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회수련회 아침설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 1:24)
녹취자 : 김미현
언젠가도 이 본문을 설교한 기억이 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하시는 고난은 두 가지로 나뉘어집니다. 이미 이루신 고난과 이루어 가시는 고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미 이루신 고난은 우리하고는 상관이 없는 고난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기도할 때에 주님의 십자가 우리도 지고 가게 해달라고 하는데 사실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는 주님만이 지실 수 있는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체의 우리의 공로가 없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이루신 속죄사역을 토대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전적으로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 이루시지 못한 고난도 있습니다. 그 다 이루시지 못한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를 이루시기 위한 고난은 당신 홀로 당하셨지만, 이제 자기의 고난을 남겨두셨습니다. 남겨두셨다고 하는 것은 구원에 필요한 고난 중에서 예수님이 다 못 이룬게 있어서 남겨두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구원받은 우리들이 온전한 주님의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고난을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그래서 모든 교회를 당신에게 접붙여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게 하셨는데 그 교회를 당신의 머리에 접붙이신 다음에 교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이루어진 교회이지만 이루어진 교회가 온전한 교회가 되어가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많은 헌신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헌신과 고난은 성례전적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올려 져서 넓은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메섹 가는 길에서 바울을 만났을 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셨습니다. 사실은 성경에는 사울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야기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사실은 예수님 자신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고난을 남겨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모두 똑같은 성숙함이나 정결함, 거룩함, 하나님께 영광, 똑같은 정도로 드러내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많이 참예하고 그 남은 고난을 견디면서 나가는 교회는 더 온전해 지고 거룩해 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정 반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우리들이 성도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올바른 길로 성도를 인도하고 충성스럽게 교회를 위한 사명을 감당해 나가다가 보면 그렇게 하나님 앞에 감당해 나가면서 살다가 보면 그러면 항상 은혜로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사역을 그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진리를 거스르고 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지만 진리로 살면 만사가 형통하다고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왜 그렇게 고난을 받으면서 죽어갔겠습니까?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성경이 이야기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하려고 하면서 고난을 당하면 이것은 예수의 남은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사역 속에는 항상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어느 정도의 어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끓임 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매달리는 그러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교회 건축의 문제도 놓고 아직 결심은 못했습니다만 확실한 사실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일의 결정은 하나님에게 달려있지만 우리가 기준 그 자체가 어느 길이 편한 길이냐 그것이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정말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는가 그리고 정말 이 시점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추호도 우리의 욕심이나 야망에 의해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의해서 움직이고 결정이 되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들이 가야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니까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실은 거짓말 같은 고백 아닙니까? 이 세상에 하찮은 짐승이라도 자기를 괴롭게 하면 그것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 동물입니다. 하물며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괴롭게 할 때 그것을 기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도 바울이 그런 고백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고통을 당하는 자기중심에서 생각하면 괴로운 것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보면 그리스도의 교회가 온전하게 이루어져가는 그것을 보면서 하나님 앞에 기뻐하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고 원하시는 것이 아니겠느냐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습니다. 이제 한번 생각해보면 우리 장로님 세분 안수집사 되고 장로 되고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두 번째 오신 분들은 첫 번째 온 장로님들만큼 고생하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은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두 번째 오신 분들은 기본적인 터를 닦아놓은 다음에 오시기는 했지만 그러나 여러분 알다시피 그 7년 동안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 7년 동안에 교육관 구입하고 갚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교회의 대소사가 구조보강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일이 인터콥인지 무엇인지 그것 때문에 교회를 흔들어 놓아서 고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어려움들이 사실은 겹쳤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아주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 고난이 바로 우리의 육체에 채워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사랑하며 사는 길이고 예수님 믿으면서 사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우리들이 이 부르심을 감당하면서 주님 앞에 살아야 하겠다.’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사를 아십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님이 우리 같은 사람들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지 그리고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사를 되게 하셨는지, 장로가 되게 하셨는지 생각하면 견디기에 너무 큰 고난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베풀어 주신 그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하시면서..
한 번 365일을 7로 곱해보면 얼마가 나옵니까? 2500일 정도 나옵니다. 모눈종이에다 그려 놓으면 50줄 50칸 가로 50칸 세로 50칸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거 한 줄 씩 그으면서 하루씩 살면 이제 여러분들의 임기가 끝나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벌써 어떤 분들은 거의 다 왔고 어떤 분들은 절반 쯤 왔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번 딱 하고 두 번 다시는 이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쓰시겠다고 하시는 이 시간들이 정말 촌음을 아껴 써도 모자랄 정도로 소중한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아직 경험 못해보셨지만 아마 현직에서 물러나시면 굉장히 홀가분하면서도 쓸쓸할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정말 충성스럽게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저도 벌써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오늘이라고 일컫는 이 날 동안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삶을 매일 매일 살아가자 그리고 주님을 위해 헌신해야 하겠다 그 얘기입니다. 결국은 주님 앞에 갔을 때에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누렸던 지위나 혹은 안락한 생활을 주님 앞에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없을 것이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았던 그 시간들만이 하나님 앞에 고귀하고 소중할 텐데 그래서 온 마음을 다해서 그렇게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다가 가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같이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