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메시지
녹취자 : 김세나
저는 교사 하면서 경험했던 목회하면서 경험했던 간증을 여러분들에게 했으면 합니다. 사실 이제 제가 21살에 회심을 하고 그리고 22살. 21살에 회심을 하고 그 다음에 22살, 22살인가 22살 되던 해부터 교사를 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신학교 가서도 2년 동안 교사 하다가 그리고 이제 전도사가 되었는데 참 신기한 게 그 주님을 깊이 만나고 변화를 받으니까 교회에서 다른 것으로 봉사하는 것으로는 속이 채워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 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은혜를 조금 받으면 여러 가지 할 게 많지만 은혜를 아주 받으면 할 게 한 가지 밖에 없어요. 그게 뭐냐 하면 전도하고 그 영혼을 위해서 일하는 것. 이게 아주 극단화 되었을 때 그게 이제 말하자면 소명으로 나타나는 거예요. 그래서 목회를 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회심을 하고 나서 그 이듬해에 교사를 하기는 시작했지만 그러나 좋은 교사였던 것 같지는 않아요. 그 때는 정말 회심은 했지만 회심한 지 얼마 안 돼서 은혜의 지배 아래에서 멀어진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그저 열심히 나와서 하기는 했지만 이중적인 생활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 영혼의 깊은 변화가 찾아온 것이 이제 25살 경이었어요. 직장 다닐 때였는데 그 때 주님을 만나고 깊이 영혼의 변화를 받았어요. 그 변화를 받은 계기가 사실은 그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변화를 받았어요. 교회가 조그마니까 장년교인이 100명 정도 모이고 주일학교가 80명 정도 모이던 교회였는데 전도사님을 교회에서 채용을 못했어요. 전도사님 한 분이 계시긴 했는데 중고등부 하기에 바빴고, 그리고 이제 청년부는 거의 모이지 않았고 그리고 이제 주일학교가 있었는데 학교 안 다니는 애들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전부다 다 묶어서 80명 정도 됐는데 저한테 그것을 맡겨 주셨어요. 24살 때 집사가 되어서 그래서 이제 부장 집사가 되어서 하는데, 전도사 없는 가운데 부장 집사니까 거기에서 뭐 설교도 하고 다 해야 했어요. 그러다가 25살 때 어떤 계기가 있었냐 하면 여름성경학교를 처음 해야 하는 거예요. 사실 전도사님들이 다 차려 놓으면 가 가지고 애들 데리고 전도도 나가보고 가르쳐 본 적은 있지만, 그 아이들을 전체를 놓고 성경학교를 한 그것은 생전 처음이었어요. 참 이상한 게 똑같은 사람인데도 전도사라고 하면 말을 듣는데 집사라고 하니까 말을 안 들어요. 그래가지고 선생님들이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선생님들 가운데 절반도 회심을 못 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어쨌든 그것이 맡겨지고 나서 하나님이 제 마음을 움직이셨는지 그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할 마음을 주셨어요. 그리고 어디에서 그러한 마음이 생겨났는지 그 성경학교 할 날이 다가오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아무리 생각해도 내 힘으로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렇게 높은 영적인 차원이 아니라 당장 교사를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교사가 최소한 8명이 되어야 하잖아요. 미취학부 1명과 1, 2, 3, 4, 5, 6학년 한 학년에 한 사람씩 맡고 그 다음에 그 서기 선생님 하나. 그게 최소한의 인원이잖아요. 그런데 5명도 채 안 돼요, 여름성경학교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그러니까 이제 전도사님이 있었는데 뒤에 와서 거들어주는 스타일이지 뭐 발 벗고 나서는 스타일도 아니고 지금 같았으면 집사님들 한테라도 사정을 했을 텐데 그럴 마음이 이상하게 왠지 잘 몰랐고 기도를 하기 시작한 거예요. 금식기도를 하자. 그게 제 생애의 금식기도 몇 번째 안 돼는 금식기도였어요. 그래서 금식기도를 했었어요. 25살 때인데. 직장을 다니는데 뭐 금식기도를 한다고 결근할 수가 있어요. 보따리 싸들고 직장을 다니면서 일주일을 금식을 했어요. 그래서 집에는 안 가고 교회에서 잤어요. 그리고 이제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기운이 하나도 없으니까 물이나 한 모금 먹다가 자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새벽기도하고 또 출근하고, 출근하고 돌아오면 기도하다가 교회에서 자고 이러면서 이제 일주일을 기도를 했어요. 기도를 하면서 이제 그때서야 저녁때 기운이 하나도 없는데 또 교사 강습회를 해야지만 뭐라도 가르칠 것 아니에요. 그래서 교사들을 모아놓고 전에 그 전달에 이제 노회 가서 배운 것을 가지고 이제 교사들에게 가르쳐 주는데 말도 지겹게 안 들어요. 하여튼 생각하기도 싫어요, 지금은. 그러더니 마지막에 그래도 하나님이 감동을 주셨는지 7명이서 주일학교 성경학교를 하겠노라고 교사인 사람과 교사 아닌 사람 모두 합해서 7명이서 성경학교를 시작한 거예요.
일주일을 금식을 하면서 얻은 중요한 수확이 뭐였냐 하면 금요일날, 금요일날에 교회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오랫동안 내 마음을 괴롭혔던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 확실히 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항상 내 마음속에 너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부르심이 있었거든요. 그 때마다 떨쳐버리고 나는 그냥 열심히 신앙생활해서 좋은 장로가 되어서 그래서 교회를 돕겠다고 생각했는데, 누가 장로 시켜 준다고 하는 사람도 없지만. 그런데 이제 그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이 세상에 흩어진 수많은 영혼들이 마음에 떠오르는 거예요. 그 중에서도 특별히 어린 아이들. 그래서 얼마나 울면서 기도했는지 몰라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나 자신을 내려놓고 주님께 그랬어요. 나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쓰시겠다면 제가 목회자가 되겠습니다. 그 때에는 뭐 너무 기쁘고 그래서 된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항복을 한 거죠. 하여튼 되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항복을 하고 그리고 이제 포기를 한 거예요. 내 인생에 대해서 모든 것을 접고 결혼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목회를 해야 되는데 무슨 결혼을 하냐. 누구를 데려다가 죽어라 고생을 시키려고 그래서 서울도 말고 그저 시골에 내려가서 어촌이나 농촌에 가서 그냥 열 댓 명 정도 모이는 교인들에게 열심히 함께 일하면서 복음 전하다가 독신으로 살다가 죽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 다음에 장가갈 줄은 아무도 몰랐죠. 그리고 이제 기도를 하고 그 때는 하나님 앞에 뭐라고 기도했냐 하면 난 그냥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 필요 없고 어린이 전도를 위해서 내가 일생을 하나님 앞에 살아도 나는 참 좋겠습니다. 그것을 이제 기도를 한 거예요. 그리고 이제 기도가 끝나니까 금식기도가 끝나니까 토요일이고 토요일날 풀었어요. 뭘 좀 먹어야지만 주일 새벽서부터 성경학교이니까 할 것 아니에요. 사실은 여러분 일주일 금식기도라는 게 남이 했다고 하면 아이고 참 잘 했네, 그렇지만 본인이 해 봐. 그게 그렇게 남의 말처럼 쉽지 않아요. 그 때 제가 뭐 그 키 174cm에 허리 26, 27. 몸무게 56kg 이었는데 거기에다가 일주일을 금식했으니 어떻게 되었겠어요. 완전히 바람을 불면 날라갈 정도가 되었죠. 그런데 그리고 있었는데 그리고 이제 기도를 했으니까 나 나름대로는 자부심이라기보다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실 것이다라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이제 열심히 준비를 했어요.
그 날이 그 주간이 아이들이 방학하고 나서 모두 성경학교를 오픈하는 주간이에요. 동네에 교회가 대게 많았어요. 애들도 많았지만 대게 많았어요. 그렇게 기도를 새벽기도를, 그렇게까지 기도를 하고 이제 주일날 새벽서부터 이제 그 성경학교 프로그램을 짰거든요. 그렇게 해야지만 주일날 전도도 시키고 막 이렇게 하면서 3박4일인가, 4박5일인가 했는데 그렇게 이제 나가는데 주일날 아침이 되었는데 청 떼같이 비가 쏟아 지는 거예요. 그런데 막 너무 침체가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나님이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그 새털같은 날은 내버려두고 성경학교 시작하는 날 그렇게 비가 오나. 그리고 이제 교회에 갔는데 아무도 안 왔어요. 8시쯤 갔는데 아무도 안 왔어요. 그래서 뭐 몇 애들이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들고 왔어요. 내가 들고 오라고 했거든요. 아침에 동네 골목 청소 한다고. 그런데 비가 주룩주룩 오는데 우비를 입고 빗자루 하나씩 들고 그 다음에 삽 하나씩 그리고 오는 거예요. 쇠로 만든 삽 있잖아요. 질질 끌고 교회당으로 오는데 설교하려고 섰는데, 그래도 주일이면 한 80명, 70-80명 정도 모였었는데 한 20명이 모인 거예요. 눈물이 막 쏟아지는 거예요. 그래도 그 때는 뭐 신학이 있었겠어요. 뭐가 있었겠어요. 제대로 교육도 못 받았는데, 그래도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가 그 최초의 부흥회 설교였어요. 말하자면, 새벽에 그 설교를 하면서 울었어요. 그게 설교를 하면서 운 첫 번째 사건이었어요. 절반은 복음 때문에 울고 절반은 그 비가 와서 이 성경학교에 비가 쏟아지는데 누가 오나. 교회가 또 슬레트를 친 교회였거든요. 그러니까 비가 오는 소리가 너무 잘 들리는 거예요. 후다다다다닥 그런 소리가 너무 잘 들리는 거예요. 그런데 그리고 나서 그 다음에 아침서부터 4일 동안 드라마가 펼쳐지는데 정말 생애적인 경험이었어요. 뭐냐 하면 넓이가 교인이 120명 정도 앉으면 꽉 차게 될 예배당이었기 때문에 이것보다 더 작았죠. 이렇게 되어 있고 저쪽 문은 탁 열면 현관이고 아무것도 없고 문 열면 그냥 길거리에요. 길거리인데 골목이에요. 골목. 너비가 한 4m정도 되는 골목이에요. 4m, 5m정도 되는 골목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여름에 얼마나 더웠겠어요. 7월 하순인데 쨍쨍 내리쬐는데 슬레트라는 것 아시죠? 그게 그게 열 받으면 그게 완전히 철판이 되거든, 그게 뜨거운데 내리 누르니까 에어컨은 그 당시에 없었고, 선풍기를 6개를 계속 돌리는데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주위에서는 시끄럽다고 문은 닫으라고 하고, 창문 닫아 놓고 이 선풍기를 돌리니까 뜨거운 바람이 계속 도는 거예요. 그런데다가 애들이 율동도 하고 하니까 땀이 막 나고 선생님도 땀 범벅이 되는 거죠. 참 하나님은 놀라운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는냐 하면요. 애들이 딱 모여. 그러면 비가 막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설교해. 찬양해. 그러니까 싹 식혀 주는 거예요. 찬 공기가 위에서부터 싹 식은 공기가 내려와요. 딱 끝나고 전도나갈 시간이 되면 햇빛이 쨍하고 나는 거예요. 이것을 4일동안 정확하게 시간별로 이런 역사가 계속 되는 거예요. 애들이 전도 나가는 거예요. 애들이 꽹과리 들고 북치면서 전도 했거든요. 그런데 주위에 있는 교회들은 우리교회보다 큰 교회들도 많았고 신학생들도 많았고, 목사님들도 있고 그런데 아이들이 몰려 오는데 80명이 모여서 예배드리던 예배당이 340명이 온 거예요. 나중에 어떻게 했냐 하면 나무 의자를 전부다 들어서 바깥으로 놨어요. 그리고 왜냐하면 그것을 놓고는 300명이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리고 그냥 시멘트 바닥에다가 신문지 깔고 장판을 깔고 애들을 앉혔는데도 340명이 안 들어가서 할 수 없이 교회 문을 활짝 열어놓고 골목에다가 사람들을 못 다니게 하고 거기에다가 비닐을 깔고 아이들이 저 교회 열린 문으로 선생님 율동하고 설교를 듣게 했어요. 340명이, 한 반에 50명씩 모인 거예요. 그러니까 뭐 뭐 하여튼 어마어마했지요. 꽉 찬 거예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뭐냐 하면 아직 안수도 안 받았고 신학교도 안 간 사람이 설교를 하고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데 아이들이 은혜를 받는 거예요. 그런데 더 거짓말 같은 것은 뭐냐 하면 그 집사의 설교를 듣고 아이들이 회심을 하는 거예요. 그 때에 내가 목회에서 모든 기초가 되는 것들을 거의 다 배웠어요. 그렇게 해가지고 아이들이 거기에서 그러니까 목사님이 나를 부르더니 10만원을 주는 거야. 더 이상은 절대 없으니까 얘기하지 마라. 10만원을 주면서 이것 가지고 3박4일 동안 아이들 간식해주고 그 다음에 뭐 도화지도 사고, 뭐도 사고, 뭐도 사고 그러는데 벌써 이야기 하는 동안에 10만원이 훨씬 넘었는데 10만원 한 장 딱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 목사님이 딱 와서 보시고 충격을 받으신 거예요. 충격을 받으시고 그 다음에는 이제 집사들한테 전화를 해 가지고 교사들 점심 제대로 해주라고 명령을 내린 거예요. 그 때는 가난한 시절이니까. 그래서 어쨌든 그게 성경학교을 했어요. 아이들이 뭐 막 이렇게 50명이 모이고, 저기에서 50명이 모이니까 아이들이 뭐 요러고 듣는 애들이에요? 막 떠들죠. 조용히 시키면서 여기서 소리 지르면 저 선생님은 더 크게 소리 지르고 저 선생님은 더 소리 지르고 나중에 이틀 하고 나니까 목들이 다 쉰 거예요.
그 다음에 더 큰 역사는 마지막 날 밤에 일어났어요. 마지막 날 밤은 어떻게 했냐 하면 이제 미취학 아동들은 오지 말라고 했고, 1학년 이상 되는 아이들만 베게와 이불을 가지고 교회에 오라고 그랬어요. 애들은 뭔가 안 하던 것을 하면 신이 나는 거야. 교회에서 잔다니까 교회에서 기도하라고 오면 교회 자러 간다고 그것 가지고 오니 애들이 얼마나 신났겠어요. 여름에 모기향을 들고 싸들고 막 교회에 가면 쭈쭈바도 준다고 하니까 신난다고. 와가지고 베게를 던지고 장난을 치고 난리가 난 거예요. 그렇게 놓고 아이들을 위에서 불을 끄고 조그만 등을 켜놓고 찬송을 부르는 거예요. 그렇게 한 다음에 한 학년씩 지하 기도실로 내려오라고 했어요. 지하실로 내려와 들어오는 거였어요. 여기에서 찬송을 부르는데 하나님이 영적으로 충만하게 아이들을 어루만지시는 거예요. 걔네들이 그러한 것을 어디에서 배웠겠어요. 찬양을 부르면서 눈물을 막 흘리는 거예요. 성령의 역사는 항상 형태는 약간 달라도 복음의 본질로 우리를 데려가는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이제 아래는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한 학년씩 들어와요. 얘네들은 맨 처음에는 뭔지도 모르고 까불고 들어와요. 내려와 보면 조용히 앉아서 십자가 찬송을 부르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성령님이 함께해요. 기도실이 지하실 창문이 없는 지하 기도실이었어요. 한번 들어오면 나갈 때도 없어요. 문 쾅 닫으면 캄캄한 불 하나 켜놓고 이게 저기 비닐 장판 깔아놓고 거기에서 예수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실 때 고난을 당하셨네. 찬송을 쭉 부르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기도를 시작하는데 거기에 들어왔다 나간 아이들은 90%이상 회심한 거예요. 거기에서 자기의 죄를 정확하게 회개하고 그리고 바깥에 있는 애들은 까불고 막 손 흔들고 내려갔는데 애들이 눈물 범벅이 되어서 올라가니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그 다음에 이제 또 내려오는 거예요. 그리고 이것을, 그 다음에 올라간 아이들은 올라가서 찬송 부르면서 거기에서 기도하고, 한반씩 한반씩 내려오는 거예요. 이것을 밤 늦게까지 계속 한 거죠. 동네 사람들한테 욕도 엄청 먹었어요. 그리고 이제 내려와서 그리고 이제 기도를 하는데 그 저기 어디야. 교사 리바이벌인가 목양에 빠져라, 목양의 감격에 빠져라. 거기에다가 썼어요. 아이들이 막 그렇게 해가지고 아이들을 데리고 기도를 했는데 그게 한 8시부터 시작을 해서 12시 정도 되어서 아이들이 끝났는데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서 눈물과 콧물이 이렇게 밟으면 물에 빠진 것처럼 질퍽질퍽 한 것이 교사도 나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런닝을 벗어서 짜면 이렇게 땀이 이렇게 한컵씩 나올 정도로 흠뻑 땀을 뒤집어 쓴 거예요. 그렇게 혼신을 다해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나서 저녁때 그때도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는 그 때 목회사역을 본격적으로 안 했지만, 그런 감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그 그렇게 놓고 12시쯤 끝난 다음에 전부다 재웠어요. 눕혀놓고 그 다음에 이제 선생님 보고 부채를 하나씩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 간식을 먼저 먹이고 그 다음에 이제 눕혀서 그 다음에 부채질을 해주면서 재우는 거예요. 선생님이 부채질 하면서 옛날 이야기 해주는 거예요. 성경 동화라고 하잖아요.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발언이지만 어쨌든 그 때는 그런 것 없었으니까 해주는 거예요. 부채질 하면서. 졸지 마시고. 이렇게 부채질을 해 주면서 그러면서 이제 옛날 이야기를 들려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하나씩 준비해서 들려주는 거예요. 어떤 선생님은 황당하게 갑자기 뜬금 없이 무슨 그 어린이 동화집에서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 성경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 그런데 그래도 애들이 은혜를 받는 거예요. 마음의 불이 붙으니까 뭘 해도 은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채를 부치면서 애들에게 쭉. 그러니 생각해 봐요. 걔네들이 교회에 간다고 밥도 설치고 와가지고 네 시간을, 다섯 시간 가까이 찬송을 부르고 울고 불고 진을 다 뺐으니까 그래서 자두 하나씩, 옥수수 하나씩 줘서 먹여서 재우니까 애들이 얼마나 고단하겠어요. 뭐 코를 골면서 골아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다 재우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모두 모여서 이제 땀에 범벅이 되었죠. 바깥에 나가서 둘러 앉아 수박 하나씩 먹고 거기에서 다시 기도하는 거예요. 아이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그렇게 기도를 하면 쭉 그게 나의 첫 번째 진정한 의미의 교사 체험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짧은 순간 시간이었는데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얼마나 놀랍게 변했는지를 경험했어요. 아이들이 그렇게 성경학교에서 은혜를 받고 나니까 그 다음에는 주일날 성경공부를 시키는데 제가 5, 6학년을 제가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이 가난한 동네여서 그런지 입에다가 욕을 달고 사는 애들이 있었어요. 하루 아침에 변해요. 정말 놀랍게 변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사실 누가 교육학적으로 생각한다고 하면, 그 4학년 5학년 밖에 안 되는 애들이 걔네들이 공부를 성경공부를 주일날 오후에 3시간을 가르치는데, 아까 우리 학부모님 간증에서처럼 애들이 너무 재미있어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이제 계속해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거예요. 매일 성경 읽기를 하자. 그래서 매일 성경 읽기를 하게 하는 거예요. 그때 뭐 성경 읽기 표 이런 것 안하고, 기드온 성경책 교회마다 많이 있었거든요. 하나씩 나눠 주면서 읽는 부분은 모두 줄을 긋는 거다. 그리고 이제 읽어요. 그 아이들이 일주일에 120장씩 읽어요. 그 때는 그리고나서 아이들에게 미쳤죠. 애인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그러니까 애들하고 그냥 사귀는 거지. 그래가지고 출근할 때 교회에 가. 그리고 애들을 전부다 모아. 그래놓고 성경 읽은 것 다 조사하고 그 다음에 거기에서 다시 성경 읽어주고 하나씩 하나씩 안수 기도해주고 그리고 그 다음에 얘네들을 데리고 학교를 가는 거예요. 그래서 학교에다가 애들을 집어넣어놓고 나는 이제 성북역에서 전철을 타고 직장으로 출근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내가 퇴근하고 나면 애들은 교회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나는 애인도 없으니까 애들이 와요. 그리고 이제 와서 철철히 크리스마스 앞두면 칸타타 준비, 그래서 제가 칸타타를 그 전부다 저기 그 합창 지도를 해 가지고 완전히 죽도 못 쓰는 아이들을 한달 동안 새벽, 밤 훈련 시켜가지고 칸타타 끝난 다음에 장년들을 벌떡 일으켜 세웠어요. 그런 정도로 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막 은혜를 받는 거죠. 그렇게 하면서 이제 그러니까 월급도 많지 않았지만 돈이 있어도 애인이 있어요, 뭐가 있어요. 애들하고 가서 자장면 사주고 애들 너무 좋아하는 거죠. 자장면이라고 하면 사죽을 못 쓸 때 니까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하는 거예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뭐냐 하면 아까도 영상 이렇게 나오는데 눈물이 너무 나요. 왜냐하면 나에게는 저런 시절이 없었어요. 나에게는 내가 그 때에 그 나이에 회심을 했더라면, 초등부 아이일 때. 아니면 중학교 때라도 아니면 고등학교 때라도 회심을 했다면, 아니 나는 회심을 못 했더라도 우리 엄마, 아빠가 그 때 회심했더라면 내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거다. 생각을 하는 거죠.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뭐냐 하면 이 세상은 무지무지하게 변했어요.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이 변할 거예요. 여러분 앞으로 20년 후에는 지금은 상상하지 못하는 세상이 될 거예요. 그런데 확실히 알 수 있는 게 하나가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그 때에는 지금보다도 영혼들이 더 절실하게 그리스도를 필요를 할 것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그 때가 되면 정말 곤고한 영혼들이 그 너무 너무 고통스러워 할 것이고 그 때 주님을 못 만나는 것은 오늘날 주님을 못 만나는 것과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질 거예요. 그 우리들이 확신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뭐냐 하면 우리의 땀과 눈물이 헛되지 않다는 거예요. 절대로 헛되지 않아요.
그 때 가르쳤던 아이한테 2년 전에 이메일을 받았어요. 이제 뭐 두 아이인가,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있는데 40대 중반이네. 참 세월이 흘렀지요. 그렇게 와서 이제 세월이. 그런데 확실한 것은 하나는 절대로 그 수고가 헛되지 않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아이들이 지금도 편지를 썼어요. 그게 걔가 5학년 때 나를 만났거든요. 마흔 다섯쯤 되었으니까 5학년 때 만났으니까, 지금 마흔이 넘었다면, 아마 마흔 다섯이나 여섯쯤 되었겠죠. 그 때 5학년 때 이면 12살 때잖아요. 그러면 거의 삼십 몇 년 전 아니에요. 칠십 육년도 이 때 일이니까. 그런데 뭐라고 썼냐 하면 살아가면서 그 때 걔는 뭐 목사도 아니고 교수도 아니고 김 선생님었어요. 그 때 김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그 말씀이 자기의 인생을 지금까지 붙들고 있다는 거예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게 76년도에 3천원이면 굉장히 큰 돈이었어요. 76년도, 78년도 쯤 되었구나. 굉장히 큰 돈이었어요. 어느 정도 화폐 가치라고 여러분들에게 해야 될련지 모르겠는데 전철 요금이 100원 정도 밖에 안 되던 시절이었어요. 굉장히 큰 돈이었어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준 돈을 모아가지고 3천원을 성탄 감사헌금을 하더라고요. 두 아이가, 지금으로 따지면 아마 30만원은 되는 액수의 돈이에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35년이 흘렀는데 지금 내가 만나고 싶어요. 35년이 흘렀는데 이름도 기억이 나요. 그것을 꽉 그 말씀을 아직까지도 붙들고 있는 거예요.
나는 여기 아이들 보면서 눈물이 났어요. 왜냐하면 나에게는 저런 때가 없었어요. 주일학교 다녔지만 기어 다닐 때부터 주일학교 다녀서 중학교 2학년 때까지 뭐 간간히 나갔다 안 나갔다 했지만, 적을 두어서 한 선생님도 나에게 회심했냐고 물어봐주는 선생님이 없었어요. 심방온 선생님도 없었어요. 단연코 이야기 해요. 심방온 선생님도 없었어요. 어떻게 회심할 수 있겠어요. 이제 지금 여러분들이 영혼을 위해서 하는 이 사역은 저 아이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황제들이 힘을 합해도 줄 수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주는 거예요. 엄마, 아빠도 줄 수 없는 것을 아이들에게 주는 거예요. 너무 너무 놀라운 거예요. 누가 주일학교 아이들이 내년에 선생님에게 바라는게 뭐냐 그랬더니, 성경 많이 가르쳐 주세요라고 이야기 하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있겠어요. 정말 회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단 맛을 느끼고 나니까 정말 빨아들이듯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거예요. 그러면서 신앙생활을 할 마음이 생겨나는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신학교 다니기도 전이었고 한데도 목회의 본질을 훨씬 그래도 가까이 다가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눈물이 있고, 주일날 이제 오후예배가 끝나고 나면 아이들을 심방하러 다녀요. 그러면 뭐 엄마가 불교신자라서 교회 못 가게 한다는 아이, 별의 별 아이들을 다 만나요. 돌아오는 길에는 눈물이 계속 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영혼들을 위해서 섬긴다고 하는 이것은 정말 너무 너무 놀라운 사건이에요. 그래서 그 아이들이 35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어도 아직까지도 그 때인 청년인 내가 가르치던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수시로 자기를 붙들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우리는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그래서 영혼들에게 계속 자극을 주고 깨우는 구나. 그래서 기왕 교사를 하기로 한 것, 정말 좋은 교사가 되라. 선한 교사가 되라. 주님의 은혜가 넘치면 할 수 있는 일이 이 일 하나 밖에 없는 거예요. 영혼의 영혼의 그 참 행복을 위해서 직접적으로 헌신하는 일, 그 일 밖에는 할 것이 없는 거예요. 우리는 가르치고나서 잊어버려요. 그런데 그 가르침을 받고 성령의 은혜로 믿음이 자란 아이들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이 동기가 되어서 믿음생활을 해 나가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성장하고 신앙으로 자라고, 하게 되는 이런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귀하고 놀라운 일인지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공과를 가르치는 때 뿐만이 아니라 기도를 할 때, 그리고 특별히 전도할 때 특별히 심방을 할 때,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서 영혼을 향한 사랑이 가슴 속에 넘쳐나야 해요. 교사 리바이벌이란 책속에 보면 교사가 심방 할 때라는 단원이 있어요. 그게 저의 체험이에요. 정말 그 때에는 제가 이미 신학을 마쳤고 그리고 교수가 되어 있을 때였지만, 하나님이 심방을 하는 가운데 그렇게 은혜를 주셨어요. 그래서 심방할 때 그렇게 은혜를 주셨어요. 교회가 커지면서 심방을 많이 못하는데 그리워요. 그 심방이 정말 목회에요. 주일이면 제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월요일날은 학교에 가서 그 공부를, 그 때 박사과정에 있었으니까 공부를 해야했고 화요일부터는 눈코뜰새 없이 학교 강의를 해요. 한주일에 20시간, 24시간을 강의했어요. 한주일에. 그러니까 화, 수, 목, 금요일까지는 정신이 없어요. 토요일 하루는 수업이 없어요. 그 때 이제 설교 준비도 하고 그 다음에 이제 가족들과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하는 거예요. 졸지 마세요. 신경 쓰이니까요.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정신없이 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토요일날은 심방할 수 없는 게 설교를 준비를 토요일 꼬박 앉아서 설교 준비를 했어요. 그래서 설교 준비를 하고 그 다음에 이제 주일날 아침에 새벽예배하고 아침예배 다 끝나고 나면 오후 2시면 일정이 모두 끝나요. 그 교회는 오후 예배가 없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에 4시에 교역자 회의가 시작이 되는데 담임 목사님께 미리 말씀을 드려요. 목사님, 제가 요새 아이들이 너무 교회를 안 나와서 제가 심방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목사님이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괜찮으니까 나중에 필요한 것 있으면 전화로 보고하고 가서 아이들 돌아보라고. 그리고 이제 심방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한 두시부터 시작을 해서 세 시, 네 시, 다섯 시, 여섯 시, 일곱 시, 여덟 시, 아홉 시까지 심방을 하는 거예요. 많이 할 때는 열 다섯 명까지 심방을 할 수 있어요. 그 대신 선생님들이 협조를 잘 해야지. 그래서 여기 마친 다음에는 어느 선생님이 거기 기다리고 있다가 차에 타가지고 어디 가서 걔하고 만나고 만나고 만나고 이렇게, 나는 운전만 하고 심방만 하는 거예요. 스케줄은 선생님들이 다 짜가지고 움직이는 거예요. 끝나고 일 끝나면 선생님 가고, 그 다음 선생님 오고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끝까지 따라다니든지 이렇게 하는 거예요.
그 어떤 때에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심방이 있는데 여 선생님이 있었어요. 좀 적극적이어야 해요, 선생님들이. 야, 걔 교회 왜 안 나오냐. 찾아가자. 찾아갔어요. 계세요. 누구세요? 그리고 소리가 났는데 그 녀석 소리야. 저 교회에서 왔는데요. 그러니까 그 다음부터 아무 대답이 없는 거예요. 벨을 막 눌러도 소리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정도면 사실 물러나잖아요. 그런데 여 선생님이 내가 너 목소리 들었거든. 너 문 안 열어? 너 문 안 열으면 넘어간다. 난 농담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 이렇게 블록으로 쌓은 담장인데 야 너 빨리 문 열어, 좋은 말 할 때. 너 혼자 있지? 가만히 있는 거예요. 아 이 선생님이 전도사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야 담을 넘어갔어요. 그래서 문고리를 열려고 하는데 문고리를 붇들고 있는 거예요, 얘가. 그러니까 탁 해서 야 이리로 와. 그 자식이 미안하니까 전도사님 오셨어 임마. 그러니까 이제 전도사까지 왔다고 하니까 깜짝 놀란 거예요. 그런데 이제 문을 열고 나와요. 그리고 이제 심방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방에 들어가요. 방에 들어갈 수가 있나. 들어오라고 해야지 들어가지. 바깥에서 서서 때는 11월 추운 겨울이에요. 그러면서 심방을 해요. 거기에서 뭐 물어볼 것이 뭐가 있겠어요. 너는 왜 교회 못 나왔니, 물어보는 거죠. 그러면 물어보나 마나지 가기 싫어서 안 갔는데. 그러면 이제 짧은 시간에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이야기를 쭉 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그러면 이제 마음이 가난해 지죠. 그래서 이제 이해를 많이 해줘야 해요. 왜 교회 안 나왔니? 어쨌는데요. 거짓말이지? 형사처럼 그러면 안 돼요. 속아 넘어가 줘야 해요. 그랬구나. 그래 못 나올 수도 있었겠다. 넘어가 주는 거예요.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요. 그리고 이제 기도를 해요. 기도를 하면 그 뭐 지금도 기억이 나는데 보안등 있잖아요. 바가지에 양철 바가지에 바람이 불어가지고 흔들흔들 해요. 그러다 보니까 시간이 꽤 지났잖아요. 밤이 컴컴하잖아요. 거기에서 이제 선생님하고 그 아이하고 나하고 셋이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 때는 뭐 기도도 많이 할 때 였으니까 영혼에 대한 사랑을 안고 찾아 갔으니까 손을 딱 잡고 기도하면 영적으로 뭐가 전해졌어요. 그래가지고 그 돌맹이 같은 놈이 하여튼 거기에서 길거리에서 우는 거예요. 눈물을 흘리면서. 걔네들도 그래도 신앙을 가진 아이들인데 교회 안 나오고 놀러갔을 때는 신경이 얼마나 괴로우면 그랬겠어요. 그리고나서 마음이 편했겠어요. 그러면서 이제 거기에서 같이 끌어안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고 그 다음 집에 가고, 그 다음 집에 가고, 그런데 어떤 때가 제일 어려웠냐 하면 이제 심방을 거의 다 했는데 얘가 없어, 안 와. 그러면 이제 문에다가 메모를 적은 적도 있지만 아니면 무조건 기다리는 거예요. 거기에서. 그러면 이제 한 두 시간 쯤 기다리면 하나님이 보내주셔요. 저쪽에서 이제 집에서 교회 간다고 나와서 까불고 놀다가 저녁 때 되어서 어슬렁 어슬렁 걸어와요. 깜짝 놀라죠. 그래서 공원 같은 곳에 앉혀 놓고 이야기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 막 이야기를 해요. 위로도 하고 야단도 치고 그래요. 그리고 마지막에 세상에 누가 거기에서 두 시간씩 아무리 여름이지만 그렇게 기다려 주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거기에서 선생님하고 기다리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거예요. 그리고 간절히 기도를 했어요. 아이가 거기에서 눈물을 흘려요. 다 끝나고 나올 때 쯤 되면 선생님이 쓴 편지 하나하고 그 다음에 귤 하나하고, 그것도 큰 것. 그런 것 인상 깊은 것을 하나씩 주고 그리고 오는 거예요. 그래서 두 시부터 샅샅이 누비면서 밤 11시까지 심방하면 정확히 그 다음주면 15명이 더 출석을 하는 거예요. 안 나오면 못 배기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가가서 그 영혼들에게 진심을 쏟아 부으면 그것은 언어가 없으면 들리는 소리가 없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정신이 그 아이의 마음의 어디엔가 떨어지는 거예요. 자극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심방을 떠날 때는 차에 선생님들이 타면 절대 잡담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그 맨처음에 내버려 두니까 타고 가는데 막 오만 가지 이야기를 해요. 딱 내립시다 하면 벌써 다 왔어요? 그러니 심방할 마음이 있겠어요? 그리고 못 하게 해요. 그다음엔 만나고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거예요. 그리고 들려 주는 거예요. 그렇게 간절히 영혼에 대한 눈물을 안고 그리고 사역을 하니까 아이들이 변해요. 어떤 아이는 그렇게 기도회를 하는데 안 울어요. 딴 애들은 막 울고 회개를 하는데, 그런데 드디어 이 아이가 울어요. 이상하게 회심한 것 같지는 않아요. 너 왜 울었냐 하니까 선생님이 우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울었대요. 가까이 다가가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물론 여기에는 결혼하시고 섬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직 아이도 없고 애인도 없다면 정말 다행이죠. 제가 그 다음 해에 우리 집사람을 만나서 사랑에 빠졌거든요. 그랬더니 애들이 가장 커다란 말하자면 상실감을 느꼈어요. 말하자면, 우리 선생님이 변했대요. 그런데 정말 아이들을 위해서 무엇보다도 사랑을 갖으라, 마음 속에. 뜨거운 사랑. 그게 모든 답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청산유수같이 30분 설교해주는 것보다 예수님이 우리를 참 사랑하셨어요. 그리고 흐르는 한 줄기의 눈물이 아이들에게 예수님이 정말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가르쳐주기에 더욱더 놀라운 교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지금 좋은 이야기들만 틀어줬잖아요. 그런데 사실 여러분들의 반 목회 사역을 이렇게 돌아보면 건강하게 은혜를 받으면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영혼들이 있지만 아무리 다뤄도, 아니면 다뤄볼 엄두도 못 내고 처져있는 영혼들 있어요. 그게 오래되면 여러분들 자신의 마음이 그 아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가 두려워 지는 거예요. 그러한 아이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된 아이들을 사랑을 가지고 다가가서 그 아이들을 변화시켜야 해요. 두려운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사랑이 모자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죠.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나니. 정말 사랑하면 두려움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가 주는 거예요. 그러면서 충심으로 사랑의 마음을 품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거예요. 매일 그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의무에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요. 우리 부모, 식구들을 위해서도 기도 못 하는데 그냥 그것도 하고 그것도 하면 제일 좋죠. 그렇지만 혈육보다도 더 뜨겁게 자기가 돌보고 있는 영혼들이 가슴에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혈육관계가 육체의 혈육관계보다도 훨씬더 능가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니에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매달려야 해요. 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야 해요.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할 때 요만한 종이에다가 빨간 색지, 노란 색지, 파란 색지, 하얀 색지도 있었나, 세 가지인가 네 가지에 이름을 적었어요. 빨간 색지에 적인 아이들은 위급한 애들이에요. 하얀 색지는 전도 대상자. 노란 색지는 미끌미끌한 애들, 그 다음에 파란 색지는 상태가 아주 썩 괜찮은 아이들, 넣고 다니면서 전철 타고 다니면서 하나씩 보면서 기도하는 거예요. 간절히. 남들은 뭐 일간스포츠난 광고까지 눈을 부릅뜨고 보지만 그것 보면서 이제 기도하고 보면서 기도하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은 정확해요. 좀 배우지 못했어도 지식이 모자라도 가르칠 도구들이 좀 부족해도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용하셨어요. 그래서 자기의 자녀들을 일깨우시고, 자기의 자녀들을 돌보게 하셔요. 그래서 정말 마음을 다해서 목회를 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섬김에 큰 축복을 헤아려 주셔요.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놀라운 것이 어디에 있겠어요. 그렇게 해서 영혼들이 어려서부터 주님의 말씀을 먹고 그리고 이 속에서 자라가면서 세상이 너무 악해져가고 변해도 그래도 주님 만나면서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거예요. 그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이만큼 보람 있는 일이 없는 거예요.
지금 아이들이 얼마나 무섭게 변해가고 거의 그 말하자면 비바람에 쓸려가듯이 넘어지는 이 때에 교회가 유일한 희망이에요. 그리고 나면 여기 선생님들 많이 모였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청소년 문제 가지고 고민을 하는데 다른 고민 하나도 없어요. 학교 교육 어쩌고 저쩌고. 돈을 수없이 줘도 점심 다 챙겨 먹이고 그래도 해결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나는 여러분들 중에 아직 직업을 확고하게 선택하지 못하신 분들에게 교사가 되라고 권하고 싶어요. 실력이 없어도 소명을 받으면 돼요. 받아서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임용고시 봐서 교사가 되요. 그 교사가 되는 그 순간 뭐 돈 많이 벌고 그럴 생각하지 말고 나는 여기 선교사로 왔다. 그렇게 해가지고 가서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교회에서 영혼들을 사랑하고 찾아 해매는 것처럼 그렇게 아이들을 끌어안고 가르치면 존경받지 않을 선생님들이 없고요. 그리고 아이들을 보고 물어보면 채벌 어쩌고 저쩌고 그러잖아요. 자기가 자기를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한테는 맞는 것도 행복하대. 자기가 이렇게 정말 상상하기 싫을 정도로 혐오하는 선생님은 머리를 칭찬하면서 쓰다 듬어도 거머리가 기어가는 것 같대. 그거예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 속에 내려가서 나는 그것 밖에 없어요. 나는 기회 닿으면 청년1부 수련회 간다고 하는데 나는 가서 다른 직업 하지 말고 선생님이 되어라. 그게 그렇게 쉽습니까 그러는데 공부를 해야지, 당연히. 아이고 당연히 공부를 해야지. 아무리 인품이 좋고 그래도 실력이 없으면 학생들 절대 따르지 않아요. 공부해야지 무슨 소리야. 그리고 그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하니님 이 학교 가서 순교하겠다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 지혜가 없으면 지혜 주시겠지요. 해가지고 가서 정 안 되면 학교 앞에 문방구라도 해요. 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지. 문방구라도 해야지. 학용품이라도 싸게 주면서 전도해요. 아니면 뭐 함바집 주인을 하던지, 구내 식당 주인을 하던지. 어쨌든 학교로 접근을 해야 해요. 정말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애들이요. 무지무지하게 거칠잖아요. 그게 심리적으로 보면 사랑받고 싶다는 싸인이에요. 그래서 막 그런 거친 아이들, 교인들 중에도 보면 거친 교인들 있잖아요. 그런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만나서 막 깨뜨려 지잖아요. 그러면 정말 뜨겁게 사랑해요. 목회자 존경하고 안 변하고 그래서 뜨겁게 주님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부부가 같이 하면 최고지. 부부가 같이 하면 최고죠. 부부가 같이 결혼을 해서 교사를 하고 가서 안 되면 뭐 자매가 가서 선생하고 형제는 문방구 가게 하고. 아니면 그것도 안 되면 같이 떡볶이 가게 하면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고. 떡이 꼬치에 오뎅이 꼬치에 꼬인 것처럼 너도 주님께 꿰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 이게 그러면서 온 마음을 다해서 이 세상이 주는 것들을 가지고 우리도 그것을 줘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이 세상은 절대로 못 주는 것, 아이들을 황금 카페트에서 교육을 받게 해도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게 있어요. 돈이 있으면 다 해요. 무료 급식, 돈이 있으면 왜 못하겠어요. 다른 선진국에서 한 다며. 더 할수도 있고 아이들은 뭐 리무진으로 모셔올 수도 있겠죠. 돈만 많으면. 그런데 그런 것을 줘도 절대로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것. 그게 뭐냐 하면 영혼에 대한 사랑. 나의 영혼을 위해서 나의 어린 시절에 울어 주는 사람이 있다. 제가 7년 동안 섬기던 교회를 떠날 때 그 마지막에 학생들이 나한테 편지를 써서 이렇게 보냈어요. 나는 떠나면 거기 잘 안 가는 성격이거든요. 아주 차갑게 딱 끊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애들이 뭐라 그랬냐 하면 저는 전도사님은 만나서 회심하고 구원 받았습니다. 전도사님은 저희들의 영혼이 곤고할 때 함께 울어 주셨습니다. 선생님, 전도사님, 우리 이 세상에서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예루살렘에서 만나요. 아이들이 특히 4,5,6학년 고등부까지 청소년일 때의 신앙은 그냥 확하고 꽂혀서 한쪽으로 아이들이 쏠리는 시대에요. 계산이 없어요. 그래서 교회 역사를 보면 역사를 움직였던 위대한 인물들이 모두 10대에 주님을 만났어요. 10대에. 조나단 에드워즈는 10대 후반이었잖아요. 그죠. 찰스 스펄전은 16살 때였어요. 13살, 14살, 12살, 조지 휫필드 목사님이 15살 때 주님을 만나죠. 이렇게 10대 때 주님을 만나고 인생을 확고하게 정하는 거예요.
제가 교회에서 청소년 사역할 때 지겹게 말 안 듣던 놈이 있었어요. 나도 이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설교를 회심하든지 멸망하든지 둘 중에 하나 하라. 진짜로 그렇게 했어요. 그 설교를 짧으면 90분, 길면 180분을 매주 설교를 했으니 애들이 얼마나 지겨웠겠어요. 뭐라 그랬냐 하면 전도사님을 골목에서 빨간 벽돌로 머리를 찍어버리려고 그랬대요. 그렇게 말 안 듣고 개기던 녀석들이 있었는데 인턴십을 왔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애에요. 걔야. 걔가 내가 있던 그 자리에서 전도사를 하고 있대요. 그래서 애들 괜찮냐. 그러니까 아 말도 마요. 네가 그 때 뿌린 씨를 지금 거두는 거야. 너도 너 같은 놈 때문에 고생을 좀 해봐라. 목사 되었죠. 그 고등부에서 목사 사모 대게 많이 나왔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를 확 쓸고 지나가면 반드시 거기에는 복음을 전하는 그 일에 미친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온 마음을 다해서 복음을 전하세요. 스펄전을 기억하지만, 스펄전을 회심시켰던 시골교회 목사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여러분들은 기억되지 못해도 그렇게 은혜 받고 변화 받은 아이들이 나아가서 정말 변화될 거예요. 여러분 조금만 더 참읍시다. 목회하다가 힘들 때마다 우리 집사람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여보, 조금만 더 참아. 갑자기 눈이 동그래지면서 뭐 좋은 일 있어? 있지. 뭔데? 조금 있으면 죽어. 그 때까지 참으면 돼. 그렇게 하면서 주님과 함께 살면서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눈을 감으면 그렇게 어린 아이들을 함께 뒹굴면서 복음을 전하던 시간들이 생각이 나요. 그리고 그 때 정말 행복했고 인생에 있어서 그토록 간직하고 싶은 스틸사진 같은 시간이 있다면 그런 순간들 밖에는 남은 것이 없어요. 저는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지만 여러분들은 이미 내가 못 가는 그 시절에 와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 여러분들이 온 마음을 다해서 열심히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 말씀 전하고 영혼을 위한 눈물이 여러분들의 뺨에서 마르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아멘.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