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 진토에 붙었을 때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119:25-26)
녹취자 : 김세나
어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하나님의 서사에 자기 개인의 서사를 탁월하게 연결시켰던 사람들이 바로 시편에 나오는 기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고통의 바다 같은 인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일들을 겪습니다. 우리와 똑같습니다. 이 시가 쓰여진 것은 빠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이고, 늦은 것은 훨씬 더 늦어서 2500년경까지 볼 수 있는데, 그 간격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리와 똑같은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시편이 가득 차 있는 이유는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개인의 삶 속에서 일어나는 서사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메타 서사와 연결시키는지 이들이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삶의 다양한 상황에 처하면서, 거기에서 자신의 인생에서 겪는 고통과 슬픔, 기쁨과 감사의 의미를 하나님 앞에서 연결하면서 그렇게 힘을 얻었습니다.
오늘 이 시인도 똑같이 이야기합니다. 자신의 영혼이 진토에 붙었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진토’라고 하는 것은 가장 가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티끌’, ‘먼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진토에 자신의 영혼이 붙어 있다고 하는 것은 동일화를 뜻합니다. 고귀한 자신의 영혼이 이렇게 진토에 붙어서 아주 하찮고, 값어치 없는 것처럼 되어 버린 상태였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심령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하는 것을 은유하는 표현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영혼이 아주 고통스럽고 비천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깊이 낙심이 되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어떠한 용기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좌절을 겪는 때가 있습니다. 절대적으로 환경 때문에 그런 것만은 아니라, 평소 같았으면 능히 이겨낼 수 있는 환경인데, 어느 상황에서는 우리의 믿음이 사라지고 영혼의 활기가 그치면서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그러한 때가 시인에게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였는가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바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따라서 혹은 주님의 말씀과 같이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약속하고 있는 바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죽은 것과 같은 우리의 영혼을 살려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인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영혼이 진토에 붙어 있는 것과 같은 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말씀을 따라서, 말씀과 같이 나를 살아나게 해 달라고 탄원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마음이 깊이 낙심하고 도저히 영혼이 갈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때입니다. 우리의 지성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마치 우리의 시신경도 살아있고, 모든 삶도 그대로 있는데 빛이 꺼졌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파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침체된 모든 영혼의 희망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에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의 침체에 빠져서 고통을 받고, 도저히 환경을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영혼의 비참함을 느낄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샘물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길어내고 길어내면 계속해서 솟아나는 샘물과 같습니다. 그러한 개인 경건의 시간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껍질뿐인 인생을 살아갑니다. 마치 케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좀비들 같이 살아있고, 움직이기는 하지만, 왜 그렇게 살아가는지 모르고 생명도 없이 누군가의 강요된 삶을 사는 것처럼 기쁨도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조건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생명이 충만하게 역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토대가 예배드리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조용한 기도의 시간, 거기에서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으며 진심으로 토하며,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알아주시며 내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내 마음을 접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되고, 그 하나님의 정서가 내 안에 흘러들어와 하나님의 심정으로 기뻐하고 슬퍼하고 아파하고 즐거워하면서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기도보다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깊은 감화를 줄 때,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고 그렇게 기도하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인이 수없이 많이 영혼이 진토에 붙은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 곤고한 인생의 날에 영혼의 회복을 경험한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한 영혼의 회복을 약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대로”라고 하는 것은 또 한 가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단으로, 하나님이 진토에 붙은 것 같은 우리의 영혼에 새 생명과 생기를 불어 넣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이미 약속을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너의 영혼을 내가 소생시켜 주겠다.” “너의 영혼을 내가 다시 살아나게 해 주겠다”라는 약속을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받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는 것이 결국 감성을 지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과 접하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원하는 것들이 세상 속에서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 속한 것, 신령한 세계에 속한 것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생겨나게 되고, 그것을 간절히 원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원해야지 우리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육체가 끊임없이 밥을 먹고, 끊임없이 물을 마시며 살 수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피골이 상접해 지고, 그래서 결국 아무 활동도 할 수 없는 육체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영혼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고 변화되면 넉넉히 현실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능력과 힘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 속에서 하나님과 교통하며 기도 속에서 시련의 길을 걸어갑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밀한 보호와 사랑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련 속에 있을 때 그분의 품으로 피하면 그 속에서 하나님 당신의 품에 피하는 사람을 위한 은밀한 은혜를 예비하시고 거기에서 우리의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온 신앙생활 동안에 모든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은 항상 어려운 때에 있었지, 모든 것이 평탄할 때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위기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간절히 부를 때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새기면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영혼의 소생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 번째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은혜를 받았습니까. 2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매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 하나님 앞에 영적인 생명을 회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먼저 반성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내가 무슨 행위를 했는지, 내 마음이 나의 행위를 통해 어떻게 드러났는지 되새기면서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자신이 행했던 모든 일들을 주 앞에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이렇게 행동했습니다. 이것은 이러이러한 마음에서 한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의 행동을 보면 우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우리의 행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추적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고하고 나면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나의 변명할 수 없는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 주시고 나에게 다시 살 수 있는 힘을 주시도록 간구하며 이 시인이 경험하였던 것처럼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관계의 회복입니다. 다시 하나님과 화해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는 것입니다. 그렇기 할 때 우리의 영혼은 아주 커다란 무게를 덜어낸 것 같은 영혼의 가벼움을 느끼고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기도의 문이 열리면서 하나님 앞에 시간과 상관없이 마음속에 있는 기도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도 경험했을 것입니다. 기도빌드업을 해야 한다고 할 때 작정하고 무릎을 꿇었는데 가슴이 답답해서 아무 기도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줄 알았는데 시간을 보면 2-3분 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바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간절히 응답받지 못하였기 떄문에, 하나님의 용서와 화해의 경험이 없기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말하기를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쳐 주옵소서.” 그렇게 하나님과의 화해를 경험하고 나니까, 기도가 되기 시작하고, 그렇게 기도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니까 마음속에 갈망이 생겼습니다. 어떤 갈망입니까? “하나님, 내가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싶습니다. 그래서 나의 삶,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도와주시옵소서.” 이러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시간 주님 앞에 기도합시다. 큰 소리 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언어를 길어 올리면서 주 앞에 진실한 한 마디의 기도는 진심이 없는 열 마디의 외침보다 우리의 마음을 바꿔 놓습니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은 것 같이 비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영혼을 살아나게 해 주시옵소서. 나를 용서해 주시고, 다시 한번 화목하게 해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