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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를 은혜의 기회로 만드심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시편 51:15).
어제는 왜 유독 다윗의 범죄는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은혜의 깊은 세계를 아는데 이바지를 했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은 그냥 범죄하면 죄로 끝나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이렇게 질문한 다음에 내일 계속 하겠습니다 그랬잖아요. 약속을 지켜야지. 자 왜 그럴까?
우리 주위에 보면 은혜생활을 하다가 미끄러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죠.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어제 새벽에 말씀드린 이 교리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냥 죄는 대부분 죄로 끝나는 경우가 많단 말이죠. 그럼 어떻게 이렇게 다윗의 경우에는 이 죄가 주님과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 깊이 깨달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는가? 이런 경험이 다윗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들이 종종 나타나는 거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서 다윗의 경우에는 이렇게 죄가 하나님의 심오한 은혜의 세계를 알게 되는 비결이 되었는가? 여기에서 우리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어떤 일반적인 원리들을 끌어낼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게 되면 그러므로 우리가 은혜의 세계를 깊이 알기 위해서는 죄를 지어야 되겠구나 하는 결론에 도달하기가 매우 쉽기 때문이고, 그리고 또 이렇게 잘못해서 죄를 그렇게 짓게 될 때 그때에 성경은 우리에게 은혜를 더하기 위해서 우리가 죄를 범하여야 하겠느냐 사도의 반문이 생각이 나기 때문이죠. 그러나 좀 더 냉철하게 보면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무엇이냐 하면 사도 바울의 경우 그가 지은 죄가 은혜의 세계의 비밀들을 터득하게 하는데 이바지했던 것은 매우 분명하다라는 것이죠.
자 그렇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답할 수 있겠는가 라고 하는 것이죠. 이 문제는 우리들이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접근해야 될 것으로 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과 그 다음에 사람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보는 것이리라 이렇게 생각됩니다.
우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들은 하나님의 주권의 범위에 있는 것이죠. 다시 말씀드려서 죄는 인간이 범했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이 범죄를 사용하셔서 당신 자신이 이 나라를,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당신 자신의 섭리를 이루어 가시는데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짓게 하신 분일 수는 없지만 인간이 지은 악이라고 하는 이 죄를 만약에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이루는데 옳게 사용하시지 못한다고 한다면 그러면 인간과 하나님은 마찬가지가 되고 끊임없는 대립일 뿐일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시며 죄를 짓는 사람들을 징벌하심으로 죄를 짓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으시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는 이 죄를 하나님께서는 커다란 주권 속에서 이것 하나하나를 사용하셔서 그래서 당신이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때 말할 수 없이 신비로운 방법으로 당신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다윗이 이렇게 죄를 지은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이고, 그리고 다윗이 이런 죄를 지었을 때에 동기 그 자체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을 통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이 다윗의 이 범죄를 통해서 하나님이 궁극적으로는 영광을 받으시는 장면이 나타나죠. 그래서 그때에는 물론이거니와 이후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죄가 얼마나 뼈저린 고통을 가져다 주는가하는 것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죄를 사용하셔서 다윗을 이전에 가보지 못한 은혜의 깊은 세계 속으로 인도하심으로 그의 노년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보면서 우리는 결국은 잠시 하나님의 영광이 손상당하는 것 같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을 보신 적 있으시죠. 불이 워낙 강렬하게 탈 때 그때에 무엇인가 불길을 방해하는 물질을 집어넣으면 불은 더욱 더 강력한 빛을 내면서 불이 거기에 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죠.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지혜가 너무나 무한히 크시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범죄가 그것을 가끔 가로막으려고 들어가도 하나님의 이 지혜와 선하심의 영광은 워낙 강력해서 이것을 태우면서 그러면서 오히려 그 불의 불된 능력을 찬란한 방식으로 드러내듯이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범죄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죠. 그러나 인간은 여기에서 그렇게 자신의 범죄를 통해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 자체가 죄에 대해서 관용하게 하는 그런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죠. 이것이 바로 사도가 경고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는 행동이기 때문인 것이죠. 하나님의 은혜가 있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하자, 우리의 범죄는 주님의 더 큰 은혜를 드러낼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은 바로 사도가 하나님의 주권의 교리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빠질지도 모르는 위험을 경고했던 바로 그 사안이고, 만약에 누군가가 그런 마음으로 범죄하였다면 그 죄는 모르고 죄를 지은 사람보다 훨씬 더 크지 않겠어요. 율법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은 일부러 죄를 계획적으로 지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이에요.
두 번째는 이렇게 인간의 범죄를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 삼으시는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함께 두 번째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선하심이예요. 하나님의 선하심은 지혜에 기초해 있고, 지혜의 발산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세계를 향해 가지신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셔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지혜를 배우면 되는 거죠. 하나님의 이 지혜는 위로는 하늘, 옆으로는 땅과 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있는 자기 자신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 모든 것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게 하셨는데 그것으로서는 충분히 하나님께 찾아올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지성으로 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의 응집체예요. 그리고 그것은 곧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을 싸돌아다니고, 배회해도 거기서 주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을, 지혜를 발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지혜와 선하심을 발견하는 일이 쉬워요. 인간의 이 죄를 이렇게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주권은 바로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지혜에 기초해 있는 것이죠.
다윗은 엄밀하게 말하면 다윗은 어느 한 순간 불현듯 죄의 습격을 받아서 이렇게 악에 빠지게 되었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에는 이미 다윗의 범죄가 예견되어 있었어요. 그러한 이미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다윗을 택하셔서 그래서 당신의 나라를 책임질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다윗이 지은 이 죄는 인간의 연약함과 다윗의 악함을 보여줌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선을 드러냈고, 그가 지은 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왕국이 위협을 받고 무너지거나 혹은 하나님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다윗으로 하여금 이 죄에서 돌이킨 후에 보다 깊은 은혜의 세계를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죄 그 자체가 인간의 힘이나 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의해서 선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주권과 지혜와 선하심을 가지고 역사해 주시는 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것이 그렇게 된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인간 편에서는 이제 우리에게 직접 적용되는 것일 텐데 그러면 어떻게 이런 크고 끔찍한 범죄가 은혜의 심오한 세계를 아는 비결이 될 수 있었을까 라고 하는 것이죠.
우선 첫째는 회개입니다, 회개. 다시 말해서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죄를 통해서 그런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다윗의 마음속에서 버리는 회개가 있을 때 결과론적으로 그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이 끝없이 죄를 범하며 깊은 악의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을 때 그때에 죄를 다윗이 깊이, 죄를 다윗이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는 어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 죄는 영혼과 영혼의 기능 전체에 영향을 미쳐요.
그러니까 우리도 죄를 범할 때에는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사랑하고 죄를 범하는 동안에는 우리의 지성이 어두워져서 하나님과의 교통도 끊어지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은혜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사라지게 되는 거잖아요. 똑같이 다윗에게도 그런 것이 있었기 때문에 자기 입술을 열어 달라고 하나님 앞에 오늘 고백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죄를 품고 사랑하는 그 죄가 다윗을 은혜의 세계에 대해서 알고,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 있었지만 그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 죄와 멀어졌을 때 결국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많은 성품들을 깨달아 알게 되었던 거죠.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던 성품들은 더 깊이, 이전에 알지 못했던 성품은 새롭게 깨닫는 방식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죠.
그래서 우리들이 죄를 짓고 있는 동안에는 곤고할 뿐이지만 죄를 버리고 회개할 때에는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과 그리고 사랑,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 수 없는 자신의 존재의 연약함, 이런 것들이 떠오르게 되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믿음입니다. 즉,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갔을 때 처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단번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 문제가 해결 받았다고는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오늘 성경에 보면 뒤에 보면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이것은 여러 번 시도해 본 끝에 도달한 결론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도 이 제사를 통해서 자신의 죄의 문제를 충족하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 길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하나님 앞에 몸부림치면서 자기 자신이 이미 이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하나님이 거두실 것 같고 구원의 기쁨을 모두 앗아가실 것 같은 그런 위기를 느끼는 가운데 이 사람이 굳게 붙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은 선하시며 언약의 백성을 버릴 수 없다는 믿음과 그리고 주께서 판단하실 때에 자신은 할 말이 없는 죄인이라는 이 두 가지 사실에 대해 굳센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윗은 신앙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이미 그 은혜의 언약이 성취 되어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밝히 보여도 우리가 그분을 믿는 것이 그분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 사람은 그 언약의 그림자를 보면서 그러면서 자신이 죄를 지을 지라도 하나님과의 이 언약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구원자시라고 하는 이 신앙을 굳게 가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이 다윗의 놀라운 변화는 인간 편에서 보면 하나님 앞에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이 믿음, 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만을 바라는 이 믿음인데 아마 다윗의 생애에서 가장 절박하고 그리고 가장 하나님께 집중된 신앙을 가졌던 시기가 이 때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이에요.
성경에 보면 성령으로 시작했지만 육체로 마친 많은 임금들이 나옵니다. 히스기야 임금이나 아서왕이 대표적인 사람이었어요. 일생을 신앙으로 그렇게 살았는데 마지막에 결국은 육체로 마치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에게는 하나님이 나라를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셨고 그때에 너에 대해서는 그 대신 평안을 누릴 것이다 주님의 이 말씀 한마디 앞에 미래의 자신의 조국이 하나님 앞에 망하게 되는데도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아서도 일평생 주님과 동행하다가 마지막에 악을 행하고 병이 나게 되죠. 그런데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고 일평생 믿음으로 산 이 사람이 의원에게 구하다가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에 비하면 이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절실하게 매달리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이 죄 가운데 건져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매달렸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긍휼히 여기셔서 죄에서 자신의 힘으로 벗어날 수 없는 그 죄에서 하나님이 이 사람을 건져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의 편에서 또 하나 보면 그가 하나님 앞에 이런 죄를 놀라운 은혜의 도구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자신의 범죄에 대해서 접근한 영적인 방식이었어요. 즉, 제사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했을 때 이것을 최종적인 수단으로 여겼더라면 그가 아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의례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이것이 나 자신이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이 제사는 허위라는 사실을 알면서 심오한 하나님을 찾는 그런 심오한 결단의 세계로 나아갔기 때문에 그러한 영적인 방식 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의 범죄를 은혜의 기회로 활용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윗의 회개를 수단으로, 회개와 믿음, 그의 영적인 방식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시기는 하셨지만 이렇게 죄를 은혜로 바꾸는 것은 죄인의 마음속에 있는 작용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언약의 백성은 영원한 언약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것을 우리에게 더 잘 보여주셨죠. 그래서 그분께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놀랍게 우리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할 수 없이 새로운 방법으로 인간의 범죄를 사용하셔서 은혜의 기회로 바꾸심으로 주님 앞에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더 마음 깊은 곳에서 무릎을 꿇어 주님을 섬기게 하심으로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에게 이러한 잘못이 있다면 이렇게 다윗처럼 회개와 믿음으로 영적인 방식으로 주님 앞에 나아감으로써 하나님의 주권과 지혜와 그리고 선하심에 의해서 우리의 범죄가 은혜의 기회로 바뀌어지는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야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저희들을 지켜주시고 오늘 이 시간에도 아버지 앞에 간구하고 기도하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시간에도 간구하오니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저희를 변화시켜 주셔서 이렇게 모든 죄악으로부터 우리를 고치시고 살펴서 결국은 주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주님을 더 깊이 아는 변화의 기회가 되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