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를 인정함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모든 죄라고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잘못이고 또 그것은 이웃을 향해서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다윗의 이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 것이, 주께만 범죄했다 그러는데 사실 피해자가 있잖아요.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는, 자기가 좋아서 그랬다 할지라도, 우리아를 죽였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결국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손해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만 범죄하여’ 라고 이렇게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은 다윗이 그런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지요. 왜냐하면 율법의 정신 자체가 어떤 죄가 가지고 있는 신적인 연관과 그리고 인적인 연관을 함께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러한 사상은 예수님께도 잘 나타나죠. 예수님이 율법 중 제일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주 너의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그리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이렇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 다윗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가 없거든요? 그렇지만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 앞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이유는 비록 이웃이 자기를 인하여 피해를 입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현상적으로 그런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결국은 이 모든 자신의 잘못된 삶이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요, 그리고 반역이었다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결국, 이런 저런 악을 행하고 죄를 지었지만 그 모든 일들은 그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죠. 마음에서 하나님을 전심으로 두려워하고 사랑하는 그것이 자기 안에 있었다고 할 것 같으면 그렇게 되었을 리가 있겠습니까? 은혜가 사라지고 나면 굳이 죄가 생겨나라고 애쓰지 않아도 은혜가 사라지면 악한 인간의 본성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잘못하였기 때문에 그 모든 일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또 그 일들이 생겨나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많은 인간들에게 피해를 입혔지만 그러나 결국은 그 모든 죄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도전한 자신의 잘못 때문이다 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서 마음은 깊은 가책과 고통을 경험하는 가운데 한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항상 의롭고 올바르시며, 나는 항상 잘못되었습니다 라는 고백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실 때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 순전하시다 하리이다’ 이게 진정으로 회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그리고 가장 필수적인 그러한 마음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잘못하고 죄를 짓게 되면 자기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불신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정신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인가 잘못할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그 판단보다는 내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릇 행하는 것이죠.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교만이에요. 모든 죄의 뿌리는 지적인 교만이에요.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나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기의 지성에 대한 부인 없이 욕망을 따르게 되면 악을 행하고 범죄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당하게 된 큰 어려움 앞에서 자기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고 자기를 신뢰하는 것에 대해서 뉘우치게 되는 것이죠. 여기에는 하나님의 아주 놀라운 지혜가 들어있는 것이죠. 회개의 과정에서 자기를 신뢰하는 감정을 버리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신자가 자기 부인이 가장 잘 되는 때가 언제인가 하면 회개하고 난 직후, 이 때가 자기부인이 가장 잘 되는 것이죠. 지금 자기를 믿었다가 아주 쓰라린 패배를 당한 직후기 때문에 이제는 자기를 믿을 수가 없는 것이죠. 마치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사기를 치고 커다란 손해를 입힌 후에는 그 사람의 숨소리도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것처럼 회개하고 난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버리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아주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주님이 판단하실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잖아요, 그러니까 마치 이 장면은 재판장이 죄수를 심판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것을 하나님 앞에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아니면 하나님이 편견을 가지고 자기를 대하신다거나, 혹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판단이 자기에게만 일방적으로 불리하다거나, 그런 마음을 갖지 않는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이죠. 가끔 보면 차량이 죽 줄지어서 신호를 위반했는데 마지막 차 하나를 붙잡아서 딱지를 떼요, 그러면 운전사가 순순히 항복을 하지 않죠, 왜 나만 잡냐고, 저 앞에 수많은 차들이 다 어겼는데, 그러면 경찰은 내가 어떻게 그것을 다 잡습니까? 하면서 딱지를 떼죠. 승복이 잘 안되죠.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죄인을 다루시는 것은 똑같은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어떤 사람은 그게 즉시 문제가 되어서 징벌하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예 목숨을 거두어서 데려가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오랫동안 내어버려 두시기도 하시는 그렇게 하시는 그 섭리의 지혜는 알 수 없는 것이죠. 다만 신자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가 되면 그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위에 있는 것들이… 그리고 오직 자신과 하나님만 독대하며 하나님의 말씀의 계명 앞에 자신이 잘못한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뉘우치게 되는 것이죠. 그게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마음의 상태라 이것이죠.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던지, 너그러이 대해주시던지, 아니면 당장 목숨을 거두시던지, 아니면 모른 척하고 넘어가 주시던지 그런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죠.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나의 잘못, 나의 죄, 그것은 명백한 것이거든요. 이 땅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다 옳다고 하고 그 일을 해도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이 옳지 않은 것이면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행한다는 이유 때문에 자기의 죄가 면탈되는 것은 아니죠.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깊이 느끼고 그리고 회개하는 그것이 주님께 돌아오는 신자의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두 번째 작용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