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하는 자의 찬송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이까”(시 56:10-11).
그런 그 자기의 눈물을 주님의 병에 담아달라는 처연한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 눈물은 고통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처연한 고통 속에서 원수를 인해서 아파하고 그 괴로움을 당하던 이 사람에게 만약에 위로가 없다고 한다면 그 견뎌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고난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할 때 하나님이 그것만 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충분히 이겨 나갈 수 있는 그런 위로도 하나님이 함께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한편으로는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 달라는 기도를 드리면서 또 한편으로는 하나님께로부터 깊은 위로를 받으며 주님의 이름을 찬송하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이제 그 찬송이 뭐냐 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오는 찬송이에요.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말하는데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 그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지한다고 하는 것일까요? 또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데서 오는 위로는 어떤 위로일까요?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어디에나 안 계시죠. 우리의 육신의 눈이나 이 사면으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는 그러한 육관으로 볼 때에는 하나님은 어디에도 안 계시는 거죠. 그래서 우리들이 은혜가 떨어지고 신앙이 식게 되면 그 사람의 삶 속에 아무데도 하나님이 안 계시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이 아무데도 안 계시기 때문에 결국은 육신으로 행하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 인간은 진리의 참 빛으로부터 멀어지면 자기를 사랑하되 육체만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 진리의 빛이 찬란하게 비췰 때에만 우리가 단지 육신을 가진 인간이 아니요, 영혼을 아울러 가진 인간이며 우리의 영혼의 아름다움이 우리의 육신의 삶을 좌우하고, 또 우리 안에 있는 선한 의지의 크기가 하나님 앞에서 이 신앙을 따라서 살아가도록 만들어 준다라고 하는 그 생각을 아주 분명하게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굳게 붙들린다, 또 하나님께 강하게 사로잡힌다라고 하는 이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힌다라고 하는 의미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알려주시되 우리에게 주관적으로만 알려주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하나님을 향한 주관적인 모든 경험이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객관적인 진리에 토대를 두고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오늘 시인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씀을 찬송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서 이 진리의 말씀은 아주 눈부시게 다가오는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을 당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을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는 이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고,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또 보여준 그 성품을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서 성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이 성품이 어떻게 행사되는지를 그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줘요. 그러면 우리가 이것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는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이 이해하면 보이게 되는 것이죠.
자 우리가 영적으로 깊은 침체에 들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멀어졌을 때에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아 나는 하나님께 버림 받았나보다’, ‘하나님은 나 같은 인간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시나보다’ 이런 생각을 하죠.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고 나면 우리에게 그렇게 분명하게 보여주셨지만 우리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성품이 나의 인생의 과정에 들어나 보여주고 또 그런 성품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끊임없이 인도해 오셨다고 하는 사실들을 터득하고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고 은혜를 받게 되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깊은 깨달음과 은혜를 터득하면서 예전에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의 성품의 나타남을 자신의 삶 속에서 아주 놀랍고 새로운 방식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이에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과 그리고 그 성품이 행사되는 방식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하게 되요. 하나님의 말씀의 빛은 하나님에 대해서만 우리에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해서도 우리가 알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어서 그래서 우리 자신을 보면서 하나님을 알게 하는 거죠. 이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놀라운 힘, 이런 놀라운 위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바꾸어 놓고 새롭게 하는 강한 힘이에요.
그래서 오늘 이 시인이 그렇게 큰 고난과 위기를 만났을 때에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시인은 여러 곳에서 ‘주의 말씀이 고난 중에 나의 위로입니다. 주의 말씀이 환란 가운데 나를 건지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나의 영혼이 소생하였나이다’ 이런 고백들을 시편 속에서 많이 남긴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면 거기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위로하시고, 돌보시고, 진리로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를 의로 교육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풍부한 마음을 그 말씀 속에서 읽을 수가 있는 것이에요.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인격적인 거거든요. 인격적이라고 하는 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나님이 나를 인격적으로 대해주신다는 것을 이해할 뿐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대함에 있어서도 인격적이라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인격적이라고 하는 것은 계획과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인격적이시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나님이 행하시든지 그것은 보다 더 큰 계획이 있다는 것이고, 또 우리의 인생의 어떤 일도 하나님의 주권을 벗어날 수 없으니 우리에게 미치는 고통, 괴로움, 시련, 아픔, 많은 일들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은 일은 없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서 이루어 가고자 하는 계획이 있으심을 보여주는 거죠. 그런 속에서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면서 그 계획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면서 시인이 마지막으로 고백하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오리까’. 자기 자신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온전히 던져서 맡기는 것이죠. 이렇게 자기를 온전히 던져서 주님께 맡기는 이 신앙의 생활, 이 믿음의 생활, 이것이 바로 진리를 붙들고 사는 사람의 신앙생활이에요.
원수들이 끊임없는 도전과 괴로움, 아픔, 시련을 안겨주어서 자신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아달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때에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할 것입니다 라는 고백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죠. 물론 시인이 추호의 잘못도 없이 이제껏 눈같이, 눈송이처럼 순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왔다면 자신 있게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겠죠. 만약에 그렇지 않다 할지라도 자신이 무엇인가 잘못해서 고난을 당하거나 혹은 그 잘못 때문에 고난을 당한 것은 아니지만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거치는 것들이 발견되었다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리고 그 고난과 시련 속에서 하나님께로 피하면 하나님은 그 큰 고난 속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지키실 것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들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매순간 우리를 부르셔서 이렇게 당신을 의지하게 하십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당신을 의지하게 하심으로 주님은 그들 마음 안에서 사랑을 받으시고 또 그는 그 주님 안에서 사랑을 받게 하십니다. 더 많이 주를 아는 사람일수록,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깨닫는 사람일수록 주님을 더 많이 의지하게 하고 주님을 더 의지하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당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의 마음속에 드러내서 그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시는 것이죠. 신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맘에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의 만큼만 밖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빛 가운데 살게 하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