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이 흘러
“내 누이, 내 신부는 잠근 동산이요 덮은 우물이요 봉한 샘이로구나 네게서 나는 것은 석류나무와 각종 아름다운 과수와 고벨화와 나도풀과 나도와 번홍화와 창포와 계수와 각종 유향목과 몰약과 침향과 모든 귀한 향품이요 너는 동산의 샘이요 생수의 우물이요 레바논에서부터 흐르는 시내로구나” (아 4:12-15)
녹취자 : 오희열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샘처럼 솟아날 때 그 사랑의 샘물은 우물을 이루고 우물에서 넘쳐난 물은 시내를 이루어 흘러가면서 각종 많은 꽃나무들과 향품과 약재들을 만들어내어서 왕의 비밀스런 정원이 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장 큰 숙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맨 처음 목회의 소명을 받았을 때 그 동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그 은혜가 감사해서 목회의 길에 들어서게 된 그 마음을 간직하고 사느냐입니다. 어차피 목회의 길은 꽃길만 밟는 길은 없습니다. 남이 하는 목회는 쉬워 보이고 참 영광스러워 보이고 나도 저렇게 한 번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실 그것은 모두 남들 눈에 보이는 것뿐이고 실제 그 속에는 자기만이 져야 할 고난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너무 힘드니까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갑니까? 내가 진 이 십자가가 너무 무겁습니다.” 하고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내려와서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더랍니다. 월드컵 경기장보다 더 큰 창고로 데려갔습니다. 어마어마하게 걸려있는 십자가들을 보여주면서 “네가 이제까지 지고 온 이 신상의 십자가, 주님을 위해 일하는 십자가가 버거웠다고 하니 여기에 벗어놓고 네 마음에 꼭 드는 십자가를 찾아보아라.” 했답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내려놓으니 살 것 같았습니다. 다른 십자가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서 힘들었으니 가벼운 십자가를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마침 가벼운 십자가가 있길래 그것을 한 번 짊어지고 걸어보니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이 십자가를 내 것으로 하겠습니다.” 했더니 “조금 더 걸어보거라.”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걸어보니까 가볍기는 가벼운데 너무 길어서 땅에 계속 끌려서 조금만 걸어도 너무 피곤했습니다. 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벗어놓고 작은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찾아보니까 진짜 작은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딱 짊어지니까 작은 지게를 짊어진 것처럼 딱 맞았습니다. “이것을 지고 가겠습니다.”, 했더니 “그것도 결정하기 전에 한번 걸어봐라.” 합니다. 걸어보니까 박달나무로 만들었는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엄청나게 작은데 무거웠습니다. 이것도 아닌 거 같아서 내려놓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깨달은 결론이 작고 가벼운 것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을 찾아보니까 진짜 있었습니다. 그것을 짊어지니까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뿐해서 지지 않은 것처럼 신났습니다. “이것으로 하겠습니다.”, “걸어봐라.” 합니다. 걸어보니 그것은 그것대로 애로가 있었습니다. 등뼈에 닿는 부분에 옹이가 툭 튀어나와서 뼈를 계속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려놓고 하루 종일 찾아다니다가 하나를 져보니까 딱 맞았습니다. 그 십자가를 지고 걸었는데 그것이 여태 자기가 졌던 십자가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십자가가 있고 쉬운 목회, 그런 것은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저분은 저런 교회에서 목회를 하니, 저분은 돈이 많으니, 저 교회는 일꾼이 많으니, 심지어 저 교회는 젊은이가 많으니, 좋아합니다. 그 교회에 가보면 그 교회 나름대로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목회자가 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 목회자들 꽃길만 걷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만약 꽃길만 걷는다면 어떻게 이 목회가 우리 차례가 왔겠습니까? 다른 쟁쟁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졌겠습니까? 그래서 항상 맨 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맨 처음으로 돌아가서 ‘내가 왜 이 목회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는가?’ 교인을 사랑해서? 아닙니다. 큰 교회를 하려고? 그것도 아닙니다. 유명해지려고?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 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때문에 우리가 목회를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에게 목회의 소명을 주셨던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분은 지식으로서는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분이셨고 능력으로도 하나님의 능력을 가진 분이었고, 사랑으로서는 우리의 사랑의 근원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꽃길을 걸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시고 자기가 그렇게 아끼던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욕을 당하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명처럼 아끼던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났습니다. 그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그러면 목회라고 하는 것이 그 예수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뒤이어 가는 것이라면,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속하신 이 일은 우리가 따라갈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밖에 진리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진리의 빛을 전하기 때문에 어둠에 있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었던 것은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찬양)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누구를 보면서 우월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높아 보이는 사람, 낮아 보이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사람들은 능력에 있어서도 조금 차이가 나지 않겠습니까? 어떤 사모님은 기도도 많이 하고 전도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신앙도 좋고 아는 것도 많고 친정에 돈도 많고, 그런 사모님이 있는가 하면, 별로 배우지도 못하고 기도도 열심히 하지 않고 육체는 연약해서 병원에 다니며 늘 약을 달고 살고 성격도 매우 독특해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모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나의 신앙 없음에 대해, 기도하지 않음에 대해서, 친절하지 않음에 대해, 목회에 열정이 없음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귀를 기울이면서 하나님 앞에 주님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씩 하나씩 고쳐가며 가는 것입니다.
말이 경주를 합니다. 말의 눈 옆에 무엇을 씌웁니다. 옆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게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레인에 들어섰을 때 자기가 가는 길만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옆에 말이 뛸 때 흥분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면서 경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대로 앞만 바라보면서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서 모양이 각각 달라도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종에 불과합니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어느 한구석에서 주님을 섬기다가 가는 종에 불과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해서, 그것이 이 속에서 흘러넘쳐서 그 샘이 넘쳐 우물을 넘치게 하고 넘친 그 물이 시내가 되어 흘러가고, 그러면 메마른 땅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새들이 날아다닙니다. 사막이 아무리 황폐해도 물만 흘려보내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옥토로 변합니다. 문제는 물입니다. 우리의 목회가 방법이나 수단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목회자와 목회자의 아내의 마음속에서 주님의 사랑이 샘물처럼 솟아나서 우물을 넘치게 하고 그것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고 말라가는 나무를 자라나게 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던 나무를 열매를 맺게 만들어 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속에서 솟아날 수 있겠습니까? 세 가지만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예수님을 깊이 만났기 때문에 우리가 목회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번 그렇게 주님을 만난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를 하면서 매주 그럴 수는 없지만 어떤 계기가 되어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목회자의 심령에 부흥이 있어야 합니다. “아! 거룩하신 하나님이 여기에 계시구나! 그 하나님의 놀라운 영혼이 여기에 있구나!” 예수를 깊이 만나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에서 오는 위기일 수도 있고 혹은 가정의 문제를 사용하실 수도 있고, 아니면 모든 것이 평안하지만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모자란 인간인지를 깨달으며 주님의 은혜를 구하다가 주님을 만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목회자인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찾는 간절함이 있느냐입니다.
(찬양)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고자 주를 갈망합니다
주여 어찌합니까
팔레스타인에서 가을이 되면 사슴의 교미기입니다. 그때는 수컷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발정을 하게 되면서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낍니다. 교미를 하기 위해서 나갔는데 목마름을 느끼면서 시내를 찾습니다. 나중에는 헛것이 보입니다. 저 앞에 샘이 보이는 것입니다. 미친듯이 달려가면 샘은 없고 신기루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물을 찾지 못하고 뜨거운 태양볕 아래 사슴은 쓰러진 채 눈을 부릅뜨고 죽어갑니다. 죽을 때는 본능적으로 앞발로 땅을 파다가 죽습니다.
그런 사슴을 이 시인은 많이 보았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지, 그렇게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처럼 그렇게 간절히 주님을 사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시냇물을 찾는 사슴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는 것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슴 아프게도 목회자인 우리가 성도들에게 주님을 만나라고 설교하고 가르치면서도 자신이 주님을 깊이 만나서 새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쓰촨성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바로 앞에서 건물이 넘어지면서 자녀들이 한꺼번에 매몰되어 땅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을 보는 엄마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엄마일 것입니다. 그 엄마가 어땠겠습니까? 정신이 멀쩡하다면 정상적인 엄마가 아닐 것입니다. 새끼가 땅에 꺼져 밑으로 내려갑니다. 그 아이를 건져내기 위해서 비명을 지르며 자기 온몸으로 부르짖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간절히 만나고자 하는 그런 몸부림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교인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24년 전에 교회를 개척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개척해서 몇 년 동안 힘들지 않은 때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교인들도 정말 이상한 사람들만 왔습니다. 좋은 사람들은 큰 교회로 가고 성격도 이상하고 진짜 꼬일 대로 꼬인 사람들, 부자들은 다 큰 교회로 가고 옛날에 부자였던 사람, 지금은 교회에서 구제를 해줘야 하는 사람들이 옵니다. 자기들끼리 툭탁거립니다. 지금도 두려운 것은 없지만, 그때는 제가 젊었기 때문에 아주 얄짤없이 설교를 했습니다. 내가 설교시간에 제일 많이 한 얘기가, “가라! 그렇게 믿으려면 다른 교회로 가라. 여기는 그렇게 쉬운 교회가 아니니까 빨리 가라!” 교인이 100명도 모이지 않을 때부터 그 얘기를 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제발 그 얘기 좀 하지 말라고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진짜로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9시에 예배드리고 11시에 예배 드리고 1시에 예배를 드리고나서 교인들이 전도를 나갑니다. 전도를 다녀오고 나면 오후 예배를 드립니다. 3시 30분쯤 오후 예배를 드리면 5시까지 설교를 했습니다. 보통 설교가 90분에서 100분이었습니다. 최고 긴 주일 설교가 144분이었습니다. 회개하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면 기도를 막 합니다. 밖에서는 차가 기다립니다. 다른 교회에 설교를 하러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 교회를 빨리 가기 위해서 주기도문도 하지 않고 저는 그냥 갑니다. 기도하다가 각자 주기도문하고 가면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 가서 저녁을 먹고 저녁집회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돌아올 때 궁금해서 교회에 가면 아직도 절반쯤이 남아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간절함’ 내가 오늘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어거스틴의 말대로 “하나님, 왜 오늘 나를 만나주지 않으십니까? 왜 또 내일입니까?” 했던 것처럼, 오늘 내가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간절히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여러분도 말은 못하지만 목회를 하는데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지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조금만 참으십시오. 곧 죽습니다. 그러면 괴로울 일도 없습니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괴로워하지 말고 주님께로 나아가서 주님께 마음을 쏟아 놓으십시오. 주님을 깊이 만나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두 번째는 기도입니다. 기도가 살아있는 사모님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남편의 목회의 발에 매달려서 끌려가는 것입니다. 아무도 안 붙들어도 이 목회가 진짜 힘들게 힘들게 자기를 끌고 가는 것인데, 거기에 한 여자가 매달려서 그 발을 끌고, 한편으로는 교회도 끌고 가고 한편으로는 이 여자도 데리고 가야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목회자는 버리면 안 됩니다. 아무리 못나서 끙끙 발에 매달려 있어도 데리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다음에 주님의 나라에 가서 주님이 물어보실 것입니다. “사모야, 40년 동안 네가 사모를 했지?”, “네”, “그런데 왜 그렇게 남편을 힘들게 하고 남편 다리를 붙들고 질질 끌려가며 그 긴 세월을 보냈니? 왜 그렇게 남편의 목회에 도움이 안 되고 걸림돌이 되었느냐?”하고 물으시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시댁이 너무 힘들게 살았습니다.”, “애들이 속을 썩여서 그랬습니다.”, “교인들이 속을 썩였습니다.” 교인은 원래 그렇게 속을 썩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목회자가 뭐가 힘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교인들이 속을 썩이는지, 자기가 교인들의 속을 썩이는지는 조금 더 살펴봐야 합니다. 저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릅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의 마음에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그것은 못 하셨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이전에도 우리 같은 사람이 없고 지금도 없고 우리 후에도 없습니다. 우리는 멸종위기 단 한 마리 남은 희귀 어종 같은 사람입니다. 모두가 너무나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비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중국 여배우가 이번에도 망명을 했는데 그림같이 예쁩니다. 그 사람은 그림같이 예쁘고 나는 안 예쁩니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 것입니까? 어차피 그렇게 그림처럼 예쁜 사람은 수십만 명 중에 한두 명이고 목회하는 장소가 모델경연대회도 아닌데 부러워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목회를 외모로 합니까? 돈으로 합니까? 세상 지식으로 합니까? 아닙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나로 만드신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하고 밤하늘에 빛나는 모든 별들이 다 밝게 빛난다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어떤 별은 흐리고 어떤 별은 가까이 있고 어떤 별은 멀리 있고 어떤 별은 붉고 어떤 별은 푸릅니다. 그래서 밤하늘이 아름답습니다. 나는 나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나인 것이 좋으셔서 나를 만드셨습니다. 오늘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면서 천재들이 행복하겠느냐 불행하겠느냐를 물으니 불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행복한 천재들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은 안 그렇지만 젊은 시절에는 불행하더라도 한 번 천재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나이가 많이 든 다음에도 “하나님, 나에게는 왜 천재성을 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며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다 쓸데없는 기도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와 비교할 필요가 없고 그냥 나는 나의 인생을 걸어가야 합니다. 목회를 한다고 모두가 큰 교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모가 된다고 해도 모두가 유명한 목사의 사모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좋지도 않습니다. 우리 집사람에게도 늘 미안한 것이, 얼굴을 보기가 힘들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젊었을 때는 더 했습니다. 지금은 그래도 생각이 많이 바뀌어서 “내가 이러면 안 되지..”하지만, 젊었을 때는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보따리장수처럼 늘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면서 집회를 다녔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우리로 태어나서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왜 너는 저 사람처럼 살지 않았느냐?”, “이 사람처럼 살지 않았느냐?” 부모인 우리도 자식들에게 자식들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않습니다. “저 아들이 우리 아들보다 훨씬 낫다.” 하는 아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래도 아들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딸도 마찬가집니다. “저 딸이 우리 딸보다 훨씬 낫네.” 하는 딸이 왜 없겠습니까? 얼굴도 더 예쁘고 더 싹싹하고 공부도 더 잘하고, 그런데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입니까? 어차피 그 딸은 우리 딸이 아닌데 어떻게 합니까? 목회도 우리 목회입니다. 우리로 태어나서 나로서 이 목회를 하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이 솟아나는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간절한 기도입니다. 내가 나인 것에 감사하고 누구처럼 많은 것을 누리고 누구처럼 어떻게 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자존심 상하고 심지어는 시기심이 들거나 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님, 그리고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이신데, 그런 큰 사랑을 내게 베풀어주셨는데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이 죄송해서 하나님 앞에 미안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변화되어서 내게 없는 능력을 발휘해서 목회를 할 수는 없지만 내게 주신 능력은 다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게 없는 건강을 내가 가지고 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신 건강 안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기도 속에서 그런 자세가 나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한 목회자의 아내가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진실한 눈물을 흘리며 무엇인가 소원을 아뢸 때 그 마음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신만을 전심으로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찬양)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때로는 사람에게 상처를 받을 때 내가 그 사람 때문에 목회를 시작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에이! 치사해!” 이런 말을 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사람 때문에 내가 목사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사랑에 붙들려서 예수 나를 위해 죽으신 그 고난 때문에 감사해서 주님이 나를 위해서 모두 내어주시고 죽으셨으니 이번에는 제가 주님을 위해 죽겠습니다.” 이것이 목회자의 기도이고 목회자 아내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이 마음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시 불어 넣어줍니다. 그래서 슬픔과 고통을 모두 마음속에서 녹여내는 것입니다.
땅을 보십시오. 만약 땅에 깨끗한 것만 있다면 그 땅이 기름질 수가 있겠습니까? 옥상에서 텃밭을 가꿀 때 최고의 비료가 뭔지 아십니까? 닭똥입니다. 양계장에서 닭똥을 한쪽 구석에 쓸어놓고 가마니를 덮어놓고 썩힙니다. 아주 비쌉니다. 그것을 사서 흙에 섞습니다. 냄새가 얼마나 역겨운지 짐승들 똥 중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닭똥입니다. 비누로 씻어도 씻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그렇게 흙을 갈아엎은 다음에 식물을 심으면 진짜 열매가 두 배는 맺힙니다. 고추 하나가 오이만 합니다. 시퍼렇다 못해 검은 빛이 띌 정도로 완전히 다른 열매가 나옵니다.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고통과 괴로움과 많은 것을 겪습니다. 그것을 거름이라고 생각하십시오. 땅이 그것을 소화해서 녹여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이 영양분을 바뀝니다.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소화하지 못하면 작물을 심을 수가 없습니다. 소화해 내게 만드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건축을 하게 해 주십시오.”, “돈 있는 교인을 보내주십시오.”, “부채를 갚아주십시오.”, “자동차를 바꿔주십시오.” 응답을 받아내는 것만이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 속에서 이런 모든 시련과 고통, 괴로움과 번뇌, 이런 것들을 녹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었더라면 생길 수 없는 자연비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젊은 목회자들이나 젊은 사모님들이나 예전에 비해서 현저하게 기도를 많이 하지 못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보기가 드물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물론 인간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방법에 기름을 부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 위에 기름을 부으십니다. 자기를 간절히 찾는 사람, 주님의 은혜에 목마른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의 시작은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운 것이 아니라 조용히 마음으로 영혼의 시선으로 하나님을 응시하면서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는 것입니다. 마음을 물같이 쏟아 놓으면서 우리는 기도할 때 환경을 바꾸고 싶어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우리 자신을 먼저 바꿉니다. 그러면서 기도 속에서 우리가 서서히 서서히 예수를 닮아갑니다. 목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먼저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리 단장을 두르면 뭐합니까? 아무리 꽃나무를 심으면 뭐합니까? 시냇물이 흐르지 않는데 말입니다. 시내가 있으면 뭐합니까? 우물에서 물이 넘치지 않는데 말입니다. 우물을 만들어 놓으면 뭐합니까? 그 속에서 샘이 솟아나지 않는데 말입니다. 사모님들이 기도할 때 목회를 위해서 기도하지 말고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최고의 섬김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기도 속에서 자신이 재충전을 경험해야 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말씀에 꼭 붙들려서 살아야 합니다. 제일 훌륭한 사모님들은 자기 남편의 설교에 은혜를 받으면서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모가 정말 많지 않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나 잘 하지…” 합니다.
(예화) 어떤 사모님이 수요예배를 드리고 교회에 붙어 있는 사택에 들어갔습니다. 이불을 펴고 목사님이 주무시려고 하는데 사모님이 이불을 들고 강단에 올라가더랍니다. “여보, 어디 가?”, “강단에서 자려구요.”, “왜?”, “그때 당신이 제일 사랑스러워요.” 무슨 뜻인지 아직 이해 못 하셨습니까? 강대에서의 목사와 안방에서의 남편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벽 하나 사이인데 말입니다. 삶으로 아멘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많이 기도하면서 남편 목사님의 설교에 많이 은혜를 받으십시오. 만약 그것이 쉽지 않다면 다른 사람의 설교를 들으면서라도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천지사방 어디서든지 들어가서 저 아프리카 설교자부터 시작해서 동네에 있는 옆 교회 목사의 설교까지 다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내 설교도 잘 안 듣고 남의 설교도 안 듣습니다. 진짜로 별로 안 좋아합니다. 강사를 초청할 때는 항상 우리 집사람한테 물어봅니다. “부목사님들이 강 아무개 목사님들을 모시고 싶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너무너무 은혜롭게 말씀을 잘 전하시는 목사님인데 그 목사님의 관심사는 이런 주제입니다.” 하고 가르쳐줍니다. 그렇게 알고 있는 설교자들이 80~90명 되는 것 같습니다. 틈만 나면 그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항상 설교방송을 켜 놓고 한가하게 앉아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책을 읽기도 하며 말입니다. 사모님의 손에서 책이 떨어지면 안 됩니다. 책을 읽어야 합니다. 항상 은혜로운 좋은 책을 읽어야 합니다. 좋은 책은 읽고 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싶어지고 성경을 읽고 싶어지고 기도하고 싶어지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그런 책은 너무 많습니다. 그런 책을 찾아서 읽어야 합니다. 요즘은 어렵지도 않습니다. 서점에 갈 필요도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쉽게 주문하면 집으로 배달됩니다. 못하면 자녀들에게 해달라고 하십시오. 경건 서적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설교를 들으면서 자신의 영혼의 양식을 계속 먹는 사모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목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저의 경우를 이야기하자면, 물론 공부도 계속 열심히 하려고 하지만 목사에게는 사모가 모르는 양식이 있습니다. 내가 이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한주도 그렇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월요일이 되면 벌써 다음 주 설교를 고민하면서 말씀의 은혜를 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은혜를 받습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설교가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모님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사모님들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고스톱을 치시겠습니까? 아니면 매일 놀러 다니시겠습니까? 경로당에 가겠습니까? 아이들도 클 만큼 컸으니 시간을 아껴 쓰면서 십일조라고 생각하며 운동을 하고, 음식에 절제하고 성경을 읽고 말씀에 은혜를 받고 그 힘을 얻어서 주님 앞에 기도하고, 이런 것을 하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교회에 보내신 것입니다.
최근에 설교에 깊이 은혜를 받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은혜 받지 않고 어떻게 삽니까?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매주 매주 은혜를 받아도 인생을 사는 것이 이렇게 힘겨운데, 그런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없이 어떻게 목회를 버틸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하십시오. 그냥 시간을 보내지 마시고 남편 목사님의 설교가 최고라면 더할 나위 없지만 모자라면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저 목사님의 설교는 정말 성경적이고 은혜롭다!’ 하면서 은혜를 받고 회개하고 힘을 얻고 잘 소화된 것을 가지고 교인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10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교회 3층에 가건물을 해 놓고 거기서 10년을 살았습니다. 산책을 하고 온다고 하고 워킹을 했습니다. 그날따라 멀리 걸었습니다. 한 3km 이상 걸어갔는데 교회의 전도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아니, 이 밤중에 어떤 손님이 약속도 없이 오냐?”, “이 분이 목사님을 꼭 만나고 가신다고 하고 기다리신답니다.”, “누군데?”, “수녀님이십니다.”, “나는 아는 수녀가 없는데 왜 이 야심한 밤에 개신교 목사를 만나러 여기까지 오신거야?” 하면서 열심히 걸어서 한 40분 걸려서 왔습니다. 교회 마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구십니까?”, “저는 충청도 어느 지역의 수녀원에 소속된 수녀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제가 목사님께 꼭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서 서울에 올라온 김에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도 못 드리고 여기서 기다렸습니다.”, “저에게 무슨 감사할 일이 있습니까?” 물었더니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연세가 젊다고 하면 45세, 아니면 50세쯤 되어 보이는 평범한 수녀였습니다. 2년 전쯤에 자신이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너무너무 영혼이 곤고해서 죽을 것 가던 때가 있었다고 합니다. 살래야 할 수도 없고 죽을래야 죽을 수도 없는데 우연히 대전극동방송을 듣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교가 나오는데 개신교 목사의 설교를 들은 것입니다. 어쨌든지 그날 은혜를 많이 받고 나서 그 다음부터는 매주 그 시간에 맞춰서 열심히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고 나니 제일 먼저 기도가 나오더랍니다. 두 번째는 은혜를 받고 나니까 자기처럼 그렇게 곤고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보이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심방 가서 만나서 가르쳐주기 시작했답니다. 그 사람들이 울면서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자기 교구에 딸려있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영혼을 깨우고 주님을 사랑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물같이 마음을 쏟아 놓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합니다.
그러면 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곁에 늘 있는데 왜 그렇습니까? 목사님도 군대를 다녀오셨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철없이 까불고 돌아다니면 엄마가 넌더리를 내며 말합니다. “요즘 호랑이는 이런 녀석도 안 잡아먹고 어디 가서 뭘 하나?” 하거나, “군대나 가버렸으면 좋겠다!” 합니다. 마침내 영장이 나오고 군대를 가면, “아이고, 시원하다!” 합니다. 그런데 보내고 나면 엄마는 눈물이 납니다. 아들이 군대에서 ‘어머님 전상서’ 라고 편지를 써 보냅니다. 세상에 처음 편지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그때는 진심입니다. 엄마가 그것을 받고 꼬부랑글씨로 아들에게 답장을 씁니다. 사연 한 마디가 아니라 사연이 깁니다. 그 내용은 군대 가기 전에 집에서 맨날 하던 잔소리를 그 편지에 글로 쓴 것입니다. 그 편지를 아들이 받습니다. 늘 듣던 잔소린데 꼬부랑글씨로 써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눈물이 납니다. ‘내가 너무나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하면서 못되게 살았구나!’ 하는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편지를 읽느냐에 따라서 사랑의 편지가 될 수도 있고 신문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전단지, 찌라시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을 때 성경이 마음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은 굳어져서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떨어져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어떤 마음은 믿음이 없어서 시련이 오면 금방 타죽어 버립니다. 어떤 마음은 자라나지를 못합니다. 어떤 마음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