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씀에 사로잡힘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행 18:5)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 해설
어제는 목회자로서 살아가는 가장 괄목할만한 덕목이 ‘참음’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참음은 결국 사랑에서 나오고 사랑은 은혜에서 나온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그렇게 오래 참으면서 목회자의 길을 가려면 주님의 손에 붙잡혀 살아야 하는데, 주님의 손에 붙잡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이 장면은 사도바울이 아데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고린도에 왔을 때 일입니다. 그때 로마에는 커다란 명령이 내려서 유대인들이 더 이상 로마에 있을 수 없게 되었고, 브리스와 아굴라라고 하는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고린도에 와서 우연히 사도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같이 살다가 복음 사역에 같이 협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마게도냐로부터 실라와 디모데도 내려왔습니다. 이 직전에 아데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아데네에서 그는 스토아 학파 학자들을 비롯한 많은 철학자들과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다른 곳에서의 사역에 비하면 열매가 그렇게 괄목할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많은 한계를 느끼고 고린도로 온 것 같습니다. 그곳에 왔을 때 자신의 심정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 “심히 두렵고 떨렸노라.”고 하였습니다. 아데네에서 적은 결과 밖에 나오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렸습니다. 처음 복음을 전하는 사람처럼 고린도에 들어왔고, 그때 결심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및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아니 전하기로 작정하였노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에 대해 깊이 감동을 받으면서 철학적인 논변을 통하여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매진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고린도로 오게 됩니다. 고린도로 오자마자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의 상태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하였습니다.
II. 말씀에 붙잡힘
‘붙잡힌다.’는 말씀의 뜻은 우리가 객관적인 대상으로 있고, 그리고 누군가가 우리를 꽉 사로잡아서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붙잡혀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꽉 붙들려서 하나님의 말씀이 원하는 대로 사용되고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서 주님 앞에 있는 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A. 하나님의 말씀: 사랑을 유지하는 길
그러면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들이 결국 목회를 하면서 수많은 어려운 일들을 만나고,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니까 때로는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때로는 사역에는 문제가 없는데 가정적인 일로 힘들어 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역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들이 와서 시련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때로는 핍박도 당합니다. 그러한 속에서 깊이 고통을 당할 때 그때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들이 그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하고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그러한 사랑을 계속해서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도 신자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인간의 본성이 좋아서 주님을 사랑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이 우리 안에 끊임없이 역사할 때에만 그 사랑의 힘으로 우리들이 주님이 소중한 분이라는 것, 주님이 내게 맡겨 주시는 사명이 높은 가치를 가진다는 것,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 동의하면서 우리들이 끊임없이 고난을 당하면서도 그 길을 걸어갈 수가 있는데, 결국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게 결국 어떠한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끝없는 은혜가 주어져서 아침마다 새로운 사랑을 주셔서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그것을 이기면서 살아가게 만드는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사도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라고 하였습니다. 언제나 말씀을 대하지만, 그냥 말씀을 일상적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의 지성과 의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꽉 붙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당신 자신의 뜻을 사도바울을 통해서 이루어가는, 그 사로잡힌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절대로 자만하지 말고 ‘나는 워낙 주님을 깊이 만났고 사명감 뛰어나고 목회사역을 잘한다고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잘 견딜 것이다.’라는 생각하지 말고 주님이 끊임없이 나로 하여금 그것을 견딜 수 없는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 않으면 오래 참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B. 말씀의 체험
기본적으로 이러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공부를 하고 꾸준히 성경을 많이 연구하면 설교단에 올라갔을 때 엉뚱한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들을 내용이 있는 설교를 할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말씀을 들을 때 사람들이 뭔가 깊은 감동을 받게 하고 가슴을 밀고 들어오는 커다란 힘은 그러한 지식의 나부랭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그 말씀에 사로잡힌 바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흔들리는 우리의 삶에 정말 강력한 중심축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목회도 일이니까 일을 하면 일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많이 하다보면 처음에 할 때보다는 좀 더 잘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학습이 매우 늦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우 빠른 사람도 있고, 또한 마음과 정신 자체가 모든 것들을 잘 조합하고 수립할 수 있는 지혜로운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만, 결국 하면 합니다. 잘 하지는 못하겠지만 하면 하게 되어 있고 발전을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강력하게 사로잡히는 그러한 은혜는 매우 특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면서 주님 앞에 각오하고 그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 잡혀서 그 주님의 말씀 때문에 감화와 은혜를 받고, 그것 때문에 고난을 이기고 역경을 이기고 주님을 사랑하게 되어서 오래 참고 그러한 비밀스러운 일들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바울로 하여금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전파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한절 보겠습니다. 구약성경 에스겔서 1장을 보십시오. 1절과 2절을 제가 읽고 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에스겔 1장 2-3절 말씀)”
본문은 에스겔이 소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위에는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모습’은 ‘이상’입니다. ‘마라흐’()이라는 히브리단어인데 현실도 아니고 환상도 아닌, 현실과 환상 사이에 있는 것으로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즐겨 보여주셨던 비전(vision)입니다. 그것이 보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히 임하고 권능이 있고, 이 세 가지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던 에스겔의 체험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깊이 우리의 마음속에 임해서 내가 여태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생각들을 사로잡아 새롭게 구축하고 또한 하나님 이외에 사랑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게 만드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가를 보게 만들어주는 말씀의 강력한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들이 매일 매일 일어나면 좋겠지만, 매일 매일은 안 되어도 때때로 그렇게 말씀이 나를 확 사로잡아서 그래서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모두 털어버리고 그래서 자신의 삶의 동기를 순화하고 그리고 정결해지고 그래서 살든지 죽든지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길을 걸어가겠다고 하는 그 무엇이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나야 하는데, 이것은 말씀과 함께 생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이끌어 가실 때, 당신이 교회에 직접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목회자에게 은혜를 주셔서 설교를 하게 하시고 교회의 방향을 잡아 가십니다. 그런데 그렇게 교회를 이끄는 목회자가 하나님이 자신의 공동체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사로잡힐 수가 없다면 굉장한 불행한 것입니다. 지도자에게 맡겨주시는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기도하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서, 탐구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 교회 전체에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이 무엇인가, 그리고 내가 맡은 부서에 하나님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무엇인가를 구해야 합니다. 참으로 성령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일관적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교회를 움직이실 때 우리는 마치 한 배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일사불란하게 제시하면 모든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배의 상황을 모두 공유하고 그리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며, 때로는 전투를 하고 때로는 큰 파도를 넘고, 때로는 평화롭게 항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한 속에서 모든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꼭 붙들려서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 잡혀서 그렇게 매일 매일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목회자 자신이 말씀에 깊은 감동을 받고 그래서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다짐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이 나에게 세워주신 자리에서 충성하겠다고 다짐하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의 과정을 거쳐서 그 속에서 끊임없이 주님을 위해서 참고, 견뎌야 할 이유가 주님 때문임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말씀에 붙잡힌 뜨거운 사랑 때문에 우리들이 사역에 조금 어려움이 와도 그것을 녹여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불길이 아주 약할 때에는 불에 잘 타지 않는 물건이 들어가면 불을 꺼뜨리지만 불이 워낙 치열하게 타오르면 무엇이 들어오든지 다 태워 버리면서 오히려 불길이 더욱 치열하게 만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작으면 아주 조그마한 어려움들은 참지만 약간만 어려우면 가던 길을 포기하게 되고 사랑이 워낙 뜨거우면 모든 것을 참으면서도 이겨나갈 수 있게 됩니다.
III. 결론과 적용
지금까지 목회자의 자질 두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오래 참아야 합니다. 두 번째는 말씀에 사로 잡혀야 합니다. 한 설교자가 설교단에 올라가면 나는 5분 정도 들으면, 조금 더 양보해서 10분 정도 들으면 그냥 어디에서 주워듣고 와서 하는 것인지, 들은 것을 밑에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설교하기 직전에 어디서 한편 읽고 온 것인지, 분별이 안 가겠습니까? 말씀에 깊이 사로잡혔던 사람 속에는 아주 뚜렷한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가 뭐냐 하면 열정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는 그리스도라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의 특징이 열정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그 말씀이 자기화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데도 다른 것을 전하는 것으로 느껴지지 않고 자기가 살고 있던 삶, 자기가 고민하고 있는 이야기, 자기 마음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화들처럼 친밀성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게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특성입니다. 그리고 말씀에 깊이 사로잡힐 때 수사를 줄입니다. 자기가 체험을 못하였을 경우에는 웬만한 서술에 만족을 하지만, 자신이 정말 깊이 감동을 받고 나면 사람들의 이 언어가 불충분하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것이 수사가 됩니다. 기술로서의 수사가 아니라 자신 속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그게 말씀에 사로잡힌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한 해의 후반기를 들어가면서 오래 참으며, 참을 수 있도록 주님의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받는 사람이 되고,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사로잡힌 사람들이 되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