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下)
녹취자 : 조원정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첫 번째 기도의 제목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결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즉석에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이 기도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평소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시던 그 틀을 그대로 제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시간이 예수께서 한곳에 나아가 깊이 기도하고 돌아온 후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였던 그런 광경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르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무엇보다도 가르치는 일이 어려운 것은 기도를 가르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것은 모두 듣고 보고 배워서 가르칠 수 있지만 기도는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 기도를 가르칠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우리 교회에서 1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기도학교라는 학교를 열기를 원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기도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거나 혹은 전혀 모르고 있거나 혹은 알아도 잘못 알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기도생활이 잘못 되면 우리 삶이 올바르게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기도 안에 묶이고 기도는 우리 삶 안에 묶여 있습니다. 삶을 넘어서는 기도를 할 수 없고 기도를 넘어서는 삶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기도 제목은 가장 중요한 기도 제목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정말 올바른 첫 번째 기도 제목이 아닐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오늘 저의 말씀을 들으면서 여러분의 모든 기도 제목을 압도하는 첫 번째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여러분 첫 번째 가장 간절한 기도 제목에 비중을 생각해 보십시오 나머지 기도는 거의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첫 번째 기도가 중요하게 여러분들에게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가지셨던 기도 제목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하는 기도 제목이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어서 가장 절박하고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예수 그리스도의 심령을 눌러오는 무거운 부담이 되는 가장 절박하고 간절한 절체절명의 기도의 제목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과 영적인 깊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그가 얼마나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는지를 살펴 볼 것이 아니라 그의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십시오. 만약에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만났다면 그의 기도의 제목은 변할 것입니다. 이 세상에 붙은 거짓된 욕심과 헛된 욕망을 이루기 위한 많은 기도의 제목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그 순간 얼마나 하찮은 것들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도 제목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해도 그것이 곧 하나님을 만난 것은 아닙니다. 제가 오늘 하는 말을 귀담아 들으십시오. 신비한 체험을 많이 한 그것이 곧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은사와 성령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기도의 제목이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 충만, 성령 충만 진정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과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이 땅에 우리를 통해 이 지푸라기 같은 인생들을 통해 이루어 가기를 원하시는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한 사람들이라면 기도의 제목이 변환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믿음 충만, 성령 충만 뭔가 장엄한 인생의 목표를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하늘로부터 부어진 그 생명과 성령의 은혜로서 이제는 이 세상을 위하여 살지 않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우리의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인해서 살 수 있게끔 우리의 꿈과 생각과 비전과 인생의 목표가 거듭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니까 믿음 충만했더니 성령을 받았더라 그랬더니 운수가 대통했더라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신앙의 세계는 훨씬 넓고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은 무한하고 광대하신 분인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그에게는 지울 수 없는 가슴속의 소원이 아로 새겨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원하는 진실하고 절박한 소원이 그 사람의 마음과 그 사람의 삶을 주관하고 주장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하나의 중요한 질문을 제기해 봅시다. 오늘 이 질문을 짧은 시간에 한번 풀어 봅시다. 질문을 푸는 동안에 우리가 어떠한 점에 있어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봐야 할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렇게 얘기하면 모두들 동의합니다. 좋습니다. 이해하겠습니다. 당신의 말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된다고 하는 기도가 첫 번째 와야 된다는 그 뜻이군요. 아멘으로 내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이 기도를 형식적으로 첫 번째 했을 뿐만 아니라 첫 번째 기도에 마음을 쏟아 부으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갯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 방을 같이 떨어지며 기도했던 기도의 바로 그 내용이 이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여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거룩히 여기게 하옵소서. 첫 번째 와야 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나는 그 기도가 그렇게 사무치는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되겠나이다 하는 사무치는 마음이 내 마음 속에서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가 되어서 나와서 흘러나오지 않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기도하고 싶지만 되지 않는 것을 어떡하겠습니까. 문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그렇게 절박하게 기도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영광을 받지 못하고 업수히 여김을 받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지 못하는가 하는 현실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가 있습니다. 왜 우리 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바라보실 때 도처에 하나님 이름이 업수히 여김을 받고 주님의 거룩한 이름이 멸시를 받는 장면이 보였기 때문에 주님은 가슴 아파 하시며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하며 가슴을 치며 슬퍼하며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했는데 우리는 똑같은 현실 아니 예수님 그때보다 더 타락하고 죄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우리도 인정하는데 우리 눈에는 이 세상이 타락한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일까요. 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잃어버리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왜 죄악을 봐도 그 속에서 업수히 여김을 받고 더럽히 여김을 받는 주님의 이름을 발견하고 더러워진 이름을 황급히 씻어내지 않을 수 없는 그러한 사모하는 열망이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오직 한가지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 하신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인지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 중에 누구도 거룩한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만남의 체험이 없이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되겠사옵나이다 라며 울부짖으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실로 이 기도 제목이 마음속에 와 닿고 오 하나님 어찌하여 주의 거룩한 이름이 당신이 지으신 이 세상에서 모욕을 받나이까 보시옵소서 거리에서도 집안에서도 교회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이방인 가운데서도 주의 거룩한 이름이 합당한 영광을 받지 못하고 업수히 여김을 받고 있나이다. 우리의 죄가 당신의 이름에 먹칠을 하고 있사오며 우리의 죄악이 당신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더럽힘을 입히고 있사옵나이다. 주여 이 현실을 어느 때까지 보시렵나이까. 하나님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이 어떠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애통하며 그 기도의 제목을 쥐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히 거룩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인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과의 참다운 만남이 없이는 우리의 신앙은 도무지 성경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 한분을 추구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한분을 향하여 시선을 고정시키고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내 인생과 신앙과 내 영적인 모든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문제 해결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굳게 믿으며 가난하고 애통하며 부르짖는 심령으로 어린아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것입니까. 우리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까? 광야 길에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가슴을 풀어서 젖을 물리던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들이 알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어두운 세상 속에서 이 하나의 소망을 가지고 사셨습니다. 그가 자기 땅에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왜 슬피 울며 우울한 인생을 그 세상 가운데 보내셔야 했습니까. 오직 이유는 하나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결핍과 모자람과 고통 투성이라고 할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고 영광을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는 웃고 만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그 백성이 무엇입니까. 잊지 마십시오. 누군가가 하나님의 백성이 무엇이냐고 묻거든 우리 하나님의 백성은 그 이름과 함께 울고 그 이름과 함께 웃는 사람들이다. 이것보다도 하나님의 백성이 누구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세상을 보십시오. 도처에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고 거룩한 지존자의 사랑의 초청을 거절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그 뜻을 순종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소수이고 자기의 뜻대로 고집하며 자기의 육체의 욕심이 원하는 대로 하나님의 법을 떠나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이 세상에서만 업수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도 모욕을 받고 있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예배하는 것을 한없는 기쁨으로 알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할 의로운 삶과 거룩한 삶과 공의로운 삶과 자비로운 행위를 저버리고 강포가운데 빠져서 죄 가운데 빠져 사는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너희 이스라엘 백성들 때문에 이방인들 가운데 모욕거리가 되고 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눈을 들어서 우리 주위를 보십시오. 누가 하나님의 땅에 떨어진 이름에 인하여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슬픔 때문에 하나님 앞에 태평한 시대에 흐느껴 우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람들 보십시오. 자존심이 요만큼만 상하면 상처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몸부림을 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자기의 이름을 조금이라도 모욕을 하면 그 자존심 때문에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이상한 함수관계가 있습니다. 주님의 이름만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사모하는 충만한 심령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존심이 없는 사람들처럼 살아갑니다. 짓밟혀도 들리워진 하나님의 이름을 인해서 즐거워했습니다. 멸시와 천대를 받아도 거룩히 여김을 받는 하나님의 이름을 인해 기뻐하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무명한자 같이 취급을 받아도 예수의 이름이 빛나는 것을 인해서 만족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왜 정든 고국 땅을 떠나고 사랑하는 가족들을 등지고 순교의 길로 선교의 길로 복음을 전하는 길로 그렇게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을 들고 걸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며 죽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교사들한테 편지가 오는데 그게 꼭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납니다. 언제나 똑 같은 기도 제목입니다. 첫 번째는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합니다. 세 번째는 돈이 필요합니다. 어느 편지를 봐도 다 대동소이합니다.
지금부터 9년쯤 되었나 봅니다. 학교 선배인데 태국에 선교사로 가 있었습니다. 기도 카드가 왔습니다. 사진이 사모님하고 목사님하고 어린 아이 둘이 있었는데 사진을 찍고 우리의 기도 제목입니다. 딱 하나를 실었습니다. 그 기도 제목을 읽는 순간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기도 제목은 고국에 계신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태국에서 우리 네 식구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순교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인 것입니다. 일평생을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이 여김을 받을 때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해 찬양하고 즐거워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죄로 말미암아 혹은 이 세상에 있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이 업수히 여김을 받을 때 우리는 마치 고통 하는 사람처럼 몸부림치며 속히 주의 이름을 다시 우리 가운데 높이 들리우시기를 사모하며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의 평생소원이 무엇입니까?
(찬양)
늘 항상 못 부르나
이 세상의 노래는 주님을 찬양하고 싶어도 맨날 끊어집니다. 어저께까지 찬양을 잘했는데 오늘 몸이 아프니까 찬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심령이 상하니까 노래가 끊쳐집니다. 부르다 만 노래 같은 찬양을 부르면서 이 세상에서 삽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 하나에 매여서 살다가 주께서 우릴 오라 하실 때에 아멘 부르며 하나님 앞에 가서 이젠 영원히 쇠하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아름다운 노래로 이런 반주가 아니라 천국의 반주에 맞추어서 쇠하지 아니하고 다함이 없는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영원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의 삶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이 기도를 첫 번째로 가르쳐 주셨던 이유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