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며 씨 뿌리는 성실함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6)
저는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아니지만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교육을 받을 때 밥을 한 톨도 밥그릇에 남기지 말도록 그렇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게 지금도 이제 습관이 붙어서 아이들이 밥을 흘리고 먹는걸 보면 자꾸 참견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볍씨가 쌀이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기까지 여든 여덟 번의 손이 가야지 그게 쌀이 되어서 우리에게 돌아온다고 합니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을 때 볍씨를 고르는 일부터 시작을 해서 이제 농부들은 한해 농사를 시작합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결실 그 자체를 하나의 재수나 운, 횡재 이렇게 생각하지만,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들은 언제나 땀 흘려 수고하고 노력한 대가를 받은 것을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법입니다.
오늘 여기서 울며 씨를 뿌리러 나아가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고 말할 때 여기서 우는 이유는 단지 너무 기쁘고 감격에 벅차서 그래서 흘리는 눈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고통의 눈물입니다. 그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무엇인가 열매를 거둘 때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된다 이런 말씀인 것입니다. 시인이 이 126편을 써내려 갈 때 바벨론 포로로부터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감격적인 광경을 보면서 이제 회상하면서 이 시를 쓴 것입니다. 주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과 같았도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는 그것이 운명인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래서 자신들에게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생각이 됐는데 하나님께서 이제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역사를 행하신 거예요. 그건 전적으로 주님이 행하신 역사이다. 우리가 하는 일을 주님이 약간 밀어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아니시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주님 홀로 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은 그저 그것을 보고 감사하고 감격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인은 126편의 끝마무리를 하면서 “울며 씨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 아무도 포로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이 없고 어느 날 하나님이 그들을 바벨론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고토로 돌아가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길을 열어주셨는데 사실은 믿음의 세계에서는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면 기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기적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 캄캄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소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때에도 광복의 날을 꿈꾸며 귀한 날을 꿈꾸며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 이예요. 다수는 아니었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깨어서 그렇게 눈물로 씨를 뿌린 거예요. 물론 그들은 거기서 세력을 규합해서 무장단체를 조직하고 폭력투쟁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리고 다니엘과 같이 경건한 사람들 혹은 느헤미야와 같이 경건한 사람들, 에스라와 같은 사람들, 스룹바벨과 같은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자신들을 그렇게 고토로 인도하셔서 거기서 하나님의 이름을 빛내는 백성들로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라는 열망을 가지고 울며 씨를 뿌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을 그때에 그렇게 눈물로 씨를 뿌려도 그 씨가 수확을 거두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줄 만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그때에 그들은 믿음으로 그런 일들을 행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정말 주님을 향해서 그 사랑이 얼마나 신실한지를 보려면 그 사람들이 주님 안에서 얼마나 성실한 사람들인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눈물 위에 눈물을 흘리는 씨 뿌림은 없이 수확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요행이지 하나님의 큰 능력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저절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역사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 같고, 하나님 홀로 행하신 것 같지만은 그러나 우리도 알지 못하는 때에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꿈꾸고 그리워하며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그때에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꿈꾸고 그러한 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눈물과 그들의 땀과 그리고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주님이 위대하고 큰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의 서곡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자녀들로써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는 그 첫 번째 천병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영광스럽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겠습니까?
(예화) 2차대전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졌을 때 그 때 치열한 전투를 인제 시작하면서 자기들이 반드시 선두에 서서 노르망디 상륙해야 된다고 그렇게 격렬하게 요구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불란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맨 앞서서 선봉을 서는 것은 적군으로부터 큰 도전을 받으면서 죽임을 당하고 그리고 많은 희생을 자초할 가능성이 많지만 그러나 그러한 전쟁에서의 승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고난 받는 선봉의 자리를 영광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잃어버린 그 땅을 정복하는 그 일에 자신들이 맨 앞장서서 상륙한다라고 하는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던 그 사람들에게는 위험 부담이 아니라 오히려 커다란 영광이었고, 그러한 자리를 남에게 빼앗긴다고 하는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서 다행이 아니라 수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상륙작전을 하는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선의 맨 앞에 서서 비 오듯 쏟아지는 적군들의 총탄을 우박처럼 맞기도 하고 죽음의 위협을 무릎 쓰고 포탄이 비 오듯 쏟아지는 전장을 휘몰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목숨이 두려워서 두 걸음 세 걸음 물러서고 아니면 아예 자기를 희생시키는 일이라고는 눈꼽만큼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울며 씨를 뿌리는 그 사연을 모르기 때문에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그 참된 감격도 또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놀라운 특권을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우기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한번만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해야 돼요.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지고 가오리다. 그래서 주님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사연을 아는 사람들은 정말 주님이 자기를 기뻐하셔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셔서 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그 역사를 바라보면서 기쁨을 경험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을 사용하셔서 이 놀라운 일들을 이루시는 구나.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때 그 복판에 서 있다는 것과 가장자리에 서있다는 것은 엄청난 차이예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과 엑스트라가 있잖아요. 차이는 무엇이냐 하면은 엑스트라는 총소리만 나도 죽는데 주인공은 총알이 뚫고 가도 살아요. 총알이 박히면 칼로 총알을 빼내고 옷을 찢어서 다리를 묶고 그리고 100미터를 경주하는 사람처럼 달려간다고, 그것이 엑스트라와 주인공의 차이예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서 쓰임 받는 것과 그리고 그 언저리에서 그저 그것을 바라보며 갈채를 보내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당신의 역사의 한복판에 서게 하시느냐. 바로 주님을 위해서 항상 씨 뿌리는 고통과 그리고 눈물 흘리는 아픔을 한 사람 언제나 항상 고난 받는 일에 선봉에 서고, 고통 받는 일에 선봉에 서고 주를 위해서 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 그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 사랑과 은혜를 깊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