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BTS 마지막 강의
녹취자: 이재호
이런 생각을 해 봅시다. 많은 사람들이 부인하려고 하지만 어쨌든지 간에 세계의 문명의 발생지가 4곳입니다. 황하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도문명, 그리스문명, 이집트문명까지 하면 5대 문명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인을 해도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중국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입니다. 조선시대에 있었던 불교 같은 경우도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게 됩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이나 유학이라는 것도 그것도 결국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중국을 베낀 것은 아니고 그것을 기초로 우리는 우리 문명을 발전시켜 간 것이지만 그런 중국 간의 연결 관계가 사실은 굉장히 역사가 깊습니다. 우리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결국은 한 사고의 시대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렇게해서 이천년 가까이 내려온 것인데 중국화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서구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서구 문명이 순식간에 영향을 끼치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의 모든 나라가 발전한다고 한다면 전부 서구화되는 과정과 국가의 발전 과정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 서구화와 담을 쌓으면 그 나라는 고립되어 주저앉은 북한이나 이란이나 이런 나라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서구 문명은 무엇이 있길래 이렇게 세계를 어떤 의미에서 잠식해 간다고 할까? 그렇게 우월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기록을 보니까 서기 200년경에 로마시대가 있을 때였는데도 중국의 부가 전 세계의 40%였다고 합니다. 거대한 로마가 있었는데도 전 세계의 부가 40%가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편전쟁이 일어났을 때 영국에 의해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는데 그 당시의 전 세계의 GDP의 25%를 중국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상상도 안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국은 그것보다도 훨씬 못한 영국의, 내가 생각하기에는 10분의 1도 안되는 나라, 그런데 한 방에 무릎을 꿇어 버린 것입니다. 아편전쟁의 막을 내리고 홍콩을 접수한 것입니다. 그것이 불과 120년전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철학이나 모든 면에서 중국이 영국에 뒤진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중국 철학의 깊이는 가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정말 깊은 사유가 이미 노장시대 때에 이미 벌써 인간의 사유할 수 있는 대부분의 사유들이 다 떠오릅니다. 근대에 와서 뒤졌지 고대의 철학에 있어서는 중국 철학이 가지고 있는 분량과 이런 것들은 깊이는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부자면 무엇합니까? 영국 배가 대포를 쏘았는데 청나라 기지를 폭파시키는데 거기서는 대포를 쏘아서 그 배까지 안 나가는 것입니다. 결론은 딱 그것, 간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청나라가 부의 크기와 상관없이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라가 망국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 서태후 이후에 일어나는 후에 이르기까지의 청나라의 멸망사에 관한 것입니다. 마지막 실권자가 서태후였습니다. 아주 사악한 여자였습니다. 그 여자가 남긴 유명한 어록이 ‘한순간이라도 나를 불편하게 하지 마라. 한순간이라도 나를 불편하면 나는 너를 일평생을 불편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면 도대체 서구 문명이 무슨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길래 이렇게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는가? 앞으로도 나라가 세계 경제는 계속 발전을 하고 부가 아프리카로 많이 이동을 할 것입니다. 많은 경제적 성장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이 아프리카입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가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지금 2058년도에는 전세계의 50%가 흑인이 될 예정입니다. 이런 상황이고 그 다음에 무슬림 나라들이 개방이 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남미와 이쪽에 있는 나라들의 가장 잠재력이 가장 큰 지역이 아프리카입니다. 그렇게 해서 구매력이 늘어나면서 폭발적으로 나라가 발전하게 되면 그 나라들의 발전 모델들이 우리나라 같은 것과 똑같이 그런 식으로 발전하면서 서구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도대체 서구 문명에는 어떤 요소가 있길래 그렇게 수천년씩 내려오는 전통들을 한 번에 잠식시키면서 우월한 지배자가 되면서 그 사상을 쓸어버릴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그 긴 세월을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자존심이 상하면 그것을 수용해서 우리 독자적인 문명을 발전시켜 왔는데 놀랍게 지금 사고방식은 그 짧은 기간 동안에 그 유구한 역사를 털어내듯이 모든 생각의 구조와 모든 라이프스타일이 서구화된 것입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길래 지배적인 문명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오늘 던지는 화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불완전하겠지만 여러분 나름대로 무슨 요소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습니까? 우리가 비록 얼굴은 서구화가 안되었지만 옷 입은 것부터 전부다 양식이지 않습니까? 왜 그런 것 같습니까?
편리함. 자유와 책임. 자랄 때부터 그런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그런 환경을 제공했던 사람들도 서구로 넘어간 것 아닙니까? 처음에는 충돌이 있었잖습니까? 우리나라 서구 문명이 들어올 때 쇄국정책을 쓰고 막 이렇잖았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 번에 싹 들어와서 개화가 되면서 확 물결처럼 번지지 않습니까? 그렇게 수용할 수 있게 만들었던 힘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종교도 나오는 정답 중의 하나입니다. 의학도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합리적인 사상. 과학적 사고. 정답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대부분 비슷하게 녹아 들어갔습니다. 우리가 다 접했습니다. 아라비안 문명도 역사 속에서 접했고, 우리가 중국 문명도 접했고, 일본하고도 접촉이 있었고, 등등등도 있었는데 서구문명만큼 우리에게 짧은 시간에 압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문명도 없고, 우리가 앞으로 국가가 발전해 간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우리는 미국이나 이런 사회와 약간의 가치관이나 강조점은 다를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추세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그렇게 우월하게 하는 문명의 무슨 요소가 있기 때문인 것인가 하면 4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 로마 문명입니다. 그리스 문명이 먼저고, 그리스 문명의 시초를 어디부터 잡을 것인지는 쉽지 않은 이야기지만 대충 잡아서 1800년경에 미케네 왕국이 미케네라는 폴리스라 패권을 쥐게 되고, 그 이전에는 크레타 섬에서 크레타 문명이 발전하면서 그것이 에게 문명으로 확산이 되고 그것이 그리스 문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가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 거기에 그리스 문명이 발달하는데 이 사람들의 사고는 굉장히 합리적이었습니다. 우리들이 거의 같은 시대라고 보더라도 이집트 같은 데에서는 짐승 같은 것을 만들어 놓고 최고의 우상이라고 섬기면서 사람들은 그 밑에서 복종하는 태도를 보였지만 그리스의 신화를 보면 이집트나 중국이나 이런 데서 있는 신화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신이 인간을 투영했다고 보다는 인간이 신을 투영하는 것입니다. 신들을 만들었는데 이혼도 하고 바람도 피고 부부싸움도 하고 복수도 하고 미워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신들이 어떻게 보면 같지 않은 신들을 만들어 놓고 신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신들 속에서 전개가 펼쳐지는 데 신들도 어떻게 보면 운명에 매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헤라클레이토스 같은 사람, 플루톤메우스, 불을 가지고 온 사람 같은 경우는 그런 거에는 역행하는 캐릭터로 나오지만 대부분의 신들도 모이아라고 하는 그 운명 속에 매어서 사는 존재들로 등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크레타 섬과 에게해라는 지중해의 특성 때문입니다. 지중해에서 활발하게 무역이 이루어집니다. 이집트는 너무 저쪽에 있으니까 이집트에서 오고 중국에서 오고 메소포타미아에서 오고 할 때에 딱 모이기 좋은 곳이 지중해입니다. 거기에서 엄청난 상권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지금도 가보면 ‘아고라’라고 하는 그리스 말로 ‘장터’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국제무역 난장이 있던 곳입니다. 큰 광장이 있고 구획이 있습니다. 거거에 이집트 배가 들어온다고 하면 임시로 장이 서는 것입니다. 각 나라에서 와서 거기서 물건을 사고 팔면서 교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신 보다도 사람입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신을 잘 알아야 하는데, 언제 심술을 내는지 언제 비를 내리는지를 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려면 신 보다도 사람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관심이 사람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을 의지하는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는 기본적으로 포도나 올리브는 아주 잘 됐는데 그들의 주식으로 삼는 밀은 생산이 잘 안되었습니다. 이집트나 시칠리아나 그런 곳에서 수입을 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리고 무역을 하려면 바다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것도 고려를 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신들의 세계에도 관심을 갖고 그들에 의해 움직인다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리스 철학이 태동할 때에는 자연에 대해서 엘레아 학파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도대체 이 우주의 근본은 무엇으로 되어 있을까? 물이다. 불이다. 공기다. 흙이다. 아니다. 원자로 되어있다.’ 이런 식으로 논쟁을 합니다. 그런 논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먹고 살만하니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뭔가 철학을 하려면 철학은 땅파고 밭가는 노예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들이 차려주는 밥상 먹으면서 할 일없는 사람이 뒹굴거리면서 생각하는 것이 철학입니다. 배고프면 철학이 안 나옵니다. 그런데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에 의해서 자기들이 섬김을 받으면서 남는 시간에 이런 사유를 하는 것입니다.
나중에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의 그런 사고방식에 대해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 세계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느냐?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냐? 중요한 것은 이 도시 속에서 어떻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그리스가 통일이 안 되니까 다 폴리스 국가입니다. 작은 국가이니까 작으면 만 명, 많으면 십만 명 정도 되는 그런 마을들이 하나의 나라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사회가 만 명 정도 되면 거의 다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속에서 어떻게 나라가 사람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공동체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플라톤이 국가론을 씁니다. 그 한 권의 책에서 그 이후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국가론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모든 문제를 다 제기를 하고 숙제를 내 주는 것입니다. 내가 그 책을 여기서 과외 선생님하고 1년반을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 온 것이 그리스 철학입니다. 기본적으로 관심사가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지만 조화로운 삶이고 자신의 행복과 공동체의 행복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으며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사는 이 인생이 영원한 세계에 대해서는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라는 문제까지 그런 고민까지 하면서 플라톤이 소위 이야기하는 일자라는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처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이전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데 파편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세계 전체가 있음이 충만이고 그 충만이 일자라고 봤습니다. 일자라고 하는 것은 ‘한 일’ 자의 ‘논 자’ 자입니다. 하나의 누군가가 모든 세계를 일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내세운 것 가운데 재밌는 이론은 ‘없음이라는 것은 없다.’입니다. ‘없음이 있다면 어떻게 없음이 있음과 있음 사이를 구별할 수 있느냐’ 이렇게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 우리는 이 주먹과 이 주먹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이 두 주먹이 구별된다고 보는데 파르마니데스의 생각은 없음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있는 것을 둘로 갈라 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있는 것과 있는 것을 갈라 놓으려면 있는 것이 들어가야 하는데 있다는 면에서는 주먹이나 공기나 다 있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있는 것으로 충만해져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것이 나중에는 운동을 설명할 수 없어서 문제가 되긴 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하면서 그러면서 플라톤이 그런 사상을 물려 받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주의가 광범위하게 퍼져서 그리스 철학이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 철학이 그렇게 되고, 그리스에서 가졌던 인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정신이 결국은 로마가 알렉산더 대제에 의해서 그리스 제국이 통일이 되고 헬레 사회가 됩니다. 헬레니즘을 통해서 플라톤 사상들이 광범위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지도를 보면 알렉산더 대제가 이루었던 그 업적을 보면 어마어마한 영토입니다. 알렉산더는 아주 특이한 사람이어서 어느 나라를 점령하면 그 나라의 모든 문명을 다 존중합니다. 그 나라의 여자 한 사람을 골라서 왕비를 삼고 아이를 낳아서 왕자로 책봉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모든 나라를 끌어안으면서 영토를 확장해 가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제국주의적인 침탈하고는 달랐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더는 평생 헬라 제국의 왕으로서 살았지만 실제로는 호강을 누린 것은 없습니다. 일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다가 전쟁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선교사입니다. ‘이 헬라 문명의 이 찬란한 문명을 모르고 사는 저 짐승 같은 사람들은 얼마나 불우한 사람들인가? 우리가 땅을 정복해서 이 사람다운 삶을 살도록 무지와 어두움에서 해방시켜야 된다.’라는 선교적인 정신으로 퍼트려서 이집트까지 전부 다 점령을 한 것입니다.
결국은 죽은 다음에 나라가 쪼개지고 로마 나라가 급팽창하면서 헬라 제국을 접수하면서 로마 제국을 만드는데 로마 제국이 전체를 차지합니다. 역사상 아무도 이룰 수 없었던 아프리카까지 포함해서 유럽전체 심지어는 영국까지 포함해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지도를 그리면서 사실 중국하고 붙었으면 아마 재밌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서로 땅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중국도 너무 통치할 수 없을 정도로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도 이 끝에서 저 끝으로 5시간 가까이 가야됩니다. 로마 제국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도저히 다스릴 수 없어서 나중에 동로마 제국과 서로마 제국으로 쪼개지게 되는데 분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편의를 위해서 쪼개진 것입니다. 서로 영토에 대해서 관심이 없고 만나고 교류도 하고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전쟁은 안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로마 제국을 건설하게 된 것입니다. 문화적으로는 헬레니즘에 그냥 삼켜졌다고 말해도 정도로 됩니다.
그 대신 로마 시대 때 발달한 것이 있습니다. 헬라 제국보다 더 정교하게 나라를 다스리는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놓는 방법이라든지 정치제도라든지, 제국이 크면 통제가 안 되는데 그런데도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속주에 책임자를 보내는데 임기가 1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 뿌리를 내려서 토착세력과 연합을 해서 반란을 일으킨다든지 하는 것을 꿈도 못 꾸게 만들어 로마에 충성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나라는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가 토대가 되면서 그리스는 그런 사상적인 토대를 이루고 그 문명을 토대로 로마는 물질적이고 정치적이고 제도적이고 강력한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루는 그런 기반들을 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의 법학이나 이런 모든 이론들이 사실 로마법에서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함무라비 법전 같은 것도 있었지만 로마법이 훨씬 더 어떻게 보면 인간을 존중하고 하는 그런 로마의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한창 로마가 번영했을 때는 세상의 그 때에 2000년 전의 도시인데 포장 안 된 길이 없습니다. 포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포장을 안 하면 비가 오면 발목의 여기까지 진흙에 빠지는 것입니다. 돌멩이를 말뚝처럼 깎아서 30cm 이상 만들어서 말뚝을 하나씩 박는 것입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지만 땅의 지반이 안 주저앉는 것입니다. 그것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달아도 달아도 안 없어집니다. 그 위를 막차가 막 달려도 될 정도로 그렇게 하고 아침이면 빵차가 와서 굶주린 모든 사람들에게 빵을 무료로 나눠 주었습니다. ‘로마의 시민이 굶는다는 것은 로마 제국의 수치다.’ 전성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 로마 문명이 서구 문명의 기반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플라톤을 읽어야 되느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두 사람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52권의 저작을 남기는데 그 플라톤은 구름잡는 이야기를 하면서 현실로 내려왔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하늘로 향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실제로 써먹기에는 아주 훌륭한 도구들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논리학 범주론부터 시작해서 자연학까지 모든 학문을 망라한 것은 만드는데 그 당시에 알렉산더 스승이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개인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 80만 권의 책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상도 못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이전에 있었던 모든 학문이 아리스토텔레스를 프리즘으로 해서 들어와서 다시 태어나서 다시 정리된 학문으로 퍼지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이해하는 나라부터 발전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서구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기독교가 융성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본주의의 근본입니다. 플라톤은 굉장히 신본주의에 가까운 것입니다. 결국은 이것을 이단을 조성하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금서조치를 내립니다. 그래서 싹 불태워 없앱니다. 그런데 이것을 니케아 공의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쟁이 벌어집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하나님이라는 것을 일치를 받는데 아리우스라는 사람이 나타나가지고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가까운 인간이다’ 이렇게 하면서 노래까지 만들어서 퍼트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종교회의까지 열리고 최종적으로 이단으로 판명이 된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래도 굽히지 않고 도망을 가면서 퍼트린 종교가 ‘네스토리우스교’라는 경교란 것입니다. 그것이 당나라를 거쳐서 신라까지 들어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 교회의 흔적들이 당나라 유적지에 많이 나옵니다. 특히 신라시대 때 기와에 보면 십자가가 새겨진 것으로 나옵니다. 그것이 그렇게 연결이 된 것입니다. 한국에 들어온 반도에 들어온 기독교의 뿌리가 삼국시대까지 올라갑니다.
문제는 그렇게 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그 철학을 가지고 도망을 갑니다. 사상의 자유를 많이 주는 스페인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때의 스페인을 나중에 6세기가 되면서 6세기, 7세기 어간에 이슬람이 점령을 해버립니다. 거기에서 그것 자료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적극 그 사람들을 핍박한 것이 아니라 끌어안고 아주 잘 살게 만들어 줍니다. 일설에 의하면 아리스토텔레스를 비롯한 그리스 문학이나 철학, 수학을 양피지에 아랍어로 번역을 해서 오면 그것과 똑같이 금을 달아서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껏 네스토리우스교를 믿도록 허락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켐브리지, 옥스퍼드가 구라파에서 가장 처음 세워진 대학입니다. 11세기에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슬람에는 대학이 10세기에 세워집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없으면 현대에 학문이 세워질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논리를 짜고 어떻게 분석을 하고 어떻게 종합을 하는가 하는 학문의 원리와 방법론을 아리스토텔레스가 다 가르쳐 준 것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면 예전에 창고에 던져 넣던 지식들이 선반에 차곡차곡 정리가 되는 것 같은 그런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 로마 문명이 토대가 된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십자가군 전쟁이 일어날 때 ‘처들어가자! 예루살렘을 빼앗자! 저 놈들은 짐승같이 미개하게 사니까 우리 기독교로 점령을 해서 빛을 주어야 된다.’ 하고 그러고 가 봤는데 자기네 나라가 너무 미개한 것입니다. 과학과 문학과 모든 것들이 자기보다 훨씬 월등하게 발달해 있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었습니다. 십자군원정 갔던 사람들이 수입해가지고 들어오면서 드디어 기독교권에서 연구를 하기 시작하면서 소위 스콜라주의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뒤로 돌아가면 그리스 로마 문명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서구 문명이 다른 비합리적인 문명들을 석권할 수 있는 강한 유전자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 1번입니다.
두 번째는 역사상 무엇이 서구 문명을 범세계적으로 만들었을까? 기독교가 4개의 요인 중에 두 번째 요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354년에 태어나서 430년에 죽습니다. 죽을 때에 반달족이 쳐들어오면서 서 로마 제국이 멸망하는 광경을 보면서 숨을 거둡니다. 331년에 콘스탄티 대체가 기독교를 공인하게 됩니다. 그전까지는 다신교였습니다. 문제는 제국은 하나인데 통일된 세계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적적으로 꿈을 꾸고 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도 이론이 많은데 어쨌든지 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믿어도 좋다라고 하는 선언을 하면서 핍박이 끝납니다. 그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태어나기 한 20년 전 일입니다. 그런데 이미 기독교를 공인할 때쯤 되어서는 로마가 서서히 전성기를 지나서 기울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전쟁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기도 하지만 나쁜 것이기도 했습니다. 로마가 이만했을 때는 나라를 정복합니다. 일단 그 나라의 부가 이리로 들어옵니다. 어쨌든 로마가 선진국이니까 물건을 만들어서 가져가서 팔고 거기에서 걷어 들인 것들이 세금으로 들어오면서 부가 유입이 되는 것입니다. 정복을 넓게 해 나갈수록 엄청난 부가 로마로 들어오면서 경제 전체를 돌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정복할 땅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해이해지는 것이 군인입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역사 속에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나라의 충성심과 이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싸운다고 하면 화살과 칼의 공격이 많으니까 방패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큰 방패를 선호했습니다. 방패 뒤에 숨으면 아무것도 자기를 헤치지 못하게 원거리에 있는 사람을 먼저 찌르려면 무기가 길어야 하기에 창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그러면 군대가 너무 느려 터진다는 것입니다. 창기병과 기마병은 따로 있고 그것들이 확 쓸고 지나간 다음에는 작은 방패, 여기에다 차고 맘대로 움직일 수 있고 단검, 길지 않는 칼, 자유롭게 휘두를 수 있는 칼을 가지고 싹 쓸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군단도 크지 않습니다. 로마의 한 군단이 6천 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똘똘 뭉쳐서 그렇게 전쟁을 해 내는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영화를 보면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는데 병사들이 기가 막히게 훈련이 되어 있어서 화살이 온다 하면 방패를 가지고 틈새 하나없이 거북이 등처럼 만들어서 화살을 날려 버리는 것이는 것입니다. 그런 기술들이 발달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용맹스러운 전사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군인들이 나라를 지켜주었는데 군이 부패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로마시대가 기울어져 가는 것입니다.
그 때에 어거스틴이 태어납니다. 33살에 회심을 하게 되니까 87년도쯤에는 로마 제국이 기울어져 가고 있고 90년대에 로마가 국교가 됩니다. 그때는 이미 로마가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드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 전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통일적인 사상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 사람이 나가스떼라고 하는 곳에서 카르타고에서 교육을 받는데 어려서부터 천재였습니다. 천재니까 공부에 대게 관심이 많고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같은데 질문이 굉장히 많았던 것입니다. 학교에 보냈는데 학교에서 얻어맞는 것입니다. 헬라어 못 외운다고 때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진짜 하고 싶은 공부는 학교에서 안 가르쳐주고 그것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도도 해보고 엄마, 아빠에게도 사정도 해 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체벌이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고 불안한 아이들하고 놀게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파트라키우스라고 하는 로마의 하급 관리였으니까 아들이 상급관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니까 공부를 잘 시키고 싶었습니다. 어머니는 기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유학을 가게 됩니다. 거기는 방탄한 도시였습니다. 가서 공부에는 흥미를 잃고 여성편력에 빠집니다. 그래서 18세에 미혼부가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기독교에 회의를 품기 시작하면서 기독교를 믿어 보려고 했지만 말도 안 된다는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해서 마니교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하고 있다가 나중에 아기까지 낳으니까 어떻게 하든지 먹고 살아야 되니까 공부를 열심히 해서 뛰어난 수사학 교사와 논리학 교사가 됩니다. 그런데 학생들을 가르쳐 보니까 학생들이 기본이 안 되어 있습니다. 개판인 아이들이고 수준이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던 차에 알리피우스라는 친구가 로마에 ‘너 같은 훌륭한 사람은 로마로 와서 똑똑한 학생을 가르쳐야 된다.’ 그러고 로마로 부릅니다. ‘옳다구나’ 하고 로마로 갑니다. 그 때 거기는 너무 세련된 학생들이 열렬한 학구열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지방의 교육제도가 등록금 후불제였습니다. 그래서 한 달간 강의를 듣고 마음에 들면 돈을 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거스틴의 강의가 그 사람들의 마음에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30일을 수강하고 돈을 내야 되는데 29일까지 강의를 듣고 30일째에 다른 강좌로 가는 것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돈 안 내고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한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 왕사가지들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인간이 공부를 해도 이런 사가지가 될 수 있겠구나 라는 것을 터득을 하면서 인간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품고 있던 차에 밀라노에서 기가막힌 기회가 옵니다. 그 당시 밀라노는 로마에서 300km 떨어진 위쪽에 있는 도시인데 패션하면 뉴욕, 밀라노, 프랑스 파리 3군데를 꼽을 정도로 밀라노에는 장인들이 그 때에도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거기에서 황제의 칙사 같은 것들을 작성하고 칙령이 내리면 그것을 논리적으로 정리를 해서 백성들을 교육하고 황제의 법령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우리로 말하자면 문화공보부의 굉장히 높은 자리였습니다. 갈 때 이 사람은 로마에서 이미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자기가 로마보다 작은 도시인 밀라노로 가면 자기는 BTS의 RM 정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수사학의 대가였으니까 학문도 무르익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가니까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은 염려없이 성공을 했는데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갖는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라고 하는 주교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밀라노에서 아우구스티누스가 두 개의 세계의 역사를 바꿔 놓는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 만남이 암브로시우스 주교와의 만남입니다. 밀라노에 가면 성당이 있는데 제일 큰 성당입니다. 거기가 암브로시우스 주교가 목회하던 곳이었고 박식한 학자였고 거의 성자였습니다. 성 암브로시우스라고 부르고 어거스틴하고는 15살 차이가 났습니다. 거기서 목회를 하는데 어거스틴이 그 교회를 갔는데 사실은 논리학의 대가인데 로마에서도 이름을 날렸는데 밀라노에 왔는데 수사학 하면 사람들이 ‘그야 암브로시우스지. 암브로시우스를 어떻게 따라갈 수 있겠어. 그의 탁월한 수사학.’ 감탄을 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궁금하다는 생각도 들고 하나는 ‘내가 너를 이기리라. 똑똑한 것에 있어서는 나도 자신 있으니까 한 번 붙어보자.’ 그러고 가서 설교를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요즘 말로 ‘뿅’ 갈 정도로 설교를 한 것입니다. 거기서 수사학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수사학을 터득도 했지만 오랜 기간에 설교와 연설을 통해서 단련이 된 사람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아직까지 모자란 풋내기였습니다. 거기에서 중대한 하나의 발견을 하게 됩니다. 맨 처음에 호르텐시우스라고 하는 지금은 사라진 사람의 작품을 읽다가 한 단어를 발견하게 됩니다. ‘필로소피아’라는 단어인데 ‘필로’는 ‘사랑’이고 ‘소피아’는 ‘지혜’입니다. 지혜에 대한 사랑입니다. 철학이라는 말이 거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예지를 갖고 싶다고 불타오르는 것입니다. 어머니에 대한 영향이 있어서 신앙의 조그만 찌꺼기가 남아 있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진리를 찾아보려고 하는데 그때 그가 읽었던 성경이 ‘베투사라틴어’ 라고 하는 성경이었습니다. 지적인 기관이 별로 없는 선교사들이 대충 구약을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그렇게 라틴어가 거의 모국어 이상이었으니까 그런 유려한 문장가가 볼 때 이것은 너무 문법도 안 맞고 말도 안 되는 개차반인 것입니다. 그것을 보면서 너무 실망을 하게 되고 두 번째는 내용의 모순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발견하면서 ‘이것은 길이 아니구나’하고 포기를 했었는데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암브로시우스가 성경에는 다중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받쳤다.’ 그것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여 대신 죽을 것이라는 바라본 것이다.’라는 소위 모형론적이고 예표론적인 설교로 구약을 풀어내니까 이 사람이 모순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기가막힌 방식으로 풀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고 절대 성경을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눈을 뜨게 되면서 성경에 대한 진리에 대한 다시 향수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렇게 되어 가고 있다가 어느 때에 이 사람 나이 31살 정도 되었을 때에 어거스틴은 이미 유명도로 성공을 했고 돈을 버는데 있어서도 성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끊지 못하는 죄악이 있었습니다. 여자를 너무 밝혔습니다. 끊임없이 섹스에 몰입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방탕한 삶을 끊지 못하는 것입니다.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들으면서도 결단을 못합니다. 여성에 대한 너무 애착이 심해서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폰티치아누스라는 사람이 찾아와서 몇몇 친구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폰티치아누스는 로마의 유명했던 관리로서 황제를 가까이 섬겼던 고위직 출신의 퇴직 관리였습니다. 그 사람이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성 안토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수도원을 처음으로 창립한 신비주의적인 수도사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사람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그 사람이 대중적으로는 널리 알려져 있었는데 폰티치아누스는 그 성 안토니우스의 열렬한 숭배자였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얼마나 성결한 삶을 살고 얼마나 아름다운 신앙으로 자기들을 감화시켰는지를 설명해 줄 때 그 때에 어거스틴은 들은 적도 없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 속에서 강렬한 정동이 일어납니다. ‘나도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다.’ 마음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래서 울음을 감당할 길이 없어서 무화가 나무 아래에서 통곡을 하면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것이 어거스틴의 첫번째 회심입니다. 그것이 어거스틴의 인생을 갈라놓는 사건입니다.
그러고 나서 소리가 들리는데 아이들이 뛰어노는데 ‘톨레레게 톨레레게’ 그런 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집어 들어라 읽어라’ 그래서 그냥 뛰어가서 집에 있는 석안경을 펼칩니다. 그 사람이 바울 서신을 애독했었습니다. 펼쳤는데 로마서의 13장에 그렇게 나옵니다. ‘이제는 어둠을 벗어버리고 음탕과 방탕함을 버리고 빛의 자녀답게 살아라’ 그러면서 대성통곡을 하면서 옛 생활과 완전히 끝냅니다. 그 돈 많이 주고 명예를 얻던 그 직업을 사표를 냅니다. 이제는 주님만을 위해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OOO(52:36) 곳으로 가서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그 친구들이 같이 예수 믿기로 결심한 사람이 6개월 어머니 모니카와 함께 공동생활을 하면서 기독교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 시작합니다. 초기의 문집들이 행복론, 섭리론 그런 책들을 씁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어거스틴이 깊이 회심하게 됩니다. 그 다음해에 카테큐멘으로 들어가서 학습 세례자로 들어가서 존경하는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그랬는데 또 하나의 밀라노에서 만난 세계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없었더라면 서구 문명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고 어거스틴의 중요성이 가치과 현재 100으로 평가를 받는다면 밀라노에서 그 만남의 없었더라면 이 아우렐리우스는 사실은 영향력은 30%도 안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 만남이 신플라톤주의와의 만남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사실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의 철학도 공부하고 했지만 완전히 정리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플라톤주의가 일어납니다. 플라톤주의의 뉴 버전입니다. 플라톤은 주전 3세기에서 5세기에 그 사이에 태어났던 철학자들중에 초기 3세기경의 사람이고 플로티누스는 2세기경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플라톤을 재해석하면서 로마시대 문명에 맞게끔 해석을 하면서 그동안 발전되어온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종합하면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들을 구체적으로 만들어냅니다. 그 대표적인 책이 ‘엔네아데스’ 라는 책인데 보면 요즘에 신학교에 교리반에서 공부하는 내용과 비슷할 정도로 신비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 세계 전체를 보는 세계관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을 접하면서 이 사람이 눈을 뜨게 되면서 기독교의 진리를 어떻게 체계화할 수 있는가 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옳지 않은 것은 비판을 하고 거부하고 맞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기독교의 사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체계를 갖추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서 기독교를 범세계적인 종교로 만들 수 있는 그런 하나의 사상적인 토대를 놓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 사상들이 쭉 펼쳐져 만들어 나가는 틀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서구 문명이 엄청난 지배력과 흡수력을 갖게 된 두번째 요인이 기독교입니다. 그 가교역할을 한 사람이 이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 와서 여태까지 있었던 잡다한 기독교 사상이 정리가 되면서 여기서 뿜어져 나가면서 이 사람이 학문에 관심가는 신학만이 아니라 철학, 역사, 신학, 심리학, 심지어 기호학까지 그렇게 방대한 학문들을 다시 정리해서 만듭니다. 그렇게 해서 퍼져 나갑니다.
그렇게 퍼져 나갔는데 그것이 결국은 서양 철학들이 그것을 중심으로 해 가지고 중세철학에서 발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중세에서는 철학자와 목회자, 아니면 성직자일 수도 있고 평신도일 수도 있는데 기독교인이라는 것과 철학자가 분리가 되지 않으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철학이 발전되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판받을 점도 있지만 어쨌든지 간에 그렇게 하면서 인간의 이성과 신앙이 조화를 이루는 길로 나아가서 그것이 결국 서구 사상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는 것입니다. 중세가 없었으면 르네상스가 있을 수가 없고 르네상스의 내용을 중세의 형식으로 보존을 하면서 근대 문명이 폭발하듯이 싹이 트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실 이 사람이 가교역할을 하면서 서구문명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세번째는 과학입니다. 중국도 과학이 엄청 발달했습니다. 종이도 화학도 중국에서 나왔습니다. 그 수천 년의 발전해 온 눈부신 과학이 한순간에 퇴보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량화가 안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요리를 합니다. 엄마 손맛은 개량화가 안됩니다. 엄마는 저울도 없습니다. 소금, 고춧가루, 뭐뭐 이렇게 넣고 막 하는데 아무리 비슷하게 해 보려고 해도 그 맛이 안 납니다. 그것은 개량화가 아니라 숙련된 테크닉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일짱한 맛이 나는 것입니다. 과학을 엄마 손맛같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작 뉴턴이 등장합니다. 그 유명한 켐브리지에서 사과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만유의 인력을 발견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수학의 천재였습니다. 결혼도 안 했습니다. 미적분을 그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라이프니츠가 만들었다 둘이 다투는데 둘이 서로 보고 베낀 것이 아니라 서로 거의 동시에 만들어서 발표를 했는데 뉴턴이 조금 빨랐습니다. 그래서 뉴턴의 작품으로 알려줬는데 그것은 굉장한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해서 돌아가는 항아리 같은 것의 체적을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 아닙니까? 그것을 동양에서는 계산을 못했을까요? 동양에서도 계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방식이 그렇게 수식으로 만든 방식이 아니라 나무 조각으로 옮기면서 장인 같은 방식으로 계산을 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에도 산목이라는 계산기가 있었습니다. 육판 같은 데 놓고 이렇게 이렇게 계산하는 우리나라의 수준도 굉장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량화가 안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수식을 방정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자연의 모든 현상들이 다 수치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파란 네온사인이 있고 빨간 네온사인이 있고 하얀 네온사인이 있고 저것이 무엇이냐 하면 색깔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파장의 차이로 본 것입니다. 파장이 다 계산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예쁘다, 안 예쁘다라고 하는 것도 그냥 느낌이 아니라 치수를 가지고 계산을 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비율로 계산을 해서 몸길이하고 팔길이하고 1.068 대 1의 길이가 되어야지만 예쁜 것이다. 머리와 몸은 8분의 1이 되어야 한다는 공식을 만들어 내듯이 세계 자연 현상 모든 것들을 전부 다 수식으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과학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보지도 못하던 문명의 이기들이 탄생을 하면서 문명에 있어서 순식간에 여태까지 있었던 모든 나라들을 따라잡은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혁명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서구화되는 과정을 보면 새로운 기술입니다. 반도체도 미친듯이 목숨을 걸고 수백조를 투자해가지고 서로 선점하려고 합니다. 생사가 달린 문제입니다. 노키아가 전세계 핸드폰 시장의 40%를 사로잡았는데 4, 5년 만에 완전히 바닥을 치고 회사가 파산을 하게 됩니다. 건설하는 데는 수십년이 걸려도 무너지는 데는 5년도 안 걸리는 것입니다. 삼성도 한순간에 훅 불면 날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긴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입니다. 그것이 서구 정신의, 서구 문명의 하나의 축이 되어서 DNA가 되어서 전 세계를 지배한 것입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시민혁명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시민혁명입니다. 저 멀리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를 비롯해서 1268년의 권리청원에 이르기까지 귀족들과 맺어진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이 단초가 되어서 그 다음에 시민의 권리를 주장하고 부르주아의 권리, 마지막에 익어갈 데로 익어가다가 폭발한 것이 1789년의 프랑스 파리 시민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폴레옹에 의해서 꺾이면서 다시 많은 사연을 안지만(1:03:13) 세계의 시민혁명들이 일어나면서 점차 사회가 1인 독제체계에서 의회주의로, 민주주의로, 여성과 젊은 사람들의 참정권이 허락되고 계급이 무너지고 하면서 시민사회가 형성된 그 시민사회의 혁명의식 그 4가지가 서구를 모든 문명을 삼킬 수 있는 DNA로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밀면서 모든 나라들이 서구 사상으로 접수되어 들어오게끔 만드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대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런 4가지 정신과 인연을 끊고 우리가 독자적으로 발전해 보겠다고 하면 발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같은 경우도 양보 안 하는 것은 시민정신 같은 것은 양보를 안 하지만 과학기술 같은 것은 철저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발전을 하니까 인간의 정신의 발전은 안되고 물질만 발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서구 문명이 가지고 있는 한계입니다.
그러면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이런 서구문명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하겠습니까? 지금은 4개의 축이 있는데 이론적인 4개의 축이고 지금 서구사람들은 대부분 그리스 로마도 잘 모르고 기독교도 잘 모릅니다. 과학기술, 시민혁명은 압니다. 기독교에 의한 신본주의와 그리스 로마를 기초로 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이해 같은 것들이 떨어지면서 물질중심적으로 굴러가는 것이 서구 문명의 하나의 폐해라고 보는 것입니다. 돈만 많으면 이혼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심지어 재산을 빼돌리기도 하고 상상할 수 없는 범죄가 일어나는 그것도 물질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서구 문명의 폐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세계를 움직였던 서양의 4가지 DNA를 깊이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물질중심적으로 굴러가면서 기독교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것이 퇴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서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다시 한 번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 전 포괄적으로 세계를 보는 안목을 열어 주었고 그것을 실제 사람들의 삶에 적용하면서 문명을 지배해 갔던 역사를 배우면서 어떻게 이 변화된 물질중심적인 시대 속에서 어떻게 기독교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시키면서 기술문명만 발전해서 많은 것들을 생산해 내는 일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정신도 함께 성숙시켜서 빈부의 격차와 차별이 있지만 그것들을 어떻게 사회가 극복하고 모든 사람이 인간답게 살면서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게끔 노력을 하고 이바지하면서 사느냐 거기에 우리의 숙제가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깨닫는 것은 ‘우리는 너무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서구 사회와 우리 사회, 기독교의 역할, 이런 것에 눈을 뜨면서 사람들이 이러한 4가지를 토대로 일구어 온 서양 문명에 좋은 점들이 어떤 점들이고 우리들이 약점들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많은 발전과 성장을 이루기도 했고 빛도 주었지만 과학이 발달하고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수명이 말할 수 없이 늘어났습니다. 한 60~70년 동안에 인간의 수명이 우리나라 기준으로 거의 2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보지 못했던 인간 소외 현상, 물질에 인간이 종속되는 비참한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의 모습, 경쟁에서 진 사람들에 대한 무자비한 처우, 이런 것들을 어떻게 기독교 정신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우리가 한 사람이 세계 전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있는 이 사회 안에서 내 바운더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런 사상의 혜택을 받으면서 정신이 일깨워지고 나의 실천에 의해서 그런 문제들이 다소 해소되는 사회를 살아가는 그러한 일에 기여를 하며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는 주님을 사랑하고 잘 믿어야 되고, 이 세상에서도 그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그런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그런 역할들을 하면서 살아가는 화해자로 우리가 사는 데에 우리 신앙의 의의가 있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