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6. 상반기 교역자 수련회 폐회 예배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녹취자: 박나리
I. 본문 해설
오늘 말씀에서 '이것'들을 피하라고 했는데, 앞 절에 보면 교만, 변론, 언쟁, 투기, 분쟁, 비방, 악한 생각, 부패, 돈에 대한 탐욕을 의미합니다. 이 뜻은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먼저라고 보여주는 것입니다. 목회를 하면서 여전히 죄인입니다. 그래서 옛사람에 속한 성품들이 솟아오릅니다. 교만하고 분쟁하고 다투고 시기하고 원망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심지어는 이런 것들을 정의라는 미명 하에 공공연하게 퍼붓습니다. 자신의 육에 속한 성품을 사역의 현장에 쏟아냅니다. 이런 것은 우리가 피해야 합니다.
A. 하나님의 사람이 따라야 할 것
이것을 피한 사람이 이제 해야 될 것을 본문은 이야기합니다. 그것이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입니다. 목회자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자기를 이기며 사는 삶이어야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랑의 나라이고 영에 속한 나라이기 때문에, 육과 혈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목회자는 어떻게 보면 사명은 너무 원대하고 높고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세속적인 권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목회자의 손에 들려있습니다. 이 말씀에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성도들에 대해서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자도 그렇게 사람의 마음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지배는 목회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질서 속에 은혜 받은 사람도 들어가고 나도 들어가고, 모든 사람이 그 질서 안에 들어갑니다. 안 들어간 사람들은 그대로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얕보는 사람을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폭언에 폭언, 폭력에 폭력으로, 고소에 고소로, 권모술수에 권모술수로, 미움에 미움으로, 모욕에 모욕으로, 그렇게 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있는 쓰레기 같은 사람들에 비해 나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자기 이익을 위해 탐욕스럽게 상대방을 헐뜯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구역시대 제사장들을 보면 제사장이 하얀 옷을 입고 제사를 드립니다. 그는 제사 드리러 나올 때는 정결하고 성결한 차림이지만, 제사를 몇 번 드리면 그 옷은 짐승을 잡고 피가 튀고 했을 것입니다. 아비규환과 같이 짐승은 죽고 살과 가죽을 태우는 연기가 가득해 눈을 뜰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죄인은 두려움 속에 혹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울부짖는 상황 속에서, 제사장은 흔들림이 없이 정결한 마음과 옷차림으로 그 사이를 오가며 그를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정말 어렵습니다.
B. 믿음의 선한 싸움과 영생을 취함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니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말합니다. 목회와 삶 전체가 영적인 싸움입니다. 그럼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마귀가 있어서 싸움에 관여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이 육의 생각을 따르는 모든 것이 그에게는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입니다. 그래서 마음가짐이 '목회는 우리에게 영적인 싸움'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박소연이라는 소프라노 가수가 같은 음악가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8개월 만에 이혼을 했습니다. 그 후에 이 자매가 은혜를 많이 받고 고신대에 와서 간증을 했는데, 결론은 정말 음악을 사랑하고 그리고 사랑해서 결혼을 했는데 결혼 이후에 그 아픈 일을 겪고 났더니 결혼은 사랑 하나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신뢰, 그리고 서로에 대한 진실한 헌신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 전체가 영적으로 보면 싸움입니다. 그래서 전쟁에서도 감정에 휘둘리는 지휘관은 절대 승리할 수 없습니다. 맹렬한 가운데 전투가 수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영생을 취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영생은 종말론적으로 보면 우리가 마지막에 하나님께 간다는 뜻으로 그 때 우리가 배반자로 발견되지 않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사람으로 발견되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일상의 의미에서 보면 하나님의 생명 속에 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앞에서 언급한 모든 교만, 변론, 시기, 다툼, 원망, 미움과 같은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영적인 충만한 생명이 사라지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충성심이 사라지면 변절을 하게 되는 것이고, 충성을 두고 변절을 따로 배워오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식으면 헌신하지 않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목회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신자로서 충만한 생명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면서도 똑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당신의 생명으로 가득 채우십니다. 그러면 어제는 견딜 수 없는 상황을 오늘 그 생명 때문에 견딜 수 있게 됩니다. 어차피 목회자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살아가야 되는 길이기 때문에 아무나 가는 길이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을 겪고 뛰어넘을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바로 영생을 취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생을 취하라고 하는 동사는 마치 전쟁터에 나갈 때 칼을 취하다, 창을 취하다 할 때와 같은 단어로 무게가 있는 것을 취하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간절히 매일 취하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랑이 충만하게 그 사랑으로 모든 날을 보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를 부르신 그 분 밖에 안 보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보이고 우리의 충성은 흐려지게 됩니다.
C. 부르심을 받고 선한 증언을 함
그래서 이를 위하여 내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새로운 삶을 살자는 것이 아니라 원래 충성스러웠을 때, 원래 은혜 받았을 때, 원래 소명에 충실했을 때 살았던 그 삶으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그런 충만한 생명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려움을 한 번 이기면 그 다음에 또 이길 수 있습니다. 조던 피터슨이 자기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캐나다산 바다 가재가 어마어마하게 큰데, 망치가 식탁에 올라올 정도로 큽니다. 그런 것들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침입자가 오면 순간적으로 뇌파로 크기가 얼마인지를 파악합니다. 이 자리를 도저히 내줄 수 없다면 싸움이 벌어집니다. 집게발로 잔인하도록 싸웁니다. 싸움에서 진 가재는 중상을 입고 퇴각을 하는데, 그 때 바다 가재를 건져 올려 성분 검사를 해서 체내 변화를 알아냅니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진 가재에서 독특한 체액과 신경전달물질이 나옵니다. 두려움, 공포, 좌절, 자존감의 상실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이긴 가재는 세라토닌이 올라가면서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이 곳이 확실하게 자기 땅이고 웬만한 상대가 와봐야 절대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상태가 한참을 갑니다. 그 다음 싸움에서는 승리의 경험이 있어서 훨씬 유리합니다. 놀라운 것은 암컷도 그러한 수컷을 알아봅니다. 우리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싸움에서 한 번 승리하면 똑같이 우리 안에서도 다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내가 저런 사람하고도 목회를 했는데 이 정도쯤이야 라는 자신감이 생깁니다.
II. 적용과 결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을 영적으로 해석하면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영생을 취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 능력으로 살아갑니다. 이 세상에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하는 직업 가운데 쉬운 직업은 없습니다. 감정 노동자라고도 합니다. 더군다나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목표를 가지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삶인데 이것이 쉽다면 우리에게 차례가 왔겠습니까. 영광스럽고 이익만 있다면 우리에게까지 이 일이 돌아왔겠습니까. 그래서 싸움에서 승리하는 경험을 할 때 우리가 이 은혜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도 똑같습니다. 어떻게든지 잘 끌어주어 한 번 이긴 경험이 있으면 성도들이 용기를 냅니다. 이런 경험이 없으면 끊임없이 부정적인 자아상이 생겨서 능히 일어날 수 있는데도 못 일어납니다. 그래서 영생을 취하며 승리의 경험을 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여러분들이 꼭 그렇게 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