원가서 눈을 뜨고 친구들을 봤을 때 친구들이 다르면 그때부터는 이제 엄마·아빠가 가르쳐준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눈을 떠서 이제 초등학교쯤 되어 세상으로 나가보면 엄마·아빠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의 말이 더 맞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망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집안에서 잘 길러도 그 나라가 법이 통용이 안 되고 엉망이면 교육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 ‘좋은 교수를 데려와야 한다. 선생들이 실력이 없어서 시험을 쳐서 떨어뜨려야한다.’ 이러는데 선생이 실력이 없는 것도 문제고 다 문제겠지만 그것보다는 아이들이 살아서 사람다운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교재는 없습니다. 세상을 이렇게 고치려고 생각은 안하고 그저 학교 속에서 아이의 실력만을 키운다고 하는데 그래봐야 그것은 돈 잘 버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뿐입니다. 삶의 질 자체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악한 사람들의 자손으로 태어난 인간들의 불행입니다. 악한 부모 밑에서 그들의 삐뚤어진 삶을 보며 악하고 고통스럽게 살 때에 자신도 모르게 부모로부터 습성이 배서 하나님의 개명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목적을 따라서 계명에 순종하며 사는 착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 간구하지 않아도 복을 주시지만 거슬러 사는 사람들에게는 간구해도 하나님께서 복을 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이치요 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