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공부 방법론(1)
녹취자: 김경애
여러분에게 무엇을 강의해줄까 하다가 아무래도 중요한 것은 신학공부를 어떻게 하고 또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전체적인 큰 그림을 보여주는 일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을 여행하고자하는 모든 사람들이 제일 먼저 중국의 지도를 보지 않겠습니까? 그다음에 상해를 가면서 상해는 이쪽에 위치해있구나! 무안을 가려면 상해에서 북쪽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야하구나! 중국의 중앙이구나! 이런 판단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2년 전부터 책을 써서 거의 완성했습니다. 지금 98%정도 완성되었는데 그 책이름이 ‘신학공부 나는 이렇게 했다!’ 입니다. 한국 책으로 1,0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을 한 2년 동안에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의 내용을 여러분에게 강의하려고 하니까 한두 시간 가지고는 안 되고 한 30시간 정도는 해야지만 이 책 한권을 강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30시간을 낼 수 없고 일단 오늘 두 시간에 걸쳐서 신학공부를 누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시간이 될 때까지 살펴보기로 하고 그 다음에 목사와 신학이 어떤 관계에 있는가? 그런 이야기들을 내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아니 기회를 꼭 마련하겠습니다. 다음에는 신학공부를 위한 언어공부, 그 다음에 초대교부, 중세신학, 이슬람철학, 아퀴나스와 스콜라주의, 이런 공부들이 신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기독교인문주의와 루터, 칼빈, 종교개혁자들을 공부하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개혁파 정통주의, 청교도, 조나단 에드워즈, 현대 개혁신학자, 이런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공부해서 어떻게 신학의 유익을 얻게 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을 공부해야하는지 이런 것들을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어쨌든 이 책이 아마 내년 9월경에 한국어로 출판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중국어로 바로 출판해서 여러분 손에도 바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 본 강의를 시작 하도록 하겠습니다. 누가 기도하겠습니까?
자, 이제 제일 먼저 살펴볼 것은 어떤 사람이 신학을 해야하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신학을 할 때에 어떤 사람이 되기를 기대하면서 신학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 우리 이 문제를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우선 먼저 우리들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지도자로 준비되어야 할지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나라의 역사를 움직여 오셨는지 살펴봅시다. 이것을 위해서는 우리들이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 그리고 또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우선 성경의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직후부터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고자하는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그래서 탁월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런 계시들이 보존되게 하셨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에는 아브라함의 가정을 통해서 이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들이 보존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국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모세라는 탁월한 지도자가 나타납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탁월한 영적인 인물이었을 뿐 아니라 당대의 최고의 학문을 왕궁에서 습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여호수아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능력과 카리스마에서는 모세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믿음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인도로 가나안땅에 들어가 나라를 세우게 됩니다. 평안한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락하게 되었고 이때 탁월한 선지자 사무엘이 나타납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세상을 떠난 후에 다윗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게 됩니다. 아마 구약에서 가장 높은 영적인 봉우리였을 것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신학자인 동시에 철학자였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존 오웬은 이 사람을 가리켜서 이 사람만큼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도 하나님께 사랑을 받은 사람도 구약성경에 없다고까지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인물의 산맥이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이사야라는 높은 봉우리가 하나 태어나게 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자라고 불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포로시대에 가까이 와서 예레미야라는 봉우리가 다시 나타납니다. 다니엘과 같은 인물은 포로시대에 높이 솟은 영적인 봉우리입니다. 그리고는 거의 산맥 없이 구름과 같은 수준으로 역사는 전개됩니다.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립니다. 그리고는 부활 승천하신 후에 사도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신약시대의 최고의 산봉우리는 사도 바울입니다. 그 외에 다른 사도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직접 교제했고 성령을 받았다는 점에서 탁월했지만 사도 바울이 도달한 영적인 높이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는 탁월한 신학자이고, 목회자이고, 철학자이고, 선교사였고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의 절반이상을 기록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아는바와 같이 사도들이 사라지고 속사도들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속사도교부들’이라고도 부릅니다. 그 사람들이 사라지면서 초대교회의 교부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원래 영어에서 'Church Fathers'라고 씁니다. 특별한 언급이 없으면 그것은 초대교회의 교부들을 의미합니다. 중세교부들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대게 중세 신학자라고 혹은 중세철학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로마시대의 사상적 박해가 있었던 2세기를 살았던 변증가들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오리게네스, 이레네우스, 테르툴리아누스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테르툴리아누스는 대단히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비록 그가 정통교회를 떠나서 몬타누스주의자로서 일생을 마치기는 하였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침이 불합리하다는 로마사상가들의 비판에 대해서 불합리하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거기에 있다는 역설적인 주장을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쓴 유명한 책 중의 하나인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라는 책입니다. 기록해두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관하여’ 라틴어로 쓴 책인데 ‘데까르노 크리스티’라는 책입니다. 거기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고 태어났다는 사실은 수치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다는 사실은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믿을만합니다. 무덤에 묻히신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일입니다. 제가 그의 책을 읽으면서 받은 인상은 무엇이냐 하면 순교하고 싶어서 안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핍박을 받을 때 도망을 가는 것도 죄를 짓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죽어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주 용기 있는 신학자였습니다.
동방교부들 중에는 크리소스톰이라는 유명한 인물이 4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서 있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설교가였습니다. 여러분이 혹시 유럽의 역사를 배우면서 이스탄불의 소피아성당을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 그 소피아성당이 서기 전에 그 자리에 예배당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크리소스톰이 목회를 했습니다. 어머니가 한 20살 정도에 아이 하나를 뱃속에 넣고 과부가 되었습니다. 아주 탁월한 미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청혼한 것입니다. 그런데 끝까지 수절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을 훌륭한 목회자로 키웁니다. 이 사람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골든 마우스’라고 합니다. 황금의 입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사람의 설교집을 읽는 것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런데 매우 엑셀런트 합니다. 특히 에베소서 설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철저한 성경주의를 따르는 정말 문학적인 설교였습니다. 물론 내가 이제 희랍어 원본으로 읽지는 못하고 영어로 읽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탁월한 설교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한번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 ‘아즈 폰테스’라는 말을 아십니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아즈 폰테스는 폰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인데 폰스는 샘물입니다. 물이 흐르는 원천을 이야기합니다. 그 원천이 ‘칼빈이 이런다더라! ‘루터가 이런다더라. ‘바빙크가 이런다더라!’ 그런 이야기를 수없이 주워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직접 가서 봐야합니다. 그래서 신학이 공부할 양이 많은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크리소스톰의 중국어로 된 책을 볼 수 있습니까? 아마 있을 것입니다. 없으면 교부에 대한 책을 구하시면 됩니다. ‘니케아종교회의 이전의 교부들과 이후의 교부들’이라는 책입니다. 그 사람들의 중요한 작품들만 모아놓은 책이 어드만사에서 출판된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이 한 40권정도 됩니다. 그리 비싸지는 않습니다. 조금만 주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좋은 책은 미국에 있는 캐톨릭 유니버시티에서 나오는 'Church Fathers' 라는 책이 있는데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책이 120권정도인데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 현재 교부들의 전집이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되어있는 것들이 530권정도 됩니다. 그런 책들을 시간이 없으니까 다 읽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서 이렇게 크리소스톰의 이야기를 하면 크리소스톰이 무슨 책을 썼는지 한번 펼쳐서 반 권이라도 혹은 1/3이라도 직접 읽어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학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의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시골동네의 사제로 열심히 목회를 잘하고 있었는데 워낙 설교를 잘하니까 동네에 모두 소문이 난 것입니다. 그래서 귀족들이 저 유명한 설교자를 저런 촌놈들이 모시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 같은 지체 높은 사람들이 들어야한다며 거의 납치하다시피 하여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그것이 큰 실수였습니다. 오자마자 이 사람이 제일 먼저 한 일이 무엇이냐 예배당에 걸려있는 성물들 은과 금으로 만든 것을 다 떼어내서 두드려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식을 사서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귀족들이 사치스러운 생활과 방탕한 생활을 탄핵하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사치스러웠느냐하면 신발에다 보석을 잔뜩 박고 부채에 보석을 잔뜩 박고 와서 하인들이 모시고 오면 귀부인들이 다리를 꼬고 앉아서 설교를 듣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황제와 황후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탄핵하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황제의 이름이 아르카디우스이고 황후의 이름이 유덕시아이었는데 굉장히 사치스러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결국은 죽입니다. 죽이는데 그냥 죽이면 모든 사람들이 들고일어날 테니까 그렇게 죽이지 않고 유배지로 보냅니다. 그러면서 유배지로 끌려가는데 물을 주지 않습니다. 사막을 걸어가다가 쓰러져서 죽습니다. 그때에 그 사람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세상아 네가 나를 버리려느냐? 나도 너를 버리노라.’ 그래서 결국은 죽습니다. 그런데 정말 탁월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글을 신학교에서 다 가르쳐주지는 못합니다. 이런 것을 다 가르쳐주려면 신학교가 3년이 아니라 12년은 가르쳐야합니다.
그 다음에 교회사속에 다시 서방교회로 오게 되면 정말 사도 바울 이래 최고의 영적인 봉우리로 남습니다. 누구입니까? 어거스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제가 언젠가 여러분과 함께 어거스틴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나 이런 사람들을 가르칠 때는 제가 막 은혜를 받습니다. 굉장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를 좋아한다는 모든 사람들을 나는 좋아합니다. 그리고 대화가 통합니다. 최고의 신학자입니다. 그래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읽지 않은 사람들은 말하지 말라.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봉우리가 높이 솟았다가 다시 내려오게 됩니다. 그러다가 두 세기가 지난 후에 서방교회가 아닌 동방교회에서 사실상 마지막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다마스쿠스의 요한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다메섹의 요한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은 탁월한 경건과 지성을 동시에 소유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쓴 유명한 책 가운데 The Fountain of Knowledge라는 책이 있습니다. 지식의 원천입니다. 저는 이 사람을 책을 몇 권 읽었는데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여러분과 거의 1400년 정도 차이가 나는 사람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신학을 얼마나 철저히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종종 중국의 역사를 보면서 1500년, 2000년 전의 역사책을 보면서 사상가들을 접하게 되면 감탄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우주와 세계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구나 하는 인상입니다.
그리고 똑같은 일들이 신학의 역사에서 일어납니다. 저는 사실 부끄럽게도 중국의 철학에 대해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습니다. 요새는 조금 읽어보려고 합니다. 펑유란의 중국철학사, 주희의 주자학, 노자나 장자의 책들을 많이는 읽지 못하지만 그래도 읽어보자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동북아철학 특별히 중국철학과 서양철학을 같이 보면서 명문학적인 이해를 가지고 철학을 쌓아올리면 굉장히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고향사람들이 잘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중세로 접어들면서 또 다른 산봉우리들이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2차 십자군전쟁에 참전해서 병사들에게 설교하던 끌레르보의 베르나르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시스의 프란시스가 그 뒤를 잇게 됩니다. 이때에 유명한 피터 롬바르드라는 사람이 나오고 캔터베리의 안셀무스 같은 신학자가 나옵니다. 그러다가 13세기에 와서 높이게 있어서는 어거스틴에 미치지 못하지만 넓이와 크기에 있어서는 어거스틴 못지않은 영향을 끼쳤던 아주 위대한 인물 한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구인지 아십니까? 토마스 아퀴나스입니다. 이 사람은 지체가 높은 집안에서 태어난 아들이었고 아주 순전한 인물이었는데 흠이 있다면 먹는 것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뚱뚱했습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 하나님만 사랑하고 공부만 열심히 하니까 아버지가 도저히 안 되어서 예쁜 자매를 하나 골라서 미인계를 쓴 것입니다. ‘너는 가서 우리 아들을 유혹하면 큰상을 네게 내리겠다.’ 예쁜 자매가 아퀴나스가 공부하는 방으로 들어옵니다. 아퀴나스가 보니까 너무 아름다운 미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어떻게 했느냐하면 난로에 가서 불붙은 장작을 꺼내서 그 여자에게 가까이 가서 휘둘렀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그리고는 나무의 불이 꺼졌습니다. 그것이 숯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것으로 십자가를 그리고 다시 난로에 나무를 넣고 ‘하나님 저는 당신만 사랑합니다.’ 그리고 공부만 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부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쓴 유명한 결정판이 무엇이냐 하면 Summa Theologica 그것이 무엇입니까? 신학대전입니다. 신학대전이라는 책이름은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도 읽어보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름만 많이 듣다보면 자기가 다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신학대전입니다. 읽어야합니다.
그 다음에 아퀴나스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독일에 등장합니다. 1300년에 태어나서 1361년까지 살았던 존 타울러입니다. 그 사람 앞에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헬리수스 같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역사에서 신비주의자로 분류되기는 했지만 그러나 굉장히 커다란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굉장히 중요한 사람 하나가 영국에서 나타나는데 이 사람의 별명이 종교개혁의 새벽별이었습니다. 누구입니까? 존 위클리프입니다. ‘아! 위클리프가 거기서 나오는구나!’ 라고 하실 것입니다. 위클리프가 나오고 지금의 폴란드에서는 존 후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프라하대학의 총장이었는데 가톨릭교회가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개혁해야한다고 개혁사상을 외치다가 죽게 됩니다. 폴란드어로는 후스라는 말이 거위라는 말입니다. 존 후스가 화형당합니다. 그 옆에는 항상 거위가 있습니다. 거위소리를 들어보셨습니다. 목소리가 굉장히 큽니다. 그리고 목소리가 오리소리는 귀여운데 거위소리는 정말 큽니다. 마지막 죽으면서 남기는 말입니다. ‘너희들이 지금 나를 죽인다. 내 이름은 후스다. 내가 죽으면 100년 뒤에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거위 같은 인물이 나와서 내가 다하지 못하고 죽은 이야기에 대해 소리를 지를 것이다.’ 그랬는데 그 거위는 누구입니까? 마틴 루터였습니다. 마틴 루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혼자 높은 봉우리가 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투쟁하면서 종교개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츠빙글리, 멜란히톤, 하인리히 블링거, 볼프강 무스쿠스, 안드레아스 휘페리우스, 피터마터 버미글리, 피에르 비레, 존 낙스,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세대가 지난 후에 존 칼빈이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우게 됩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훈련을 받고 이 칼빈주의 신학을 전파하게 됩니다.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이것이 16세기 중반과 후반의 일입니다.
17세기에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의 황금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개신교교부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이 사람들은 종교개혁자 1, 2세대들이 굵은 붓으로 그려놓은 종교개혁의 대의를 세밀한 붓으로 그려가면서 학문적인 유산들을 남겨놓았습니다. 저도 사실은 이런 유산에 대해서 잘 몰랐습니다. 신학교를 다닐 때 이런 유산에 대해서 이성주의에 물든 작품들이라고 굉장히 얕잡아보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이 1970년대 이후 학자들의 역사연구를 통해서 속속들이 밝혀지게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실질적인 신학에 대해서 재평가를 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마존에 들어가면 책을 구할 수 있는데 중국어로는 번역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Post Reformation Reformed Dogmatics 라는 책인데 PARD 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종교개혁 이후의 개혁파 신학’ 이라는 책입니다. 4권으로 된 책인데 아까 이야기한 책처럼 그렇게 비싸지 않습니다. 미국 책은 그렇게 비싸지는 않습니다. 이 책을 쓴 분이 리처드 먼로 교수입니다. 세계적인 학자이고 칼빈신학교 역사학교수로 재직하시다가 작년에 은퇴하셨습니다. 저하고 교분이 깊은데 제가 이분의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더 이야기하면 오늘 이야기하다가 밤새울 정도로 엄청난 이야기들이 이 안에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17세기에 와서 아주 이 개혁파 신학에 있어서 중대한 업적과 유산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책을 꼭 사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 중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들은 교회에서 도움을 받아서 본인들이 꼭 필요한 책을 사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학생들은 책을 많이 사야합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영어공부를 하라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서 엄청난 양의 번역서적들이 있습니다. 사실은 영어를 몰라도 신학공부를 하는데 어느 정도는 가능합니다. 그런데 중국은 자료가 너무 없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려면 영어, 불어, 독일어, 화란어, 스페인어, 라틴어 이런 것을 다하면 좋겠지만 이런 것을 다하지는 못하더라고 일단 영어만이라도 해서 읽어야합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엄청난 업적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제가 리처드 먼로 교수를 만났는데 이분이 가지고 있는 17세기에 쓰인 책 구만 권을 파일로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60,000 타이들 정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열린 교회에 왔던 분들은 고서방에 들어가 본적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있는 책들이 대부분이 17세기에 나온 책들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비쌉니다. 책 한권에 비싼 것은 30,000위안에서 50,000위안정도 되는데 한권입니다. 그 사람들 중에서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추려낸 것인데 한번 들어보십시오. 칼빈의 제자라고 불리는 데올로도 배자, 자카리아스 우르시누스, 프란시스코스 유니우스, 윌리엄 퍼킨스, 바톨로매우스 캐커만, 아만두스 폴라누스, 윌리엄 에임스, 프란시스코 고마루스, 요한 하인리히 알스테드, 히스베르트 푸치우스, 패트루스 판 마스트리히트, 프란시스 튜레틴, 존 오웬, 리처드 백스터, 에임리스 하인리히 하이데거루스, 토마스 위즐리 이런 사람들이 17세기에 활동했던 사람들입니다. 실제로 활동했던 사람들의 1/100도 안됩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플라톤을 공부하면서는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감사했고, 어거스틴을 공부하면서는 기독교인인 것에 감사했고, 루터와 칼빈을 공부하면서는 가톨릭사람이 아닌 개신교도인 것이 자랑스러웠다면 내가 개혁파 정통주의를 공부하면서는 내가 개신교파 중에서 개혁파교인인 것에 대해서 무한한 긍지를 느꼈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런 위대한 인물들이 나타나다가 18세기에 와서 개혁파정통주의도 이성주의에 물들면서 원래의 독특한 성격을 상실하고 합리주의로 변질되게 됩니다. 그러면 18세기에 와서 존 웨슬레, 조지 휫필드 같은 인물들이 나타납니다. 저는 한때 이 조지 휫필드의 전기를 모으고 읽는 일에 30대 중반에 열심을 냈었습니다. 굉장히 존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매튜 헨리 같은 사람이 나타나고 조나단 에드워즈 같은 사람이 미국에 나타납니다. 아브라함 카이퍼, 벤자민 훠필드, 바빙크 같은 신학자들이 나타납니다. 여러분이 항상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신학을 공부할 때 자신이 어떤 사람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신학공부를 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옆에 있는 동료 목회자들을 자기의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런 성경과 역사 속에 나타났던 위대한 인물들 중의 한사람을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그 사람을 닮아가려고 애를 쓰면서 신학을 해야 합니다.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입니까?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전도가 무엇입니까? 전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던 사람들을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주는 사람이 목회자다.’ 그래서 지성이 필요하고 그래서 신학이 필요하고 그래서 여러 가지 일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어떤 사람이 신학을 공부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반드시 소명이 있어야합니다. 그 소명을 이야기할 때 그 소명의 정체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신학교 교수로 있을 때의 일이었습니다. 신학대학원에서 입학시험을 보는데 많은 학생들이 면접을 하러왔습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어떤 남자 신사분이 오셨습니다. ‘당신은 왜 신학교에 오려고 합니까?’ 그랬더니 당연히 목회를 하려고 왔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게는 80이 넘는 노모가 있습니다.’ ‘그래서요?’ ‘우리 어머니 평생소원이 제가 목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효도하러 왔습니다.’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랬습니다. ‘당신은 집으로 가시고 그 어머니를 신학교로 보내시오.’ 그것은 소명이 아닙니다. 소명의 출발은 항상 자기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부르시는 하나님께 소명의 기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사람이 목회의 소명을 받기 전에 먼저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는 영적인 경험이 있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십자가와 부활사건에 대한 경험입니다. 여러분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이 사건은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세 가지 편견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신학적 편견이었습니다. 무슨 편견이냐 하면 예수는 메시아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심리적 편견이었습니다. 이스라엘만이 선택된 백성이고 이방인들은 쓰레기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영적 편견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다메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커다란 신학적인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무슨 혼란이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죽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죽여 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냥 예수를 죽이라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방법까지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어차피 예수는 없애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목을 쳐서 죽이든지 땅에 묻어버리든지 상관없는데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꼭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요구 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안에 종교지도자들의 음모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는 믿지 않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당신이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이 그 시체를 감추고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소문을 내면 더 어지러워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소문이 돌아도 절대로 그런 데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21장에 보면 나무에 매달려죽은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무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이런 종교지도자의 음모에 이 사람이 철저히 세뇌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하나의 명제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것이 뭐냐 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자기가 부인할 수 있었는데 직접 만났습니다. 직접 만나니까 부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명제가 나옵니다. ‘예수가 부활했다.’ 그런데 자기 스스로 부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입니다. 이 부활의 전통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째 전통은 뭐냐 하면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누가 그랬습니까? 에녹과 엘리야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굉장히 의롭다고 인정해준 사람입니다. 또 하나는 부활인데 그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시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켜서 데려가셨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외경에 ‘모세의 승천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래서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 부활했다. 그러면 그 사람을 하나님이 인정해주셨다는 것인데 인정해주신 그 사람을 어떻게 저주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저주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 사람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서 성결의 영으로 다시 살아나실 수 있을까? 엄청난 혼란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거기서 대속의 교리를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가 저주받은 것은 사실인데 예수는 자기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주를 받은 것과 하나님이 인정해주신 것 사이의 모순이 극복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엄청난 신학적인 빛이 사도 바울 속에 찬란하게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한 순간에 눈의 비늘이 떨어지면서 역사와 성경과 이 모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이 확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열린 눈으로 기독교 전체를 생각하면서 쓴 것이 로마서입니다. 그 열린 눈으로 교회와 세계의 관계에 대해서 쓴 것이 에베소서입니다. 그 열린 눈으로 그리스도와 세계에 대해서 쓴 것이 골로새서입니다. 정말 위대한 책입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가장 신학적으로 사도 바울의 최고의 절정을 보여주는 신학 책입니다. 그렇게 구약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을 보고 달려왔고, 그 다음에 신약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 한사람 때문에 전개되고, 마지막에 세계의 성취가 그리스도 한 사람에 의해 성취된다는 것을 한순간에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세계관속에서 인류역사 이래로 계속되어왔던 철학의 질문 ‘나는 누구인가? 세계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서 해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시작할 때 소피아, 소피아, 소피아, 소피아를 계속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희랍어로 ‘소피아’가 ‘쯔메’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쯔메’가 ‘소피아’이고 그 소피아가 철학자들이 이야기했던 그 소피아입니다. 필로소피아입니다. 맨 처음에 사람들에게 전해지던 이 기독교신앙은 아주 명백하게 말하자면 철학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철학적인 종교로 사람들에게 던져졌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에 밀려오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이 밝은 소피아를 모르고, 예수를 모르고 멸망하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이 속에서 눈물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런 사랑이 너무 끊어 오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일반적인 직업 활동을 하면서 그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 열망들이 너무나 커서 내가 이 목회의 길을 걸어가지 않으면 화가 있을 것 같고 내가 저 사람들의 불행을 보고만 있으면 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이 마음이 바로 목회의 소명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강의를 하면 항상 이런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신학을 하는데 이런 마음이 없으면 나는 어떻게 합니까?’ 그러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도 신학을 계속하는 방법이 있고 그만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 한권씩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자네 정말 그 길을 가려나』 가지고 있습니까? 한국에서는 이 책이 거의 고전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못 읽은 신학생들은 거의 없습니다. 십만 부 가까이 팔렸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서 많은 학생들을 신학교를 그만두게 만들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사람들이 그 책을 읽으면서 ‘아 나는 하나님께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구나!’ 그리고는 신학교를 나가서는 일반대학으로 다시 가거나 취업을 합니다. 또 한 가지의 방법은 무엇이냐 하면 열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도 예수님을 그렇게 만나게 해주십시오. 끝까지 제가 주님을 만나지 못하면 그만두겠습니다. 그러면서 열렬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시간에 내가 어떻게 해서 목회자가 되었는지를 지금까지 배운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