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중에 깨닫게 된 것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 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시 51:5-6).
인간이 자신을 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만큼 힘든 것입니다. 시인 다윗이 한 생애 동안을 참 진실하게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았습니다. 구약에서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도 없고 또 하나님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범죄하기 전까지는 그러한 것이 자신의 모습의 전부이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의 범죄를 통해서 자기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있는 죄의 뿌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결국 자기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게 되었지만, 이것이 자기의 선택에 의해서 일어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게끔 아주 근본적으로 자기 안에 내재하고 있는 그러한 그 악의 본성을 보게 된 것이죠. 그것은 어떻게 보면 자신의 의지를 초월하는 그러한 곳에 있는 그러한 악의 본성이라는 말이죠. 그래서 오늘 성경에서 말하기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으며 모친이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가 죄를 짓게 된 그것은 자신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서 되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의 깊은 뿌리는 자신의 어떤 의지나 의식이나 이러한 것을 초월한 것이란 말이죠. 그것을 다윗이 생애를 살면서 처음으로 깊이 느낀 것이에요. 그래서 ‘벤자민 워필드’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자는 이 부분을 해석하며 그러한 이야기를 했어요. 다윗이 범죄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고 끔찍한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범죄를 허락하심으로써 그가 이렇게 인간 안에 깃들여 있는 아주 뿌리 깊은 죄성을 발견함으로써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을 의지하여야 할 인간을 발견하게 하셨다 라고 말이죠. 그래서 결국은 그게 ‘도덕적인 필연성’이 되는 것이죠. ‘자연적인 필연성’이라고 하는 것은 높은 곳에서 구슬을 굴리면 바닥으로 내려가게 되어있는 것이, 큰 구슬이든 작은 구슬이든 어쨌든 굴러가게 되어있잖아요, 그러한 것을 ‘자연적 필연성’이라고 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 이게 ‘도덕적 필연성’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 ‘도덕적 필연성’의 힘이 ‘자연적 필연성’보다 훨씬 강한 것이에요. 그래서 거의 운명이 되는 것이죠. 그것을 깊이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러면 그렇게 뼛속 깊이 사무치도록 죄가 있고 그래서 결국은 모친이 죄악 중에서 자기를 잉태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자기의 뼛속 깊이 이러한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는 도덕적 필연성이 있다고 하면, 그게 죄를 범한 그 순간에 생겨난 것은 아니잖아요, 그 이전부터 있었는데 그것을 이 사건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 것이잖아요. 그러면 왜 이러한 끔찍한 일이 이 시점에서만 발생하고 과거에는 발생하지 않았냐 이거에요. 이것에 대한 시인의 답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총이에요. 그럴 수 밖에 없는 인간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계속 붙들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신자의 죄는 ‘은혜로부터의 벗어남’이에요. 그러니까 신자의 죄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만들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우리를 붙들고 있던 그 어떤 매임들을 우리 스스로 벗어버리는 것이죠.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나는 것이에요. 그러고 나면 그 다음에는 본성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다윗이 경험한 사건이에요. 그래서 신기하게 신자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지만, 죄를 지은 후에 깨닫게 되는 것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히려 그 죄를 통해서 그 죄를 짓지 않았던 이전에 없었던 마음을 가질 수 있어요. 그게 무엇이냐 하면,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매일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붙들려 살아야 할 아주 초라하고 비천한 인간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물론 그것은 죄를 사랑하고 그 죄를 범하고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고, 그 죄를 버리고 떠날 때, 회개할 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죄와 은혜의 문제는 아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없는 아주 심오하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위대함, 그리고 하나님의 이해하기 어려운 그 경륜을 엿보게 하는 그러한 훌륭한 도구가 되게 하는 것이죠.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죄 중에 출생하였다고 말 할 정도로, 그렇다고 해서 다윗이 자기의 출생의 근원이 되는 부모의 결혼, 결합 이러한 것들을 죄악 되다고 보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이러한 구절을 가지고 그러한 해석을 하려고 했단 말이죠.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부모의 죄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자기를 추적해 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자기 자신은 몰랐었는데 자기 자신 안에 있는 것들이 발현이 되면서 그렇게 끔찍한 악을 저지르게 되는 것을 발견하면서 그 근원을 끊임없이 살핀 것이죠. 그랬더니 이것은 나 같은 인간에게는 거의 운명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그렇게 운명적인데 어떻게 그 동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렇게 변함없이 살아올 수 있었느냐,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하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아주 작은 일에도 마음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으면서 주께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이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요. 영혼으로 보자면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육지 위에 살다가 물 속에 다이빙 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거에요. 물 속에서도 물론 살 수 있죠. 그러나 오래 살 수는 없잖아요. 즉시 호흡의 곤란을 느끼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잠시 헤엄을 칠 수는 있겠지만 마지막에 물 속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공기 중에 사는 것이 얼마나 요긴하고 행복한 것인가 하는 것을 느끼면서 다시 물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과 같다 이거에요. 그러면서 시인이 깨닫게 된 위대한 진리가 있는데 주님이 죄악 중에 있는 자신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제사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죠, 그래서 많은 제물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보려고 했지만 그 제사가 하나님 앞에 열납될 리가 없었겠죠. 해결될 리가 없죠? 마지막에 깨닫게 된 것이 무엇이냐 하면,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대안이었어요. 중심의 진실함을 하나님이 원하신다. 그러니까 자기 자신 안에 있는 중심의 진실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의 내면에 은밀한 세계가 있잖아요. 그것은 우선 남에게 감추어져 있죠. 또 자신에게도 감추어져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 대해 놀랄 때가 많은 것이죠. 그게 없다면 사실 반성하는 삶이 없는 것이죠. 반성하는 삶이 있으면 우리 자신에 대해 정말 끊임없이 놀라게 되요. 그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끊임없이 놀라게 되고 하는데 그러니까 사실 자기 자신도 자신에게 얼마나 속기 좋은 존재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그 모든 것을 덮어둔 채 제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용서를 빌고 하는 그런 의례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깊이 성찰하고 그것에 대해서 정직해지는 것이죠. 그것을 하나님이 원하신다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해 정직해지고 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부정직해지면 그리고 무지해서 잘 모르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서 진실해지게 되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 시부터 사람을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전에 다윗이 이러한 끔찍한 죄가 없을 때에도 하나님을 많이 의지하던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때에 그 의지는 대부분 많은 경우에 원수들의 공격과 모함 배신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일반 섭리 속에서 자신의 삶이 아주 불안정하게 흔들리기 때문에 우리 주님을 깊이 만나지 못해도 우리가 큰 환란을 만나서 괴롭고 힘이 들게 되면 눈물을 흘리며 열렬히 주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훌륭한 마음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깊이 주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절실하게 하나님을 부르게 되면 모종의 신앙의 간증들을 갖게 하세요. 그렇게 환경에 의지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면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을 다윗이 이 사건 이후에 배우게 되는 것이죠. 그게 무엇이냐 하면 원수들의 압박이나 그러한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잘 생각해 보세요. 다윗이 죄를 짓자마자 나라가 쪼개지고 적군이 쳐들어오고 그러한 것이 아니잖아요. 하나님 앞에 도와달라고 절실하게 부르짖어요. 일반 섭리의 복이에요. 일단은. 그러나 모든 것이 그대로 있어요. 돈도 필요없어요. 높은 명예나 지위 그러한 것도 필요없고 자신의 영혼이 끊임없이 그 때에 필요한 복은 무엇이에요? 집을 주셔도 편하지 않고 땅을 주셔도 편하지 않고 지금 자신이 고민하고 있는 것에 대한 해결은 못되는 것이죠. 그것을 구하게 될 때에 사실은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얼궁르 구하는 그 것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명쾌하게 나누어질 수 있는 것이냐 하면,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런데 그것은 자기 자신의 신앙이 상당히 성숙하지 않으면 이 다윗으로 하여금 그러한 위대한 계시를 남기게 하시기 위해서 이 다윗으로 하여금 인간 깊은 내면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그것이 바로 그래서 오늘도 여러분이 기도할 때에 자신의 영혼이 어떠한 상태인지를 깊이 성찰하고 주님의 은혜를 구하는 그러한 사람이 되셔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