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과 사상 5
녹취자: 김백화
어제는 서론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어제 약속드린 바와 같이 아름다움, 사랑, 탁월성 이런 것들이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또 어떻게 우리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리고 이제 각 권별로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28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름다움이라는 것, beauty입니다. 미, 아름다움이고 라틴어로 풀크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움이란 것이 무엇인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미학적 신학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학이 미학적 신학인데 조나단 에드워즈가 볼 때 미는 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knowledge가 되겠지요? 그러면 이 beauty 혹은 풀크룸이라고 하는 것, 다음에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관계에 있느냐하면 이 지식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 지식을 가지고 있는 주체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인간이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서 이게 뭘까? 하고 생각하다가 ‘아! 이거구나.’하고 지식을 갖는다고 친다면 소위 이야기하는 이런 대상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지식이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대상이 있기 때문에 지식이 가능하다고 하면 이 지식은 대상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삼라만상 모든 것들의 기원이 누구입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기원이신데 그러면 이런 논리에 의해서 이런 모든 대상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까 인간이 이 대상에 대해서 갖는 지식 자체도 결국은 하나님이 모든 지식의 기원이 된다고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이 지식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결국은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은 어떤 대상이 어떤 조건을 충족시켜서 이 사람이 볼 때에 이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움도 결국은 사물과 부착되어 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러면 이런 모든 사물과 사물에 대한 관념이 하나님께 근거를 두고 있다면 결국은 이 아름다움도 궁극적인 근원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뭐가 문제가 되느냐하면 이 아름다움이 본래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있고 그 다음에 여기 인간이 이 아름다움에 대해서 인식하는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A와 B가 온전히 일치할 때 이것이 가장 좋은 미에 대한 관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문제는 무엇이냐면 이렇게 될 때에는 미와 선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아름다운 것은 선한 것입니다. 선한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는 이 인식과 실제사이에 격차가 생겨나게 되어서 이 두 개가 일치를 하지 않게 될 때 그 때 여기에서 커다란 혼란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플라톤이란 사람이 자기의 책속에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선한 것보다는 아름다운 것에 집착할까?”
(예화) 학생의 본분은 무엇입니까?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공부 잘 합니까? 까불고 공부 안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게임하고 놀고 합니다. 왜 그럽니까? 그 아이들도 학생은 공부해야한다. 학생은 공부를 잘 하는 것이 좋은 것이란 것도 압니다. 선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보기에는 공부 열심히 하는 것이 예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게임하고 까불고 놀고 하는 것이 예뻐 보이고 어린 나이에 음란 잡지나 가지고 다니고 하는 게 예뻐 보입니다. 이 둘 사이에 균열이 오게 됩니다. 여기서 인간의 비극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동산 나무에 있는 실과는 다 먹되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라. 정녕 죽으리라. ‘무트 타 무트’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화자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내가 반드시 죽이리라. “You shall die.”하면 저절로 죽는 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널 죽여 버리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화자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일단 선하고 미하고 찢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니까 유혹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비극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은 조나단 에드워즈보기에는 인간이라고 하는 것, 이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 예수를 믿고 온전한 신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은 선한 것과 아름다움 사이에 완전한 일치를 인식하는 것 그래서 마땅히 선한 그것이 자신에게도 좋은 것이 되는 것, 이것이 결국은 인간이 예수를 믿고 성화의 삶을 살아야하는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무엇 때문에 믿습니까? 왜 예수를 믿습니까?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는 이유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이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러면 예수를 믿어서 어떻게 해야만 사람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true christian, 사람이 되기 위해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것이 참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맨 처음에 하나님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 인간을 지으셨잖습니까? 그러면 그 인간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야한다는 하나님의 의도가 있는데 그 의도에 맞는 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 모든 인간의 이상이고 바로 그 정답을 찾기 위해서 일류는 그 수많은 시간을 철학적인 사유와 문학적인 방황, 사상적인 담론들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곧바로 그 사람이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되기 위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고 자기 안에 있는 죄된 성품들을 거룩한 성품으로 변화되어가고 하는 그런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편지에서 성경을 주신 목적에 대해서 말합니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그 첫째가 뭐냐면 불신자는 구원받게 하는 것이고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라. 그 선한 일이라고 하는 것에 굉장히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에 대해서 따로 공부해야합니다. 성경의 선이라고 하는 개념은 그렇게 간단한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해 지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되기 위해서 바로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것인데 이 성경을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으로써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회는 정확하게 하나님이 성경을 교회에 주신 그 목적을 반영하는 것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목회는 성경의 진리를 가지고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불신자는 구원에 이르고 구원받은 사람은 온전한 신자가 되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을 따라서 살아가는 그런 사람의 삶이 정확하게 실현이 되도록 그렇게 이바지하는 것이 바로 목회이고 그리고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제 구원의 문제 이런 것들이 하나의 우리의 신앙생활의 최종적인 완성이 아니라 겨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라고 하는 시작을 통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이런 원대한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겠습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움은 원래 하나님 자신이 아름다움이시고 하나님이 이 모든 사물들을 창조하시는데 창조된 크고 작은 수많은 사물들이 있는데 이 사물의 존재의 원리가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선함입니다. ‘보니따스’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사물들은 선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하매 빛이 있었고 하나님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나옵니다. ‘토브’라는 단어는 ‘좋았더라’ 이‘토브’가 바로 선입니다. 그러면 ‘선하다’ 하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냐하면 목적과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좋은 사람은 여러분들의 이익과 관련이 있습니다. 늘 친절하게 해주고 등록금도 대주고 책도 주고 뭔가를 이렇게 베풀어 주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토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에는 a에게 좋은 사람이 b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 있고 c에게 좋은 사람이 b에게는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있으면 선하다는 것도 상대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선을 규정하는 절대적인 원리라는 것이 있느냐 없느냐, 오늘날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기독교적으로는 굉장히 문제가 복잡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마이클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요새 는 좀 시들해졌지만 한 때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한국에서만 40만부가 팔렸다고 하니까 쉬운 책도 아닌데 인문학에 열풍이 분 것 같았지만 사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화)그분이 하버드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기차가 지나가는데 길이 둘로 갈라지는데 원래는 a라는 길로 가야하는데 여기서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갔다가는 열 명의 사람을 치어 죽이게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b라는 길에는 세 명의 사람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세 명만 치어 죽이면 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기차를 모는 상황이라면 원래 가던 코스 a라는 길로 가겠습니까? 아니면 틀어서 b라는 길로 가겠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b로 가지 않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b를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만 죽여서 막을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c라고 하는 길입니다. 여기는 한 뚱뚱한 녀석이 사태도 모른 채 난간에 걸터앉아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이 녀석을 약간 밀어서 떨어뜨리면 기차가 오다가 이 녀석을 넘지 못하고 걸려버립니다. 이것을 c방법이라고 할 때 여러분은 아까 a에서 b를 택한 이유가 열 명 죽이기보다는 세 명 죽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 택했는데 그러면 c를 선택하는 것이 더 나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a에서 b로 넘어왔고 c를 택하면 딱 맞겠지요?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모르게 찝찝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뭔가 선한 것이라고 하는 도덕적인 결정을 할 때 두 가지가 우리의 마음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첫째는 공리주의입니다. 누구에게 많은 이익이 돌아 갈 것인가? 그러면 같은 도둑이라도 도둑질을 해서 혼자 먹고 산 사람과 자기는 하나도 쓰지 않고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하면 이 도둑에 대한 생각이 달라집니다. 내가 부자가 아니라면 그런 도둑이 좀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우리 집 우체통구멍도 크게 뚫어서 우리도 가난하다고 써놓고 싶을 것입니다. 이것이 공리주의입니다. 그런데 이것 하나 만이 아니라 뭐가 들어 오냐 하면 기차의 예에서 b를 선택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c를 선택한 것은 왠지 나쁜 짓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이 세 사람을 살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아무 상관없는 애매한 한 사람을 그것도 살겠다고 아침에 햄버거를 우적우적 먹는데 등을 떠밀어서 떨어뜨려서 죽이고 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공리주의적인 면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데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을 밀쳐서 떨어뜨려서 죽인다는 것 자체가 허락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리주의의 요소만이 아니라 그 자체에 있는 어떤 도덕적인 요소들이 이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이 도덕철학인 윤리학에서 어려운 것인데 도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옳은 것이라고 확신하게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말 옳은 것인가? 굉장히 많은 혼란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화) 우리 어렸을 때 초등학교 때 월남전이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많은 군인들이 월남으로 파병되어 갔습니다. 맹호부대, 청룡부대, 비둘기부대, 백마부대 등등 많이들 갔습니다. 그리고 오천 명이 넘는 한국 군인들이 거기서 죽었습니다. 그 때에는 모든 사람들이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간다고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미국이 자국의 군인들이 너무 많이 죽으니까 한국을 설득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한국 군인들의 월급을 다 준 것입니다. 그 월급은 전부 걷어서 정부가 다 갖고 군인들한테는 조금씩 준 것입니다. 그 당시에 백만원 가까운 돈을 받았다고 하니까 70년대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돈이었습니다. 그 정도 받아서 거기서 3~4만원 주고 나머지는 정부가 다 가졌습니다. 만약에 참전해 주면 쓸 무기는 미국이 다 대주고 전쟁이 끝나고 돌아갈 때는 그 무기를 다가져도 좋다는 약속을 미리 했습니다. 미군도 철수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답니다. 도저히 한국이 거부할 수 없는 화려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 당시에 국방부 장관인 김성은씨가 직접 얘기하는데 국방부 장관을 미국에서 초청했는데 공항에서 예포를 발사하는데 국무총리 수준의 예포를 발사하고 강에 크루즈를 띄워놓고 온갖 산해진미를 먹이면서 구워삶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몰랐습니다. 저 배트 공들이 세계평화를 어지럽히니까 가서 잡아 죽여야한다고 피 끓는 대한의 젊은이들이 간다하고 애들이 위문편지를 쓰면서 눈물을 흘리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30년이 흐른 다음에 내가 베트남을 갔습니다. 거기 선교사들에게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거기에 베트남 기독교 총연맹의 대표와 임원진들이 서 너 명이 왔습니다. 그래서 내가 베트남어를 하는 선교사에게 내 말을 정확히 통역하라고 부탁하고 지금으로부터 삼십 여 년 전에 아무 상관도 없는 당신들의 전쟁에 우리 한국 군인들이 와서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것에 대해서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용서를 빈다고 했습니다. 통역하다가 이 선교사가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는 베트남에서 선교사를 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역사관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용서를 비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구속력이 없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진심으로 용서를 빌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 네 들끼리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그런 정치적인 이익 속에서 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때 부상 입은 사람이 아직도 원호병원에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억울하게 부상당한 것입니다. 지금은 베트남하고 너무 잘 지내고 있고 무역하고 국교 수립하고 물건 팔고 물건 들여오고 사람들도 들어와서 일하고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어느 한 시점에 이것이 선이라고 하는 것을 영원히 선이라고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겠느냐? 이것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을 조나단 에드워드가 전집 제8권에서 철저하게 다룹니다. 8권은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안중요한 권수가 없지만 특히 8권 ethical writings 즉 윤리적 저술들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이렇게 선에 대한 기준을 인간 안에서는 절대적인 기준을 발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우리들이 어디에서 찾느냐 하면은 하나님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목적에서 찾는 것입니다. 그 원리가 사물들의 존재의 원리는 선입니다. 하나님이 바보가 아니시라면 이 세계를 만드실 때 어떤 목적이 있으셔서 만드셨을 것 아닙니까? 이 목적을 가리켜서 에드워드는 cheap end라고 표현합니다. 최고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ultimate end라는 게 있습니다. 궁극적 목적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떤 것에 목적이 있고 그 하부에 목표가 계속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의 최종 상태, 이것은 이 최종적인 것들이 모두 묶어지는 최고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cheap end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목적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 세계에 요소들을 창조하셨을 때에 이 목표가 E라면 이것들이 결국은 E에 이바지하게 만드셨지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어떤 사물들을 만드셨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논리적으로도 너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예화) 강의실을 보십시오. 건물을 지었을 때는 무슨 의도였는지 모르지만 건물을 지은 것을 학교에서 들어와서 시설을 할 때에는 목표가 분명합니다. 지식을 가르치기 위한 장소로서 쓸려고 한 것입니다. 물 컵은 강사가 얘기하다가 목이 마르면 강의가 잘 안될 테니까 강의 잘 하라고 갖다놓은 것이지 homeless가 들어와서 마시고 가라고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닙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달려있는 시계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서 분필은 쓰기 위해서 칠판은 쓰여 지기 위해서 탁자는 여러분의 물품을 올려놓기 위해서, 모든 것들이 하나의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계도 그런 식으로 창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선함을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미, 즉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움의 요소가 무엇이냐 하면 두 가지에 의해서 아름다움이 결정이 됩니다. 첫째는 개별적 완전성입니다. 예를 들자면, 그저께 어느 형제가 저를 가이드해서 블루 마운틴을 갔습니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정말 멋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원래는 내가 사기로 했는데 학장님이 사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람훈디라고 하는 생선요리를 먹었는데 저는 그런 생선을 한국어로 뭐라고 번역하는지 모르겠지만 생선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날 것은 좋아하지만 요리된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몇 년 만에 제일 맛있는 생선요리를 먹었습니다. 그럼 그것은 무엇입니까? 어디든지 그런 생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든지 그런 요리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만족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냐 하면 완전성 때문입니다. 생선요리를 예를 들자면 고기를 fry해서 요렇게 할 때는 이렇게 되어야한다, 그때에 가장 맛있다 하는 그 완전성에 대한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인간에게 커다란 만족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물의 개별적인 완전성입니다. 제가 요리를 좋아합니다. 요새는 너무 바빠서 못했는데 옛날에 교회를 개척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에게 꼭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요리의 관건은 좋은 재료에 있습니다. 시장에 가서 돈을 아끼지 말고 싱싱한 것을 삽니다. 재료가 워낙 좋으면 기술이 별로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일본에는 비프 1kg에 4천 달러짜리가 있습니다. 우리 돈으로 450만원입니다. 2kg이면 중고차 좋은 차로 하나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소는 아예 처음부터 그 소 전체에서 몇 kg을 만들기 위해서 우유로 목욕을 시키고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고 아로마 테라피를 하고 마사지사가 있어서 소의 근육이 뭉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계속 마사지를 해줍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깨끗한 곳에서 자고 쉬는 시간, 운동하는 시간, 음악 듣는 시간이 규칙적입니다. 사람보단 훨씬 낫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서 몇kg을 뽑는 것입니다. 나머지 고기는 값 차이가 별로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좋은 고기가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거기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 없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질이 좋은 숯불에다 구워서 아주 질이 좋은 죽염에다 찍어 먹으면 충분합니다. 왜냐하면 완전성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슬픈 얘기를 해볼까요? 왜 사람들이 젊은 여자만 좋아할까요? 예쁜 사람을 왜 좋아할까요? 여러분들이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이래야한다라고 하는 그런 완전성의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배는 나오고 이러면서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그 완전성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개별적 완전성입니다.
두 번째가 뭐냐 하면은 보편적 질서의 완전성입니다. 저의 오늘 코디가 어떻습니까? 어제랑 바지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어제 입은 바지는 짙은 초콜릿색이었는데 왜 바꿔 입었냐하면 상의를 입었을 때에는 어제 바지가 어울리지만 상의를 벗을 때에는 오늘 입은 바지가 더 잘 어울리기 때문에 바꿔서 입었습니다. 6만원인데 이마트에서 샀습니다. 지금 입은 바지도 6만원 주고 사서 2만원 들여서 고쳤습니다. 왜냐하면 옷을 입는 주체 자가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사이즈 조절이 필요합니다. 괜찮지 않습니까? 하나하나는 싸구려이지만 이것들을 색깔과 모양을 맞추니까 예뻐 보이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편적 질서의 완전성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콘크리트 건물, 공사장, 망가진 버스 그 옆에 있는 소나무, 별로 그림이 안 나오지요? 푸른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그리고 금빛 모래, 그 위에 아름다운 소나무 밭, 노송들, 그리고 잔디밭, 꽃들, 그림이 탁 나오지 않습니까? 파란 하늘이 있고 에메랄드빛 바다가 쫙 펼쳐져있고 금빛 모래가 있고 거기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면서 커다란 집단을 형성하고 그 사이 사이로 파란 바다가 보이는 것입니다. 최고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주위의 것들이 그 질서와 어울리기 때문에 정말 예쁘다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름다움의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미인의 조건은 무엇이냐 하면 딱 두 가지입니다. 우선은 하나하나가 예뻐야 합니다. 눈은 눈대로, 코는 코대로, 입은 입대로, 가슴은 가슴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어깨는 어깨대로 예뻐야 합니다. 두 번째가 뭐냐면 그것이 제자리에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아무리 기가 막히게 예뻐도 이동을 해서 딴 데에 가서 달려 있으면 예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이제 아름다움을 볼 때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왜 아름다운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몰라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그렇게 성형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우선 못생긴 눈을 찢어서 개별적인 완전성을 이루고 위치를 이동시켜서 보편적인 질서의 완전성을 만들어서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것입니다. 중국은 더합니다. 중국에서는 아예 한국 탤런트 김희선 사진을 가져가서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까 이렇게 고쳐달라고 한답니다.
(예화) 어느 형제가 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아무도 닮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도 안 닮고 자기 아내고 절대 닮지 않았다고 합니다. 누굴 닮았을까 생각하고 어떻게 이런 돌연변이가 나왔을까했는데 명절에 처가에 가서 놀다가 건넌방에 들어가서 앨범을 보게 되었는데 앨범을 탁 펼치니까 자기 딸이 거기에 있더라는 것입니다. 뭔가 해서 보니까 자기 집사람 어릴 때 사진이 자기 딸하고 똑같았던 것입니다. 성형을 한 것을 모르고 결혼한 것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엄마를 쏙 빼어 닮았던 것입니다. 얼굴을 고쳤기 때문에 몰랐던 것입니다.
창조한 모든 것들은 타락하기 전에는 다 선하고 다 아름다웠습니다. 완전하게 선하고 완전하게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이것들이 이제 죄와 타락으로 인해서 깨뜨려지면서 선으로부터 이탈하고 미로부터 이탈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도 변질이 되면서 완전성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에 선하지 않은 것을 아름답다고 해서 끌리고 그리고 악한 것들을 오히려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선과 미 사이에 이 충돌과 갈등이 일어나게 되면서 인간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불순종하는 불행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원리들이 이속에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에드워즈는 이런 것들을 정확하게 구별해 내면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여기 계시니까 못 보셨겠지만 제가 2007년도에 도덕적 통치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을 쓰기위해서 책을 삼천 삼백만원어치를 샀습니다. 6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썼는데 별로 팔리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세계를 통치하신다는 사실들을 설명한 책이었는데 책이 너무 어려우니까 사람들이 잘 사지 않았습니다. 기회가 되어서 읽어보시면 정신의 근육을 확장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 개별적인 완전성에서 이 완전성이라는 것이 꼭 아름다움과만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까?
(답변) 완전한 것이 아름다움하고만 연결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젊을 때 회심하기 전에 좋아했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있는데 그의 책에 보면 왜 남자들이 여자를 볼 때 가슴이 절벽인 여자보다는 가슴이 좀 있고 힙도 라인이 있는 여자를 좋아하는가? 그 속에서 번식의 욕구가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충분히 젖을 먹일 수 있는 몸, 아이를 순풍순풍 나을 수 있는 체형, 이런 것들에 대한 설명이 각 사람들 속에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잠재적인 자기 개체의 번식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 그것에 이끌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욕망이론입니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우리들이 동의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만 우리들이 모든 완전성이라는 것들을 의식하고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들이 그 속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완전성의 한 표현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지 완전성이 그 아름다움 하나에 의해서 모두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질문하셨듯이 못생긴 사람은 선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은가하는 문제입니다. 영화배우 원빈이 텔레비전 인터뷰에 나왔을 때 기자가 물었습니다. 모든 여성들과 남성들이 당신의 준수한 외모에 감탄을 하는데 이렇게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하는 비결이 무엇 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특별한 것 없고 늘 착한 생각하고...” 이렇게 얘기하니까 텔레비전을 보던 남자애들이 “그럼 우린 맨날 못된 생각만 하냐?” 그게 아니라 처음에 인간이 창조되잖습니까? 그 아름다움이란 것이 어디 있느냐하면 다양성속에 있습니다. difference속에 있습니다. 예를 들면, 기가 막힌 미인이 있는데 온 길거리에 다니는 여자들이 똑같이 예쁘게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무섭지 않겠습니까? 한복 입었는데 그 사람, 비키니 입었는데도 그 사람,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그러니까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도 인간은 각기 다 다른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다른 모양 속에서 각자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지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줄을 세워서 잘생기고 못생기고 나누고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못생겼다고 해서 반드시 완전성에서부터 멀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 상당부분 그 안에 개입되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사회적인 구조, 역사의 흐름에 따라서 미의 기준이 바뀌는 것입니다.
(예화)예를 들어서 여자가 예쁜 조건에 들어가려면 남한에서는 일단 얼굴이 계란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얼굴형이 보름달처럼 동그래야하고 반드시 덧니가 있어야하고 보조개가 있고 얼굴이 하얘야합니다. 캄보디아에 가면 남한에서처럼 계란형의 여자는 아주 액운이 있는 여자입니다. 기본적으로 사각턱이 미인의 조건입니다. 앙코르 와트 같은 데 유적을 보면 불상의 모양처럼 얼굴 형태가 턱이 뾰족하지 않고 딱 들어가고 사각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민속 쇼를 가보면 이런 얼굴 형태의 메주 같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이렇게 다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도 한 사회에 소속되어있는 사람으로서의 편견이지 보편적인 것은 아닙니다. 어쨌든 곁 나간 얘기지만 이것이 존재의 원리입니다.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게 되면서부터 가장 심각한 것은 이런 선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자기가 왜 창조되었고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하는 명료한 인식을 가졌던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서 이것을 상실한 것입니다. 여기에 악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을 포함한 창조 사물들이 죄가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개별적인 완전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인간은 처음에는 영혼이든지 육체이든지 간에 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런데 육체가 소멸합니다. 소멸한다는 것, 즉 늙는다는 것은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명의 기운을 침탈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완전히 죽음의 기운이 들어왔을 때 인간의 생명은 소멸되고 죽는 것입니다. 여자로서 보면 스물세 살 정도가 생명이 꽉 차있는 시점입니다. 저도 딸이 있는데 지금도 우리는 하루에 세 번 네 번씩 뜨겁게 포옹하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 녀석이 열여섯, 열일곱, 열여덟 이 때에는 세수안하고 티셔츠만 입고 교회 나와도 예쁩니다. 크림도 안 발라도 예쁩니다. 그런데 스물세 살 넘어가니까 기울기 시작합니다. 벌써 죽음의 기운이 서서히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이제 할머니가 되고 하면 죽음의 기운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일어나려고 해도 뼈에서 우두둑 소리가 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모든 것이 끝나면 조용히 죽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로 말미암아 들어온 것입니다.
두 번째가 보편적인 질서가 다 깨지는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 아내, 어머니, 아버지 이런 위치를 잘 지키면 되는데 이것들이 다 죄로 말미암아 와해되는 것입니다. 아내인데도 아내의 위치에 있지 않으려고 하고 남편인데도 남편위치에 있지 않으려고 하고 부모인데도 부모위치에 있지 않으려고 하고 이렇게 하면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이 세상 자체가 죄로 말미암아서 아주 엉망인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가 가져다주는 존재의 원리의 허물어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나단 에드워즈가 보는 아름다움과 선 그리고 사물들의 질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음 시간부터는 강의안을 따라서 쭉쭉 나가면서 여러분들은 비록 직접 읽은 것은 아니지만 28권 전체를 survey하면서 마지막 시간까지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질문) 존 파이퍼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공저한 passion for glory가 지금 이 주제와 관련이 있습니까?
(답변) 관련되지만 그 책에서는 그렇게 상세하게 다루지는 않습니다. passion for glory는 천지창조의 목적 조나단 에드워즈가 쓴 두 개의 쌍둥이 논문이 있습니다. 하나가 the end of the world in which God created for라고 하는 논문이 있고 또 하나 쌍둥이 논문이 the nature of true virtue 라고 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 두 편의 논문은 꼭 읽어야합니다. 이 두 편의 논문과 함께 짝을 이루는 것이 original sin이라고 하는 원죄론에 관한 것인데 이것은 너무 어렵고 일단 이 두 편 논문을 꼼꼼하게 읽으셔야합니다. 다행히 이 두 편이 전부 다 부흥과 개혁사에서 번역되어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철학적으로 훈련을 받으신 분들은 쉽지만 훈련을 받지 않으신 분들은 좀 내용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서 그러면서 그것을 읽으셔야하고 그 두 가지가 조나단 에드워즈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짧기는 하지만 매우 결정적인 논문입니다. 천지창조의 목적, 참된 미덕의 본질 이 두 권이 짧기는 하지만 매우 결정적인 논문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질문) 선에 대해서 설명해주시면서 기찻길 예를 말씀하셨는데 목사님께서는 a, b, c 중에서 어떤 것이 선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또 공리주의와 도덕주의 외에 다른 무엇이 있습니까?
(답변) 인간이 도덕적인 결정을 할 때 공리주의에 의해서도 결정을 하지만 그러나 어떤 행동자체가 가지고 있는 도덕성에 의해서도 행동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면서 도덕적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기차 몰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