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에게 고통 받을 때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시 55:2-3).
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어느 순간에 이렇게 절실하게 기도를 들어 달라고 하나님 앞에 탄원하는 시인의 절박한 기도의 이유가 2절과 3절에 나옵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내게 굽히사 응답하옵소서 하는 거죠. 여기서 ‘굽히다’라고 하는 이것은 허리를 수그려서 그래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동작을 가리키잖아요. 그래서 구약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이 없으신 그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실은 하나님에게는 뭐 위, 아래 이런 표현이 적합하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과는 구별되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설명하는 방식이 마치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그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이렇게 바라보시는 것 같이 그렇게 묘사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특별히 자신의 처지를 하감해 달라고 하는 기도를 드리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만물과 인간들을 돌아보시지만 특별히 이 시인을 향하여 허리를 구부리시고 그를 바라보시는 그런 동작을 하나님께 요구하는 거죠. 그래서 응답해 주옵소서 라고 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시인이 얼마나 다급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늘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때는 없지만 그러나 아주 절박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이죠. 그럴 때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아주 잘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신앙생활 해 갔다면 어느 한 순간에 위기를 만나고 어려움을 만나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할 그 때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놀랍게 응답해 주셔서 그래서 친히 교통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결국은 얼마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맑고 투명하고 그리고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 시인이 바로 그렇게 하나님 앞에 탄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탄원할 때 이 시인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 이어서 나오는데 그게 뭐냐면 근심하는 마음과 탄식하는 상태에요. 근심하는 마음으로 탄식하고 있는 상태에요. 무엇 때문일까요? 그러니까 자신은 힘이 없는데 자신을 에워싼 많은 원수들, 자기를 에워싼 수많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기를 에워싸고 있어서 그들로부터 받는 고통과 괴로움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이 이렇게 끊임없는 근심과 그리고 탄식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이유가 이제 이어서 구체적으로 나와요.
그게 뭐냐면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의 연고입니다 이거죠? 여기서 원수의 소리, 악인의 압제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 1차적으로 전쟁을 연상하게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보면 그 소리가 얼마나 크게 나느냐에 따라서 군대의 수를 판단하게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군인들은 적군을 공격할 때에 고함을 치면서 큰 소리를 내며 심리적으로 상대방을 압박하면서 공격을 하죠. 이것이 바로 전쟁의 문맥이에요.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원수의 소리라고 하는 것은 그를 에워싼 적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래서 시련을 만나면서 원수의 수는 아주 많아지겠지만 자신은 홀로 외톨이가 된 상태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죠. 악인의 압제라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전쟁에서 져서 전쟁에서 불리하여 끊임없이 공격을 받으면서 스스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는 고통 받고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죠. 우리의 삶에 항상 승리만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리고 삶에서의 모든 패배가 항상 그 사람의 죄나 허물 때문에만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고 주님을 많이 의지하는 사람인데도 때로는 하나님이 수많은 원수에 에워싸이게 하시고 적들에게 압제를 당하게 하시는 때가 있어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렇게 불리하고 싸움에 질 것 같은 위기를 만나야지만 절실하게 주님을 붙들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절실하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기 때문에 이 시인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매달리게 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종종 이 세상에서 소망이 끊어진 사람처럼 그렇게 시련 아래 두실 때가 있는 거죠. 왜냐면 거기서 이 시인처럼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과정을 통해서 자기의 악함과 모든 것들을 주님 앞에 토해 놓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죠. 그래서 주님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더 충성하도록 격려하시고 정결한 사람들을 더 정결해지도록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도록 그렇게 하나님이 연단하시는 것이에요.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이것이 바로 이 시인의 절실한 기도였어요. 이들이 이렇게 시인에게 적군처럼 덤벼들고 그리고 군사처럼 압제해서 근심과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이것은 결국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한 의도였지만 그들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그 무엇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성경이 말하기를 저희가 죄악으로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이게 뭐냐면 악을 행하는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이 악하기 때문에 악을 행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악한 사람들은 시인과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시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 악한 사람들이고 그리고 성향 자체가 하나님을 거슬러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 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전체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이 정하신 질서, 그 뜻을 대항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그것은 이미 그들의 마음과 경향이 되어서 거스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었어요. 그렇게 하면서 이 시인은 아주 절실하게 하나님 앞에 이 사람들의 정체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끊임없는 근심과 탄식을 불러일으키며 적군이 쳐들어오듯이 소리를 지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합하여 나를 공격하는데 이것은 저희가 죄악을 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 피할 수 있는 구도가 아니라 이거죠. 그래서 이 시인이 신앙을 버리고 그리고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이들과 타협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선악의 대결이에요. 근데 이 시인이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이 일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그리고 나를 굽어보다 달라고 하나님 앞에 특별한 간청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예화)대나무가 길지만 그 대나무를 분지르고 싶으면 아무데나 꺾는다고 해서 그 대나무가 절대로 분질러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기 중국에 가 보니까 말이죠..건물을 짓기 위해서 이 바깥에다가 이 철골로 아쉬바를 만들잖아요. 그것을 아예 대나무로 만들더라구. 위험해 보이기는 하는데, 그 사람들 생각에는 대나무가 왠만해선 부러지지 않으니까, 휠 지언정 그러니까 그걸로 아쉬바를 만들고 거기에 매달려서 사람들이 공사를 10층씩, 15층씩 되는 것들을 15층 까지는 아니고요 7층에서 10층 되는 높이도 대나무로 아쉬바를 매고, 그리고 거기에 매달려서 공사를 해요. 왠만하면 부러지지 않습니다. 굳이 대나무를 자르려면 마디에다가 칼을 대야 합니다.
똑같이 우리의 인생을 살다 보면 결정적인 때가 와요.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매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때, 안 되는 상황, 그럴 때가 옵니다. 그 때가 대나무의 마디와 같은 때에요. 그 때 하나님 앞에 정말 간절히 마음과 뜻을 모아서 기도할 때 우리는 그 인생의 위기를 넘으면서 하나님이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리고 내가 간구할 때에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에 묻었던 많은 때들을 털어내고 그리고 하나님을 절실하게 의지하고 아버지 앞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들도 이렇게 결정적인 때, 주님이 기도하라고 부르실 때 하나님을 찾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