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적 준비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들에 있으니라 (눅1:80)
녹취자: 김경애
복음성가를 보급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 무디가 만들어내서 보급한 복음성가의 수입이 일 년에 수십만 달러였습니다. 1900년대 초에 수십만 달러면 지금으로 따지면 수억 달러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천만 달러가 넘는 돈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무디는 순수하지 못하다. 결국은 자기가 그렇게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보급한다는 미명아래 찬송가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그는 한 번에 잘라버리고 그리고 그것에 대한 모든 저작과 출판을 포기했습니다. 그 돈을 받아서 무디가 자기가 가진 것이 아니라 복음사역에 썼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내가 보기에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무디가 아니라 문둥이였습니다.
저는 기독교 역사 속에서 주님을 영화롭게 했던 지성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그중의 한사람이 바로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였습니다. 18살 때 호르텐시우스를 읽으면서 예지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후 여러분들이 아는 바와 같이 그는 마니교의 그릇된 사상에 빠졌습니다. 지금 보면 마니교라는 것이 그저 이단에 불과했지만 그 당시로써는 최고의 지성인들이 믿는 종교와 철학을 혼합한 체계였습니다. 그래서 아돌프혼하르낙 이라는 독일 역사가는 말하기를 인류 역사에서 우주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하나의 사상으로 종교와 더불어 통합하려고 했던 시도가 바로 마니교에서 일어났다고 평가할 정도로 당대의 최고의 지성인들은 그 마니교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모니카 여사의 눈물어린 기도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끄러지고 미끄러졌고 그리고 지혜를 구하다가 그는 그릇된 지혜에 빠져버렸습니다. 마니교에 깊이 빠져서 사상에 심취했지만 그것으로써 그의 영혼이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마니교를 가지고 좀 더 연구를 하기 시작했을 때에 거기에는 이상하게 설명될 수 없는, 대답할 수 없는 많은 의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마니교를 떠나기 위해서 이런 의문을 제기했던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니교신앙에서 모르는 점들을 확실히 알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았고 마니교의 교도들이 이분화 되어있는데 하나는 천도자라는 평신도들이고 위에는 뽑힌 자들 이라고 하는 소위 교역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천도자들 뿐만 아니라 이제 뽑힌 자들과도 교제를 나누게 되었는데 이게 밀라노에서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신이 아무리 물어보아도 사람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의 마니교의 최고의 지도자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포르투나투스 라고 하는 사람을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만나서 그분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너무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부터 그는 이 마니교의 사상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회심한 이후에 그는 성경에 착념하면서 마니교의 오류들을 찾아내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는 그 마니교도 들과 논쟁하면서 그들의 신앙을 격파해나갔습니다. 지금도 역사적인 기록에 남아있는데 언제 어디서 누구와 어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논쟁을 했다는 그 모든 속기록들이 다 남아있습니다. 한 6개월 동안 저는 그 마니교논쟁의 원자료들을 읽으면서 깊이 감동받았습니다. 마지막에는 마니교의 큰 지도자가 아우구스티누스의 질문과 답변 논쟁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들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결국 참된 기독교 신앙의 사수를 위해서 우리의 지적인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더 그림과 같은 사건이 1519년 7월 4일부터 14일 사이에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있었습니다. 이때에 역사적으로 이때는 바로 마르틴 루터가 존 에크라는 인문주의자와 논쟁하던 시기였습니다. 인골쉬타트 대학의 교수였던 에크는 논제가 세상에 드러났을 때에 마르틴 루터의 개혁사상에 대해서 오벨리스크라는 제목으로 그의 의견을 공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이 십자가 단검의 표시인데 원래 이 오벨리스크는 호메로스의 작품들을 사본 비평을 하다가 원본에는 없는 의심스러운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사본학자들이 표를 매겨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벨리스크라는 이 책 제목은 루터가 95개 조항을 내걸고 개혁신앙을 외쳤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는 의심스러운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마르틴 루터는 곧바로 책을 한권 집필하였는데 그 책의 이름은 ‘아스테리크’ 라는 책이었습니다. 그것은 별표 모양으로 된 사본학의 표시인데 ‘이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천재적인 기억력과 폭포수와 같은 달변, 섬뜩할 정도의 통찰력을 가진 정신의 소유자이자 전문적인 논쟁가인 이 사람과의 논쟁에서 유능하게 참된 개혁신앙에 대해서 변증할 수 있었는데 이것은 만약에 루터가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루터에 관해서는 재미있는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그분이 다니던 학교에 가서 제가 그분의 성적이야기도 들었는데 대학에 다닐 때는 그렇게 별로 공부를 잘하지 못했습니다. 대학원에서도 그냥 잘하는 편이었지 천재적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는 학문을 위해서 꾸준히 연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사인 시절에 히브리어를 공부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었을 때에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어느 선배 수도사가 히브리어의 도사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분을 뵈옵고 공부를 가르쳐달라고 간절히 청합니다. 가르쳐주겠다고 그랬을 때에 일주일에 한 번씩 마르틴 루터는 세 시간을 말을 타고 달려와서 공부를 했는데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칠 때에 이날은 마르틴 루터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비를 모두 맞고 공부하러 온 것을 보고 이 수도사가 감격을 했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헛된 논쟁에서지지 않고 기독교 신앙을 파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존 에크와의 논쟁에서 결국은 루터에 대해서 어느 증인이 이러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읽어드리겠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중간키에 걱정과 연고로 마른 몸이라 살갗위로 드러난 뼈들을 거의 셀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제 한창 나이이며 음성이 또렷하여 사람의 마음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며 성경을 잘 알고 있었다. 희랍어와 히브리어의 정통하여 성경에 관한 여러 해석들을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 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1703년 존 웨슬리와 같은 해에 태어나서 뉴잉글랜드의 위대한 신앙의 부흥을 위해 쓰임을 받았던 미국의 신학자요 목회자인 조나단 에드워즈는 탁월한 지성인이었습니다. 당시 회중교회의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교육을 받았고 세 살 때부터 자신이 사유한 내용을 글로 쓰도록 연습하였다고 합니다. 6살 때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고 8살 때에는 유물론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글로 밝혔습니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예일대학에 입학할 때에는 이미 히브리어와 라틴어, 희랍어를 마스터한 가운데 입학했고 4년 뒤에 예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원과정에서 더 공부한 후 2년 뒤 예일대학에서 교수가 되었는데 그때 나이 18세였습니다. 뛰어난 설교자로서 뉴잉글랜드 안에서 침체되었던 신앙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대각성과 부흥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문필가로 청교도적인 칼빈주의 사상을 뉴잉글랜드에 심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탁월한 신앙과 함께 학문적인 준비에 철저히 자신을 기울여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당대에는 뉴턴이즘이 일어나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16살의 나이에 대륙에서 발간되는 과학 잡지의 ‘거미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그리고 그는 당대에 누구보다도 목사로서 뉴턴의 물리학을 가장 탁월하게 이해했던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의 이단뿐만 아니라 당시에 노도와 같이 밀려들어오고 있는 계몽주의 사조와 더불어서 전투적인 자세로 용사와 같이 싸우면서 기독교신앙을 지켰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고 있는 제네바에서의 종교개혁을 위해서 섬겼던 순수한 말씀의 증언자들 가운데는 세 사람이 출중하였습니다. 프로망과 비레와 그리고 화렐이었습니다. 1536년 스위스 로잔에서는 종교회담이 개최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과 가톨릭신학자들 간의 이러한 회담은 토론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고 그 도시의 지도자들조차도 무엇이 맞는지 헷갈렸기 때문에 양측을 모두 불러 논쟁을 하고난 후에 그 결과에 따라서 이 한도시를 개혁파 쪽으로 넘어가게 하든지 혹은 개혁파를 매장하고 가톨릭을 계속 따라가든지 하는 그러한 중요한 결정적인 시기였습니다. 양측의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이제 화렐의 초청으로 그 회담에 참여했던 칼빈이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회담이 진행되는 처음 사흘 동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학문은 좀 못했지만 화렐과 비레가 그들을 상대로 토론하도록 칼빈은 겸손하게 뒤로 물러나있었습니다. 나흘째 되던 날 그 신학토론의 주제는 성만찬이었습니다. 가톨릭 측의 유능한 변론자인 리마르 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자신이 준비한 연설문을 주의 깊게 읽어나갔습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하나님의 영광을 받은 교부들의 교훈을 우습게 여기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마른 체구의 창백한 얼굴의 젊은이 한사람이 일어나서 온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그 가톨릭의 유능한 변론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우리의 칼빈이었습니다. 뜻밖의 인물의 출현에 의아해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칼빈을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교부들에게 명예를 돌립니다. 우리 중에 당신보다 교부를 더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교부들의 이름을 들먹이지 않도록 조심하여야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존경한 교부들의 저작을 좀 더 철저하게 읽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당신에게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당신이 교부들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했더라면 그들의 저작 중 어떤 구절은 당신에게 도움을 주었을 것입니다.’ 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준비된 원고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칼빈은 가톨릭 측에 의해 제기된 여러 가지 신학적인 의견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나열하며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역사적으로 반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연설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칼빈의 모든 논거들은 철저히 교부들로부터 이끌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소위 개혁파 신학자들이 무시한다고 비난하던 교부의 글들을 통해 가톨릭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이토록 궁지에 몰리게 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칼빈은 먼저 교부 테르툴리아누스의 견해를 인용한 후 주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희랍교부 크리소스톰의 것이라고 밝혀진 설교의 한 구절을 인용하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은 요한 크리소스톰의 무슨, 무슨 설교 11장 중간부분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는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을 인용했습니다. 23장 마지막 부분에서 그리고는 마니교도인 아디만투스를 반박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책에서 또한 부분을 인용하며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상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의 중간부분에 있는 내용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98편의 주석에서 또 다른 곳에서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으로부터 인용했습니다. 그렇게 인용한 후 그는 말했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요한복은 설교의 시작부분인데 아마 저의 말씀드린 이 내용은 8번째 설교문 아니면 9번째 설교문에 나오는 내용일 것입니다.’ 이미 상당히 긴 시간이 흘렀으나 이 젊은 칼빈에게는 고대 교부들의 수많은 저작들로부터 자기네 의견을 개진해나가는 증빙자료로써 그것들을 인용하고 주석하는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능숙하게 인용하고 주석해 나아가는 자료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거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 교부의 저작을 자신들이 신성시하고 있다고 믿는 그 사람들에게도 낯선 저자들까지 동원되었습니다. 토론되고 있는데 문제에 관한 복음주의적인 해석을 입증하기 위하여 칼빈은 아직도 언급되지 않은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엄청나게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기억 속에서 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베드로의 집사 신앙록이라는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고, 다루다누스에게 라고 제목 붙여진 아우구스티누스의 서간론에는 이렇게 붙여져 있습니다.’ 라고 이렇게 언급해가면서 칼빈은 이 모든 것을 암기하며 대답했습니다. 원고도 없이 책도 없이 그는 자기의 정리된 기억 속에서 모든 것들을 이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어느 한사람의 천재성이 드러나는 순간이 아니었습니다. 발표하는 자신의 신앙에 의하여 확신되고 성령에 의하여 칼빈 자신이 감동되고 있는 거룩한 성경의 진리가 학문을 도구로 하여 드러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천부적인 기억력을 통하여 참된 신앙에 대하여 제시되고 있는 비할 데 없는 이 위대한 학문적인 증언들을 들으면서 가톨릭과 개혁파 신학자들은 양측 모두 숨을 죽였습니다. 자신의 고발과 비난을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포하였던 가톨릭의 연사는 이 작은 체구의 창백한 젊은이인 칼빈이 두 눈을 자신의 눈에 고정시킨 채 다음과 같이 승리에 찬 발언을 계속하고 있을 때 그는 완전히 오그라들어버리는 자신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우리가 교부들에 의하여 적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여러분들의 주장은 무례하고 뻔뻔스러운 것이 아닌지 한번 스스로 판단해보기 바랍니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당신 자신을 교부들이 쓴 저작의 껍데기도 못 읽어본 사람이라고 인정해야 될 것 같습니다. 만일 당신과 당신보다 앞서 연설했던 사람이 한번이라도 교부의 저작들을 통독했다면 현명하게 침묵을 지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이 한 수 한 수 밀리다가 마지막에 신학적으로 외통수에 몰리고 말았다는 패배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그것도 자신들이 잘 안다고 자부하던 교부의 저작을 통해서 말입니다. 물을 끼얹은 듯 고요한 좌중 가운데 칼빈은 토론의 결론이 하나님의 음성처럼 들려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부터 은혜에 의하여 우리가 받을 수 있는 이 모든 것들을 통해 진리와 사실 안에서 우리를 결합시켜주는 영적인 교제, 우리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시켜주는 영적인 연합, 이것은 영적인 끈 곧 성령의 줄을 통하여 연합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만찬의 의미입니다.’ 라고 말입니다. 칼빈은 자리에 앉으면서 장시간의 연설로 말미암아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완전한 침묵이 그 예배당을 가득 메웠습니다. 이 연설 중 신학적인 이해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일부분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회중들조차 지금 이 젊은 신학자 칼빈에 의해 무엇인가 진리에 대한 결정적인 증언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 측의 사제들은 경악에 가득한 질린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감히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들 가운데 유능한 변론자였던 리마르나 꿀로드불롬쉐즈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였던 것입니다. 마침 그때 한 프랑시스칸 교단의 탁발수도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는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으던 유능한 가톨릭의 설교자였고 개혁세력을 반대하던 설교자의 신명을 받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장땅띠 라고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때였다면 그처럼 웅변적인 설교로 온 교회당을 뒤흔들어놓았을 이 유능한 가톨릭의 설교자는 창백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의 혀는 그의 목구멍에 붙어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충격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바 성령을 거스르는 죄라는 것은 명백한 진리에 반하는 완고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지금 들은바 연설을 따라 내가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나는 그동안 무지 때문에 오류 속에 살았고 잘못된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에게 퍼트렸습니다. 내가 그동안 무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거슬러 말하고 행하였던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우리 하나님께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백성들도 내가 지금까지 가르쳐온 잘못된 것들에 대해서 나를 용서해주도록 구하는 바입니다. 나는 이제 그리스도와 그의 순순한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성직의 옷을 벗어버리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그날 거기에 모인 양측의 토론자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직감적으로 그날 칼빈의 연설이 그 자리에 있었던 많은 가톨릭의 수도사들을 회심시켰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토론이 끝난 후 그 다음날 아침 로잔은 개혁신앙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매춘소굴은 모두 패소되고 창녀들은 추방당했으며 종교회당 역시 구체적인 결실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매일 그 지역의 성직자들이 개혁신학을 찬성하는 입장을 발표하였고 수도 사역을 하던 80명의 사제들과 수도사 서약을 아직 하지 않은 120명의 사제들이 수개월내에 개혁교회로 돌아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 중에서는 로마 교회의 가르침을 가장 완고하게 고수하던 자들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토록 칼빈 앞에서 개혁신학을 비판하던 리마르라는 사람까지 포함되어있었습니다. 이 모든 일은 칼빈의 철저한 학문적인 준비를 통하여 가능했던 것입니다. 파리에서 이 사람이 공부를 했을 때 그는 이러한 일들을 위해서 교부들의 저작을 읽었고 그는 매일매일 그 공부한 내용을 암기하는 시간을 가졌으며 아침에 일어나서는 그 암기한 것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자신에게 발표해보는 시간을 가졌답니다. 그리하여 22살쯤 되었을 때는 유럽의 최고의 젊은 지성인이 있다면 칼빈이라고 하겠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까지 자신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은혜로운 복음 사역 한가운데서도 언제나 무질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이 무질서를 정돈하고 참된 진리를 보여 질서를 잡아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목회자로서 철저하게 학문적으로 준비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신학적인 식견으로 무장되는 이것은 영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제네바에서 그런 원리가 입증되었습니다. 기로로메 화레는 불같은 정신을 소유한 개혁자였습니다. 교황제도의 폐단을 정죄하고 명백한 명령과 지시를 통해 종교개혁을 진척시켜나갔습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이런 개혁정신을 움직인 사람은 요한 칼빈이었습니다. 칼빈의 신학지식은 영적인 무질서에 질서를 부여하고 새롭게 태동한 교회에 형태를 부여하며 개혁신앙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명백하게 정리함으로써 사실상 종교개혁을 위대하게 마무리하였던 것입니다. 칼빈의 이런 도움이 없었더라면 제네바의 종교개혁은 결코 성공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들이 모두 칼빈처럼 된다거나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일생동안 학교선생님이 되어서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로 일생을 보낼 사람도 있고 목회를 하거나 선교를 하거나 평신도 지도자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는 것 자체는 목회사역에서 문제가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지식을 쌓는 일에 있어서 게으른 학문에 대한 태도는 두고두고 그의 학문뿐만 아니라 신앙에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이 부지런히 온 마음을 다해서 학문을 위해 진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강력하게 여러분들에게 충고하는 바입니다.
(찬양)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아는 것,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아는 것, 주님을 알기를 간절히 원하는 내 생애 가장 귀한 것 주 아는 것
열심히 공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이성의 능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우리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젯밤에도 숙소에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나는 천재로 만들어 주시지 않으셨을까? 천재의 삶이 불행하다고는 하지만 나는 행복하게 백년을 사는 것보다 천재로 5년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아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이 탁월한 진리의 세계에 대해서 얼마나 잘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어느 날 울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아우구스티누스는 누구고 나는 누구인데 이 사람은 이런 탁월한 천재성을 주시고 나는 그 천재들이 쓴 것을 겨우 이해하는 것도 힘들 정도의 둔재성을 주셨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대답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나는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말하는데 부지런하셔야 합니다. 어느 정도로 부지런해야 되느냐하면 6시간 이상씩 자는 것은 죄입니다. 여러분들이 젊은 나이에 소비와 휴식에 일찍 눈을 뜨면 여러분들의 인생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나이 드신 분들이 무엇인가를 좀 누릴 때 젊은 나도 그것을 누려도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소비에 그렇게 빨리 눈을 뜨면 안 됩니다. 나이가 들면 생명의 기운이 빠져나가고 죽음의 그림자가 들어와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음식도 약간 나은 것을 먹으려고 하고, 옷도 좀 더 따뜻한 것으로 입으려고 하고, 그리고 잠도 조금 더 편한 곳에서 자서 자기의 생명의 기운을 보존하려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젊은이들이 본받아서 일락의 기회로 삼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아무데서나 쓰러져서 자고 아무것이나 드십시오. 그렇게 하십시오. 그렇게 잘하던 아멘을 이 대목에서는 안합니까? 아무데나 쓰러져서 자고 아무거나 먹고 아무거나 입으십시오. 그 대신 아무거나 알지 말고 알아야 할 그것을 놓고 온전히 몰두해야합니다. 여러분들 요새 아이 폰을 가지고 어디가든지 들여다보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제가 60권이 넘는 책을 썼답니다. 나도 안 세어 봤습니다. 그래도 지금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러겠지요? 저 목사님은 인터넷에 얼마나 익숙할까? 일 년에 인터넷에 체류하는 시간이 10시간이 안됩니다. 나는 아직까지도 여러분들이 안 믿겠지만 누가 나보고 ‘목사님 사진 좀 보내주세요.’ 그러는데 그게 무슨 소린지 몰라서 아직까지 못 보내고 있습니다. 나도 머리가 있는데 한 15분 배우면 못하겠습니까? 내가 배우기를 거절합니다. 여러분 아직까지 내 개인소유의 디카가 없다면 여러분은 믿으시겠습니까? 가족용으로 하나 사다주었는데 나는 아직까지도 그것을 찍을 줄은 아는데 찍은 것을 어떻게 보는 줄도 모릅니다. 내가 쓴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생각해보십시오. 끊임없이 공부하고 사유하기 위해서 몸부림치기 위해서는 남들이 즐기는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매달려야합니다. 그래서 공부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집사람이 그럽니다. ‘여보, 당신 몸 상하니까 제발 공부 좀 그만해요. 우리 집은 왜 공부를 하라는 애들은 안하고 하지 말라는 남편은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습니다. ‘여보, 내 얘기 잘 들어. 나는 책을 대할 때마다, 성경을 대할 때마다 나는 껍질밖에 없는 사람이야. 나는 아무것도 내용이 없는 사람이야.’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진리라는 것에 대해서 워낙 무지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목회를 하는데 그래서 나의 공부는 마치 들통을 지고 갱도로 내려가는 석탄을 캐는 광부와 같습니다. 그래서 내려가서 남들이 놀고 남들이 쉴 때 새카맣게 코에 탄가루를 묻히면서 열심히 캐내서 그것을 가지고 힘들게 갱도 위로 올라와서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성도들에게 주일이면 거기다가 말씀의 떡을 구워주는데 그것조차도 만약에 하지 않는다면 일주일 벌어서 하루 먹고사는 목회자가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진리를 나누어줄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공부하다가 눈물이 참 많이 납니다.
(찬양)
넘치소서. 은혜와 긍휼을 열방 중에 비치소서 빛 되신 주의 말씀
그러나 여러분 목회자라는 이 직업은 정말 고달프고 그리고 어려운 직업입니다. 출근시간도 없고 퇴근 시간도 없고 그 다음에 교회 일하고 내일 하고 구별이 안 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회를 해서 교인들이 늘어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마음을 졸이고 괴로워하고 교인들이 늘어나면 그 힘든 교회의 건축과 이 모든 것들 때문에 고뇌를 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직업들은 자기가 하는 일 한 가지에 몰두하면 되지만 목회는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건축, 금융, 인사, 경영, 경제, 은행거래, 디자인, 미술, 편집, 식음료, 청소, 빌딩관리, 교육, 유아교육, 그 다음에 상담, 가정 사역, 헤아릴 수 없는 별의별 것들이 모두 들어옵니다. 어느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없습니다. 그런 속에서 시간을 낸다는 것은 너무 어렵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는 돈이 없어서 책을 못 샀습니다. 일주일 내지 이 주일을 점심을 안 먹고 점심값을 모아서 ‘생명의 말씀사’에 나가서 원서 한권을 사들고 뛸 듯이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지금은 책 살 수 있습니다. 우리 장로님도 여기에 와 계시지만 책을 많이 사주는 편입니다. 일 년에 1억 8천만 원어치 삽니다. 그런데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책을 살돈이 없어서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책을 읽을 시간이 모자라서 책꽂이 앞에서 눈물이 납니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어느 학생이 감동을 깊이 받고 집에 돌아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를 했는데 ‘목사님은 책꽂이를 붙들고 울었다는데 나는 집에 가보니까 붙들고 울 책꽂이도 없었습니다.’ 책을 안 샀습니다. 굶으면서 책을 사야합니다. 신대원 졸업 할 때까지 제가 3, 4000권정도의 책을 모았습니다. 여러분 굶으면서 책을 사야합니다. 마누라 빼고 다 팔아서 책을 사요. 온 마음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놀고 싶다는 유혹은 특별히 없지만 쉬고 싶다는 유혹을 받는 적은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일깨워야합니다 주일날 온몸에 너무 열이 나서 덜덜 떨려서 설교를 한번 했나 못했나? 그랬더니 주일날 설교를 제대로 못하고 밤새도록 앓았습니다. 그래도 월요일 날 9시에 정확히 공부하러 연구실에 나왔습니다. 하필이면 바로 그때 기자가 와가지고 아주 그냥 신파조로 기사를 써서 내보냈습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인가 쉬고 싶고 그리고 시간을 좀 내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쓰고 싶을 그때에 나는 스스로 말합니다. ‘나는 고3이다!’ 고3은 뭐든지 대학을 가야 합니다. 미팅도 대학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디를 놀러가는 것도 대학교 가서 해야 하고 읽고 싶은 책도 대학교 가면 읽는 것이죠. 그러면 그때 학교 갈 때가 언제입니까? 천당을 가면 대학을 가는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아는 것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저 가방을 메고 주일 낮 예배 때 저 가방을 메고 항상 설교하러 올라갑니다. 몇몇 교인이 양복에는 그것이 안 어울린다고 가방을 사줄까하고 물어봅니다. ‘나는 가방 많다.’ 그런데 내가 저 가방을 메고 올라가는 이유는 뭐냐 하면 가방을 메고 올라가면서 ‘나는 공부하다 온 학생이다.’ 설교가 끝난 후에 교인들이 은혜를 많이 받을 때도 있잖아요? 그것을 메고 내려갑니다. ‘나는 위대한 설교자가 아니라, 감화를 끼치는 훌륭한 설교자가 아니라 공부하는 학생일 뿐이다. 이제 설교가 끝났으니 다음 설교를 위해서 공부하러 가자.’ 그러면서 저것을 메고 갑니다. 그렇게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합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훨씬 젊고요, 이 젊을 때에 이 젊음은 30년 후에 갚기로 되어있는 지불만기의 어음과 같습니다. 지금 만약에 여러분들이 마구 젊음을 낭비하면 제 나이쯤 되었을 때에 여러분들은 이제 수표가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만기된 약속어음이 돌아오기 시작하는데 그때 여러분 파산합니다. 나는 허세를 부리는, 허세와 위선을 부리는 목회자들을 만날 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에 있어서 진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모든 위선과 허위와 거짓을 버리고 실력 없이 진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실력이 없이 진실해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온 마음을 다해서 공부하십시오. 언제든지 여러분들에게 세 가지를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십시오. ‘성경은 어디를 읽고 있습니까?’ 두 번째 ‘가슴이 시리도록 하나님 앞에 눈물로 매달리는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요즘 무슨 신학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습니까?’ 라고 물을 때 아주 분명하게 대답할 말이 있어야합니다. 절대 컴퓨터나 매달리고 그것이나 두드리고 있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 같으면 대담하게 컴퓨터를 마당에 놓고 도끼 갖다가 박살을 내면서 말의 모가지를 자르던 김유신처럼 말입니다. 중독성이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 컴퓨터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노라.’ 그리고 집어치우세요.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핸드폰이나 가지고 장난이나 하고 그래서는 절대로 신령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광야에서 그 바람을 맞으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무릎은 기도하면서 닳고 팔꿈치는 공부하면서 닳아야합니다. 한번 책상에 앉으면 얼마나 공부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한번 책상에 앉으면 몇 시간 동안 안 일어나느냐가 문제입니다. 제가 학생들을 가르쳐보니까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은 머리가 좋거나 많은 시간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다가도 한번 앉으면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각오를 하고 ‘열 시간 이내에는 내가 안 일어나겠다.’ 하고 오강을 하나 갖다놓고 그리고 먹을 것 갖다놓고 그리고 물하고 빵 한 덩어리면 되잖아요. 아까 이야기했잖아요. 아무거나 먹고 아무데서나 자라고 그랬잖아요. 그렇게 하고 매달리면서 혼신의 힘을 쏟아서 다리가 저릴 정도로 공부를 하십시오. 칼빈은 그 공부에 몰두하면서 거의 건강을 잃어버릴 정도까지 몰두했습니다. 존 오웬 목사는 19살 때 거의 죽을 뻔할 정도로까지 공부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면서 한 시대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제발 공부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