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나라의 임하옵시며 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9-13)
녹취자 ;정윤미
예수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하신 기도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라는 기도였다고 지난주일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번째 기도는 “나라이 임하시오며”입니다, 사람들이 주기도문을 외울 때, “나라에 임하시옵시며” 그래서 마치 “하나님이 나라에 와주시옵소서”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있는데 이것은 옛날 어투입니다. “이”는 주격조사입니다. 그래서 “나라가 임하옵시며”, 이렇게 이해하시면 정확합니다. “그 나라가 임하옵시며‘ 이 나라는 물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옵시며“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올리셨던 두 번째 기도제목이었습니다. 그러면, 늘 말씀드립니다만, “성경에서 순서는 매우 중요하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 번째 기도 다음에 이 두 번째 기도가 “나라이 임하옵시며” 그랬는데, 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라는 기도 다음에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두 번째로 오게 되었는지를 잠깐 주목하고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것은 이런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꿈에도 그리는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역사상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던 그때가 가장 하나님의 뜻이 잘 이루어진 시대였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사실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언제나 꿈꾸기를 그런 다윗의 나라가 다시 한 번 우리나라 가운데에 일어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진정한 신앙적인 소원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다윗의 나라 대신에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라는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던 것과는 다른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이 나라를 다스려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왕의 권세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의 권세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모든 백성이 다윗에게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서,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모든 나라가운데, 이스라엘백성이 참 하나님의 백성임이 드러나는 그러한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나라, 그 나라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오시므로 이 땅에 도래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바로 이 나라가 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그 기도 끝에, 그 기도에 뒤이어서, 즉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달라고 한 기도의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그곳에서만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이사야나, 예레미야나, 아모스나 호세아나 많은 선지자들이 그토록 호소했던 바가 무엇이었습니까? 심지어 교회 속에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이 수없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고, 찬양하고, 그리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예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는데에도, 하나님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받는 것은 인간이 무엇을 행하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람, 사람 속에 먼저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에 그 작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그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 때에,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주님의 이름이 존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한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 앞에 회심하고, 자기 속에 있는 악한 마음의 나라가 무너져서,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는 진실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깃발을 높이 흔들며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대규모 집회를 연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 것은 그런 행사를 통해서가 아니라,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진심으로 마음에 참회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그 마음을 돌이키고, 그래서, 그 심령 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질 때에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악들을 많이 말하고, 지적합니다마는 그러나 여러분, 눈을 들어서 자기의 속사람을 들여다보세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수시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세상의 나라가 흥왕 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졌다면, 세상에서 영광스럽고, 모든 사람들에게 부러운 것이 여러분의 마음속에서는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왜?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마음에 계시고, 우리 안에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그 찬란한 광채에 이 세상의 임금들이 꾸며 쓴 저 황금의 면류관은 광채를 잃게 됩니다. 너무나 예수그리스도께서 다스려주시는 그 나라에서, 그 나라의 특징은 의와 희락과 평강입니다. 의로운 것과 아주 기쁜 것과 그리고 샬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의 특징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나라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점점 소득이 늘어나고, 잘 살게 되어도, 그러나 거기에는 정말 참다운 평화가 없습니다. 참다운 평화가 없습니다.
예) 저는 한번 스위스를 소개하는 그 영화를 보면서 감탄을 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렇게 평화로운 나라인데, 사이렌이 울리니까, 집집마다 벽장을 여니까, 벽장 속에서 집집마다 기관단총이 나오고, 그리고 지하에 대피 시설을 만들었는데, 이만명이 들어가서 한 달 반 동안을 먹고 생활할 수 있는 시설들이 수십 개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경보가 울리면 벽장을 열고 기관단총을 들고, 그리고, 차에다 싣고, 그리고 와서 총알을 지급을 받고, 그리고 사격장에 와서 사격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나라에는 모양에는 평화가 있지만, 그러나 완전하고 참다운 평화는 하나님의 나라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가운데 늘 있어서, 그 이름을 위해서 살고, 그 이름을 위해서 죽고,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을 때 우리들이 진심으로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이 욕되이 여김을 받을 때에, 우리도 또한 욕되이 여김을 받는 이러한 그의 이름에 매인 삶이 우리의 가슴에 다가올 때도 많지만, 다가오지 않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마음속에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여러분은 어떤 의미로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예수를 믿는다 하는 것은 결코 이 세상에 심신이 약할 때에 누군가 의지할 절대자를 모시고 살아가는 그러한 것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사형수들은 모두 대부분 한 가지씩 종교를 갖고 죽어간다고 합니다. 때로는 불교, 때로는 유교, 때로는 단군교, 때로는 예수교, 때로는 천주교, 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서 뭔가 절대자를 의지하고 싶은 그런 감정을 갖는 막연한 절대자 의존의 감정, 그러한 것이 신앙이 아닙니다. 또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서 우리의 원하는 것들을 그 하나님께 잘 보이고,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얻어내어서, 그래서 그것들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것, 그것이 곧 축복을 받은 신앙생활이냐,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마다로 딱 잘라서 이야기 하면, 이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이제는 저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신앙생활의 진정한 의미는 이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이제는 이 나라를 버리고, 저 나라를 위해서 살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그러면 어떻게 이 나라를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이 나라를 버리고, 저 나라를 위해 살고, 이 나라를 위해서 살던 사람이 저 나라를 위해서 살면서도 역시 그 사람은 이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 속해있으면서도, 이 나라를 위해서 살지 않고, 저 나라를 위해서 살고, 저 나라를 위해 살면서도, 이 나라에서 저 나라를 위해서 살면 이 나라가 좋아하지 않고 싫어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여러분 다 알지요. 우리끼리만 아는 것입니다. 이 나라에 살면서, 주민등록 여기가지고, 저 나라를 위해서 살면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고 싫어합니다.
예)요즈음 대학이 한창 몸살을 앓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외국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쫓아내자, 이유인 즉은 무엇이냐 하면, 여기에서 다 벌어가지고, 그래가지고, 미국으로 갖고 가서, 미국에서 쓴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를 믿는 다고 하는 의미는 이 나라를 위해서 살다가 이제는 저 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전에는 이 세상이 쉽게 공식으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셨는데, 이 세상에서 사단이 죄가 들어오므로 말미암아서, 사단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말하자면, 반란군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안 믿는 것은 곧 무엇이냐 하면, 그 반란군에 입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붙어가지고, 그 나라 사람, 그 나라와 한패가 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것이, 이것이 바로 예수를 안 믿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안 믿고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그냥,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서는 안 될 그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이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렇게 반역된 생활을 하다가, 예수를 믿게 되는 것은 바로 그쪽 군대에서 투항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가 하면, 회개 할 때에 예수를 믿게 되는 모습을 보면, 투항하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찬양)
손들고 옵니다
똑같습니다. 백기 들고, 백기를 듭니다. 무엇이라고 합니다. “ 하나님 이제 내 인생을 포기 했사옵나이다. 주님, 이제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백기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가운데 백기든 적이 있습니다. 백기든 적 있었다는 것은 옛날에 저쪽 편에 붙어가지고, 거기에서는 열심히 싸울수록 칭찬을 하고, 출세시켜 주고, 돈 많이 벌려주고 그럽니다. 거기에서 그냥 계급하나 올라가는 것이 즐거워가지고, 죽자 살자 그리고 살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것이 보통길이 아니었습니다.
(찬송)
죄악 된 세상을 방황하다가
천국과 지옥도 모르고, 그러니까 무엇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소개받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것을 깨달아 아는 순간에 손들고 항복했습니다. 백기를 들고, 이제 나는 백기를 드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죽이든지 살리든지 이제는 너희 마음대로 해라 그 뜻입니다. 그리고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군인이 한번 항복했으면, 그럼 계속해서 항복을 하고, 예수그리스도께서 이쪽 군대의 사령관으로 오신 것인데,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데, 백기를 들었으면서도 또 나중에 딴생각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옛날에 저쪽 편에 붙어서, 승진 하던 때가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될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지 않고, 저쪽나라를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결국은 무엇이냐 하면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까? 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까? 이루어 졌으면, “주님이여 세상에 나라가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하옵시며”, 그렇게 기도하셔야 되겠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이 기도 자체가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늘도 보면, 이 세상에 반란군의 세력이 엄청나게 강합니다. 그래서 마치 어느 곳에 가보면 이것도 과연 주님의 나라인가 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반란군들이 도시를 점령하고, 그 속에서 깃발을 세우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어두움의 왕들을 찬양하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곳에서는 주님의 이름이 결단코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어떤 생애를 사셨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는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병을 고치시고, 믿음을 주셨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지마는,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생애는 늘 이러한 전쟁 속에서 사는 생애였습니다. 늘 전쟁의 고통 속에서, 이 세상에 오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싸운 것입니다.
역사 속에 나타났던 사상들 가운데, 종말에 승리가 저절로 올 것이라고 믿는 사상이 둘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공산주의고, 하나는 기독교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이 자본주의 사회는 스스로의 모순 때문에 붕괴하고, 기필코 공산주의 시대가 도래하고 말 것이다 그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내버려두면, 역사가 물줄기가 그렇게 흘러가서 공산주의 세상이 오는데, 꼭 거기에는 그런 역사가 오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에서 후덕한 사람을 잡아갈 때에 그 사람한테 무엇이라고 하냐 하면 반동분자라고 합니다. 그이야기는 반동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역사가 이렇게 흘러가는데, 도와줄 필요도 없는데, 가만히 내버려두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서 공산주의 천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중에 꼭 이상한 사람들이 있어서, 그 물결이 못 흐르게, 막아봐야 소용이 없는데도, 못 흐르게끔 그렇게 공산주의를 해롭게 하는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그러한 반동분자를 빨리 색출해서 없애버리면, 역사의 물줄기가 물꼬가 터져서 빨리빨리 흘러가서, 그 세상이 빨리 도래하게 된다는 것 입니다. 미안하지만, 기독교의 사상이 이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배운 겁니다,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다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의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국 하나님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는 반드시 옵니다. 이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던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 불순종하던 이세상의 세력들이 아무리 강성할지라도 주님은 오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리고, 새 하늘과 새 시대가 도래하게끔 하나님이 직접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못하도록 방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지연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우리 가운데에 있는 불순종, 불 충성, 그다음에 하나님을 위하여 살지 않으려고 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어서, 반드시 오고야말 하나님의 나라의 도래를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치우는 일들을 할 때에, 그 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면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보면, 적극적인 것보다는 소극적인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주님께 은혜를 받자,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하시지만, 우리로 하여금 은혜를 받을 수 없게 만드는 것들을 치워버리는 것이 은혜를 주시옵소서. 하고 부르짖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선하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가운데에 들어와 있는 이 죄를 치우고, 죄가 우리가운데 역사하지 못하도록 그렇게 우리자신을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에 걸림이 되어서 가로막고 있는 그러한 악한 생각과 세상을 향한 사랑들을 치워버려서 주님의 사랑이 자연스럽게 우리 속으로 밀려들어오도록 이렇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우리자신을 비우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 후자는 전자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막 고난을 받으면서 사는 것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주님을 위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더 많은 고생을 스스로 당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주님을 위해서 스스로 자기가 가진 것을 비우고, 가난하고 그리고 정말 비우고 비운 심령이 되는 이것이 더 어려운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됩니다. 먼저 주님의 나라에 그 강물이 우리 속에 힘차게 흐르기를 원하는 데에도 우리의 죄악의 담과 불신앙의 둑과 그리고, 불순종의 장애물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그 영향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그것부터 먼저 치워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갖고 있는 우리의 소원이 진실함을 하나님 앞에 보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에 있는 많은 불순종과 불신앙과 죄악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데에 거침돌이 되고 가로막는 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더 쉽게 예를 들면 이런 예가 나옵니다. 비유를 들자면,
예) 우리가 주님이여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옵소서, 은사를 주시옵소서. 성령을 주시옵소서. 아무리 많이 기도를 해도 이상하게 그렇게 충만함을 받지 못했는데, 어느 한순간 말씀을 듣고, 먼저 내가 무엇을 안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안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그 어떤 것들을 포기하고 버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에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것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이 회개의 순간이 바로 그 순간입니다. 회개의 순간은 대부분이 자기가 행해야 할 것을 행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도 있지만, 더 큰 것은 무엇이냐 하면,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치우고, 그것들을 버릴 때에 그때에 마치 단단하게 말하자면, 갇혀있던 물이 수문을 탁 여니까, 소양강 댐 문 연때에 한번 보시면, 나는 직접 못 봤지만, tv에서 봤지만, 그것은 정말 장관입니다. 물이 쏟아져가지고, 튀기는데 그것이 197미터 상상이 안가는 그런 높이입니다. 거기에서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물이 위로 튀어 오르는데, 100미터 이상 튀어 오릅니다. 정말 장관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가 말하자면, 문 열리면서 우리 속에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확 밀려들어 오고, 그래서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의 나라에 살아야만 행복합니다. 믿으셔야 됩니다. 이번에도 집회를 갔는데, 그 목사님이 미국에서 개척교회 목회를 하다가 한국으로 오셔서, 한국의 목회 지를 찾으셔서, 목회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면, “교수님, 미국은 살 데가 못됩니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느니, 차라리 한국에서 하는 것이 훨씬 낫다”고 합니다. 여기에 오니까, 자기는 이제 비로소 목사가 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거기에서는 교회를 해도 목사 같지가 않다고 합니다. 왜 그러냐 하니깐, 교인들의 모든 뒤치다꺼리를 다 해주어야 된다고 합니다. 불면증 환자가 전화를 오면, 그 사람하고 말동무를 해주어야하고, 직장에서 잘렸다고 하면, 취직 붙여주러 다녀야 하고, 또 이사 온다고 하면, 노란모자 쓰고 가서, 이삿짐 날라주어야 하고, 다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저, 서비스 맨 정도로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교회에 가면, 전부다 고달픈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그랬습니다. 거기에서 돈을 많이 벌었으면, 그래도, 안정될 것 아닙니까? 돈을 많이 벌어도 한국에서 돈 많이 번 것과 같지가 않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그렇게 고달프고, 무언가 매일 추격을 받는 그런 인생을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가면 매우 대단한 것 같아도, 미국 사람들은 백인 다음에 검둥이, 검둥이 다음에 우리 동양사람 이렇게 순서를 쳐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 살 때에 많이 행복합니다. 나는 말년에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말년이 되어가지고, 후회하면서 한국 돌아오고 싶어서 우시는 목사님 이야기 여럿 들었습니다. 고국으로 좀 돌아오고 해달라고요. 우리는 이 나라에서 살 때에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 증거는 무엇이냐 하면, 똑같은 예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아야만, 가장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더군다나, 이세상의 임금들은 완전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고통가운데에 몰아넣을 적도 있지만, 그 나라의 임금이신 하나님 아버지는 완전히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시고, 무엇보다도 당신의 백성들의 참된 행복을 위해서 그 나라를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믿으셔야 됩니다. 이세상의 임금 중에 하나님과 같이 완전한 임금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나라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참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아니하면, 그러면 정말 참된 평안과 참된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평안이 깨지고, 왜 하나님을 믿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 나라에 살아가는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그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불순종 때문입니다. 불순종 때문입니다. 순종하면서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대로 아멘 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얻으며, 살아가면 그 속에서 행복합니다. 그런데, 불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가 자기에게 거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가 자꾸 자기를 괴롭히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왜 그런 우리 속에 불순종이 있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이야기는 첫 번째 기도제목이 해결이 안됐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이름이 높아 지이다, 쉽게 이야기해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고 싶은 욕망보다는 자기의 영광과 그리고, 자기의 육체의 욕심과 소원을 따라서 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그것을 용납을 안 합니다. 주님이 친히 다스려 주시는 것은 주님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그 나라를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계속해서 불순종합니다. 그러니까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이다 라고 하는 신앙 고백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심령에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계속 그 불순종과 하나님의 통치사이에 마찰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니까, 그렇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 갈등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진정 어떤 일들이 먼저 일어나야 되겠느냐하면, 먼저 개인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고, 그다음에는 우주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중심으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어떻게 함으로써, 우리 속에 그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반역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이 분명히 우리 가운데에서 다스려 주시는 그 통치를 거절하는 그러한 불순종의 마음들이 어떻게 하면 변해서 주님의 다스리심에 복종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인해서 같이 즐거워하고,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의 마음에 목표가 하나님의 목표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이것은 결국은 하나님이 추호도 양보를 안 하십니다. 양보를 하시면 문제가 해결이 되는데 둘 중에 하나,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 됩니다. 그런데 아들을 내어주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이것만큼은 하나님이 양보를 안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불행하게 살아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이 있는 이런 마음들이 진정으로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해야 되냐 하면, 자기 속에 잘못 심겨진, 하나님의 나라를 싫어해서, 그래서 이 세상나라가 원하는 대로 심겨진 잘못된 것들이 뽑히는 일들이 일어나야 됩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참회가 없이는 진정한 평화가 없는 것입니다. 참된 참회와 깊은 회개와 그리고 진실한 돌이킴 그것만이 우리 속에 이전에 우리들이 보지 못했던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세상의 나라보다 훨씬 힘이 있고 위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그 나라가 우리 속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를 비우고, 우리의 마음에 잘못 심겨진 것들을 뽑고, 파멸하고, 파괴시키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까지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그때까지, 주님의 나라는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하나님의 나라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가운데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씨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겨자씨였습니다. 나는 겨자나무를 보지 못했지만, 그림과 사진에서 봤습니다. 겨자씨가 얼마나 적은가 하면, 티스푼으로 한 스푼으로 뜨면, 수천 개가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입니다. 그 씨앗인데, 그것이 싹이 나고, 잎이 나고 줄기가 뻗어서 나무가 자라면 아름드리나무가 되어가지고, 말하자면, 새들이 거쳐야 곳을 얻는, 그런 나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훌륭한 하나님의 나라로 비유될 수 있는, 그 나무로 비유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도 사실은 그 작은 씨앗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궁극적인 요인은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하나님을 반역하는 도시를 잔뜩 가지고, 그리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그 반란군들의 무리에 동참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해방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짓밟고 그분의 이름을 모욕하는 이 일을 위해서 헌신하면서 사는 이러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느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마음에 심기므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 자체가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뿌려졌습니다. 혹은 길가, 자갈밭, 가시덤불 혹은 옥토에 뿌려졌습니다. 모두 다 똑같은 씨앗이었습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도, 가시나무에 버려진 씨도, 옥토에 뿌려진 씨도, 다른 씨가 아니고, 동일한 씨였습니다. 그자체가 진리였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지닌 하나님의 말씀이었고, 동일한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가요. 길가에 뿌려진 씨를 보십시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떨어졌는데, 훅 바람이 와서 날아가 버리고, 새가 와서 먹어버리니까, 그 땅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진 것과 안 떨어진 것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땅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공히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의 마음에 떨어져서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라고 하는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 열매 맺을 때를 기다려야 되는 것입니다.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그 말씀을 듣고, 진심으로 참회해서 내 속에 있는 죄와 그리고, 내 속에 있는 불순종 때문에 갈등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스려 주시는 것들을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이러한 불순종의 세력들이 모두 뽑히는 그러한 회개의 역사, 진정한 참회의 역사, 자신을 그 죄로부터 돌이키는 뉘우침의 역사가 없이는 누구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시작하면, 주님이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몰라보게 자라는 것이, 그 씨가 어떻게 저 엄청난 나무가 되었을까? 그렇게 상상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속히 자라서,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가 되어서, 깃들이고 거기에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특성입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진정으로 자기의 나라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오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나라가 지워지겠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심겨서, 그 나무에 비교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이러한 역사가를 우리의 심령 속에서 경험하지 못할 때, 하나님의 나라만, 그렇게 급속히 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에 세상나라에 속한 그런 불순종과 죄악의 나무도 속히 자라는 것입니다. 깊은 뿌리와 함께, 생각의 죄악은 결국은 행동의 죄악을 낳게 됩니다. 행동의 죄악이 반복되면, 우리 인격의 특성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격이 계속 죄인으로 낙인찍힐 때에 결국은 우리는 그 인격이 행하는 모든 일 자체가 죄로 물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그 죄로부터 육체에 썩어 질 것들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먼저 자기의 가슴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사모해야 됩니다. 자기 속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해서 통분히 여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의로운 삶을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그리스도께 끊임없이 비난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사람들 속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면서 통분히 여기면서 자기 속에 이루어지지 못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인하여서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그 모순 앞에 결단하도록 부름을 받은 모든 사람들은 먼저 이 세상나라의 모순을 본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자기 속에 있는 모순을 보았고, 그리고, 자기 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고개를 들고 있는 불순종과 반역과 죄악의 물결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음성 앞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내 마음속에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될 때에 거기에만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고, 거기에만 그리스도예수께서 좌정해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모 하는 심령으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 회개 했습니다. 우리는 신앙에 어떤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거쳐야 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마음속에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것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많이 순종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조금 순종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거의 순종이라는 단어를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이 순종하고, 조금 불순종하는 사람이나, 조금 순종하고, 많이 불순종하는 사람이나, 그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필요 한 것은 그 조금을 더 순종하는 일이 그렇게 힘들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따라서, 모두 하나님을 만나야 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참으로 자신 속에 주님을 입술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내 마음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기를 싫어하는 이런 불순종, 얼마나 많이 역사하고 있는지요? 이것을 볼 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입니다. 제가 여러분, 장담을 하겠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면, 그러면, 그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면,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과 비례해서 우리는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받으셔야 되옵나이다” 하는 그 간절한 기도가, 왜 예수님의 주기도문에 첫 번째 기도였는지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말 중요한 것은 설교자가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가르쳐 주십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코끼리를 못 본 사람에게, 코끼리 그림을 그려놓고, 아무리 만지라고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46분40초)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도 하나님의 통치가 가득하고,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 대신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뻐하고, 주님의 이름을 송축하고, 그래서 나라가 비록 고난을 당하고 광야의 길을 지나고, 그리고, 물과 불 사이를 통과한다고 할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만을 위해서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나라 임할 때, 비로소 우리 가정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의 나라, 이 나라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그리고, 그 나라를 위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오후에 계속 영적 군사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는데,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는 진정한 영적인 군사의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두 번째 기도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기도했습니다. 이것은 주여, 될 수 있으면, 나라가 임하게 해주셔야 되겠습니다. 그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나라가 없이는, 주님의 이름이 영광이 받는 것도 없사옵나이다. 주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지 아니하면, 내가 이 세상을 사는 것은 괴로움 이옵나이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와야 됩니다. 할렐루야!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토록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사모하셨습니다. 기도를 가르쳐 주실 때에,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이 기도를 외우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신과 같이 이렇게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누구냐고 물을 때에, 세상에 살지마는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그러한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여러분에게 당신은 누구냐 물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라고 대답하십시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자녀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여러분은 세상에 살지만,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고백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세상 속에 있지만, 그러나 매일 매일의 삶이 세상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이되기를 다짐하면서 보이는 것이 바로 이 주일 예배인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