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의 주일성수, 그 평가와 계승
녹취자 : 오희열, 조원정
I. 들어가는 말
사실 오늘날은 주일 성수에 대해서 갈등을 거의 안 할 정도로 자유로워지지 않았겠습니까?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를 썼던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교회에서 연세 드신 장로님들과 젊은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주일을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에 대해서 말입니다. 사실 교회가 아주 명쾌하게 어떻게 주일을 지켜야한다는 것에 대해서 답을 잘 해주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곧이곧대로 이야기를 하자니 현실적이지 않고 현실을 따르자니 아무래도 신학적으로 성경적으로 동의가 안 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우리 시대에 주일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분류를 하자면 네 가지 정도의 태도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첫째, 편의적 자유주의입니다. 이것은 주일이고 뭐고 내가 편하면 그만인 것입니다. 가고 싶으면 가고, 말고 싶으면 말고, 집에서 놀고 싶으면 놀고, 놀러 가고 싶으면 놀러가는 것입니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해 있다고 봅니다. 두 번째는 치우친 일원론입니다. “예배가 따로 있겠는가? 삶이 예배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도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말하지 않는가?” 이것을 아주 강조하면 사람들은 주일이 다른 날과 특별히 구별되는 날이라는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떤 큰 교회는 청년들이 예배를 안 드리고 11시에 달동네에 봉사하러 가도 교회에서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가서 열심히 봉사를 하고 양심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주일날 예배를 안 드리고 은혜를 못 받으니까 사람의 심령이 자꾸 곤고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치우친 이원론입니다. 이것은 주일을 지키는 것과 안 지키는 것을 대적관계로 두고, 회사나 누군가가 주일에 어떤 일을 시키거나 실제로 군대에서 주일날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자기는 주일이라서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군대에서는 그런 편의는 봐줍니다. 보초를 서지 않겠다거나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날은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교회에 있어야하고 이런 것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면 사탄과의 한 판 싸움으로 생각하고, 한 번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순교할 각오가 되어있는 전투적인 자세를 가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감히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 네 번째는 경험적 축복론입니다. “주일을 잘 지키니까 결국은 이익이 되더라. 복을 받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 자리에서 설명하자면 시간이 많이 걸릴 정도로 많습니다. 주일날 결정적인 어떤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을 포기하고 주일을 잘 지켰더니 하나님이 더 놀랍게 보상을 해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정말 공무원이 되고 싶었고 충분히 고시에 합격할 실력이 있었는데 주일을 지키기 위해서 그것을 포기하고 장사를 했더니 돈을 많이 벌어서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어서 판검사 부럽지 않은 사업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더라 하는 식의 이야기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런 네 가지가 크게 유행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 어떤 것에 속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때그때마다 네 가지 중에서 하나씩 선택하며 삽니다.” 퍽 지혜로우십니다. 그런데 멸치도 뼈가 있습니다. 문어보다는 멸치가 뼈대 있는 가문입니다. 비록 씹힐지언정 말입니다. 이만큼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녔다면 자기 주관이 서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II. 주일의 규정과 성수 방식
그래서 성수주일과 관련된 논쟁점은 세 가지 입니다. 첫째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 타당한가? 두 번째는 주일과 안식일, 혹은 안식일과 주일이 서로 연속적인 관계에 있는가? 그리고 세 번째는 만약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한다면 어떻게 지키는 것인가? 이 세 가지가 큰 쟁점입니다.
A. 주일의 규정
우선 첫째로 안식교를 비롯한 일부 이단들에서는 기독교에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된 것이 대표적인 배교의 예라고 규정합니다. 그러면서 로마시대에는 일요일이 태양신 숭배의 날이었기 때문에 이 날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정하는 것은 기독교가 원래의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이방의 풍습과 야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특히 안식교에서 아주 강력하게 이것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안식교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요즘 주 5일 근무제가 되어서 안식교에서는 노래를 부르며 좋아할 것입니다. 그런데 일요일을 태양신을 숭배하는 날이라고 한다면 어떤 날 예배하는 것이 로마가 숭배하는 신들과 상관없는 날이 되겠습니까? 로마시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월요일은 달의 신(day of moon)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화요일은 'Tuesday'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쟁의 신 ‘티르’(Tyr)와 관계된 날이었고, 수요일은 ‘우든’(Wodin)이라는 폭풍의 신과 관계가 있고, 목요일은 ‘토르’, 금요일은 오딘의 처, ‘프레야’, 여기서 'Friday'가 왔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은 땅의 신 ‘사투르누스’와 관련된 날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안식일이 토요일임을 근거로 삼고 그날 예배하는 사람들은 이 ‘사투르누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를 섬기는 이단과 종교적으로 혼합한 것입니까?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B.C 63년에서 14년에 재위했던 아우구스투스나 혹은 214년에서 275년 사이에 재위했던 아우렐리아누스(Lucius Domitius Aurelianus, 214-275)라는 황제의 때 태양신을 중심으로 제국을 통합하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제국 안에 있는 수많은 종교들을 무시하면서 태양신으로 유일 종교화하려는 조치가 아니라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의 로마 정신으로 묶는 수단으로 사용한 정서적인 의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교회가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게 된 것을 비난하는 것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근거가 없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안식 후 첫날 부활하셨고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난 것도 주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뵈옵게 된 모임도 안식 후 첫날, 곧 주일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일곱 교회의 계시를 보게 된 것도 주의 날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이 주후 90-96년인데 그렇다면 이보다 훨씬 더 이전에 신학적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이 6일의 창조 안식보다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중요한 날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역사적으로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이 태양신 숭배와는 아무 상관이 없고 오히려 신약에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신학적 사실, 그리고 공교회가 그것을 확인한 역사적 결정과 관련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오히려 선교적으로는 ‘정황화(contextualization)’라고 하는데 이것은 어떤 선교의 가치를 그 시대의 상황 속에 침투시켜서 사실상 껍질은 기독교 밖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내용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꽉 채워버린 성공적인 선교사례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것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B. 안식일과 영속성
두 번째로 신약의 주일이 안식일의 연속이냐는 것인데, 이것은 크게 두 의견으로 나누어집니다. 안식일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신약시대의 주일은 안식일과 상관이 없다는 견해이고, 다른 하나는 신약시대의 주일은 안식일의 연장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면 어느 쪽이 자유주의이고 어느 쪽이 보수주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이 신학적인 견해가 나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의 폐지론은 누가 이야기했을까요? 신약의 주일을 이야기할 때 자꾸 구약의 안식일을 토대로 신약의 주일을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안식일 폐지론 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은, 안식일 제도의 폐지론을 이야기하나고 해서 신약의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안식일 제도의 영속론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도 주일은 안식일의 영원한 반복이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결국 강조점, 주축점을 어디에 두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1. 안식일 제도의 폐지론
그러면 안식일 제도 폐지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두 사람을 말하자면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입니다. 루터는 십계명의 안식일에 관한 제 4계명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규율하는 것이지, 오늘날 기독교인을 규율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 십계명에 나와 있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신약에 근거해서 주일을 지킨다고 보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동기가 안식일을 지키는 동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루터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유명한 어록이 있는데, “만약 어디서든지 그날이 단순히 그날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된다면, 주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다른 날과는 유별나게 다르도록 거룩한 날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어디서든지 유대교적인 근거를 주고 구약에서 하는 것처럼 그것을 준수하게 된다면 나는 그 안식일에 일하고 말도 타고 연회도 열고 춤도 추고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무슨 일이든지 하라고 교인들에게 명령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이 걸출한 종교개혁자는 안식일제도가 그리스도 구속과 함께 폐지되었다고 확신했습니다. 다만 안식일이 가지는 영속적인 의미까지 부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 제도 안에 있는 몇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노동으로부터 육체를 쉬는 것, 그날 특별히 집중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그날에 쉼을 누리면서 영원한 하늘나라의 안식을 바라보는 것 등인데, 이런 것들을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안식일 제도는 구약의 의식법과 함께 폐지되었다고 보았습니다.
존 칼빈도 역시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존 칼빈은 “제 4계명의 의식(儀式)적인 부분은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사도 바울의 주장을 근거로 어떤 날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다른 날들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미신적인 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영광의 광채를 가리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존 칼빈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에 있어서 안식일의 율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아주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러나 칼빈 역시 안식일의 종말론적인 의미 즉, 안식일은 그냥 안식일이 아니라 저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그 날에 우리의 영혼과 육체가 온전히 쉼을 누리고 한없이 즐거워해야하는 그 날을 바라보는 날이라는 것,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휴식의 맛보기를 보는 날이 주일이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인 필요, 즉 사람들이 늘 바쁘게 살아가기 때문에 하루정도를 따로 떼어 놓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세상에 노출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진리에 노출하고 은혜를 받아야 할 필요성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날을 지킴으로써 전 생애에 걸쳐서 완전을 향해 나아간다는 입장, 다시 말해 주일을 잘 지킴으로서 우리가 보다 더 성화를 이루어가는 온전한 신자가 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칼빈은 안식일제도의 폐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걸출한 개혁자 두 사람이 안식일은 폐지되었고 신약의 주일은 안식일과 다른 것이라고 이토록 강력하게 이야기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100년 후에 청교도들이 가졌던 견해는 이 두 사람의 견해와 약간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견해는 근소한 차이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루터와 칼빈의 견해보다는 영국 청교도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그 사람들을 따르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교단의 법이 형식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 유명무실해졌지만 말입니다. 절대 여러분은 청교도의 전통을 따르지 않습니다. 걱정마십시오. 너무나 잘 따른다고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 왜 이 분들이 그렇게 강력하게 구약의 안식일이 폐지되었고 신약의 주일과의 연속성을 끊으려고 했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여기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이 당시 16세기 초반 로마 가톨릭에서는 중세의 미신적인 전통을 따라서 수많은 성일과 절기들이 있었습니다. 날마다 어떤 성인의 날, 누가 죽은 날 등등 수많은 절기들을 만든 것입니다. 그 날들이 365일 중에 절반이 넘을 정도로 절기가 있었습니다. 그날 그 성인을 축복한다든지 기념한다든지 하면서 온갖 예식들을 가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거의 미신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다 말씀드리기에는 너무나 많습니다. 한참을 읽어도 다 못할 만큼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사람들이 어떤 이름가진 날들을 지키는 것이 미신적으로 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19세기 교회사가 중에 장 메를 도비뉴(J. H. Merle D'Aubigne, 1794-1872)라는 유명한 프랑스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쓴 『16세기의 종교개혁사』라는 유명한 책에서는 당시에 절기를 준수하려고 애쓰는 불경건한 신앙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습니다. “(16세기에) 불경한 정신이 신앙을 침범하여 믿는 자들에게 자기성찰과 사랑을 강력히 요청해야 할 교회의 절기들이 저속한 익살과 이교도의 신성모독으로 불경해졌다. 부활절의 주흥은 교회행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부활 축하일은 기쁨으로 기념하는 날이어야 했기에 청중을 웃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추구했고 설교 속에도 이런 내용을 집어넣었다. 한 설교자가 뻐꾸기 소리를 흉내 내면 또 다른 설교자는 거위처럼 쉑쉑 거렸다. 한 설교자가 성직자의 옷을 입은 평신도를 제단으로 끌고 가고, 두 번째 설교자는 가장 외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세 번째 설교자는 사도 베드로의 모험을 이야기하면서 그가 어떻게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많은 가운데 주인을 속이고 돈을 내지 않았는지를 이야기했다. 좀 더 열등한 성직자들은 그보다 우월한 성직자들을 조롱하는 것에 이 순서를 이용했다. 이렇게 교회는 무대로 변해갔고 사제들은 협잡꾼들이 되어갔다.” 이것이 16세기의 일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일은 매우 특별한 날이다. 그리고 이 날은 그냥 특별한 날이 아니라 구약의 안식일이 뿌리이다. 구약의 안식일이 바로 이 주일이다.”라고 이야기하면 그 속에 또 다른 미신이 들어가서 진짜 주일을 지키는 본래적인 정신을 상실할 것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절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들이 그 시대의 역사적인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구별을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나 칼빈이 교부와 중세시대로부터 계속되어 온 주일 성수와 의무를 중대하게 폐기하고자 했던 것이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점은, 개혁자들은 주일 성수에 있어서 미신적이고 공로적인 요소를 제거해서 명실상부하게 그 날이 그리스도의 구속과 ‘인간의 자유’가 기념되는 ‘주의 날’(Lord’s day)이 되게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를 함으로써 자기 의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보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오직 은혜로써 믿음으로써 그리스도라고 하는 종교개혁의 신학을 따라서 안식일 폐지론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2. 안식일 제도의 영속론
이에 비해서 안식일제도의 영속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 찰스 핫지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모두 걸출한 신학가들이고 우리의 복음주의에 위대한 유산을 남겨 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입장에 의하면 주일과 안식일 사이에는 신학적으로 연속성이 있고, 주일은 안식일 제도와 연속선상에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청교도들이 바로 이러한 견해를 취했습니다. 청교도들이 이러한 견해를 구체화시킨 것은 앞에서 말씀드린 루터와 칼빈 이후 약 80년에서 1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일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런 견해를 취해서 “안식일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의 안식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안식일은 영원하다. 주일은 그 구약의 안식이 영원한 안식으로 이행하는 한 과정이다.”라고 보았습니다. 견해가 다른 것입니다. 루터와 칼빈은,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을 바라본 것이고 신약의 주일은 영원한 안식을 바라본 것이라고 해석했고 영속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구약의 안식일은 영원한 안식을 바라본 것인데 그 사이에 과도기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주일이 등장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안식일이 주일보다 훨씬 영속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고 주일은 안식일이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루터와 칼빈이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을 거쳐 영원한 안식의 의미로 넘어갔다면, 이들은 구약의 안식일이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과정에 신약의 주일이 있는 모습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여기서 신학적인 견해의 차이가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견해는 왜 생겨났겠습니까? 이들은 마틴 루터와 존 칼빈 때에 있었던 역사적 상황과는 좀 다른 상황에 놓여있었습니다. 영국의 성공회가 왜 생겨났느냐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새 장가를 가려고 했는데 교황이 허락을 해주지 않자 뿔이 나서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버렸는데 그게 성공회이고, 자기가 스스로 성공회의 머리가 된 것이라는 학설을 널리 퍼트리는 데에 기여하신 분이 『먼나라 이웃나라』의 이원복 작가였습니다. 사실 신학이나 역사학계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면 창피를 당하게 됩니다. 그것은 그냥 흘러가는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간단하게 하는, 정치, 사회적인 시각에서 그렇게 보는 것이지 신학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영국 성공회에는 전 세계적으로 8500만에서 9000만 명에 이르는 신자가 있는데, 영국 성공회 전체의 머리는 영국 여왕이 아닙니다. 어떤 한 나라에 성공회가 있으면 영국 성공회와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협의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어디 가서 성공회는 헨리 8세가 앤 불린에게 장가가려는데 교황의 반대로 뿔이 나서 만든 종교라고 하면 욕먹습니다. 그러면서 절대 열린교회 다닌다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그렇게 가르친 줄 오해합니다.
종교개혁은 가톨릭으로부터의 개혁이고 성공회는 가톨릭의 개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톨릭 안에서 튀어져 나온 개혁이 종교개혁이고 가톨릭 안에서의 개혁이 성공회입니다. 그래서 가톨릭과 비슷하지만 거기에도 여러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의식을 아주 중시하는 고교회부터 저교회까지의 층차가 있어서 각기 조금씩 차이가 나고 신학적인 견해도 아주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흔히 대하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같은 신학자는 성공회의 중도주의적 복음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학자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시대에, 16세기 초에 이미 이런 일들이 일어났고, 그 다음 17세기 초의 일인데 제임스 1세와 그 후계자인 찰스 1세 때의 정치상황과 청교도들의 주일성수의 견해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주일 성수로 넘어가겠습니다.
III. 청교도들의 주일성수
A. 역사적 배경
제임스 1세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이 1617년에 아주 재미난 포고령을 내립니다. ‘스포츠 선언(Declaration of Sports)’이라고 하는 왕명을 공포합니다. 그 내용은 주일에 예배를 드린 다음에는 여러 가지 스포츠나 오락을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왕이 오지랖도 넓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왜 그런 것일까요? 여기에 정치적인 요인이 있습니다. 그때 청교도들은 적었지만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영국 역사를 보시면 알지만 영국은 13세기부터 귀족들이 왕의 말을 듣지 않고 저항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1215년의 ‘마그나카르타’(권리대장전)입니다. 핵심적인 내용이 “대표 없는 세금은 없다.”라는 것입니다. 즉 영주들에게 세금을 받으려면 권한을 달라는 것입니다. 영주들은 자신들이 세금을 내면 대표로 의회에 나가고 의회에서 국사에 대해 함께 의논하면서 자기들의 허락을 받고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되지도 않을 소리였겠지만 영국에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호족들의 세력이 워낙 컸고 왕은 중앙정부에 군대를 가지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예비군처럼 일시적으로 각 영주들이 군대를 보내고, 그들이 내는 세금을 가지고 군비를 만들어서 전쟁을 하고,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면 다시 해체되는 체제였습니다. 군대는 실질적으로 영주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왕에게는 실질적인 권한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때의 청교도들의 다수가 의회에 진출해 있었고 이 사람들은 비국교도파라고 해서 성공회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청교도들 중에서는 어떤 지역을 다스리는 통치자들이 있었을 텐데, 이 사람들이 엄격한 청교도 주의자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칼빈에게로부터 배웠는데 칼빈보다 더 엄격하게 주일을 지킬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 배경이 바로 이 ‘스포츠 선언’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1617년에 제임스 1세가 공포한 스포츠 선언은 동물을 죽여서 피를 흘리는 가학성 스포츠만 아니라면 주일 예배를 마친 뒤에 얼마든지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여기에는 스포츠만이 아니라 악기연주, 댄스, 뜀뛰기, 나중에는 술잔치와 가면무도회가지 모두 허용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왕은 “엄격한 주일 성수는 영국 국민들로 하여금 속박감을 느끼게 해서 종교로부터 멀어지게 할 것이다. 종교가 국민들을 너무 구속하면 종교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주일에 스포츠와 오락을 허락함으로써 국민들의 건강에 이바지하고 젊은이들은 신체를 단련해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자.”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임스 1세가 1617년에 랭카셔라는 지역을 시찰했습니다. 그때 지역 주민들로부터 정식으로 탄원이 들어오는데 그 내용은, 청교도 지도자들이 너무 엄격하게 주일을 지키라고 요구해서 주일에 스포츠 활동을 못하게 하고, 하면 교회에서 치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국가에서 허용을 해서 교회가 그런 것들을 금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임스 1세는 이것이 청교도들의 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고 여기고 그것을 허락했습니다. 교회 안에 있던 비회심자들, 청교도들의 설교를 들으면서 ‘정말 꼬장꼬장하고 더럽게 기네.’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정부권력이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된 것입니다. 오후 예배를 드리면 바깥에서 꽹과리를 치면서 예배드리지 못하도록 방해를 했습니다. 노는 시간에 왜 예배를 드리느냐고 하면서 말입니다. 제임스 1세는 이러한 무질서가 생겨나기를 내심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일은 두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임스 1세의 이런 조치가 청교도들로 하여금 더 엄격한 안식일주의자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는 많은 검토를 필요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상황 하나는, 이러한 정치와 맞물려있는 종교적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청교도의 입장에서는 주일 문제에 대해 더 단호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일에 대해서 양보의 태도를 취하고 주일 오후에 놀이를 하거나 놀러가는 것은 제임스 1세를 추종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더 엄격한 주일 성수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준 것입니다. 주일 성수에 대한 입장을 포기하는 것은 청교도들에게 거의 배교(apostasy)를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B. 엄격주의적 주일성수
한참 이런 상황을 겪을 때, 1643에서 1647년 사이에 그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기준 문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소요리문답 이런 것들이 약 4년 동안 웨스트민스터에서 회의를 통해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 웨스트민스터의 기준 문서들이 탁월한 신학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인정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 개혁신학에 대한 역사적으로 가장 정교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주일에 대한 고백들이 나오게 되는데, 여기에서 제가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린 이런 미묘한 상황에서 신앙고백서들을 작성하게 되었는데, 주일에 대해서 상세하게 규정을 했겠습니까, 아니면 널널 하게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상세하게 규정을 했습니다. 칼빈이 제네바 교리문답 등에서 주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것이 커다란 지침만을 설명한 것이었다면, 여기에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조항들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스포츠선언에 맞선 사람들에게는 추방령이 내려졌습니다. 제임스 1세에 의해서 왕위에 오른 찰스 1세는 1625년에 또 다른 포고령을 내립니다. “일요일이라고 불리는 주일에 저질러지는 부패한 행동의 처벌에 관한 법령들”을 공포합니다. 이때에는 주일에 ‘곰 놀리기’, ‘소 놀리기’와 같은 동물들을 학대하는 스포츠를 금하고, 어길 때에는 벌금형에 처한다는 뜬금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앞에서는 제임스 1세가 주일에 이런 놀이를 해도 좋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가학성 스포츠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 정치 공학적으로 의회파와 왕당파가 싸우는데 의회파가 훨씬 강한 세력을 얻게 되었고, 제임스 1세의 스포츠 선언을 취소할 수는 없으니까 가학적인 스포츠를 금하여 비국교도들을 지지하는 법안으로 포고령을 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편, 제임스 1세의 스포츠선언을 지지하는 국교도들 속에서는, 특히 친왕당파적인 성격을 가진 성직자들 속에서는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광범위하게 인정하며 더욱 더 이것을 재천명하면서 교회가 그런 식으로 주일 예배를 드린 후에 스포츠를 하고 유희를 하는 일들에 관대해지기로 입장을 확고히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청교도들이 가만히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청교도들은 강단이 있는 신앙을 가진 신앙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기라성 같은 학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안식이 제도의 연구에 박차를 가하여 눈부신 성과물들을 내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이 연구할 때는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주일은 그런 식으로 지내서는 안 되는 날이고, 이것은 항구적이고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날이어야 한다.” 기독교라고 하는 그룹 안에서, 그들의 엄격주의를 지향하는 교파 안에서 지켜져야만 하는 종교적 관습이라면 이것은 보다 더 넓은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비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교파의 견해의 문제가 아니라 기독교 전체의 문제이고 더욱이 안식일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 속에는 특별은총의 영역만이 아니라 자연법적인 질서와도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하면서 일반법적인 질서에까지 확장을 시켜나갔습니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주일에 대한 연구가 열어놓은 새로운 지평이었습니다. 안식일이 가진 자연법적 의미, 인간의 본성 안에 숨겨진, 인간의 보편적인 인간성이 공감할 수 있는 자연법적 의미를 탐구함으로써 주일성수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장 자크 루소나 존 로크와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사회계약론 등이 자연법적 질서에 토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존엄과 가치를 지닌다. 인간은 존엄하고 가치 있는 존재다.” 이런 것이 하나의 자연법사상입니다. 이것이 어느 나라 법에 그렇게 되어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신성한 권리를 하나님이 천부적으로 인간에게 부여한 것이고, 우리의 본성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 자연법입니다.
이러한 자연법적 의미를 탐구함으로서 주일성수에 대한 그들의 단호한 태도가 기독교의 한 교리에 대한 종파적 소수의 종교생활이 아니라 인류전체의 일반은총적 생활에 적용되어야 할 자연법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확신에 나아가게 한 것입니다.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자연법적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상관없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어야지만 우리 육체나 이런 것들이 모두 제 질서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들을 쉽게 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견해의 근거들을 학문적으로 탐구해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구약시대의 안식일이 신약의 주일을 거쳐서 종말의 안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엄격주의적 주일 성수를 주장합니다.
그러면 청교도에 이르러 갑자기 이런 식으로 주일을 엄격하게 지키게 된 것인가, 청교도 이전에는 주일을 어떻게 지켰는가에 대해 의문이 생깁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엄격하게 지키게 되어있었습니다. 특히 중세시대는 말입니다. 그런데 로마가 국교화 되고 계속 변하기는 하지만 중세시대에 주일을 지키는 모습, 정신, 규례 등은 교부들이 지켰던 것들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교부들이 가지고 있던 견해가 중세에 오면서 변질되고 종교개혁자들의 시대에 와서는 극도로 변질되었습니다. 엄격하게 그것을 지킨다기보다는 고백은 있지만 실제의 삶이 법 규정에 눌리고 현실을 따라오지 않았고, 종교개혁자들의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이렇게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해석함에 있어서 중세의 신학자들이 아니라 교부들에게 돌아가서 다시 성경의 의미를 파악하면서 종교개혁을 세워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도적 성격을 재현했듯이, 주일 성수도 똑같은 신학적 구도를 가지고 전개하게 된 것입니다.
출처가 불분명하지만 일반회중에게 널리 회자되던 『일요일에 대한 서신』(Epistle on Sunday)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근거를 찾을 수는 없지만 그 책에서는 천지가 창조된 것, 예수님이 잉태, 탄생, 부활 등이 일어난 날이 모두 일요일이기 때문에 주일은 실제적인 기원을 갖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잉태된 날이 일요일인지 어떻게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주일성수에 대한 논의는 토마스 아퀴나스와 이후 13세기 스콜라 신학자들의 새로운 해설로 마무리가 되는데 이것이 개신교에도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참고로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식일의 계명을 둘로 나누는데 첫째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노동을 그쳐야하는 의식적인 의미이고, 두 번째는 도덕적인 의미로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시간을 따로 떼어 두어야하는 것이었습니다.
여기 도표에 보시면 에라스무스의 조금 웃기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에라스무스가 이렇게 얘기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주일에 신발을 한 번 수선하는 것은 천 명의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조롱하는 이 나오게 된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의무와 인간을 향한 의무를 너무 엄격하게 구분했기 때문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 게 심각한 죄입니까? 사람과의 약속을 어긴 게 심각한 죄입니까? 종교적으로 볼 때 어떤 쪽이 심각합니까?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긴다고 해도 하나님이 우리를 감옥에 가두거나 벌금을 내라고 하시지는 않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사람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더 심각할 것입니다. 돈을 갚기로 하고 갚지 않으면 당장 경찰서에 불려가고 고소당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감옥에 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십일조를 안 했다고 누가 감옥에 들어가겠습니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만 종교적으로 본다면 하나님에 대한 의무가 더 크겠습니까? 인간에 대한 의무가 더 크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쪽일 것입니다. 이것을 극단적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사람을 죽인 것은 사람에 대해 죄를 지은 것이라고 보는 것이고, 주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께 직접 짓는 죄라고 본 것입니다. 말이 됩니까? 아직도 감을 못 잡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중세의 변질된 주일 성수를 타파하고 교부들에게로 돌아가서 교부들이 신약의 정신을 어떻게 계승하여 주일을 지켰는가에 대한 탐구로 돌아가서 그 것을 자신들의 신앙의 규범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청교도들의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에서 안식일에 관련되어 많은 문답들이 등장합니다. 칼빈보다 훨씬 더 상세한 문답들이 나오고 어떤 것을 금해야하는지 대소요리문답에 상세하게 나오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이 지켰던 엄격주의적 주일성수의 핵심적인 내용은 표에 나타납니다. 그 내용은 청교도들은 자신들의 주일성수 개념을 안식일 엄수주의에서 가져왔고 이는 당시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 아래서 주일의 신학적 의미가 특별은총뿐만 아니라 일반은총의 빛 아래에서도 해석이 되어야 한다는 신학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C. 언약신학 안에 있는 긴장
세 번째는 언약신학 안에 있는 긴장입니다. 청교도들의 주일성수에 대한 엄격주의적 경향은 그들의 언약신학과 관계가 있습니다. 16, 17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언약신학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점을 강조했는데 편무성(片務性, unilaterality)과 쌍무성(雙務性, bilaterality)입니다. 편무성이라는 것은 설교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자주 발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다고 하면 우리는 이 구원이 내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언약관계를 통해 부어지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에 의지하여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언약백성이기 때문에 잘 해야 하는구나. 언약백성이 아닌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아야하는구나.’ 내가 정말 언약을 따라서 충실하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전자는 편무성에 대한 강조이고 후자는 쌍무성에 대한 강조입니다. 원래 이 언약이라는 말은 우리말에서는 말로 하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다분히 일방성을 갖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가 서로 합의해서 약속을 맺었을 때는 ‘언약’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약속을 맺거나 협정을 한다고는 할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베리트 카라트’, ‘언약을 쪼개다, 자르다’라는 단어나, 희랍어의 ‘디아데케’는 편무성이 아니라 쌍무성을 분명하게 의미하고 있습니다. 개혁신학의 전통 안에서도 구원을 설명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협력했기 때문에 우리의 공로도 상당부분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야기할 때는 언약의 쌍무성이 아니라 편무성을 많이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화에 대해서는,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술 먹고 스마트폰으로 장난이나 치고 놀면서 성화가 안 되는 이유를, 주님이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않으셨기 때문이고, 직무유기로 하나님을 고발해야 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화에 대해서는 쌍무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런 두 가지 전통이 개혁신학 안에서 함께 흘러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의 상황은 다른 개혁자들도 그랬지만 스위스 등지에서 있었던 것보다 영국이 훨씬 더 전투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스코틀랜드에서는 말입니다. 그렇게 정치적으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미묘한 상황 속에서 수많은 배교자들이 속출하였기 때문에 언약의 편무성과 쌍무성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것이 청교도들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아주 절묘하게 조합을 시켰습니다. 이 의미를 설명하자면 몇 시간을 해야 하겠지만, 예전에 죄와 은혜의 지배』같은 존 오웬의 책들을 열심히 읽었던 사람들에게는 모두 이해가 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어떻게 절묘하게 조합을 시켰는가는 『존 오웬의 신학』이라는 책을 보시기 바랍니다.
IV. 청교도들의 전통에 대한 평가
이러한 상황 때문에 청교도들은 주일에 대해서 엄격한 견해를 취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마르틴 루터와 칼빈으로 이어지는 개혁자들의 전통과는 서로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약간의 미묘한 차이는 벌어져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A. 종교개혁자들과의 차이점
이런 청교도들의 전통을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는 첫째 종교 개혁자들과의 차이점을 보겠습니다. 신학적으로 미세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과장 되어서 양자 사이에 심각한 갈들이 있는 것처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침소봉대한 것입니다. 작은 것을 너무 크게 벌린 것입니다. 약간의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주일 성수와 ‘아디아포라’의 문제입니다. 여기 표에 나오는 ‘아디아포라’는 원래 그리스어입니다. ‘아’는 ‘없다’라는 뜻입니다. ‘아’가 ‘디아포라’에 붙은 것입니다. ‘디아포라’는 영어로 'differance'입니다. ‘차이점, 차별점, 구별’ 등의 뜻입니다. ‘아’가 붙으니 구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학교를 들어가는데 그냥 실력으로 시험을 봐서 떨어질 것이냐 컨닝을 하고 합격을 할 것인가는 토론의 여지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여러분 밤에 차 끌고 가다가 쿵하고 어디 부딪히면 항상 써놓으라고 했습니다. 교회 차를 몰고 갔을 때도 똑같습니다. 봉고를 누가 몰고 갔는지 모릅니다. 욱하고 찌그러졌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찌그러뜨렸으면 나 남성 2교구 몇 구역 아무개 집사 나이 몇 살인데 내가 무슨 교회 봉사일로 안산을 넘어가다 골목길에서 차를 돌리다가 전봇대에 긁혀서 우르륵 긁었습니다. 이것을 제가 배상을 해야 되는 것이라면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을 주십시오. 그렇게 적어서 붙여 놓고 가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그것을 연락해서 교회 봉사 나간 집사님 보고 당신 다 수리해서 제대로 갖다 놓으라고 하겠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정말 교육을 받고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지 이해가 안갑니다. 예를 들어서 밤에 차를 대다가 살짝 쿵 했는데 찌그러졌습니다. 우리가 하는 태도가 똑 같습니다. 가서 이렇게 만지면 옆에 있는 사람이 “아이 괜찮아. 그 정도는. 어차피 차야 부딪히는 거지.” 그건 주인이 와서 그렇게 이야기 해야지 않습니까? “봐도 표 안나.” 컴컴한데 표가 납니까? 안 납니다. “몇 월 며칠 몇 시에 내가 받았다. 표는 잘 안 나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여기다.” 표시해 놓고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당신이 수리를 해야겠다고 생각이 되면 전화를 해라. 내가 책임지겠다.” 그게 인간의 아우라입니다. 불편합니다. 그냥 가면 되는데 해 가지고 30만 원정도 물어주게 생겼습니다. 그것이 인간으로 멋있는 삶을 살기 위해 들어가야 할 비용입니다. 책임을 지는 것이 인간으로서 도리입니다. 예뻐지려고 해도 화장품을 오만 원, 십만 원, 십오만 원, 비싼 것은 몇 십만 원씩 주고 바르는데 그것이 인간으로서 한 아우라를 보여주는 삶 아닙니까? 지나가다가 무엇을 툭 떨어뜨려서 유리를 깼습니다. 써 붙여 놓고 가야 합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교회에서 전화가 갑니다. 관리실입니다. 가슴이 덜컹 합니다. ‘유리창 깬 것 써 붙여 놓고 왔더니 드디어 연락이 왔네.’ 뭐라고 합니까? “안 다치셨습니까? 괜찮으세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예화) 제가 이런 설교를 했는데 실제로 지방에 내려갔더니 어느 설교 청취자가 열심히 듣고 봉고를 몰고 갔는데 얼마나 세게 후진을 했는지 부인이 트럭을 박아 버렸는데 봉고를 폐차할 정도로 박았답니다. 트럭을 보니 괜찮더랍니다. 그 정도 긁었는데 트럭이 괜찮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그냥 올까?’ 하다가 목사님 설교가 생각이 낫습니다. 그래서 메모를 했습니다. “우리 부인이 잘못해서 차를 긁었는데 괜찮은 것 같은데 혹시 마음에 안 들어서 수리를 원하시면 연락을 하십시오.” 하고 적었답니다. 내가 시킨 것 하고 똑같이 한 것입니다. 문자가 왔는데 “당신이 긁고 간 트럭 운전수입니다. 부인께서는 안 다치셨나요?” 얼마나 멋있습니까? 진짜 인간이 사는 세상 같더랍니다. 자기 과실에 대해 깨끗하게 책임을 지는 것은 얼마나 멋있습니까?
컨닝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공립학교를 갈 것인지 사립학교를 갈 것인지는 아디아포라입니까? 아닙니까? 많은 사람이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그렇게 많은 돈을 들여서 사립학교를 가면 되냐고 하는데 가난하면 가지 마십시오. 그런데 돈 있는 사람 욕할 것 뭐 있습니까? 그것은 각자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가족』이라는 책에도 썼습니다. 개념 없는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손주를 사립학교에 넣었다고 와서 온 집안을 헤집어 놓고 갑니다. 우리 아들이 뼈 빠지게 번 돈을 그 따위로 쓰냐고 말입니다. 같은 말을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까? 가서 영감한테 좀 달라고 해서 오십만 원이라도 봉투에 넣고 가서 “네가 어려운 살림에 그래도 우리 손주를 교육이라도 제대로 시키려고 애를 쓰는 것 보니까 참 고맙구나. 없는 살림에 애를 어떻게 사립학교를 보내겠니? 이거 보태서 교재라도 사주고 가방이라도 사 주어라.” 그것은 며느리가 알아서 해야 할 아디아포라입니다.
칼빈은 주일 성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상당 부분을 아디아포라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칼빈이 주일 성수나 예배 참석의 의무, 예배형식, 예전, 이런 것에 의해서 아무 규모 없이 예배를 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1537년에 제네바에서 목회할 때 제네바 교회의 법규인 제네바 교회 조직과 예배에 관한 규정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당시 로마 카톨릭의 미신적인 잔재로 혼돈스러웠던 제네바 교회와 예배의 개혁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 칼빈을 포함한 세 명의 목회자가 제네바 시의회에 제출한 문서입니다. 칼빈이 설교했던 기독교 신앙의 본연의 의미를 최대한 실현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보입니다. 예배와 예전에 있어서 엄격한 규정을 전제하면서 까지는 논하지 않았습니다. 주일에 대해서도 칼빈은 청교도들보다 훨씬 덜 규정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라고 하는 개념을 폭넓게 인정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사상은 종교개혁 이전 중세시대에 심각하게 교회의 어떤 규정들을 가지고 양심을 규율하는 것입니다. 수많은 규례들을 만들어서 해야 할 것과 못할 것들의 목록을 계속 상세히 만듭니다. 똑같은 일들을 누가 했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했습니다. 그게 바로 안식일의 유전입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을 가지고 논쟁을 합니다. 지나가면서 배가 고프니까 밀을 뜯어가지고 먹는 것입니다. 당시에 있었던 유대인들의 규정에는 위반이 되는 것입니다. 지나가면서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곡식을, 낟알을 뜯은 것은 추수한 것이고 비빈 것은 방아질을 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것이 유대인들의 해석이었습니다. 유사한 일을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 그런 식으로 카톨릭 교회가 주일 지키는 것에 대해서 강조하고 그것을 잘 지키면 그것이 하나의 공로가 된다는 사상을 퍼트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강력하게 방어하는 것이 뭐냐 하면 갈라디아서에서 사도 바울이 주장했던 그리스도인의 자유문제를 거론하려니까 아디아포라의 문제가 나오는 것입니다.
『기독교 강요』에서 칼빈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세 번째 부분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으로 어떤 외적인 사물에 의해서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신앙적으로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중립적인 것들, 그것이 아디아포라입니다. 아디아포라여서 어떤 때는 그렇게 하고 어떤 때는 그렇게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 허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에 칼빈이 기독교 강요 제 2권 429쪽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경건을 실천하는 어떤 사항들을 세워 놓고 신자들이 자유로운 양심을 가지고 그것을 행하거나 유용하지 않을 때는 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어떤 법을 만들어서 양심을 옭아매는 것 사이에는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다. 성경이 우리에게 지워지지 않는 어떤 의무의 아디아포라들을 수없이 만들고 이것을 인간이 규율의 멍에를 매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다는 자책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에 대한 반납입니다. 스스로 자의적으로 속박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성공하면 자기 의에 빠지고 또 하나님의 복음의 은혜와 자유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실패하면 정죄의식에 빠지게 됩니다. 칼빈은 이런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을 반대하면서 하나는 그런 식으로 세세한 규정을 만들어서 율법주의에 빠지는 것, 성공하면 자기 의가 쌓이고 실패하면 정죄의식이 드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자유의 개념에 위배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이것에 대한 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게 되면 방종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뭘 한들 무슨 상관이냐 내 마음이지. 내가 하나님을 믿는데 주일날 무엇을 하든지 뭔 상관이 있어? 이미 그것은 구약에서의 속박이고 신약에서는 나는 완전한 자유다.’ 그러면서 규범이 없는 무규범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런 생각 해 본적 있을 것입니다. ‘도대체 주일은 안식하는 날이라고 하는데 안식은커녕 완전히 노동의 날이다.’ 아침 8시에 1부 예배드리고 주일학교 하고 성가대를 하고 성가대가 끝나면 여전도회 모임, 여전도회 끝나고 나면 청년부 임원 기도회라고 하고 또 순장모임하고 다 끝나고 나면 밤 9시쯤 되어 가지고 터덜터덜 집에 가는 것입니다. 온갖 피로가 막 밀려옵니다. 주일이 다가오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나도 정말 쉼이 있는 주일이고 싶다. 정말 예배만 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 해본적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를 주고 나면 아무것도 안하고 예배만 드립니다. 굳이 10시를 예배드리러 올 필요가 없습니다. 퍼질러 자고 2시 예배에 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생각을 합니다. ‘2시 예배를 가야하나? 3시 반에 오후 예배가 있는데. 어차피 주일 예배 드리고 오후 예배 안 드리는 교인들이 대부분인데 나는 오후 예배드리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 오전 예배와 오후 예배에 차이가 있을까? 다음에는 뭐 꼭 그래야 하나? 어차피 그날은 지정된 것 아니니까 수요일 예배드리면 되겠네.’ 아예 어떤 교회는 “주일 날 놀러 가시는 분들을 위해서 우리 교회는 토요일 예배가 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우리는 이번에 해운대에 주일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예배 장소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냥 인터넷에서 이동하시면서 예배드리면 됩니다. 이어폰 꽂고 헌금은 계좌로 삼성페이로 한다든지, 외국에는 교회에서 카드 개설을 다 해놨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유가 된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속박이 된 것입니다. 아마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사실은 율법주의도 대안이 아니고 방종주의도 대안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오늘 내 강의를 들으면서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입니다. ‘아, 우리 목사님은 청교도는 뭐든지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이건 청교도하고 견해가 다르네. 기대가 되는데. 주일을 널널 하게 지킬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회개하십시오. 기회주의자들이여.
칼빈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의 주일에 대한 신학적인 입장에 대해서는 칼빈은 분명한 차별적인 입장을 보였습니다. 100년의 간격을 뛰어넘어서 양 진영의 신학자들이 루터와 칼빈이 서고 청교도들이 맞서면 할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입니다. 칼빈의 주석과 기독교 강요를 광범위하게 펼쳐보면 그의 태도는 굉장히 유연하면서도 확고합니다. 기본적인 원리와 원칙에 있어서는 물러섬이 없는 확고함이 있고 나머지 세부적인 사항에서는 유연했습니다.
고어(R. J. Gore)라는 학자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서 방종주의와 율법주의 사이에서 진술한 내용들을 세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주님만이 구원에 관한 모든 문제들을 모두 계시해 주셨다. 둘째 하나님은 예배의 모든 국면에 대한 상세하고 정확한 기술을 주신 것은 아니다. 셋째 새로운 실천들을 발전시고 오래된 실천들을 폐지하는 일에 있어서는 세심함이 요구된다.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판단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존해야 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경이 모든 세세한 것을 다 말해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잘 되고 있는 것들을 폐지를 할 때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에 아무래도 좋은 것이 아니고 세심함(sensitivity)이 요구된다고 본 것입니다. 첫 번째 원리는 성경 근거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성경이 모든 아디아포라들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속을 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아디아포라가 아닌 것입니다. 세 번째는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뭐든지 해도 좋은 그런 자유는 심각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제네바의 종교 개혁자 칼빈은 안식일 준수에 있어서 몇 가지를 강조했는데 노동으로부터의 쉼입니다. 그 하루는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떼어 놓은 날이기 때문에 그날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봉사하고 하나님 안에서 육체와 영혼이 쉼을 얻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는 영혼의 충분한 만족을 얻는 주일이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육체의 쉼이 주일의 소극적인 면이라면 영혼의 충만함은 주일의 적극적인 면입니다. 엄격하게 말하면 두 번째가 제대로 안되니까 모든 것들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음식을 먹고 싶은 열망을 절제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먹고 싶은 것을 꾹꾹 참으면서 자신의 체중을 조절하거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얼마 안 갑니다. 어느 한 순간에 정신 줄을 팍 놓으면 한 맺힌 듯이 그동안 못 먹은 것을 먹는 것입니다. 온갖 핑계를 대고 사우나를 하면서 먹는 삼겹살은 살로 안 간다는 식입니다. 자기 자신의 취향 자체를 바꾸어 놓지 않으면 삼겹살이 지글지글하면 욱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걸 어떻게 먹어?’ 이렇게 되어야 되는데 ‘어우, 저걸 왜 안 먹어?’ 이러는 것입니다. ‘삼겹살은 음식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육체의 쉼을 위한 시간, 영혼의 충만함을 얻는 시간, 그러므로 집중해야 합니다. 노동을 금하는 것과 그런 것들이 다 같이 가야된다는 것입니다. 노동으로부터 해방된 가운데 말씀과 은혜, 성도의 교제와 같은 영혼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B. ‘그 날’에 대한 해석
둘째로, ‘그 날’에 대한 해석인데 “그 날이 언제인가?”입니다. 안식일은 어떻게 됩니까? 한 주일의 마지막입니까? 처음입니까? 창세기도 안 읽었습니까? 6일 창조를 하고 마지막 날 쉽니다. 그날이 마지막 날입니다. 신약에서의 주일은 몇 번째 날입니까? 첫 번째 날입니다.
청교도들은 미묘합니다. 구약시대의 안식일은 창조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신약시대의 주일은 한주간의 첫 번째 날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여기도 약간 모순이 있습니다. 신약의 주일은 안식일의 연속선상에 있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강조되어야 되는데 약간 모순된 것처럼 첫째 날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청교도들은 계기적인 날, 무엇이 이어서 오는 날인가, 앞서서 오는 날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예민합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청교도들이 강조하던 이 날의 계기적인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신약시대의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킬 때는 특정한 순서로서의 날을 중시했지만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킬 때는 어떤 날이 가지고 있는 계기적인 성격보다는 신약적인 성격을 훨씬 더 강했던 것입니다. 신학적인 성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입니다. 그런 식으로 계기적인 발생을 중시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이 안식교 사람들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어두움 속에서 빛이 제일 먼저 창조됩니다. 빛이 있습니다. 빛은 첫째 날 창조가 되고 해달별은 넷째 날 창조가 됩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지구는 그때도 둥근 것이었는데 여기에 태양이 있었다고 치면 이쪽은 낮이고 저쪽은 밤입니다. 그림자도 정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됩니다. 이렇게 낮이고 여기 아래는 밤입니다. 지구가 좌전하면서 계속 도는 것입니다. 오늘을 어디로 기준으로 볼 것인가? 여러분이 비행기를 잘 타면 계속 주일을 안 지킬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선교사님 보았습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날짜를 이동하면서 주일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게 뭐냐 말입니다.
그날은 계기적인 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교회가 신약교회가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기로 했다는 것, 부활한 첫날을 주일로 삼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날들의 계기적인 성격에 집착하는 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가 지금 일요일을 지키는데 토요일 날 지키는 것도 가능합니까?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 열린 교회는 토요일 날 지키기로 합니다.” 그런 것은 안 됩니다. 자기 스스로 원칙을 정해서 자기는 수요일 저녁을 주일을 삼기로 작심했습니다. 수요예배를 꼭 나오고 아침부터 휴가내서 푹 쉬고 주일날은 놀러가고 영화 보러가고 그건 아닙니다. 공교회들이 결정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신대원 다닐 때 어떤 일이 있었는가 하면 기독교계에서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군인들을 넉 달인가 주일 예배를 못 드리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라고 투서가 오고 그랬습니다. 대신 화요일에 쉬게 해주었습니다. 군대에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합니다. 막 들끓었는데 그때 조직신학 교수님, 지금은 96세까지 사시고 돌아가셨는데 그분이 하신 말씀이 재미있습니다. “웃긴다. 뭔 상관이 있느냐?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군인들의 교회가 결정을 하고 그렇게 하면 그게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안식일을 주일이라고 부르는 날로 대처하는 것은 아무 이유 없이 그렇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이 예표 하는 참된 안식은 부활에서 성취되었고 예표들은 폐지되었기에 주일은 그림자와 같은 예식에 집착하지 말라는 경고를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일곱이라는 숫자를 고수해 교회를 거기에 묶어두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신만 없다면 다른 경건한 날에 교회들이 모인다 할지라도 나는 그들을 정죄하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교회들이 훈련과 정한 질서들을 준수하고자 그런 날을 지키기로 공교회가, 하나의 열린교회나 닫힌교회가 아니라 공적인 교회가 그렇게 결정했더라면 그것은 허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강요』 제 1권 343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C. sabbatismos와 katapausis의 균형 문제
그 다음은 ‘삽바티스모스’()와 ‘카타파우시스’()의 균형의 문제인데 ‘삽바티스모스’, ‘카타파우시스’는 희랍어인데 ‘삽바티스모스’에서 이것은 'Sabbath Day'라고 안식일, 'Sabbath'는 히브리어의 ‘사바트’, 하나님이 안식하시다고 하는 창세기 1장에서 온 단어입니다. ‘삽바티스모스’도 ‘카타파우시스’도 ‘쉼’인데 ‘삽바티스모스’는 육체적인 쉼을 강조하는 것이고 ‘카타파우시스’는 영혼의 안식을 강조하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두 개가 함께 있는 나라가 바로 안식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오늘 날 주일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위대한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축제와 행복, 그것을 앞당겨서 맛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카타파우시스’도 있고 ‘삽바티스모스’도 있어야 합니다. 육체를 한없이 괴롭히고 고통스러워하면서 영혼의 안식만 생각해도 안 되고 그 반대로 해도 안 됩니다.
그럼 목사님들은 어떻습니까? 굉장히 신학적으로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쌓인 피고가 수요일 오전이 되어야 겨우 정상으로 돌아옵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예배의 수를 줄이면 됩니다. 한 번에 많이 예배드리거나 아니면 교회가 나뉘어져 분리개척하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엊그제 당회에서 논의를 했는데 예배당이 다 지어지면 세 번만 예배드린다고 해서 그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삽바티스모스’가 좀 더 올 것 같습니다. 그런 균형의 문제를 우리들이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청교도들에 대한 평가가 ‘삽바티스모스’와 ‘카타파우시스’에 조금 더 미묘한 균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제가 하는 것입니다. 청교도들은 무슨 뜻으로 얘기했는가 하면 ‘삽바티스모스’와 ‘카타파우시스’가 있을 때 청교도들은 ‘카타파우시스’를 이야기 했지만 ‘삽바티스모스’를 많이 이야기 한 것이 아닌가? 그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당시의 상황과 관계가 있습니다. 도표를 보십시오. 당시 영국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1600년에 잉글랜드에 410만, 브리튼에 600만이 있었습니다. 1650년대에는 잉글랜드에 530만, 잉글랜드는 영국 지도가 있고 여기 아일랜드가 있고 위는 스코틀랜드, 여기는 웨일즈인데 가운데 있는 제일 큰 덩어리를 브리튼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여기 남부 잉글랜드로 불렀던 것입니다. 땅이 아주 비옥하고 좋은 평지입니다. 다음에 브리튼이 770만이었습니다. 늘어나고 있었습니다. 17세기 중엽에 잉글랜드의 인구는 530만 명쯤 되었고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모두 합해서 190만 정도였을 것이라고 추정을 합니다. 식량생산보다 인구증가율이 훨씬 더 빨랐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곡물 가격이 아주 비쌌습니다. 실업이 만연하게 됩니다. 농업이 주된 산업이었는데 노동력이 너무 남아도는 것입니다. 그 노동력은 촌락 공동체에 모여서 가내수공업에 종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쌓여가면서 산업혁명을 영국이 첫 번째로 경험하게 되는 나라가 됩니다.
거기에는 맨체스터에 있었던 양자역학에 대한 연구라든지 증기기관이라든지 이런 공업의 발전도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말입니다. 촌락공동체에서 많은 사람들이 노동력이 남고 하니까 도시로 인구가 유입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굉장히 번창했던 산업이 직물업이었습니다. 양털을 가지고 모직을 짜는 일이었는데 이게 서남부지역 이스트 앵글리아 지역 및 페나인 산맥을 끼고 있는 지역들에 걸쳐서 약 20만 명의 노동자들이 흩어져서 공장제 수공업의 발전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높은 곡물 가격, 다음에 전쟁이 일어나고 대외무역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14세기부터 유럽의 국가들이 항로를 개척하면서 식민지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때에 많은 사람들이 식민지를 개척해서 싸게 물건을 만들어서 공급하려고 하면서 여기에서 무역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더 원가를 절감해야 됩니다. 그때 노동을 공급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입니다. 공급 초과입니다. 임금을 마구 깎아서 노동자의 삶이 너무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이라는 역사가는 당시의 주일을 안식일처럼 준수했던 청교도들의 주일 성수 방식은 사회복지적인 측면을 가진 것이었다고 칭찬을 합니다.
백스터도 키더민스터에서 목회를 했는데 키더민스터는 아주 번창한 공업도시였습니다. 무역도시였습니다. 안식일에 노동자들에게 일을 강요하여 예배드리지 못하게 하는 고용주 밑에서 구제할 길 없는 방치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구에서 강력하게 엄격주의적인, 안식일적인 주일을 강요하고 신자들이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치리해 버립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그 밑에서 모두 임금만 받는 노동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들도 있습니다. 신앙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잘못하면 치리를 합니다. ‘아 이러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적어도 자기가 하고 있는 공장에서는 주일을 쉬게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서는 엄청난 사회복지적인 혜택이었습니다.
심지어 청교도들에게는 무슨 전통이 있는가 하면 주일 완전 휴무, 성도는 주일날 시장을 통행하면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그대로 적용한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왜 시장을 통행하는 게 죄가 됩니까? 그때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시장을 통행하면 물건을 소비할 것이고 소비하면 생산할 것이고 생산해서 공장을 돌리면 노동자들이 착취를 당하는 것입니다. 그런 각도에서 특별 은총적인 요소와 일반 은총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진 것입니다. 구속의 안식과 육체의 안식을 가져와야 하는데 이런 독특한 상황 때문에 주일이 가지고 있는 육체로서의 쉼을 훨씬 강조하고 있는 측면들이 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것을 마냥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역사적인 정황들이 있었던 사실이 우리를 설득합니다. 청교도들은 ‘웨스트민스터 기준문서들’(Westminster standards), 리처드 백스터, 윌리엄 퍼킨스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주일을 지키는 상세한 규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까지 그럴 수밖에 없는 종교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 상황들과 배경을 살펴 보았습니다.
D. 방종주의와 바리새주의 사이에서
네 번째 평가는 방종주의와 바리새주의 사이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만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청교도들이 자기시대의 표현으로 해석했던 제 4계명의 적용을 우리에게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우리는 율법주의를 늘리고 영속시킬 뿐이다.” 제임스 패커도 청교도들의 주일성수에 대한 전통을 문자적으로 우리가 따르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기성의 적용을 물려받으라는 유혹에 저항하고 하나님의 율법을 오늘날 우리상황에 현실적으로 재적용 하려 한다면 우리를 마땅한 판단으로 인도하시는 원리를 청교도 해석에서 비할 수 없이 풍부하고 시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청교도들이 그런 독특한 상황들을 만들어 놓은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우리도 똑같이 따라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을 패커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이런 자본주의와 산업화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농경사회의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거기서 어떤 원리들을 발견하고 청교도들이 처해 있던 다른 시대상황과 우리들이 처해 있는데 이런 시대 상황에 그것들의 원리를 사용해서 이 시대상황의 해석자로서 고민하면서 우리들이 어떤 원칙들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신앙에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것이 제임스 패커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저도 그 이야기에 동감하는 바입니다.
V. 주일성수에 대한 현실적 제언
1. 우리 시대의 신앙고백을 작성함
마지막으로 주일성수에 대한 현실적인 제언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첫째 우리 시대의 신앙고백을 작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합시다.” 그러면 안 됩니다. “목사님이 하면 되지 않습니까?” 교단에 가서도 이 문제를 발표했습니다. 내가 충심으로 이야기 했습니다. “1640년대 만들어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훌륭한 것은 사실이고 우리가 그 가치를 인정하지만 우리 시대에 대해서 우리가 고백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는 컴퓨터, 디지털도 없었고 지적재산권 보호에 관한 것도 없었고 동성애에 관한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있긴 있었지만 이슈가 안 되었습니다. 잡으면 모두 사형시켜 버렸습니다. 많은 노사문제부터 시작해서 특히 환경문제는 없었습니다. 이런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들이 30년에 한 번씩이라도 20년에 한번이라도 학자들이 모여서 개혁신학적인 입장에서 이것을 고백을 하고 신자들이 살아가야 할 지침에 대해서 제공해주는 것은 교회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안합니다. 그러면 어떡합니까? 우리가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좋은 신학자들을 길러내고 그 사람들이 이런 깊은 고민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한 세대가 북 치고 장구 치고 전도하고 지나가면 그 시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남겨줘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거의 5년에 걸쳐서 그렇게 경건한 가운데 기도하면서 신앙고백을 작성한 것이 이렇게 500년의 세월이 가까이 오도록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릅니다. 교회가 신학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자신의 가문과 족보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북 치고 장구 치면서 수많은 사람 전도하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한 세대가 끝나면 잊혀지는 것입니다.
2. 주일의 신학적 의미를 가르침
두 번째 주일의 신학적 의미를 가르쳐야 합니다. 주일이 무엇인지를 모르는데 “성수해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성수가 뭐 성동구 성수동이냐? 거룩한 물인가? 이게 뭔가?” 거룩하게 지킨다는 뜻입니다. 주일의 신학적인 의미를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일만 가르칠 수 없습니다. 왜 주일이 그렇게 중요한지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 대해 가르쳐야 하고 성경에 대해 가르쳐야 하고 인간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인간의 타락과 구원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그리스도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교회와 종말에 대해서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조직신학 전부입니다.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쳐서 전체적인 기독교 사상 안에서 주일이 갖는 영적이고 육체적인 의미가 무엇이고 인류와 관련된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것들을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해서 자리매김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차근차근히 집에서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최고의 교리학교가 엄마의 무릎입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단다. 맘마 누가 주셨지?” “하나님.” “맛있는 간식 누가 주셨지?” “하나님.”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지?” “우리 모두를.”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3. 율법적 바리새주의를 경계함
세 번째는 율법적 바리새주의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20년 동안 신앙생활 했는데 주일을 한 번도 교회 안 간적이 없다는 것은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주일을 못 지키는 사람들에 대한 아주 멸시하는 태도, 수많은 규칙들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날 자기 자가용도 안 타는 사람이 있습니다. 주일을 더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차는 몰고 다니지만 공공교통은 이용을 안 합니다. 기름이 떨어져도 주유소에 안갑니다. 그걸 어떻게 볼 것인가? 자기 마음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남은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 자유주의적 방종을 경계함
네 번째는 자유주의적인 방종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아주 느슨해져 버린 것입니다. 주일이 아니라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과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혼동합니다. 주일 예배만 지키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 소중한 주일에 오전 내내 퍼져서 자든지, 아니면 쓸데없는 일에 정신을 소모하고 잠깐 예배드린 다음에 오후에는 쇼핑 다음에 마실 가고 동네 사람들을 만나고 밤중에는 영화구경을 하고 주일 전체를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오전부터 밤까지 꽉 채우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묻고 싶을 것입니다. “목사님, 그러면 주일에 영화구경을 가면 안 됩니까?” 안될 수도 있고 될 수도 있습니다.
허세프드 목사님이 “장로님이 주일날 안 나오셨습니다. 왜 안 나오셨습니까?” “소가 가다가 웅덩이에 빠졌는데 죽겠다고 해서 그놈을 건져냈습니다. 제가 주일을 어긴 겁니까?” 허세프드 목사님이 “아닙니다. 그러셔야 합니다. 그러나 자꾸 빠지면 팔아 버립시오.”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밤에 들어와서 조용히 누웠는데 영화에서 만난 톰크루즈의 인상이 설교시간에 주님을 만난 인상보다 더 깊습니다. 조용히 누웠는데 밤에 보고 온 영화에서 니콜키드먼의 아름다움이 하나님의 진리의 아름다움보다 정신을 압도합니다. 그것은 아닙니다. “목사님 주일날 물건을 살 수 없습니까?” 살 수 있습니다. 안된다고 해도 이미 다하고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런데 1부 예배 간단히 드리고 두타부터 시작을 해서 오후 쇼핑센터를 누비고 밤에 옷 보따리를 들고 쓰러질 듯 거실에 들어와서 소파에 누워서 숨을 헐떡거리며 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일이 필요하면 왜 하필이면 주일날 합니까? 미리 하면 안 됩니까?
전도사로 있을 때인데 탁자를 얼른 사오라고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주일인데.” “김전도사, 너는 융통성이 없어서 틀렸어.” “목사님 주일인데.” “아, 이 사람아, 가서 가져오고 돈은 내일 준다고 하면 되잖아.” 온 교인이 다 배웠습니다. 그게 뭡니까?
5. 신자들의 영적 변화를 위해 힘씀
다섯 번째 신자들의 영적인 변화를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제가 목회를 해보니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은혜의 감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교육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주일날 다른 일을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제가 고등부 학생들 사역할 때인데 부흥을 한번 경험했습니다. 애들이 얼마나 교회를 안 나오는지 선생님이 다 큰 애들을 매일 아침마다 심방을 가야합니다. 하도 들볶으면 겨우 나오는데 설교시간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설교가 끝나고 기도할 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던 애들이 은혜를 받고 나니까 7시에 새벽예배에 나옵니다. 30분 예배드리고 나서 기도하면서 주일 예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앞에 앉으려고 한 시간씩 한 시간 반씩 일찍 나옵니다.
모든 사변과 문제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마음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오늘도 여러분 두 부류로 나뉩니다. 강의를 와서 ‘주일을 느슨하게 지킬 수 있는 어떤 요령을 목사님이 가르쳐 주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오늘 강의를 잘 듣고 주일을 더 잘 지켜야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런 강의가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지하실 교회에서 은혜 받았던 어느 형제인가 자매인가 꿈을 꾸었답니다. 꿈에 제가 나와서 “너 이제 우리 교회에 나오지 말고 가.” 그랬답니다. 교회 밖에서 한없이 울었답니다. 오더니 “목사님, 교회 생활 잘 할게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모든 일을 해도 감사하고 안 하고 쉬어도 주님을 찬송합니다. 다 주일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VI. 결론
오늘의 결론은 “은혜를 받으라.” 입니다. 주일은 문자 그대로 ‘주의 날’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구약의 안식일 제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기 때문이 아니며 종말론적인 안식은 안식일 제도의 완성적 성취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주일 안에 있는 실체로서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에 안식일은 단지 그것이 형상이며 그림자였다는 사실을 압니다. 주일이 안식일의 완성이 아니라 안식일은 주일이 드러낼 하나님의 구속 경륜의 그림자였음을 압니다. 구약의 안식일이 촛불이었다면 신약의 주일은 그리스도 때문에 빛나는 찬란한 햇빛이고 영원한 안식은 그보다 더 찬란한 영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교도들은 이 땅의 탁월한 성자들이며 기독교 역사에 장중한 울림의 역사를 남겼습니다. 저는 그들의 유산에 경의를 표합니다. 더욱이 성수주일에 관한 청교도들과 개혁자들의 차이점을 극대화해서 대척관계에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교도들이 취했던 주일의무와 성수에 관한 입장은 개혁자들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주일 성수에 있어서 청교도들과 개혁자들 사이에 차이점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점들은 각각 그들이 처했던 역사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의 엄격한 주일성수를 문자 그대로 답습하는 것 이상의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청교도들의 엄격주의 전통을 통해 세속주의 앞에 양보할 수 없는 주일 성수의 원리를 배웁니다. 이 원리는 신앙에 있어서 영속적 가치를 지닌 것입니다. 홍해를 건넜던 백성들처럼 이것을 굳게 붙들고 두 물, 율법주의와 방종주의 사이를 지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교인들을 깊이 있는 성경공부와 신학 교육으로 교리적 지식과 기독교 사상을 갖게 해야 하고 체계적인 지식과 사상의 틀에서 주일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장엄한 의미를 인식하게 하여 그날의 영원의 유익을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도록 예배의 영광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일이 참으로 주님의 날이 되도록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