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있는 인자하심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여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시 52:1).
모든 시편에 그 시가 어떤 상황에서 쓰여 졌는지를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시들은 시편51편에 나오는 것처럼 그 시를 다윗이 언제 썼는지를 기록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시를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먼저 이시를 다윗의 마스길이다 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히브리말로 교훈이라는 뜻인데 샤칼 이라는 지혜롭게 하다라는 히브리 동사에서 온 명사입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시를 많이 읽으면 하나님 앞에 지혜로워 질것이다 생각이 되는 신앙과 인생의 교훈을 담고 있는 시를 마스길이라는 표제를 붙인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오늘 여기에 보니까 이 시대의 배경이 나와요, 그 배경이 언제였냐면 다윗이 아직 왕이 되지 않았을 때에 사울이 정권을 잡고 있었는데, 사실 다윗은 사울을 진심으로 공경했습니다. 시기심에 가득 찬 이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이때 다윗이 에돔 사람의 땅에게까지 도망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거기 아히멜렉이라는 사람의 집에서 머물고 음식도 공궤 받고 보호를 받고 있었는데 이 다윗을 사울이 찾아 헤매는 것을 안 그 에돔 사람 중 한 사람이 고자질을 한 것이죠, 그렇게 하면서 그 결국은 사울의 추적을 받게 될 그때에 지은 시입니다.
1절은 이제 하나님께만 피하는 다윗의 신앙을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가 고백하기를 “강포한 자여 네가 어찌하려 악한 계획을 스스로 자랑하는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항상 있도다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시인은 고백하기를 강포한 자가 자기를 해하기 위해서 악한 계획들을 만들고 그것을 자랑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나가다 보면 악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 경건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종종 신문이나 이 매체를 통해서 이 세상에 어두운 면들이 어떻게 돌아가는가 하는 것을 보면은 참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악을 행하는 지혜와 그리고 모략은 믿는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복잡하고 그리고 아주 효과적 이예요. 그럴 때 오히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훨씬 불리할 경우가 많은 있는 것이죠!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악한 궤계와 그 다음에 악한 꾀와 모의 이런 것들을 보면서 똑같이 자신도 그것을 배워서 악한 꾀를 짜고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그것은 사랑의 원리에 어긋나죠! 그래서 잠시 지는 자 같으나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심으로 사실은 궁극적으로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자는 늘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되는 것이죠! 오늘 새벽에 깨서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가장 큰 재산은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가 주님께 있다는 것 그것이었어요.
요즘 미국 대통령의 새로운 취임과 함께 그가 정신적인 스승으로 생각하는 아브라함 링컨에 대해서 새로운 조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원래는 역시 흑인을 차별대우하는 사람이었지만 후에 깊이 마음을 깊이 바꾸고 흑인을 해방 시켜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족 간에 전쟁을 벌여야 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때 그가 즐겨 하던 말이 있습니다. “적이 얼마나 강한지 적의 군사의 수효가 얼마나 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주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똑같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환란도 만나고 시련도 만납니다. 때로는 정말 악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런 사람을 교회 안에서도 만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악한 꾀를 더 악한 꾀로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신자가 자신의 삶속에서 하나님을 추방하는 것과 같은 것이 예요. 이것이 바로 다윗의 마음속에 있었던 그런 하나님 주권사상 이예요. 잠시 무엇인가 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도 우리가 만약에 하나님께 있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악을 행하실 수 없는 분이시라는 믿음, 그래서 그분을 의지하고 사랑할 때에 그분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베풀어 주실 것이라는 신앙, 이게 바로 하나님 주권사상이에요. 그래서 이 하나님 주권사상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사상이에요. 아무렇게나 가질 수 있는 사상이 아니라 바로 그렇게 될 때에만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신 분이라는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이예요. 자 자기가 아히멜렉의 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사울에게 고자질 하였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을 때에 다윗은 무기를 준비하고 자기를 찾아오는 사울 군사들을 쏠 활을 채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악인은 자신의 악한 꾀를 자랑하지만 나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항상 있도다 하는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람의 보기에는 꼼짝없이 악인에게 당하는 것 같지마는 마음을 쏟아 부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시인에게는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더 뚜렷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을 고난 중에 있는 나에게 보이실 것이라는 신앙이었습니다. 신앙의 참된 가치는 환란과 그리고 시련을 당할 때에 보석처럼 빛나게 됩니다. 그러면 그 환란과 시련을 당할 때에 보석처럼 빛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어떠해야 되겠습니까? 적어도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쓰러집니다. 어떤 때는 마음이 이탈되어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이 내 마음이 맞지 않아서 주님께 불평하고 원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연약하지마는 그래서 때로는 넘어지고 미끄러지지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이 될 때, 그때 신자는 가장 극심한 악인의 고통, 악인의 그 악한 계획 아래서도 오히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자기를 향해 베푸시는 그 인자하심이 항상 넘친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왕으로 삼으시기 전에 이런 점에 있어서 철저히 연단 하셨어요.
지도자의 크기는 몸집이나 아니면 그가 가지고 있는 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죠, 지도자의 크기는 정신의 크기에요, 그 정신의 크기가 매우 커야지만 자기와는 의견이 다른 다양한 사람들을 끌어안고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목표를 향해 갈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지도자는 어떻게 보면 행복해 보이지만은 어떻게 보면 끊임없는 고통과 그리고 형극의 길을 가는 사람이죠, 그런데 이러한 정신의 큰 크기가 제왕에게는 얼마나 많이 요구되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 다윗을 제왕으로 삼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이 큰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주권을 의지하고 악인의 치밀한 계획 앞에서 그 계획과 맞서는 더 악한 계획을 꾸미는 대신에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들을 위하여 자비하심을 베푸시는 하나님께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시인을 통해서 보여 주셨던 것이예요, 그래서 매순간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내편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천만인이 나를 에워쌀지라도 여호와는 내편이시라 방백을 의지하는 것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이 낫도다” 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 자신의 모든 사정을 아뢰고, 주님을 의지하고 그러면서 주님 앞에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은혜와 그리고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