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수련회 아침설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25-34)
녹취자: 김명진
모든 염려는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사실 애착이 없으면 염려도 없습니다. 저는 성격적으로 살아온 삶의 배경이 그래서 그런지 안타까워하고 안달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뭐가 잘 안되면 며칠 씩 잠을 못자고 괴로워하는 그런 성격이었는데, 지금도 그런 것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부분적으로는 성화되어서 그렇고 또 부분적으로는 나이가 들어서 체념하는 게 생겨서 그런지 모릅니다. 언제부터인가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한가?’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한 번은 공항에 갔는데 영국에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개찰한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승객들 틈에 줄을 서서 타려고 하는데 여권도 없고 비행기 표도 없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숨이 멎을 듯하고 땀이 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못가면 그만이지 뭐’ 그러면서 터덜터덜 걸으면서 ‘도대체 여권이 어디에 있을까?’하고 가보니까 면세점에 무언가 사러 갔었는데 그 곳에 가보니까 계산대 위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태연하게 들고 방송을 하든지 말든지 천천히 걸어서 맨 마지막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그러면서 느껴지는 것은 ‘내가 왜 이렇게 성격이 변했을까? 안달볶달 했을텐데, 못가면 말지 뭐 못 간다는데 뭐 어떻게 하겠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염려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 깨달은 것은 ‘결국 염려는 집착에서 생겨나는구나. 그렇게 접고 나면 그 다음에 염려될게 없구나.’
2002년도인 11년 전에 교회를 막 지을 때였습니다. 돈이 하나도 없어서 계약금을 꾸어서 낼 정도였습니다. 교회를 짓는데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계속 돈이 없다고 보고가 들어 왔습니다. “인건비를 줘야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물건 값을 줘야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괴로워서 잠이 안 왔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해서 여기에 왔는데 설마 끝까지 못하게 하시고 여기에서 파산하게 하실까?’ 당시 안수 집사님들이 큰일 났다고 하셔서 제가 ‘기도해보면 어디에서 나올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오면 5천만 원이 생기고 그러고 나오면 1억이 생기고 나중에는 너무 돈이 없어서 제가 목사인데도 2 억 원을 꾸어서 교회에 채워 넣었습니다. 하나님께 한 순간에 맡기고 나니까 ‘이 일이 내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하고 생각하니까 근심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근심에는 두 가지 있는데 거룩함에 이르는 근심이 있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파괴하는 근심이 있습니다. 자기집착에서 오는 염려는 대부분 후자입니다. 경건함에서 오는 염려는 전자입니다. 그래서 염려할수록 하나님을 간절히 찾게 되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염려가 있고 염려할수록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는 여유를 잃어버리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정한 목표가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는 짝입니다. 의는 하나님의 나라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6장 33절 전체를 통치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답게 실제로 실행되는 미래의 완성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도록 우리를 불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산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신학을 많이 공부하지 않아도 은혜를 많이 받고 자기가 진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놀랍게도 자기의 기도가 주기도문에서 말하는 것과 똑같아 집니다. 저는 그것을 젊은 나이에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이런 신학적 깊이가 없을 때에도 그것을 아주 분명하게 체험적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생활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를 구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고 우리는 그렇게 살 때에만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 우리의 소명을 가로막는 가장 큰 것은 염려와 근심입니다. 염려와 근심은 어디에서 생겨나느냐 하면 ‘무엇을 먹고 입고 마실 것인가’ 그것뿐만 아니라 인생에서 우리의 안전과 행복에 대한 염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은 모든 근심과 걱정의 원인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너희는 하늘의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재물은 미래를 위한 준비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물질에 집착하게 만들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물질을 향한 사랑,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가게 됩니다.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가 실질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깊이 의존하고 그 안에서 행복하고 만족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중요한 일을 책임을 맡아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전심으로 그 일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얽매인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얽매인 것이 없는 상황, 염려와 근심이 없고 그것을 하나님께 모두 맡기고, 그래서 오늘 내가 신앙을 따라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지켜주시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믿음, 그런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염려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인 깊이 있는 의존의 마음이 없는데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기도의 은혜가 충만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뭔가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게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교회사역을 하면서도 우리는 진공 속에서 사역하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사역을 잘 하려고 해도 가정에 어려움이 있고 주위에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흔들리게 됩니다. 그럴 때에 쓰러지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을 더 많이 의지하라고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는구나.’ 그런 마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