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도우시는 하나님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시 60:9-11).
시편은 이게 무슨 논문을 쓰거나 수필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시 안에서도 단절성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단절성들을 이제 비평주의 계열에 있는 사람들은 한 사람이 이것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이 이것, 저것을 모아서 짜깁기를 했기 때문에 그런 단절성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편에서의 이런 단절성은 저는 단회성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연결이 끊어지는 것같이 들어오는 삽입구 혹은 뒤에 붙어있는 것과 같은 이런 구절들은 성격상 그렇게 다른 사람에 의해서 써지거나 한 것들을 서로 짜깁기를 했기 때문에 생긴 단절성이라기보다는 좀 다른 이유입니다. 그 다른 이유라는 것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의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에요. 시편을 보면 여러분들이 시인이 그 시를 써내려 가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렇지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시 속에 이 시인이 써내려 가는데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처럼 시가 엮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경우에 단절성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어요?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글을 써내려가니까, 인용문이 되니까 어쩔 수 없지요.
문제는 이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직접화법의 묘사들이 왜 들어오는 것일까 하는 질문이거든요. 저는 두 가지 정도의 가능성을 생각합니다. 하나는 뭐냐 하면 시인이 자기화법으로 글을 써내려가다가 그러다가 어느 부분에서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을, 성경에 나와 있는 그런 구절들을 갖다가 거기에다가 집어넣는 경우가 있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확신하건대 시인이 하나님께로부터 들었던 말씀일 것이라는 것이에요. 시를 짓는 순간일수도 있고 시를 짓는 순간이 아닌 시가 다루고 있는 그 사건의 때에 발생한 하나님의 음성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선지자였기 때문에 얼마든지 하나님께로부터 그러한 직접적인 전달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이런 단절성의 또 다른 가능성은 시인이 시를 써내려갈 때 이것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거든요. 문학작품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문학작품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송하고 그리고 또 하나님에 대한 찬송은 과거에 일어난 것이나 또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과 관련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하나의 시 안에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하나이지만 찬송의 이유가 두 가지, 세 가지 이렇게 다른 역사의 사건을 다루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경우에는 이런 단절성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주 정밀한 형태로 이러한 매듭들이 이어지지를 않고 시인이 하나님을 쭉 찬송하다가 갑자기 그 대목에서 그 사건과는 다른 과거의 어떤 사건이 연상될 때에는 그 사건으로 점프해서 넘어가서 그래서 그 사건을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인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거든요. 이러한 연관성들이 이렇게 시편에서의 단절성들을 가져오는 것이죠.
보십시오. 갑자기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이렇게 노래하거든요. 그런데 이게 8절까지 에서의 나온 내용하고는 연결은 되지만 10절부터는 갑자기 연결이 잘 안 돼요. 9절에서 노래하는 이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그렇게 숙곳도 길르앗도 에브라임도 유다도 모압도 에돔도 이렇게 하나님이 모두 다스리시고 통치하고 그분의 주권아래 있는 땅인데 그런데 누가 나를 그 견고한 성 에돔으로 인도할꼬. 그랬는데 그 견고한 성은 에돔과 병행으로 짝을 이루는 것이에요. 그래서 결국은 에돔이 아주 견고한 성을 찍고 그렇게 방비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저는 직접 가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성지의 지리를 보면 이 에돔 쪽에는 바위들이 많아서 그래서 바위 사이에 사람들이 숨도록 집을 짓고 그 다음에 궁도 짓고 그렇게 해서 침공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지형지물을 이용한 성들이 있다고 그래요. 그런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강한 성에 나를 누가 들어가게 할 것이며 에돔으로 나를 인도할 자가 누구냐? 이것은 뭐냐 하면 난공불락의 요새에 숨어있는 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갑자기 10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고 있는 이야기를 갑자기 하는 것이죠. 이런 것들은 틀림없이 아마 다윗이 전쟁에 있어서 과거에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 실패하던 때를 슬프게도 연상하면서 스스로 경고 받는 장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뭐냐 하면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죠. 그래서 전쟁에 아주 능하고 잔뼈가 굵어온 다윗이 결국은 전쟁에서 실패하거나 혹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전쟁의 승세의 진전이 없는 그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를 돌아보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이게 사실은 다윗이 가지고 있었던 신앙적인 측면이었다는 것이죠.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가 잘하는 것에 있어서는 자기 자신을 신뢰하기 마련입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에 관한 한 자신이 있고 지식이 많은 사람은 지식에 관한 한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든지간에 자기가 잘하는 것은 자기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인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신앙만 생기면 되지만 자기가 잘하는 것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신앙만 가지면 안 되고 자기 자신을 의뢰하던 그 마음 자체를 버려야 돼요. 너무 당연하지 않겠어요? 그런 점에서 다윗이 훌륭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고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지를 깨달으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일어나는 삶의 모든 일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랬기 때문에 이 사람은 원수도 용서할 수 있었고 적도 감화시킬 수 있었고 이렇게 패배할 때에는 그 패배를 인해서 주님의 성품을 다시 배우고 승리할 때에는 승리를 통해서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전진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항상 승리하거나 항상 우리의 기대를 따라서 만족을 얻게 만들어 주시지 않아요. 하나님께서는 수시로 우리에게 시련도 주시고 고난도 주시고 역경도 주시고 하면서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요.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로 하여금 당신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고 붙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하나님 앞에 더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시인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해 주십시오.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어차피 인간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한 도구이기 때문에 사람의 열심과 능력으로도 잠시 자기의 원하는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래위에 서있는 것처럼 불안한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없는 성공이 거듭되면 거듭될수록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더 큰 위험이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모래위에 그저 판자로 단층집을 지었다면 그 집이 무너져도 사람이 다치지는 않겠지만 만약에 거기에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래위에 이층집, 삼층집을 세웠다면 이것이 무너지면 그때에는 쌓아올린 영광과 비교되지 않는 말하자면 커다란 비극이 발생한단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엄위를 보이시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당신을 의지하지 않는 악한 자들을 아주 높이셔서 마지막에 넘어뜨리심으로써 넘어지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엄위를 보이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곳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지 말고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 안에서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해야 돼요. 그 마음 안에서라는 말이 무엇이냐 하면 결국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는 그 마음 안에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게 하려하심이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렇게 만물을 창조하시고 이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과 의지하며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이 모든 세계를 창조하신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못하실 수 있는 일이 없으시고 그리고 하나님이 안하시려고 하는 일은 우리들이 하려고 해서 성공하면 그 자체가 우리에게 재앙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참된 본분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가면서 전심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아 그분께 합당한 경배를 드리는 것이에요. 그게 하나님을 위한 것이지만 동시에 그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행복을 위한 길이에요.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아가고 그분 앞에 겸손하게 복종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그것이 진정한 인간의 행복이고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