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석이신 하나님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시 28:1).
이것도 탄원시입니다. 탄원시라는 것은 무언가 절실하게 기도가 필요한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그런 종류의 ‘기도 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요’라고 불렀습니다. 이 반석이라는 말은 최소한 세 가지를 의미한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이 반석이라는 것은 히브리말로 추르라고 하는데 널찍하고 큰 바위를 말합니다. 그래서 집을 짓거나 어떤 건축을 할 때에 이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인생을 그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반석이 무엇인가 집을 짓는 탄탄한 기초가 된다는 면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라 부를 때에 하나님의 반석이 자신의 인생에 모든 기초가 되시는 그런 분이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설계하고 계획할 때에 하나님을 우리의 인생의 반석으로 생각하고 그 위에 집을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반석 삼아서 집을 짓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살아가는 모든 삶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터 위에 세워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계명의 뜻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순종하면 그 계명들이 우리 인생의 반석이 되어서 우리 인생이 요동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당신을 반석을 삼는 우리를 굳건히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커다란 반석 위에 세워진 그의 집은 지진이 일어나고 요동을 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 하나 이 반석은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여호와는 나의 피할 바위시오’ 할 때에 이 바위가 바로 반석입니다. 전쟁이 나면 화살이 비오듯 쏟아지고 할 때에 커다란 바위 뒤에나 아래에 숨는 만큼, 혹은 커다란 바위 아래에 숨는 만큼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반석 삼는 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인생에 있어서 나의 가장 중요한 원리로 삼으면서 살아가면 세상에 온갖 시련과 고난, 유혹의 화살이 날아와도 우리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사람에게도 고난과 시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언제나 아픔이 있고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체만을 죽음에 몰아넣는 사람들 말고 우리의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에 피할 바위가 되셔서 하나님을 기업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고난과 어려움이 많이 와도 그의 영혼을 어떻게 해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반석’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이 없어 죽어갈 때에 그 반석을 터트려 샘물이 나게 한 사람입니다. 그가 나게 했다기보다는 하나님이 그 반석을 깨뜨려 놀라운 기적을 삼으신 것입니다. 그 결국은 바위가 터뜨려져 샘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이 반석이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이 생명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이 바위가 터져서 샘물이 나오는 이 사건을 가리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예수그리스도의 비유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자기의 육체를 깨뜨리심으로 말미암아 거기에서 생수가 쏟아지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 되신 하나님을 풍족히 누리면서 사는 공로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을 반석삼아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를 기초로 그것을 붙들고 거기에서 힘을 얻으며 살아가는 생명의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오늘 시인은 고백하기를 ‘잠잠하지 말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시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이 아무 소리도 듣지 않으신 것 같은 상황이 있었다는 것은 반증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식고 우리의 영혼이 부패했기 때문에, 때로는 그렇지 않아도 우리의 무지 때문에, 때로는 우리를 에워싼 지나친 환경의 고통이 우리의 마음을 수없이 흔들어 놓기 때문에, 차마 하나님을 볼 수 없을 때,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의 생명은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경을 펴면, 설교를 들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그런 경험이 우리에게 있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쓰러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능력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곧 생명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은혜를 받는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새 생명을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짓밟힌 자 같으나 말씀의 은혜를 받고 내일 아침에는 다시 살아납니다. 그래서 큰 고통과 괴로움이 있어도 오히려 그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밀한 장막에 불러들이셔서 거기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은혜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넉넉히 이 세상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실로 우리가 광야와 같은 세상의 길속에서 우리의 유일한 위로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먹고, 입고, 마시고, 우리의 감각을 즐겁게 하는 것들은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진정한 위로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생명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당신의 생명을 이입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짓밟히는 자 같으나 다시 일어나는 자요, 패배하는 자 같으나 승리하는 자요, 버림받은 자 같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자입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시인이 잠잠치 말아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보이지 않은 것으로 사는 것이 믿음생활입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 생활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은 것들이 우리에게 느껴져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느껴지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까지는 우리가 그것을 갈망하게 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의 감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에 있는 확신들은 우리의 마음의 경험을 통해서 그 확신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시라고 하는 사실을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꼭 붙들고 이기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