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교회학교 교역자 수련회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마 25:22-23)
녹취자 : 박나리
오늘 처음 우리 교회의 교역자가 되신 분들에게는 첫 수련회가 될텐데, 죽을 때까지 잊어버리지 않을 설교를 하겠습니다. 잘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 그대로 할 테니까 이 구절을 볼 때마다 기억이 날 것입니다. 주일날 설교했던 내용의 연장입니다. 두 달란트를 맡은 종에게 주인이 평가를 내리는 장면입니다. 저는 다섯 달란트를 잘 설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한 번도 그렇게 뛰어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서 싫고, 다섯 개 맡은 사람은 나와 수준 차이가 나서 상대가 안 되는 것 같고, 만만한 것이 두 달란트 맡은 종입니다. 너무 고마운 것은 두 달란트 맡은 종에게 다섯 달란트 맡은 종과 똑같은 칭찬을 주는 것입니다.
첫째로 '주인이'라고 했습니다. 언젠가 주님이 돌아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한 일에 대해서 판단을 하십니다. 사역자는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과 함께 하는 목회지만 사람을 보라고 하는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먼 훗날 마지막에 다시 오실 뿐만 아니라 매 순간 여러분들의 마음에 오셔서 물으십니다. 네가 오늘 무엇을 했느냐, 잘 살았느냐, 충성되었느냐 등 물어보고 계십니다. 이 질문을 매일 매일 느끼는 사람들이 깨어 있는 종입니다. 이것을 종말론적인 현재 인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무슨 뜻이냐고 하면 오늘을 살면서도 오늘 하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종말의 빛으로 오늘 하루를 비춰서 내가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신학교 다닐 때 이해할 수 없었던 분들이 1년에 한 번씩 교회를 옮기는 사역자들이었습니다. 기도하고 간다고 했습니다. 무슨 하나님이 1년에 한 번씩 인도하시는가. 저는 회심하고 딱 두 교회를 다녔습니다. 첫 번째 교회에 다니고 첫 회심한 교회로 돌아온 뒤 열린 교회를 개척하기 전까지 딱 두 교회에 다녔습니다. 한 교회에 가면 보통 7~8년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가방을 싸들고 이동원 목사님 설교를 듣고 배우고 싶다 하는데 나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 수요예배를 두고 내가 왜 남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까.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배우러 다니던 친구들이 딱히 설교를 많이 배우고 잘하느냐 하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전도사로 있었지만, 전도사인 내가 담임 목사님 보다 교회를 덜 사랑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교회에서 떠날 때는 인간적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지는 지긋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괴로울 때나 즐거울 때나 남이 알아줄 때나 몰라줄 때나, 나를 거기에 보내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이기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열린교회를 시작하고 27년이 지났습니다. 돌아오는 토요일이 27년입니다. 무슨 일이 없었겠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그만두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내가 다 그만두고 다시 교회를 개척하면 더 좋은 교회를 할 텐데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습니까. 괴로우나 즐거우나 참고 견뎌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을 항상 잃어버리지 않는 교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을 오늘 누가 여기에 보내셨습니까? 친구가 소개했습니까? 아닙니다. 담임 목사님이 써줬습니까? 아닙니다. 김남준 목사님이 콜링했습니까? 나는 콜링한 사람도 없거니와,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식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 내가 여기에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주님이 나를 보내셨으니까 나는 주님 앞에서 산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두 번째, 주인이 평가를 합니다. '참 잘하였도다'라고 말하는데, 영어로는 'Well done' 혹은 'Perfectly done'입니다. 잘 되었다는 뜻입니다. 무엇이 잘 되었습니까? 주인이 무슨 일을 종에게 맡기고 갔습니까? 한 달란트, 6억 2,400만 원 정도 되는 것, 그것을 금값으로 계산하면 16억이 넘는 금액이 나옵니다. 그것을 맡길 때 주인의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 의도를 염두해 두고 보니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무엇이든지 동그라미를 그리려고 하다가 의도된 대로 정확하게 그려졌을 때 진짜 잘되었다고 말합니다. ‘잘하였도다'라고 하는 것은 결국 주인의 의도대로 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이 받은 평가였습니다. 여기 보십시오. 설교 시간에 항상 설교자를 주목하세요. 여러분도 설교할 때 모든 아이들의 시선을 다 뺏으세요. 그것이 교육학의 첫 번째입니다. 시선이 집중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이 집중될 가능성은 반도 안 되고, 집중하지 않는 마음에 말씀을 넣는 것은 흔들리는 잉크병에 펜을 꽂는 것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기본적인 것이 쳐다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하였다고 했습니다. 아주 심플합니다. 여러분은 잘하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잘'이라고 하는 것은 종합적입니다. 주인의 의도뿐만 아니라 그 의도를 효율적, 효과적으로 성과를 거두는 것입니다. 공을 차면 축구를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보니 손흥민이 경기에서 그림과 같은 골을 넣었습니다. 그런 것을 보고 잘하였다고 합니다.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잘'을 설명하려면 굉장히 길지만, 간단히 설명하면 잘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 일을 시키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야 합니다. 그분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도 그대로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의도를 모르고 한다는 것은 황소가 뒷발질을 했는데 돌멩이가 개구리에게 맞는 격처럼 드문 일입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최근 '90년대생이 온다, 2000년대생이 온다'는 것이 있었습니다. 옛날의 선배들처럼 사회의 제도 속에서 배운 아이들이 아닌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 음료수 받아와라' 하면 '네, 부장님', '네, 과장님', '이거 회사 통장이거든 은행에 가서 정리해서 와라', '네'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은행에 가서 '이거 현금 다 빼고 통장을 해지 시켜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괜찮으시겠어요? 회사 공금 통장 같은데요?', ' 부장님이 확실히 해오라고 했어요’, 10원짜리까지 다 빼서 X표된 통장을 들고 왔습니다. '그래, 해왔니?', '말끔하게 정리했습니다', '그래 거기에 두고 가', '그런데 이게 뭐냐', '정리하라고 하셨잖아요', 말귀를 못 알아들으면 아무리 진지하게 일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그 직원을 찾아가서 싹싹 빌면서 그 통장을 복구시켜달라고 하면 복구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안되었을 가능성이높습니다. 한번 빠져나가면 전산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잘하기 위해서는 한 번 시킨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지시를 할 때 ‘목사님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라고 물어보는 사람입니다. 확실한 사람입니다. 끄떡끄떡 졸고 다 알아들은 것처럼 하다가 뒤에 가서 일을 다르게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국장 같은 경우는 조용하게 이야기하면서 30분 정도 지시를 합니다. 그러면 '목사님, 죄송합니다.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첫 번째, 유리창을 가리란 말이죠? 두 번째, 그 기계를 사라는 이야기죠? 그다음에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이죠? 틀림없죠?'라고 합니다. 수첩에다가 쓰고 체크를 합니다. 확실하게 지시가 떨어집니다. 그다음에 이행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갑니다. 그런 세심함이 필요합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 설교하는 이 내용은 사실 한 권의 책으로 써도 충분한 내용입니다. 잘하기 위해서는 누가 필요합니까? 롤모델이 필요합니다. 제가 불쑥 물어보는 것이 있는데, '무슨 부를 맡았지?' '영아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영아부 사역을 누가 가장 훌륭하게 하고 있어? 세 사람만 대봐' 이렇게 물어봅니다. 두 번째는 '가 봤어? 혹시 만나봤어', '그 사람 책 읽어봤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교역자들이 '아니요, 아니요' 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그 사람은 둘중에 하나입니다. 누구를 참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최정상을 달리면서 새로운 기록을 쓰고 있어서 다른 사람을 참고할 가치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것입니다. 내가 신학에 관해서 할 때 여러분이 쓴 레포트를 참고합니까? 여러분들이 나보다 더 잘하는 게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죠. 해외 유명한 저자들이나 국내 저자들도 인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지만 어쨌든 간에 그런 자료를 찾지 신대원 레포트를 찾아서 논문을 쓰는데 참고하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세계에서 신기록을 써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너 그런 사람이냐' 그러면 그렇지는 않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럼 그다음에는 그냥 뭐가 잘하는지도 모르면서 상식으로 하루하루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신학자들을 역사적으로 조사해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선생님이 최고입니다'라는 신학자가 있습니다. 선교사 중에도 목숨을 다하도록 존경하는 선배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조나단 에드워즈가 18세기에 사위가 될 뻔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입니다. 21살에 회심하고, 25살에 선교사에 헌신하고, 29살에 폐결핵으로 죽었습니다. 헌신적으로 섬깁니다. 그가 일기를 썼고 사후에 에드워즈가 출판합니다. 그걸 듣고 헨리 마틴 같은 쟁쟁한 젊은이들이 브레이너드를 존경하면서 헌신자로 생겨납니다. 본보기를 생각해야합 니다. 그래서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하는 것이 ‘존경하는 스승이 없는 목회자는 유통기한과 제조업자가 표시되지 않고 비닐에 들어 있는 식품이다’라고 할 것입니다. 품질을 보증할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스승이 없다는 것은 자기가 뛰어나기 때문에 존경할 사람이 거의 없다는 뜻입니다. 아니면 거의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누구를 존경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둘 중 하나입니다. 잘하려면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의도부터 시작해서 같은 일을 선배들이 어떻게 했는지, 어떻게 할 때 이 일이 아주 효율적이 되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경쟁자, 같은 교회 교역자, 동네 교회 교역자들과, 넓혀서 서울 전체 탑 클래스 고등부 사역 교회는 어떻게 하는가, 그리고 내가 저 사람들이 넘지 못하는 한계를 넘어보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회사, 직장, 교회나 마찬가지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나가려고 해도 교회가 꼭 붙듭니다. 그렇지만 일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은 나가주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목회를 하게 되면 교사들 중에서 불과 6개월이 지나기 전에 저 사람은 그냥 상반기에 나가줬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있고, 나간다고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의 공통적인 단점이 약간 독선적입니다. 그리고 자기 주관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교만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말은 선하다는 뜻입니다. 선은 모든 사람을 끌어 앉는 엄마의 품 같은 것입니다. 자식들이 여러 명이 있어 자기들끼리 편을 먹습니다. 우리가 3형제로 자랐습니다. 셋이 되니 재밌습니다. 둘이 편을 먹으면 하나는 외톨이입니다. 사회를 배웁니다. 그래서 다퉜는데 다툰 친구가 한 명과 붙으면 상실감이 듭니다. 하나를 소외시키면 자부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사회를 배웁니다. 그런데 엄마가 정상적이라면,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르고 자기들끼리는 울고 불고 때리고 싸워도 엄마에게는 모두 사랑스럽습니다. 그것이 착한 것이고 그것이 선입니다.
그러면 잘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거칩니다. 목회에 상당히 업적을 이룬 사람 중에,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대화를 나눠보면 시종일관 입에서 거품을 물고 쉬지를 않습니다. 남에게 배우고 싶은 마음은 하나도 없고, 끊임없이 떠들면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70%가 자기 자랑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좋아하겠습니까? 사람이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어디가서 이야기할 때 그 분 참 좋은 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장점도 있다고 훌륭하고 본받고 싶은 것도 있지만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잘하면서도 착하기가 힘듭니다. 착한 사람은 대개 능력이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도덕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내가 볼 때 정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70세가 훨씬 넘어 보이는 된 얼굴이었습니다. 빼짝 마른 여자였고 안경을 쓰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쭈글쭈글한 얼굴로 강단에 서서 점프를 해서 고3 형들의 싸대기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 들어보면 얼음 왕비였습니다. 들어오면 아이들이 얼음이 됩니다. 그 선생님이 우리를 가르치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따라하거라’, ‘네’, ‘마음은 둥글고 일은 네모지게’, 매시간 따라 했습니다. 담임목사 전에 내가 우체국장도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와서 담임 목사를 해보니까 마음이 둥근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하고 일해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습니다. 그냥 그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을 칼같이 합니다. 빈틈이 안 들어갑니다. 열심도 있고 능력도 있습니다. 깔끔하게 해놓습니다. 마음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다칩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목사님, 결론은 뭡니까’, 나는 그래도 일 잘하는 사람이랑 하고 싶습니다. 좀 다쳐도 기도도 시키고 신앙훈련도 시킵니다. 그런데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고, 줄줄 흘리면서 수레를 밀고 올라갑니다. 9부까지 올라가 놓고 싹 빠집니다. 수레가 저 계곡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런데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충성된 종의 이야기에는 사역과 존재의 연관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여기에서 사역을 합니다. 2년 동안 있었는데 진짜 일을 못했습니다. 못 했다는 것은 종합적입니다. 정말 성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했는데 못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습니다. 까치발을 들고 다른 생각을 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자꾸 산란하게 하면 일을 잘 못 합니다. 그런데 일을 못하면서 목회지를 옮겨다니게 되면, 반드시 나쁜 사람이 됩니다. 일을 잘하는 것과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일이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일을 하게 만든 동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 사람을 빚어 갑니다. 이천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도자기 생산지입니다. 이천, 무안, 당진, 고령 등입니다. 물레에 놓고 손에 물을 묻혀가며 도자기를 빚습니다. 그런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면 휙 하고 던져서 연못에 던집니다. 놔두면 굳어서 못 씁니다. 그리고 그 진흙을 다시 쓸 때는 장화를 신고 들어가서 꼭꼭 밟습니다. 형체를 다 없앤 다음 보드라운 진흙이 되면 재사용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잘하려고 하면 끊임없이 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이것밖에 안 됩니다. 정말 이것밖에 안 된다고 고백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내수동교회를 압니까? 지금은 그렇게 유명하진 않지만 옛날에는 내수동 교회에 오정현 목사가 있으면서 청년들을 서너 명에서 백오십 명으로 만들어놓고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런 사람이 아닌데 젊은 목사들이 그렇게 해서 청년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내가 거기 중등부 전도사로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그 교회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은데, 내 친구 전도사가 추천해서 들어갔습니다. 목사님 면접을 보고 당회에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모든 사역을 다 해봤는데 중등부처럼 힘든 사역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등부에 갔는데, 내가 주일 학교도 잘했는데 청년도 잘했는데, 주일학교도 아니고 청년도 아니고 이상합니다. ‘아무개야’라고 부르면 중학생 애들이 ‘형제’라고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미치겠습니다. 그래서 ‘형제’라고 부르면 너무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중등부를 잘하는 목사님들, 우리 류요한 목사가 아주 잘했습니다. 진짜 탁월하게 했습니다. 오죽했으면 194명이 출석을 하는데 여름수련회를 190명을 데려갔습니다. 그것이 보통 교역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새벽 2시에도 애들에게 문자가 오면 다 답해주고 다니면서 심방하다가 과로로 길거리에서 쓰러질 정도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경스럽습니다.
내가 열심히 했는데도 애들이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칠십 여명을 물려 받았는데 어느날 목사님이 설교를 하러 오셨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첫 주일 설교를 하러 오십니다. 그런데 물어보겠습니다. ‘교회학교 예배드리기 한 시간 전에 교역자가 도착했으면 지각을 한것이냐 괜찮은거냐’ 물어보겠습니다. 지각이라고 생각하면 내수동교회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한 시간 전에 갔습니다. 목사님이 컴컴한 예배당에 내려오셔서 성경을 읽고 계셨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일종의 시위이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 최악으로 39명이 나왔습니다. 목사님이 ‘그 많던 네 친구들은 어디로 갔니’라고 물었습니다. 진짜 돌아오는 길에 죽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교수였습니다. 안양대학교 교수였습니다. 여기 일만 해도 너무 많아서 사표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사례금 때문에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수 월급이 전도사에 비하면 충분했습니다. 사표를 쓰고 싶은데 기도 안 하고는 할 수가 없습니다. 간절히 기도해보면 하나님이 가만히 붙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화장실에 가면 한 컵씩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마지막에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연단 시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에서 물러서면 목회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딱 결심을 하고 항상 토요일에 설교 준비 다 끝내고 일찍 들어와 저녁을 먹고 9시에 교회로 갔습니다. 그 자리에서 2년 동안 했습니다. 교회가 공간이 많은데 사찰이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청소가 마음에 안 들어서 혼자 양복 벋고 츄리닝 갈아입고 걸레 빨아다가 학생들이 앉는 의자를 다 닦았습니다. 빨리 끝나면 11시, 늦게 끝나면 11시 반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강대상을 닦으면서 하나님께 내가 내일 아침 여기에서 설교할 때 아이들이 은혜받게 제발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담요 하나 깔고 엎드려서 기도를 하다가 잠깐 자기도 하고 아침 새벽기도 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전도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성격 자체가 사교적이지 않아서 잘못합니다. 그래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과 의논해서 전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찾아낸 아이디어 중 하나가 있습니다. 선생님이 아무리 돌아다녀도 전도할 데가 없습니다. 누가 말을 듣겠습니까.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별로 줄 세워서 가서 학생들과 잘 지내게끔 이야기하고 문 앞에까지만 데리고 와서 인사를 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가 하겠다고 했습니다. 애들이 데리고 나오면 짜장면집에 갔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짜장면을 되게 좋아했습니다. 가난할 때였습니다. 짜장면을 먹고 집에 가자는데 싫다고 할 애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데려가서 짜장면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군만두를 더 시켜서 시간을 끌었습니다. 부모님, 취미 등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들이 카이스트, 연세대 다니는 분들이었습니다. 토요일에 오면 공부를 가르쳐준다고 했습니다. 매일 저녁 선생님들이 교회에 와서 40일 동안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딱 내가 그 결심을 하고 40일 뒤에 92명이 출석했습니다. 학생이 도저히 그 방에 다 못 들어갑니다. 목사님이 너무 좋아했습니다. 그때 좋아하시던 감정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 94세입니다.
그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려고 하면서 결국 알고 보니 내가 깨지지 않아서였습니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책에서도 제가 썼습니다. 강단에서 가르칠 때는 젊은 교수니까 패기도 있고 학생들에게 존경도 받는데, 교회만 가면 완전히 떡이 되었습니다. 애들한테 무시당하고 선생님들이 무시하진 않았지만요. 하찮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학교가 아니라 예배당에서 예배할 때 느꼈습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주일이면 만나온 아이들 심방을 다녔습니다. 대심방을 하게 될텐데 살인적이라고 할 것입니다. 코로나라서 그렇게는 못 할 것도 같습니다. 나는 대심방을 1년에 두 번 했습니다. 1월에 한 번, 8월에 한 번 하면 한 달씩 걸렸습니다. 주일에 안 나온 학생들은 주일 저녁에 심방했습니다. 토요일에는 전도했습니다.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잘하려고 하다 보면 자기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를 깨닫고 깨뜨려집니다. 자기 깨어짐입니다. 착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그다음은 충성된 종아 그랬습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