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01. 29 새벽설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제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고 시인이 고백한 것은 틀림없이 경험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집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죄의 문제가 기계적인 제사를 드리면 그 문제가 모두 해결 될 거라고 그렇게까지 생각하진 않았겠죠. 왜냐하면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이고 또 하나님이 이방의 신들과 같이 그렇게 뇌물과 같은 제사를 받으심으로써 그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인이 상정하고 있는 하나님은 아주 도덕적이고 그리고 고매한 가치를 가지신 그런 분이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마음 한 구석으로 이렇게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린다면 그것이 자신이 처해있는 어려운 문제들을 극복하게 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생각을 했을 것임에 틀림없거든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이 제사를 의지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갔던 것이죠. 마치 자신이 죄를 짓고도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씩씩하게 살면 문제가 모두 해결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그렇지만 시인이 하나님 앞에 깨닫게 된 것은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결론이었어요. 그래서 이런 식의 제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으면서 시인이 하나님 앞에 새롭게 발견한 사실을 고백을 하는 거죠. 그게 뭐냐하면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다. 여기서 상했다고 하는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히브리말로 보면 상했다고 하는 뜻은 뭐냐하면 심하게 맞아가지고 그래서 살이 조직이 파괴된 거예요. 어디 쾅하고 부딪히고 나면 한동안 멍이 들고, 그 부분을 손만 대면 자지러질듯이 아프게 예민하게 되잖아요. 그런 상태를 가리킨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상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아주 예민하게 된 마음, 그런데 그 예민한 것이 자신의 양심이나 이런 것들로 예민하게 된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통해서 이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때에는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던 것들을 느껴지게 만드는 그러한 마음의 상태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범죄를 하게 되면 범죄를 하게 될때는 마음이 굳어지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죄를 짓게 되면 우리의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된 것이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굳어지고 멀어지게 되는데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면 원래는 부드럽고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의 위엄, 자비, 사랑 이런 것들에 대해서 아주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던 그런 마음일거 아닙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무디어지게 되잖아요. 그런데 이 상한 마음은 그러한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 이거죠. 그래서 인제 이 여기에서 상한 마음, 그 다음에 보면 상한 심령 그 뒤에 보면 통회하는 마음 나오잖아요. 내일 말씀드릴려고 하는데, 이 두 마음은 좀 틀린 마음이예요. 그래서 상한 마음은 실컷 두들겨 맞아서 예민해진 마음이라면, 통회하는 심령은 밟아서 아주 으깨어진 마음이예요. 그래서
'롸흐 다크해'라고 해서 짖이겨진 그런 종류의 마음이예요. 마음 자체가 우리의 삶이나 생각이나 이런 것들이 마음을 형성하기도 하고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 것들을 만들기도 해요. 그래서 마음이 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선하게 해석해요. 마음이 슬픈 사람은 모든 것을 슬프게 인식을 하는 것이죠. 마음에 원한이 맺혀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들을 다 복수로 원한으로 해석을 한다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되기 까지는 그 사람도 무엇인가 계속해서 상처를 받았으니까 그렇게 된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밖에 일어난 일들은 그의 마음에 영향을 주고 그의 마음은 또 밖의 일에 영향을 주는 거죠. 그래서 이 두 가지가 같이 교류하면서 그러면서 마음에 의해서 삶이 형성되고 삶에 의해서 마음이 형성되어가는 거죠. 이러한 끊임없는 순환관계에 있는 거예요. 시인이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하고 자신이 이제껏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깊은 단절을 경험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겠어요? 그런데 마지막으로 하나님 앞에 수없이 제사를 드리면서 관계의 회복을 구했지만 그렇지만 그것이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영적인 분이신가. 자신이 믿고 있는 이 여호와의 종교가 가지고 있는 신령한 특성들을 깨달아 갔던 것이죠. 이전에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그 제사를 통해서 경험했던 죄의 용서, 하나님과의 친교, 이런 것들에 대한 많은 경험들이 있었는데 그 경험들이 지금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과 조금도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거죠. 즉, 이전에 이보다도 더 작은 죄들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시고 구해 주셨을 그때에는 다른 것들이 아니라 바로 이런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 이런것 속에서 구원을 받고 도움을 받게 된 것은 제사 자체에 있는 힘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께 마음을 쏟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근데 여기에서 이제 범죄를 통해 마음은 굳어지고 영혼에 큰 어려움이 오게 되자 제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했지만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지 않게 된 것이죠. 그러한 실패를 통해서 그는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제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예요. 그것은 자기의 마음 안에 있는 마음, 그 상한 심령, 그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신다고 하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이죠. 만약에 시인이 범죄하고 마음이 굳어지게 되는 일이 없었다면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상하게 되고 통회하게 되는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예요. 그런데 이런 경험을 통해서 이제 범죄하지 않았더라면 알수 없었을 자신의 내면의 세계와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의 비밀들을 깊이 터득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죄가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것들을 사용해서 역사하시는 은혜가 가르쳐준 것이죠. 그래 우리들이 은혜에서 멀어지고 나면 마음 속에 있는 수많은 죄들이 일어나서 그래서 큰 힘을 행사하는 것을 보는데 사실은 죄의 위대한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르고 있는 은혜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예요. 그래서 아주 공교롭게도 시인의 이러한 경험과 함께 사도 바울 같은 경우는 자신이 죄를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또한 경험하게 된 것이죠. 그래서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있는 영혼을 긍휼히 여기셔서 그렇게 통회하는 시인을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죠. 그러니까 어떤 식으로든지 우리가 은혜의 깊이를 경험하기 위해서 죄를 짓자고 말할수는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의 작용을 통해서 하나님은 죄의 깊이와 우리의 마음에 우리도 깨닫지 못했던 크고 비밀스러운 일들을 하나님이 보여주셨던 것이예요. 그러면서 매순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가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시고 도와주시고 지켜주시는 것이죠. 하나님은 오늘 이시간에도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간에 마음이 이렇게 상한 심령이 되고 급기야는 통회하는 마음이 되어서 그래서 주님의 뜻을 저버리고 어그러진 길로 갔던 사람들이 주님을 기뻐하고 주님이 좋아하시는 길로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은혜의 회복속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시는 주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