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충성스러움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계 3:14)
녹취자 : 김세나
I. 본문 해설
오늘은 목회자의 덕목 중에서 ‘충성스러움’을 말하려고 합니다.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서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라고 말합니다. 시간이 부족하여 모두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오늘 예수님에 대해서 말할 때, “아멘이요 충성된 증인이요.”라고 말합니다.
‘아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시대 때에 모세가 율법을 낭독하고 나면 ‘아멘! 아멘!’이라고 화답한 그 아멘입니다. ‘확실히 그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는 종교적인 공감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바로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아멘이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는 주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오신 생애였고 그래서 주님이 불순종하거나 어리석은 제자들에게 종종 하신 말씀이 “그렇게 하면 성경에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응하리요?”라고 하시면서 주님의 뜻을 이루어가셨습니다.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것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였습니다. 요한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찌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줄 수 있겠습니까?” 말하니까,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니라.”라고 하며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아무튼 예수님의 생애는 ‘아멘’의 생애였습니다.
목회자가 가지고 있는 많은 덕목 중 어떠한 덕목도 아멘을 능가하지는 못합니다. 사람마다 능력이 다르고 지식의 수준이나 인격이 다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십니다.
II. 충성됨
오늘 말씀 드리려고 하는 것은 그것보다도 그 뒤에 나오는 ‘충성’입니다. 그러면 우선 충성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충성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인격적인 특징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행동 하나를 보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작용 하나만을 본 것도 아니고 인격을 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격이 팔랑거리는 사람은 말도 팔랑팔랑 합니다. 인격과 성품이 거친 사람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거칩니다. 거칠다, 따뜻하다고 하는 모든 인격과 성품에 관한 말도 결국 직관적으로 그 사람을 들여다보고 아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는 그 모든 과정을 통해서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충성도 결국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살아간 삶의 많은 모습을 보고 인격이 어떠한 것인가 하는 것을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충성이 무엇인가 하였을 때, 충성은 인격적인 열매인데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분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을 삶의 최고의 가치를 두고 살아가는 인격과 삶의 총체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첫날 살펴보았던 오래 참음도 결국 주님 사랑 때문에 오래 참는 것이고, 충성된 것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충성된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결국 사랑에 매달리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행정을 잘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연구를 잘 할 수도 있듯이 사람마다 약점과 강점이 다르겠지만 그것을 움직이는 중심에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다 똑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러한 선택할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충성된 마음입니다. 충성스러운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세와 대조를 이루는데, 하나님이 당신의 구원역사를 펼쳐 가실 때 쓰셨던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공통적으로 충성스러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에 대해서 말하기를 “여호와의 온 집에 충성하였음이라.” 모세의 충성스러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리스도의 교회와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시는 모습의 그림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이름은 “아멘이요 충성”이었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은 살아계시니 정말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충성에 관하여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덥든지 차든지”라는 이야기 나옵니다. 문화적인 배경이 있는데 로마 시대의 로마는 대단한 나라였습니다. 주전 2세기 즈음에도 이미 도시에서는 수도관을 이용하여 물을 받아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석관을 사용하였습니다. 돌맹이를 파서 기다란 대롱 모양을 만들어서 파고 위를 덮어 그 사이에 물을 흐르게 하여 지저분한 것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그것을 연결하여 공동 수도로 가면 공동 수도에서 그것을 가지고 물을 길어가고 하면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위생적인 것은 참 좋았는데 여름에 햇볕이 내리쬐면 돌맹이가 따뜻하게 달궈집니다. 물이 따뜻하게 나옵니다. 그러면 돌 관이 연결되면서 공동수도에서 물이 나와 그 물이 따뜻하기 때문에 마실 수가 없고 그것을 그늘에서 식혀서 마시거나 끓여서 마셨다고 합니다. 그러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물을 마시던 경험을 가지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물이 너희들에게도 먹기에 힘들 듯이 나를 향하여 충성스럽지 않은 사람들도 나에게 힘들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왜 사람들이 열정이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하나의 자연적인, 본성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부분은 그러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주님께 충성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게으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게으름은 정욕입니다. 정욕. 게으른 것은 다른 어떤 죄보다도 자유로워지지 힘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돈을 훔치든지, 사람을 죽이든지 나쁜 짓을 하였으면 그 죄가 또렷하고 양심을 찌르기 때문에 회개를 하게 되는데, 게으름은 끊임없이 우리 안에 있으면서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율법의 그물에 걸러지기가 힘든 죄입니다. 그래서 나태함과 게으름은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결코 충성스러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충성과 게으름은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부지런히 우리 인생의 한 번 밖에 없는 너무 짧은 인생의 날들은 하나님 앞에 정말 충성스럽게 살아도 그 시간이 얼마 안 됩니다. 온 교인들을 이끌고 지붕에 벽돌을 올리던 때가 엊그제 된 것 같은데, 정확하게 15년이 지났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의 날이 그렇게 짧습니다.
그래서 정말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들이 충성스러운 삶을 삽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앞에서 아멘의 삶을 살고 충성스러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주님을 만납니다. 모세는 처음에 사도바울처럼 성격이 아주 과격하고 열렬한 사람이었지만, 광야의 수많은 고난을 당하면서 온유한 사람이 되어 갔습니다. 모세가 충성스러우니까 하나님이 당신의 놀라운 친밀함들을 보여주십니다. 사람들은 싫어하는 사람이 있고 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당신의 충성스러운 사람 편입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은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불평과 불만을 너무 가슴에 많이 두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충성스럽게 섬겨야 합니다. 그 속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좋은 목회자로 다듬어져야 갑니다. 그리고 고난 없이는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시련과 많은 어려움과 싸우면서 그 속에서 그 사람이 과연 충성된 사람인가, 충성된 사람이 아닌가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만일 사업을 한다고 하면 중요한 일을 누구에게 맡기겠습니까? 물론 유능한 사람을 찾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능하기는 하지만, 전깃줄에 앉은 참새 같아서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사람에게 사업의 비밀을 모두 알려주고 제일 중요한 일을 그 사람에게 맡기겠습니까? 사람이 너무 아까우면 두고 볼 것입니다.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당신의 교회에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족하지만 그 사람들에게 일을 맡기셔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여러분들도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깊이 충성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한번만 그 한계를 이겨내면 그 다음에 그 한계가 올 때에는 쉽습니다. 그래서 한번 저는 종종 일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게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냉면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새벽까지 땀을 흘리는 사람들, 그리고 바닷가에 나가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 추위와 함께 밤새도록 사투를 하면서 고기를 잡는, 온갖 위험에 자신을 노출한 사람들, 이러한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이 그러한 사람들에 비해서 정말 충성스러운 태도로 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것을 우리들이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매달리며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교회에서 충성스럽다고 인정받은 사람이 그 다음 교회에서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인정을 받을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사람을 따라다니는 인격이기 때문에 한번 그렇게 깊이 인정받은 사람은 어딜 가든지 그렇게 충성스럽게 삽니다. 그래서 팔랑팔랑 거리면서 자기 자신의 필요를 따라서 힘들고 쉬운 것을 따라서 가볍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세워주신 자리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나님 앞에 충성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들을 당신의 사람으로 훈련시키는 과정입니다.
III. 적용과 결론
우리들은 은혜를 많이 받으면 어려운 일도 쉽게 하고 능력을 충만하게 받으면 힘든 일도 가볍게 하리라고 생각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한없이 받았던 많은 주의 종들이 모두 고난을 길을 갔고 고난을 길을 갔기 때문에 그들이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것을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많은 주의 일꾼들이 있지만 충성스러운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 사람들을 불러서 당신의 비밀스러운 일을 보이시고 능력이 없으면 능력을 주시고 사람들이 부족하면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그러한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되어서 주님 앞에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