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라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마 6:31-32)
녹취자: 허혜숙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말씀하시는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 6: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등불과 종의 이야기로 넘어가십니다. 등불이 밝지 않으면 우리가 뭔가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빛을 잃고 어두워지면 안 된다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말씀하시면서 ‘염려하지 말라’로 넘어오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소극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염려, 적극적으로는 미래에도 충분히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도록 보물을 쌓아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저축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성급한 결론에 이르게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셨던 핵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 나라의 백성과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인생의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백성들’ 혹은 ‘이방 백성들’로 표현되는 이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중심성이 확고합니다. 자기 사랑의 중심성을 가지고 일생을 사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머물지는 않고 때로는 친척, 친구, 가족 이런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 모든 사람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은 이 세상의 자원들입니다. 이 세상의 자원들을 집약해서 모아놓은 것이 보물, 요즘으로 말하자면 돈입니다. 그러니까 그 보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보물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보물을 사용함으로서 유익을 얻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중요한 이유는 ‘염려’ 때문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 때문에 오늘 먹고 오늘 입고 오늘 마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오랜 동안 그렇게 누려야 되겠다는 마음이 보물을 쌓아두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순간 이 사람들은 사랑의 대상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깨달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기가 하나님께 사랑받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다음에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도 먹고 입고 마시고 이 세상의 자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물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그에게는 물질이 최종적인 인생의 목적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그 사람들과 대조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두 개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하나는 ‘염려하지 말라.’ 입니다. 이 염려는 모든 염려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염려는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까 이런 것들이 자녀들의 염려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아무 염려 없이 사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수훈을 시작하면서 마태복음 5장에서 팔복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마 5:6) 이것은 모두 다 무엇인가를 바라는 염려, 그리고 무엇인가를 바라는 갈망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모든 염려와 근심이 없는 삶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무엇 때문에 염려하고 근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적어도 너희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위해서는 염려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실제로 먹는 음식이나 입을 옷, 마실 음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종의 제유법으로서 이것을 통해서 우리의 육신에 필요한 것,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만족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염려한다는 것은 그것들 때문에 염려하고 그것들이 그 염려가 마음의 중심에 있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있으면 사용하지만 없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용하면 꽤 즐거운데도 우리 마음의 성향이 그것을 깊이 애착하지 않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거나 즐거워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이 세상에 우리의 육신을 위하고 우리 자신의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필요한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집착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가 무엇을 염려하는지를 알고 올바른 것을 염려할 때 우리 안에서 성령은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위로를 주시고 새 힘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르지 않은 것을 염려할 때 성령은 슬퍼하시고 우리 안에 있는 생명과 사랑은 희미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희랍어로 ‘염려 한다.’는 ‘마음이 갈라진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엇인가 한 곳에 집중하며 살아야 되는 사람에게 근심과 염려가 계속 생기면 한 곳을 향해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힘은 분산되고 정신은 갈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이렇게 염려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미래에 내 인생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에 우리는 염려하고 근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젊은 시절에 노년을 위해서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 적절하게 물질을 저축하고 돈을 저축하고 또 육체적으로 누구에게 신세를 지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신세를 지거나 외롭게 홀로 요양병원에서 사는 그림이 나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그것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갈라지거나 찢어져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가 되는 마음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미래에 대해서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유는 오늘 주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삶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현재의 내가 바라보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 나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가에 의해서 미래를 바라보는 마음이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그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끊임없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믿고 따라간다고 하지만 생각으로 끊임없이 마음이 갈라져서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대해서 염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 싶고 한편으로는 세상 나라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아주 아름다운 언어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찬송)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네
나의 마음 깊은 곳에 영혼을 내리시는 주, 죽음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을 바라보면서 주님이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으니 내가 전심으로 그 분을 신뢰하면서 살아가면 그 분이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신앙을 갖는 것입니다. 적절하게 자신을 위해서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사 시절에 만난 어느 청년이 있었는데 돈을 썩 잘 버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버는데 이 지체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물질을 모으는 것은 악한 것이다 라며 한 달마다 월급을 모두 썼습니다. 그렇다고 허랑방탕하게 쓰는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많이 섬깁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월급타기 한 10일 전쯤 되면 돈을 꾸러 다닙니다. 이런 삶은 믿음으로 사는 삶이 아닙니다. 네덜란드 어느 곳에 가니까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는데 개혁주의의 전통을 잘 간직한 마을이라고 하는데 조상대대로 보험을 드는 것을 아주 큰 불신앙이라고 생각을 해서 어떤 보험도 들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좋은 전통을 간직하고 사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저는 묻고 싶은 것이 연금을 들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물론 나라에서 들어주니까 들고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 자신의 생각이지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양쪽 극단을 피해야 합니다. 금욕주의와 방탕주의를 피해서 적절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건강을 챙기고 어떤 경우에도 누구에게 나 때문에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살아야 한다 이 정도의 선에서 우리는 자신을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염려의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불신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미래에 대해서 불안하기 때문에 결국은 무엇 하나 그 가슴을 불태우는 신령한 목표가 세워지지 않고 세워진다고 해도 자기 자신을 다 쏟아 부으며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할 수 없게 된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원래 우리에게 신령한 목표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사랑할 때 그런 목표들이 우리의 마음에 떠올라서 우리의 마음을 불태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산다고 할지라도 만약에 목표가 없다면 그 부지런함은 방향을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우리의 삶에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그리고 금년에 혹은 내년에 혹은 일생동안 이루어 갈 어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그 목표는 염려하고 근심하면서 갈라진 마음에는 그런 목표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하면서 주님을 버릴 수도 없고 주님을 버리고 세상을 붙들자니 무엇인가 확고한 것 같지 않아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염려에 대한 침체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돈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돈을 더 쥐어줘도 그 염려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언젠가 제가 한 번 말씀드렸습니다. 6.25 때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나왔고 그 고아들을 가장 많이 데리고 간 나라가 미국이었습니다. 참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간 아이들 중에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정말 좋은 일을 하는 훌륭한 일꾼들이 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버려진 아이들이 미군들이 데려다가 깨끗이 씻기고 구호물자 옷을 하나씩 주어서 저녁을 맛있게 먹여 숙소에 재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잠을 못 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군 병사가 통역을 시켜 물어봤습니다. “너희들 왜 잠을 못 자느냐?” “아저씨, 잠이 안 와요.” 그래서 주기도문을 외워주기도 하고 찬송을 불러주기도 했지만 잠이 안 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너희들 왜 잠을 못 자느냐?” 그랬더니 아이들이 진심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아저씨, 내일 아침에는 무엇을 먹어요?” 한 끼는 맛있게 먹었지만 내일 아침, 혹은 저녁에는 굶을 지도 모른다고 하는 두려움이 꽉 차있었습니다. 그래서 빵 하나씩을 봉지에 넣어서 내일 먹을 것을 미리 나누어 주었더니 그것을 가슴에 안고서야 아이들이 잠을 자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아이들이니까 그랬겠지만 어른이 된 사람들은 내일 먹을 빵 하나로 가슴에 품는다고 해서 잠이 잘 오는 것은 아닙니다. 나 같이 잠을 잘 못 자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 잠을 잘 수가 있다면 한 자루라도 끌어안고 자고 싶습니다. 그 이상의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돈 때문에 염려하는 사람이 돈을 조금 준다고 해서 염려가 사라지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궁극적인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입니다.
(찬송)
주 내 안에 계시고 나는 주 안에 있어
저 포도 비유 같으니 참 좋은 나의 친구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는 확신, 때로는 하루 세끼를 다 못 먹는 경우가 있더라도 주님은 나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우리의 염려를 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말씀드리려고 하는 요지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염려의 원인을 없애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새로운 욕망과 근심이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속에 솟아나서 그렇게 해서는 우리의 염려를 모두 없애고 편안한 마음이 되게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 없어서 염려되기도 하지만 있어서 마음이 들뜨기도 합니다. 어느 경우든지 우리의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지 못하고 하나님을 향해서 초점을 맞추는 삶을 살기가 어려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근심과 염려는 신실하시고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결핍에 있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에 대한 해결책은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 주님을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런 영적인 깊은 은혜의 교제 속에서 살았을 때는 실제로 우리들이 염려할 것이 많이 있는데도 실제적으로 염려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 교회가 요즘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 날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늘 옛날 생각을 하면 그래도 지금은 견딜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에 방배동에서 이사를 와서 돈이 한 푼도 없는데 교회를 짓겠다고 했을 때 잠깐 동안은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생전 누군가한테 빚을 내서 빚 독촉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수시로 내일 아침까지 5천만 원이 있어야 됩니다. 내일 모레까지 2억이 필요합니다. 하는데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제가 가만히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이런 고비를 많이 넘어야 되는가? 그러고 보니까 하나님이 저를 꾸짖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놈아, 네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너를 통해서 내 일을 하는 것이니 모든 주권이 나에게 있다.” 그리고 거짓말 같이 하루 사이에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면서 아무것도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받았던 훈련이 아직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 그렇구나. 내가 또 그런 함정에 빠질 수가 있겠구나. 주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 인생의 주권을 가지고 계시구나.’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입니다.
주님을 잘 믿으십시오.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염려와 근심이 해결이 될 뿐만 아니라 혹시 여러분들이 원하는 데로 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여러분들의 마음의 사슬이 되어 여러분들을 묶지 못하게끔 만들어주십니다. 믿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성경이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안다고 하는 것은 그냥 아는 것에 그칠 수 있지만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아신다고 할 때 이것은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 ‘아신다.’라고 할 때에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 그것을 해결해 주시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면서 우리는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기도입니다. 간절하고 깊은 기도, 고민하고 염려하는 내용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간곡한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일깨워서 다시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만들어주고 다시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모든 근심과 걱정에서 한 번에 벗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가 경험해 본 바이고 여러분도 살면서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모든 지각을 초월하는 평강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 하나는 멀리 계시던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고 나를 뜨겁게 사랑하시며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든지 나를 지켜주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굳게 믿게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리는 세상을 감당해 나갈 수 있는 용기와 힘, 위로와 평강 같은 것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염려와 근심 속에서 길을 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