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녀들(2022.10.27._용산대성교회집회 새벽1)
2. 염려하지 말라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2)
녹취자: 장미연
어제 시인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고 했습니다. 2절부터는 왜 하나님을 그렇게 모시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2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푸른 풀밭은 우리에게는 걷기 좋은 곳이지만 양 떼들에게는 그것 자체가 식량입니다. 하루종일 눈뜰 때부터 잠들 때까지 끊임없이 풀을 뜯고 풀을 먹고 그리고 변을 보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양 떼의 일상입니다. 아시다시피 팔레스타인에는 온 땅이 전부 다 푸른 녹지로 뒤덮인 곳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유목을 했습니다. 즉, 짐승들을 데리고 장소에 따라서 다니며 목양을 했던 것입니다. 바로 풀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풀밭은 찾으면 양 떼들을 데리고 가서 거기에서 양 떼들을 충분히 꼴을 먹입니다. 꼴을 먹고 있을 때 목자는 언덕에 올라서 사면을 두루 보며 어느 목초지로 가야 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니 양은 굳이 염려할 필요가 없고 이제 이 목동의 인도를 따라서 가기만 하면 거기에 먹을 것도 있고 물도 있습니다. 이런 것을 배경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모든 것 때문에 살고 또 여기서 “누이시며”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휴식을 뜻하는 것입니다. 풀밭에서 먹고 편안하게 누워서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목동이 끊임없이 선한 목자가 되어 이 양 떼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양은 자신이 목자의 돌봄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지만 그래도 부지불식간에도 선한 목자는 마음이 양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 양들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돌보면서 그에게 필요한 꼴들을 먹여주고 또 그를 적절하게 쉬게 하면서 그렇게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시종 떠나지 않는 근심거리가 없을 리가 없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한 염려는 더더욱 끝나지를 않습니다. 특히 요즘과 같이 경제적으로 상황이 어려운 때에는 이런 근심을 하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염려하고 근심하는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중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을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불안과 근심을 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고 그래서 실존철학자들은 “인간이 자기를 확인하는 방법이 바로 불안해지는 것이다.” 불안을 통해서 자기가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불안은 자의에 의해서 주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결핍이 있으니까 끊임없이 속박을 느끼고 그래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어느 권사님이 꿈을 꾸셨답니다. 등위에 커다란 망태를 하나 지고 산길을 가는데 저 앞에서 시커먼 옷을 입은 마귀같이 생긴 그런 존재가 가면서 끊임없이 검은 쓰레기를 버리더랍니다. 그것을 버리면 자기는 집게로 열심히 집어서 이 망태 뒤에다가 집어넣는데 망태가 사람 키만 할 정도로 큽니다. 나중에 따라가다, 따라가다 계속 집어넣으니까 너무 많이 주워서 망태가 꽉 차서 쓰러지게 되었습니다. 쓰러져서 망태에 눌려서 숨을 쉴 수 없게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집게로는 그 검은 쓰레기를 주워서 자기 등 뒤에다가 넣고 있더라는 것이지요. 이게 인간입니다.
끊임없이 염려합니다. 염려하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끊임없이 이 세상에서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기 때문에 우리가 끊임없이 근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 6장이 시작되는 문맥이 “너희를 위하여 땅에 보물을 쌓아두지 말라. 이를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살 수 없다” 말씀하시니까 결국은 우리들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며 살려고 하는 욕망, 더 많이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이 누리고 싶어 하는 이 욕망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가져야지만 만족을 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는 만족이 없습니다. 월세 사는 사람은 전세 살기를 그리워하고 전세 사는 사람은 내 집을 사고 싶어 하고 내 집을 산 사람은 더 큰 집을 갖고 싶어 하고 큰 집을 가진 사람은 더 화려한 인테리어를 꾸미기를 원하고. 일평생 그런 일 때문에 사람들은 근심하고 염려합니다. 이러면서 우리의 황금 같은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를 인격적으로 의지하고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하면서 근심하지 않게 하고 불신앙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서 불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껏 살아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매 순간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왔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십시오. 교회에 필요한 것들을 제때제때 공급해주시지 않았다면 아마 교회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걸 아는 것은 아니지만 목회자와 장로님들과 교회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간증들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너무나 염려되고 걱정될 때 그 모든 것을 그때, 그때 채워주시는 것을 너무나 많이 경험합니다. 너무나 많이 주시면 당신 대신 세상을 의지할까봐 하나님이 막으시고 또 너무 주시지 않으시면 실망하고 낙심하여 버릴까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십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 속에서 응답으로 주심으로써 받은 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하게끔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정말 핍절한 지경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먹이시고 돌보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사울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 다닐 때에는 함께 있는 사람들과 밥을 굶게 되었고 제사장 이외에는 먹을 수 없는 진설병까지 건네받으면서 먹게 되었으니 그의 궁핍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인생 말년에 보니 자신의 생애 전체는 이렇게 하나님이 공급해주시는 은혜 때문에 살아온 인생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결국 이것이 시인으로 하여금 더욱 그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던 것입니다. 작은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큰일에서도 주님을 의지하지만 작은 일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사람은 큰일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시는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이 자기를 돌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 시인도 바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그렇게 하나님의 돌봄을 입으며 가난하지만 시시때때로 주님이 보내주시는 음식으로 자신의 목숨을 연명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터득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는 하나님이 그 가난하던 목동을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만들었으니 그 또한 하나님의 은혜였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나는 새 들에 핀 백합을 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를 깨우치셨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인간들을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이미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영혼도 없고 당신이 낳지도 않은 그러한 피조물들을 들에 핀 백합과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그렇게 먹이고 입히신다면 만약에 자기의 아들의 피로 구속하시고 그 은혜로 속량하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더 사랑스런 존재겠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시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오직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쓰라고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가지지 못한 것을 인하여 마음 상하고 하나님 원망하는 대신에 이미 내게 주신 것들이 얼마나 크고 많은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것들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됨됨이에 따라서 맡기시니 조금 물질의 축복을 주셔서 당신을 버릴 것 같은 사람에게는 그 축복은 축복이 아니라 유혹이 되겠지요. 그러나 당신을 충분히 사랑하고 삶의 동기가 오직 하나님께 고정되어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든지 하나님을 전심으로 의지합니다. 결핍되었을 때에는 모든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리고 모든 것을 충분히 가진 후에는 그렇게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가난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 앞에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시기도 하고 거두시기도 하는 것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물질이 아까워서 안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물질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질을 지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복 받을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인을 보십시오. 시인은 어려운 때도 있고 고통을 받는 때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는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신다”고 찬송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부유할 때나 가난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혹은 고통받을 때나 언제든지 나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내게 모든 것을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하나님 한 분만을 기억하며 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찬양)
오늘 피었다 지는 들풀도 입히는 하나님
하물며 우리랴 염려 필요 없네
푸른 하늘을 나는 새들도 먹이는 하나님
진흙 같은 이 몸을 정금 같게 하시네
하나님은 그렇게 푸른 하늘을 나는 새도 먹이고 들에 핀 백합도 입히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우리의 눈으로 보는 이 모든 자연의 세계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인자하시고 사랑이 많으신가 하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공중에 나는 새를 위해 예수를 주셨습니까? 들에 핀 백합을 위해 당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냥 자연의 사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해서는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외아들을 보내시고 우리의 죄를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는 아들보다 귀한 것이 없었는데 그 아들도 우리를 위해 기꺼이 주셨으니 다른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아까워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그렇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인격적인 신앙입니다. 아무리 많이 주셔도 하나님을 배반할 리가 없고 주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수가 없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 주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많은 재물과 건강, 재능과 우리에게 주신 많은 기회들은 그것을 흘려보내어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돈의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자녀들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사랑하기에 당신 자신에게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의 통로를 삼아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 놓고 물질을 주시고 필요한 것을 주셔서 마음껏 쓰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자기를 위하여 써서 스스로 부패하고 타락하는 대신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나누어 주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물질의 복을 주셔서 그 은혜 안에서 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가 인격적인 신앙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게 아까운 것이 없이 모든 사람들 위해 기꺼이 주는 축복의 통로로 살고 싶어 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지만 우리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다는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탐욕과 부패로 하나님이 주셔도 그 많은 물질을 가지고 타락하고 부패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면 그 물질로 많은 사람을 섬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우리가 주님을 더 믿고 신뢰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실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시지 않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로또의 큰돈이 당첨된 사람들이 정말 행복하게 되었는지를 조사하는 그런 TV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큰돈을 얻게 된 사람들은 반드시 불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큰돈을 얻기 전에는 사이좋게 지내던 가족들이 큰돈을 얻은 다음에는 다투고 싸우고 그렇게 고통받는 것이지요. 저희 교회가 있는 안양 지역이 한때 제가 88년도에 교수가 되어서 안양이라는 곳을 처음 출퇴근하게 되었는데 땅이 엄청 넓어요. 끊임없는 논밭으로 이어져 있는 그런 시골이었습니다. 그런데 졸지에 신도시가 개발이 되면서 똥지게를 지고 다니고 거름이나 주던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도 추적해보니까 행복한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벌써 35년 전 그때쯤 신도시들이 개발이 되면서 땅을 돈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살던 사람들에게 갑자기 땅을 비우라고 나라에서 보상을 해주겠다고 해서 그 당시 32평형 아파트 하나에 불과 4천만 원밖에 안 하던 시절에 1백 80억을 보상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졸지에 어마어마한 갑부가 된 것입니다. 행복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돈을 받자 자식들은 그 돈을 나눠달라고 아버지 앞에 매달리게 되었고 또 나눠주니까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재판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식 다섯이 그 재산을 서로 갖겠다고 재판하는 광경을 보면서 아내는 병이 나고 남편은 목매어 죽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의 탐욕을 품은 사람들이 부자가 될 때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무언가를 충분히 맡길 수 있다고 생각되실 때까지 우리를 인격적인 신앙으로 훈련시키시고 그 후에 우리의 믿음의 분량만큼 맡기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직분도 그렇고 세상의 명예도 그렇고 돈도 그렇고 권력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지만 그 사람이 돈 때문에 명예 때문에 재능 때문에 권력 때문에 타락하지 않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는 물질생활로 인해서 우리 하나님을 찬송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눈물 젖은 밥을 먹어 본 사람들은 매 끼니 배부르게 밥을 먹는 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깨닫습니다. 초라한 식탁이지만 굶지 않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눈물로 기도하던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이 너무나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필요한 것을 주시고 넉넉히 후히 주셔서 누리게 하시면서 살게 하셨으니 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들이 받은 모든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누리고 있는 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이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이고 나에게 맡기신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것들을 흘려보내어 누군가에게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일을 위해 쓰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으니 하나님이 다윗이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한 나라의 왕이 되고 모든 나라의 재산이 자기의 것이 되었는데 수많은 전쟁을 통해 작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거기에서 많은 재물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니 다윗에게 하나님 이외에 사랑할 분이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우리도 이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인정을 받으며 물질의 복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뒤에 보면 “쉴만한 물가로 나를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쉴만한 물”이라고 하는 것은 그냥 우리가 대충 번역을 한 것이고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매네오노트’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움직이지 않는 물’입니다. 그래서 “그가 나를 푸른 풀밭의 누이시며 움직이지 않는 물 가장자리로 이끄시는도다” 이렇게 번역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움직이지 않는 물이란 무슨 뜻일까요? 모든 짐승들이 어느 정도는 물을 잘 극복하고 살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시골에서 살면서 홍수가 나면 그 홍수에 시뻘건 물에 가축들이 떠내려오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소 헤엄 잘 칩니다. 돼지 절대 물에 가라앉지 않습니다. 닭도 헤엄 잘 칩니다. 개도 헤엄 잘 칩니다. 그런데 이 양은 헤엄을 못 칩니다. 기본적으로 다리가 작고 온몸에 털이 가득 있어서 물속에 들어가면 물을 털이 빨아들여서 몸무게가 무거워지면서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양은 물에 대해서 본능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목이 말라도 양은 흐르는 물을 마실 수 없습니다. 움직이는 물을. 이것을 아는 목자는 양들이 풀을 뜯은 후에 물을 먹을 줄 알고 야트막한 시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풀뿌리들, 나무뿌리들을 모아서 뚝을 쌓습니다. 그러면 야트막한 개울이 졸졸 흐르다가 땜에 막혀서 물이 고이게 되겠지요. 그 물이 바로 ‘매네오노트’, ‘움직이지 않는 물’입니다. 그렇게 만들어놓고 양 떼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마른 목을 축이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우리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아시고 어떤 점에서 우리가 부족한가 하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사랑은 약한 것을 이해하게 만들어주는 힘입니다. 우리가 사랑이 없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사랑이 있으면 사람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왜 그들이 그렇게 약한지 다 몰라도 ‘사람은 저럴 수 있다’라고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약점들 까지 모두 알면서 하나님은 인도해주시기 때문에 때로는 주님께 불순종하고 거역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는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주시는 것이 목자의 사랑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부르지만 사실 때로는 어머니 같이 자상하게 그렇게 우리를 보살피고 사랑하고 그리고 우리를 돌보아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은혜를 힘입어서 일생동안 우리들이 살았습니다. 굶어 죽지 않고 헐벗어서 추위에 얼어 죽지 않고 집이 없어서 길거리에 나앉지 않고 하나님이 부족한 우리인데도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을 주시고 살아갈 집을 주시고 우리에게 필요한 더 많은 것들을 주셔서 인간다운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염려는 우리의 마음을 끊임없이 병들게 만들고 마음속으로 주님이 계셔야 할 그 자리를 끊임없이 파괴하여 주님이 우리 안에 깃드실 곳이 없게 만듭니다. 그렇게 굶주리고 가난한 때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고 입히셨습니다. 그리고 이제껏 살아오게 하셨고 자녀들을 교육하게 만드시고 또 우리가 간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대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누구에게 그렇게 없이 여김을 받지 않고 살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누가 하셨습니까? 목자이신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하십시오. 나에게 목숨을 주시고 이 나이 먹도록 하나님이 건강하게 하시고 가끔 약국의 신세를 지지만 그래도 이렇게 내 발로 걸어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주시고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게 해주셨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이 주님이 은혜로 주신 것들이니 내가 이것을 감사함으로 받고 나도 누릴 뿐 아니라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 이것들을 흘려보냄으로 그들도 복을 받게 만들어주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시는구나.’ 느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게끔 돌보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해야 할 대상은 우리의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물질은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사용해야 할 사물에 불과합니다. 이런 고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더 많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줄수록 흘려보내고 흘려보낼수록 채워주시니 결국은 풍족하신 하나님 때문에 영혼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이 인격적인 신앙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모습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탐욕으로 살지 마십시오. 움켜쥐지 마십시오. 여러분보다 더 고통스럽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그들이 궁핍하지 않도록 돌보아주십시오. 마음으로 그들을 깊이 사랑하고 여러분들이 그들의 위로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이니 그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모든 것을 누리며 살게 하시는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같이 되지 말고 오히려 빌립보 교회처럼 되어 아낌없이 성도를 섬기는 일에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고 예수로 인하여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 여러분 자신과 자녀들이 한없는 복을 받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이니 염려와 근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여 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