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연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마음을 단련하소서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시 26 : 2- 3上)
녹취자 : 양정화
오늘 우리들이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다윗의 시라고 여겨집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좀 풍성하게 체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일 안타까울 때가 언제인가 하면, 머리로는 알겠는데 이것이 도대체 체험이 안되어질 때 그때 참 안타깝습니다.
예를 들자면 오늘 성경에서 나와 있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자비하시다는 사실, 하나님이 인자하시다는 사실 이것을 정말 깊이를 나도 체험하고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놀라운 감격을 맛보고 또 그것을 계속해서 누리면서 신앙생활하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아니면 그것이 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참사랑, 주님이 얼마나 특별하게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그것을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온몸으로 깊고 진실하게 충분히 체험하고 그래서 그런 충만한 사랑과 은혜 속에서 정말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런 신앙생활을 아름답게 해나가는 것이 아니면 참된 신앙생활이라고 말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누구나 그런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그러나 누가 그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자기에게 너그러운 사람들, 우리가 자기자신에 대한 태도가 너그러울 수도 있고 좀 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기에게 너그러운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참 자비하신 큰 사랑을 체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면 박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체험합니까? 그건 또 그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자기에게 대해서 엄격한 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가에 따라서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 자기에 대해서 엄격한 것이 단지 자기의 생각과 인간적인 의의 기준에서 온 것이면 그것은 자기를 아주 못살게 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더 많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시편에서 시인이 이런 것들을 잘 보여주는데, 시인이 '나를 살피시고 내 뜻과 내 마음을 시험하사 그리고 나를 단련하옵소서' 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쓰여진 단어들이 전부다 살피고, 시험하고, 단련하고, 이런 단어들이 쓰여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단련하다라고 하는 이 단어는 금을 제련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금을 불로 태워서 용광로에서 액체상태로 만들면 찌꺼기가 분리됩니다. 그래서 그 찌꺼기들을 계속 걸러내면 순도가 높은 금이 나옵니다. 그러한 용어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하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은 내 마음과 생각을 살펴달라는 것입니다. 살핀다라는 것은 샅샅이 수색하면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충만히 느끼는 사람들, 하나님이 그렇게 은혜를 주시는 사람들은 이처럼 자기의 외면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자기의 마음과 생각을 하나님께서 샅샅이 살피고 수색해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보면 어떤 식인가 하면 편안하게 하나님의 등 뒤에서 살기보다는 차라리 불편하고 고통스러워도 하나님의 눈앞에서 살겠다라고 하는 신앙의 표현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신앙이 있습니까? 우리가 바로 이런 신앙을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고 우리의 삶의 잘못된 것들을 지적하실 때 견디지 못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고 풍성한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오늘 시인은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을 살펴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생각이 있을 수 있고, 죄악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일을 하면서도 가장 사악한 동기가 깃들 수 있고,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하면서도 가장 구역질 날 정도로 더러운 동기가 숨어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때로는 이것들은 매우 미묘해서 우리의 평범한 양심이나 신앙의 눈으로는 잘 찾아내기 어려울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우리의 마음을 살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로 고난을 받으면서, 혹은 하나님 앞에 책망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의 등 뒤에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살기를 원하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하나님께 커다란 기쁨을 드리는 삶, 이런 삶을 우리들이 살기위해서 먼저 선행되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기 원하는 삶, 주님의 등 뒤에서 평화로운 삶을 보내기 보다는 불꽃과 같은 주님의 시선 앞에서 차라리 우리의 잘못을 지적받으며 살고 싶어하는 삶, 그것을 진정으로 소망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즐거움을 제가 자주 말씀드리지만 하나님 앞에서 사는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즐거움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의 선하고, 우리의 칭찬받을 것만을 보시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우리의 불결, 우리의 죄악들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찾아낼 수 없는 우리 속 깊이 묻혀있는 그런 불결과 죄악과 교만들을 드러내십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그렇게 드러내어지고 하나님에 의해서 진정으로 용서되어지고 회복되어지는 것들을 경험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쉽고 즐거운가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일단 자기의 죄와 감춰진 악, 잘못된 인생의 동기, 그리고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산다고 고백하면서도 자기중심적으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 이것들을 버리지 않으면서 주님 앞에서 살려고 하니까 주님 앞에서 사는 것이 한없이 고통스럽게 느껴지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지, 이것을 일단 내려놓고 나면 그때에는 비로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쉬운지를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멍에에 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어주시는 겸손하게 하는 이 율법의 멍에와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좇아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진정한 이 말씀의 멍에가 얼마나 가볍고 그리고 온유한 것인지를 배우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배워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고통을 맛본 사람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사는 것이 정말 두렵고 떨리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만이 하나님 앞에서 사는 신자의 지고한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
나의 삶이 주께 영광 주께 영광 나의 삶이 주님께 영광
우리의 삶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신앙의 승리는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우리의 인생을 통해 보여주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의 진정한 두려움과 그리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두 번째로 '나를 시험하사', 살펴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것을 찾아내신 후에는 격렬한 방법으로 그것이 옳은지 그렇지 않은지, 말하자면 가려내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잘못된 신앙의 동기를 시험받는 대신에 하나님을 시험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정작 시험받아야 될 사람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끊임없이 시험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이 정말 순전하고 변함없는 생각인지 시험받아야 합니다. 매순간순간마다 나는 주님이 나에게 주신 참된 신앙의 진리를 온전히 붙들면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지를 다시 묻고, 또 묻고, 또 물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참사랑과 진정한 은혜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더 깊이 깨닫기 위해서 우리의 불순하고 잘못된 생각,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삶에 대한 잘못된 태도, 이런 것들이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 합리화되고 그저 평범하게 우리의 신앙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런 익숙해진 잘못된 생활들, 하나님 앞에서 깊이 반성하면서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우리 속에서 부지런히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가려내시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가 일평생동안 끌어안으면서 해왔던 신앙생활이나 생각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옳지 않다고 시험되었을 때에는 우리는 아픔을 무릅쓰고 그것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더 많이 맛보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단련해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순결하게 제련되는 과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잘못 들어와 잘못된 생각이나 혹은 하나님을 위한 열심 속에 순수하지 않은 부분들, 그 전체는 올바르지만 그 속에 섞여있는 잘못된 것들, 이런 것들을 뽑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금은 금이지만 어떤 금은 아주 비싸고 어떤 금은 매우 쌉니다. 무엇 때문입니까? 그 금이 얼마나 순결하냐에 따라서, 순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가격은 엄청난 차이로 정해지게 됩니다. 다이아몬드와 혹은 루비, 사파이어와 같은 그런 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그 보석이 순수하고 맑고 투명하느냐에 따라서 그 보석의 가치는 크게 좌우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럼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제련되어야 합니다. 단련되어서 그래서 우리는 정금과 같이 되어야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 정말 주 앞에 살핌을 당하고 그리고 주 앞에 시험을 당하고 참과 거짓이 가려내어지고 그리고 불순한 것들을 끊임없이 뽑아내면서 정결하게 되어질 때 그러한 삶으로 우리들이 나아가려고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며 주님 앞에 우리의 신앙생활을 해나갈 때 그때 시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더 큰 사랑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무조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를 두둔하고 자기에게는 너그럽고 자기를 긍휼히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맛볼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애통하는 자들에게 위로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인의 신앙의 경험을 생각하고 또 본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등 뒤에서 평안히 사는 것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눈앞에서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해져서 결국은 하나님의 시선 앞에서 사는 참된 행복이 무엇인지를 경험하고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