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회 예배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계3:14)
녹취자: 백지영
옛날에 신약성경에 쓰여 지던 시대에, 이 라오디게아 도시는 아주 부요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특별히 로마시대 때 라오디게아 산(産) 안약 그러면 로마제국 전체에 유명한, 우리 개성인삼처럼 그렇게 유명한, 약이었고 그 약을 팔아서 도시가 아주 부요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수도시설이 있었는데, 이렇게 부요한 도시는 우물을 길어먹는 것이 아니라 수도시설을 이용했습니다. 그 물을 운반하는 수단이 돌로 만든 관이었고 햇볕에 노출되었으므로 물은 깨끗해서 좋지만 낮에 따뜻하게 달구어지면 그것을 타고 오는 물도 미지근해집니다. 그러면 그것을 용기에다 받아서 그늘에 놓아두었다가 서늘하게 식혀서 음용하였다고 합니다. 이런 내력을 잘 아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오늘 요한이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가운데, “차든지 아니면 더웁든지 둘 중의 하나 해라, 뜨끈뜨끈한 물이든지 아니면 시원한 물이든지 그래야지만 사람들이 마실 때 만족을 느끼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희도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한다.”라고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찬 것은 불신앙이고, 더운 것은 불신앙이다’ 이렇게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별로 동의가 안 되고, 이것은 물에다 비유를 해서 “너희들이 물을 마실 때 따뜻한 물이나 차가운 물은 마시기 좋지? 미지근한 물은 토할 것 같지? 그러니 어떤 모습이든지 너희들의 신앙생활이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만하게 되거라.” 그 뜻 입니다. 즉, 갈라디아 교회의 영적인 상태에 비유해서, “너희의 영적인 열심이 이렇게 미지근하다. 그래서 나는 너희를 토해버리고 싶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당신이 누구신지 소개를 합니다.
먼저 뒤에서부터 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의 근본이시다”,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며, 창조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도 요한이 ‘말씀이신 그리스도 없이는 이 세상에 창조된 것이 없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만드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신다고 하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만약에 예수님의 입에 넣었을 때에 따뜻하든지 시원하든지 해서 예수님의 마음에 흡족한 교회, 흡족한 사람이 되면, 천하의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장악하고 계시니 그것들을 베풀고 나누어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살게끔 만들어 주신다. 그래서 그것들을 누리게 하신다. 그런 뜻입니다.
우리 목회해 본 목회자들에게는 생생한 경험이 있습니다. 교회를 개척을 할 때, 목회하기 전에는 돈 때문에 그런 고통을 받아보지 않았는데 교회 살림살이가 어려워서 끔찍하게 고통을 받습니다. 또 교인들이 모여서 교회라도 짓게 되면 그 많은 교회 건축의 과정을 통해서, 물질적으로 어렵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견디고 하나님을 어린아이처럼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놀랍게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설명할 수 없는 신기한 방법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화) 저도 교인이 많아져서 도저히 어쩔 수 없어서 이 교회를 짓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이 땅을 계약할 때 36억을 달라고 하는 땅을 39억을 주고 샀는데, 그때 정직하게 하느라고 달라는 것보다 3억을 더 주고 샀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데 교회 통장 전부를 통 털어서 1500만원이 있었습니다. 이제 39억짜리를 계약을 하니까 계약금을 3억을 달라고 하고, 이번 주에 계약을 하자고 하는데 3억이 있을 리 만무합니다. 돈을 빌리려고 하니 담보가 없어서 아무 곳에서도 안 빌려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눈물로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3억 원을 주셔서 기적처럼 계약을 하게 하셨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좋은 땅 주인을 만나게 하셔서, 계약금 3억밖에 안 받았는데 도장하고 등기부등본 모두 주면서 “교회 명의로 가지고 가고 이것으로 대출을 받아서 돈을 달라”고,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땅 주인이라고 해도 절대 그렇게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런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하면서 돈 때문에 단련을 받아 보기는 했지만 염려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올바른 목적을 정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기뻐하시면 신기한 방법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그것은 이 모든 창조된 세계의 근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렇게 넉넉히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의 별명은 ‘충성된 증인’이었습니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이 같은 것이 없고, 같은 날 한 시간에 태어난 쌍둥이도 지문이 다르고 얼굴 모양새가 서로 차이가 납니다. 그러면 우리가 목회를 하면 모두 다 남들이 보기에 눈 비비고 쳐다 볼 정도로 큰 교회를 하겠습니까? 제자 훈련을 하면 모두 사랑의 교회가 되겠으며, 성령 운동을 하면 모두 순복음 교회가 되겠으며, 찬양집회를 하면 모두 온누리 교회가 되겠습니까? 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큰 그릇으로 쓰시는 교회도 있고, 작은 그릇도 있고, 금그릇도 있고, 은그릇도 있고, 질그릇도 있습니다. 이 쓰심에 합당하게 만들어진 교회와 목회자의 모습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설교를 위해 태어난 것처럼 잘 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격적으로 집에 들어앉아서 꼬박꼬박 사물을 보라면 지겨워하지만 돌아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전도를 시키면 잘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바라보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느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생애를 사셨습니다. 하고 싶을 때까지만 하는 것은 충성이 아닙니다. 하기 싫을 때, 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계속하면 고통이 올 때조차도, 그 일의 가치를 알고 그 일을 맡겨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헌신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온 뜻을 다해서 헌신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이렇게 충성된 섬김으로 사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교회가 작아도,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은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재능이 있는 것과 사명이 주어지는 것은 별개입니다. 재능도 있는데 그것이 사명이면 정말 신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은 주어졌는데 재능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일의 크기가 아니라, 일에 임한 마음가짐과 헌신을 보면서 그 사람의 충성을 재시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사셨던 모든 생애는 그야말로 충성스러운 생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서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정말 충성해야 합니다.
(예화) 일평생 목회를 하신, 교인이 30여 명 정도 모이는 작은 교회의 어느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밤에 꿈을 꾸셨는데,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우리 주님이 팔을 벌리고 처참하게 피흘리시면서 십자가를 지신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새벽에 깼는데 식은 땀이 쫙 흐르고 도저히 잠을 잘을 잘 수가 없어서 교회당에 달려가서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찬양)
손과 발 날 위해 못 박혔네. 왜 날 사랑하나. 죄 용서 받을 수 없었는데 왜 날 사랑하나...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는 바로 그 예수님의 십가가 사랑 때문이었는데, 벌써 은퇴는 다가오는데 ‘정말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따라 목회를 하고 있는가’ 생각하면서 새벽에 기도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이제 은퇴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기회가 항상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일정한 시간만 정해지는 데, 주님 앞에 충성스럽게 산 날들만 우리 주님께 기억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참된 증인이시라’고 했습니다. 증인 중에는 위증자가 있습니다. 거짓으로 증언을 해서 돈을 받고 죄인을 이롭게 해 주거나 올바른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허위 증언을 하는 사람입니다. 법은 이런 사람들을 처벌합니다. 우리가 참된 증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탐구해야 합니다. 열 명이든 다섯 명이 모이는 시골 노인들의 영혼이나, 사도 바울의 영혼이나, 성인들의 영혼이나, 유명한 목회자의 영혼이나 똑같은 영혼입니다. 그 영혼 자체에는 무게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의 참된 양식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각각 목회자들은 자기의 수준에서라도 ‘어찌하든지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양떼들에게 먹여야 되겠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분투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저보고 그럽니다. “시골교회에서 목회를 하면 설교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 말귀 못 알아듣는 노인네들뿐이다.” 그러니까 도시에서 똑똑한 사람들 놓고 설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화) 시골에 가서 전도해 보면, 하나님 믿는 도리에 대해서 아무리 신학적으로 설명을 해도 시골노인네들은 말귀가 어두워서 무슨 소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집 사람하고 터득해 낸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 믿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셔야 됩니다.” 하면 “평생 혼자 살았는데 무슨 이 나이에 말귀를 못 알아 듣는데 예수를 믿느냐”고. 그러면 저희 집 사람이 “할머니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그러면 “그래 들어봐라” 그러십니다. “할머니 자식 있지요? 그 자식이 성공해서 돈 벌어 오겠다고 서울로 갔답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답니다. 그런데 이제 지가 먹고 살만하니까 엄마 아빠도 몰라보고, 나는 조상의 뿌리 같은 것 없다하고 자식 낳아서 돼지처럼 지들끼리 먹고 살면 그게 인간이겠습니까?” “사람도 아니지.” “그런데 그 아들이 언젠가 철이 들어서 시골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 찾아와서, “그동안 불효막심했습니다. 정신없이 돈 벌어 먹고 사느라고 어머님 아버님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눈물을 흘리고 돌아오면 할머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너무 기쁘지, 인간이라면 마땅히 그래야지.” “예수 믿는 것도 바로 그렇게 당연히 하나님께로, 당연히 돌아가야 할 아버지께로 철이 들어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이 바로 사람들 철들게 만드는 겁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니 너무 잘 이해하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말 귀 어두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설교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혹은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예화가 무엇인지 잘 생각하고 연습을 해서 그림처럼 설명을 해 주어야 합니다. 시골노인네들 모였는데 원고라고 써가지고 히브리어, 헬라어 이야기나 하면서 읽고 있으면 당연히 다 자는 것입니다. 똑바로 쳐다보면서, 대화하듯이 찬찬히 이야기를 해 주면서, 말씀이 그 사람들 속에 스며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그것도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그것이 참 종의 모습입니다. 제가 오늘도 한 말씀이 그것입니다. “시골에는 젊은이도 없고...” 젊은이가 그렇게 그리우면 시골이 아니라 신촌에 와서 개척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시골에 있는 친구 목사님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길래 제가 그랬습니다. “당신은 시골 목회의 꿈을 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도시목회의 꿈 품은 적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쩌다 보니까 나를 여기다 두시고 당신은 거기다 두셨는데, 당신은 거기서 우리 교회 청년 많다고 부러워하면 뭐 하겠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 그렇게 청년이 그리우면 신촌에 가서 개척을 하지 왜 시골에서 개척을 했느냐, 지금이라도 누가 말리겠느냐, 기도하고 가면 누가 말리겠느냐, 없는 젊은이를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
노인네 밖에 없으면 그저 노인네 데리고 충성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말귀 어두워도 노인들 알아듣기 쉽게 설교를 해서 하나님 사랑하게 하고, 그러다가 돌아가시면 염해서 천국 보내면 그것이 사명인 것입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든지 간에 거짓된 말씀을 들으면서 행복을 얻는 교인이 나온다면 그것은 목회자의 끔찍한 배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탐구하고, 더 많은 말씀을 깨달아서, 사람들에게 아주 쉽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언젠가 우리 직원들을 데리고 수련회를 갔습니다. 저의 어릴 적 고향이었는데, 직원수련회니까 새벽기도까지는 안 하지만 아침 채플 시간에 목사님이 어렸을 때 다니던 교회의 새벽기도 한 번 가보자고 하면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목사님이 나와서 설교를 하는데 신학을 공부한 사람인 저도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20분 설교를 하는 데 어쩌면 한 번도 우리를 쳐다보지를 않습니다. 원고라도 써 가지고 왔느냐 하면 원고도 안 써가지고 왔으면서 땅에 뭐가 떨어졌는지 땅만 쳐다보고 중얼중얼,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딱 하나 “열린교회에서 새벽기도회 헌금을 이렇게 했습니다. 할렐루야.” 나와서 직원들이 다 이야기합니다. “목사님, 저 목사님 뭐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 수가 많지 않으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 우리 땀나게 기도해야 삽니다. 예수님도 울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멘.” 이렇게만 해도 은혜 받을 사람은 받지 않겠습니까? 중얼중얼 염불하는 것도 아니고, 코앞에 앉아 있는데도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이들도 그러니 노인네들이 거기 앉아서 무슨 소리를 알아듣겠습니까? 이것은 충성된 증인도 아니고, 참된 증인의 모습도 아닙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애를 쓰는 주의 종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창하게 설교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설교의 결과로 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설교하는 과정을 통해서 상을 받는 것입니다. 자기 수준에서 최선을 다 하십시오. 주석도 펼치고, 남의 설교도 듣고, 좋은 것을 뽑고, 그래서 성도들에게 잘 가르쳐야 하겠다는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하십시오. 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짧은 시간이라도 힘있고 간절하게 마치 그 사람들의 영혼이 내 영혼인 것처럼 기도하고 말씀을 전할 때, 그 사람이 바로 충성되고 참된 증인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별명을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아멘은 원래 히브리말인데 ‘진실로’, ‘반드시’, ‘확실히’, ‘꼭 그렇게 되어지이다’ 그런 뜻입니다. “아멘이시오”, 그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모든 것을 순종하며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전하시는 말씀이 위력이 있고 힘 있는 말씀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 많이 하는 목회자는 기도 설교할 때 제일 신납니다. 그리고 기도 안하는 교인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전도 열렬히 하는 목사는 전도 설교할 때 힘이 납니다. 그렇게 전도 안 해서 어떻게 살겠느냐고 교인을 야단을 칩니다. 담대하게 우리 모두 복음 전하다가 죽자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사심 없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친 목회자는 담대합니다. 비굴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주님의 교회를 위해 모두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든 힘 있는 설교는 아멘의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 아멘의 삶에서 담대하게 설교하고 목회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한 방면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방면에서 아멘을 해야 합니다. 헌신이면 헌신, 기도면 기도, 전도면 전도, 선교면 선교, 성결한 삶이면 성결한 삶, 모든 것에서 목회자가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아멘의 삶을 살고자 몸부림을 칠 때 거기에서 큰 힘과 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목회의 자양분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눈물로 기도하면 기도하지 않는 성도들이 안타깝게 느껴지고 담대하게 기도하도록 책망하고 설교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면 또 전도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창조의 근본이신 분”이셨기 때문에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고 강력하게 요청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처럼 충성스러운 삶을 사셔서 이 땅에서는 크고 유명한 교회가 아니지만 하나님께는 정말 인정받고 사랑받는 교회, 아름다운 교회,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소중한 목회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