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이 의지하는 것
“의인이 보고 두려워하며 또 그를 비웃어 말하기를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시 52:6-7).
여기에 보면 악인의 정체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합니다. 우선 악인의 존재는 의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일단은 두려움의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는 자원이나 많은 권력을 가지고 악하게 살아가는데 이 사람들이 그리는 삶의 질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통치의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상충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악인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이때에는 반드시 악인은 자기 자신의 악인 됨을 드러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악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인에게는 현실적인 권력과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의 행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 사람의 삶의 뿌리를 봅니다. 이때에는 그를 비웃을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으로 자기 힘을 삼지 아니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힘’이라고 되어있는 이 부분이 우리 성경에는 ‘성’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이 시대의 ‘성’이라고 하는 것은 ‘공격’보다는 ‘방어’ 개념입니다. 그래서 성을 도시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성과 왕이 있는 궁궐을 에워싸고 있는 성으로 재성과 나성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성은 방어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적군의 입장에서 보면 파죽지세로 달려왔다고 할지라도 가장 많은 병사를 희생시키면서도 점령하지 못하고 난관을 맞이하는 것이 바로 성 앞입니다. 아주 높은 성벽을 쌓고 그 위에서 화살을 쏘거나 아니면 어마어마한 돌이나 아니면 불을 던지거나 혹은 뜨거운 것을 끓여서 붓거나 이런 끔찍한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의 이 성이라고 하는 것은 저항하는 힘과 안전한 보호의 상징입니다. 그러니까 이 악인은 겉으로는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면서 무엇인가 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 이면에서는 하나님을 성으로 삼으며 살아가는 그런 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한 나라가 있고 전투하는 군인들이 있는데 파죽지세로 적군들이 몰려올 때 성 안에 있지 않고 성벽 없이 벌판에 서 있다고 하면 그것은 대세를 휘몰아 달려오는 적군에게는 밥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악인이 겉으로 보기에 이 사람들이 자원과 권력을 가지고 자기 질서를 강요함으로써 이 의인들을 핍박하고 의인들을 두렵게 만들지만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성으로 삼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결국은 번성하는 것 같지만 힘이 없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그들을 지켜주시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악인들에게는 의인을 잠시 두려워하게 하는 큰 힘과 그리고 권력이 있지만 그러나 이들에게는 자기를 보호해 줄 하나님의 기업되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는 내 편이시니,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주님은 우리 하나님이시오 우리는 그의 손에 기르는 양이니, 우리는 주께 피할 것이니, 우리가 피할 때 주께서 친히 싸우시리니,’ 이런 고백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의지하는 것은 오로지 이 세상의 재물과 그리고 권력의 풍부함을 의지할 뿐인데 그것이 하나님께는 한 번 불면 날아가는 바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시인이 고백을 하는 것이 ‘그들은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던 사람들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어디 재물뿐이겠습니까? 권력도, 그리고 재물도, 명예도 이런 것이 그 악인을 든든한 것처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그 자체가 불변하고 영원한 것들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일이었는데 선생님 한 분이 자기는 항상 3반만 맡겠다고 하신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선생님은 항상 1학년 3반 담임이었습니다. 그리고 독신이었습니다. 옛날에 국가대표 아이스하키 선수였는데 무슨 이유였는지 장가를 안 갔습니다. 그 당시에 자가용을 타고 다녔으니까 돈은 많았던 모양입니다.
그것도 기사를 두고 아무튼 기이한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는 학생들을 올바로 교육을 해보려고 했는데 그것은 인정을 합니다. 학생을 차별하지 않고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잘 가르쳐보려고 하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분이 제 생각에는 당신 자신이 돈을 내셨던 것 같습니다. 학급지를 매달 발행을 했는데 학교가 발칵 뒤집히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잘 아는 친구 하나가 거기에 논설을 하나 썼는데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61년도인가 일어났던 5.16구데타의 의미를 거기에 이 고등학생이 이렇게 쓴 것입니다. 그 때가 얼마나 무서운 시절이었는데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나눠줬다가 학교 어느 선생님이 그것을 보고 학교가 발칵 뒤집어졌고 모두 그 책을 회수를 했습니다. 그 때에는 모두들 고등학교 학생의 객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뒤 정확하게 3년 뒤에 육영수 여사가 먼저 죽고, 5년 뒤에 대통령 자신이 죽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회고록에 보니까 박태통령을 처음 봤을 때 ‘저 사람은 스스로 절대 안 물러날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꽂혔다고 합니다. 누가 그렇게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은 사람의 생각이고 악인은 그 어느 한 순간에 있는 것 같아도 사라지고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라지는 것 같아도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의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오, 여호와는 나를 지키시는 자시오, 세상의 방백을 의지하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낫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기업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최고의 특권입니다. 그리고 최고의 특권인 동시에 최고의 행복입니다.
마지막으로 ‘죄악으로 자신을 든든하게 하는 자라’ 악인은 기반 자체가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의 힘을 허물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악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설정한, 자기 자신이 구축한 이런 질서들이 끊임없이 위협을 받고 위협을 받게 되면 그 위협의 모든 위협의 한 복판에는 자기 자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자기 자신의 존립을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악인의 특징입니다. 악인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의인은 이따금 잘못했을 때 자신의 삶의 기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부분적인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리고 깊이 생각하면서 결국은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지만 악인은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삶의 기반 자체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조차도 끊임없이 물 위에 떠다니는 풀처럼 그렇게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돌아갈 수 있는 최종적인 종착점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생각과 욕망을 따라서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악인은 궁극적으로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악인은 끊임없이 스스로 자기를 든든하게 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악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의 정체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삶에는 안정과 평화가 없습니다. 물질적인 부는 누릴 수 있고 권력의 정점에 설 수는 있지만, 그러나 진짜 평화를 누리는 것은 오히려 그 권력에 의해서 압박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삶은 불완전할지라도 그들은 돌아갈 수 있는 구심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신다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