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나라이 임하 옵시며 2
“나라이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마 6:10 )
녹취자: 표명희
지난 시간에는 이 주기도문 중에서 주님의 두 번째 기도인 “나라이 임하옵시며”, “나라가 내려오게 하옵시며” 이런 뜻입니다. 이 말씀을 중심으로 지난 시간에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 참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기를 기도 하시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두 번째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의 첫 번째 기도였는데, 그 기도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땅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려 주실 때 비로소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시지 아니하시면 도무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수 없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는 우리의 마음속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무슨 얘기죠?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보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다스림에 주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그 지배하심에 과연 우리의 마음이 늘 복종하면서 살면서 행복을 느껴야 되는데 논리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야 그 나라의 백성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속 안에 그렇게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시고 우리를 통치해 주실 때 그때 그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역하고 싶고 거스르고 싶고 거기에 순종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속에서 계속 뭉게구름처럼 솟아나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다스리심을 싫어합니다. 우리의 부패 때문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순결한 통치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방종함 때문에 하나님의 그 엄위하신 다스리심을 싫어하고 미워합니다. 그러니까 죄 있는 사람들은 죄인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늘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보다는 자신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방종하게 살아가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될까요? 어떻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만이 인생의 즐거움인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지니까 그 말씀을 듣고 깊이 자기의 삶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옳지 않고 부적절한 삶이었는가 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 깊이 회개하고 뉘우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의 속에 잘못 세워진 모든 것이 뽑히고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깊이 우리는 뉘우치게 됩니다. 그러면서 즉시 하나님이 내 마음에 오셔서 나를 다스려 주십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주님의 뜻대로 사는 것 주님의 다스리시는 통치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내 마음속에 참된 기쁨임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다스림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다스림이 시작되는데 이제는 불신앙의 죄들을 회개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니까 늘 성령의 인도하심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이제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불순종을 포기하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게 하시는 성령으로 충만해지니까 주님의 법도를 따라서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나라가 오게 될까요? 하나님 앞에 깊이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천국과는 거리가 멀고 내 마음이 얼마나 천국과는 거리가 먼가를 생각하면서 깊이 뉘우치며 자신이 하나님 앞에 무너지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지난주에 사랑의 교회 집회를 가고 한국 의사회 집회에 갔습니다. 제가 부탁을 드리는데, 제가 교회를 비울수록 여러분은 수요일 날 더 많이 모이시고 금요기도회에서 더 열심히 기도하셔야 합니다. 믿습니까? 만약에 여러분 제가 떠나고 나면 새벽기도도 파장이고 수요일예배도 안모이고 금요기도회에도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를 안 한다 그러면 저는 안 나갑니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뭐냐 하면 목회자를 독차지 하려는 성도들의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목회자가 누군가에게 유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이 되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으면 가서 기여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한주 교회를 비워도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성숙한 교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습니까? 그래서 사랑의 교회를 갔는데 놀라지 마세요. 시편 23편을 17시간을 설교했습니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세 시간 반씩 그 딱딱한 마룻바닥에 앉아서 깊이 말씀을 듣다 웃다 울다 회개하다 찬송하다 그러면서 매순간마다 자신들의 잘못된 모습들이 말씀을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병원에 오락하러 가는 사람과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드러내실 때는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의 순간이 지나가고 나면 그다음에는 희락과 기쁨이 옵니다. 한 없이 한 없이 그 진리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심령이 새롭게 소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임해서 먼저 깊이 좌절하고 그래서 깊이 고통하고 그런 후에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살리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다스려주시고 세상에서 주님이 우리를 다스려 주시지 않을 때는 결국은 우리가 우리를 다스리면서 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다스리면서 사니까 그 왕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왜? 날마다 변하고 판단하고 통치하는 것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자신들이 가장 염려하는 것 같지만 그러나 우리 자신을 지켜줄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치밀한 것 같지만 그 어느 순간에 우리의 생각과 인생에 대한 가치관들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런 불완전한 통치를 받으면서 우리가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심령이 이런 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 우리를 부르신 그 거룩한 목적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예수 믿는 것을 목에 십자가 목걸이나 걸고 다니면서 곤고하고 피곤할 때 위안이나 받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십자가의 피로 구속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낳았을 때 여러분들이 가출하여 돌아다니다가 용돈 떨어지면 족보 들고 와서 당신아들이니 돈 좀 주십시오. 돈 타서 또 나가는 그러다가 나가서 죄짓고 몸에 병들면 치료해달라고 집에 오고 치료해주면 다시 방탕한 길로 나가고 겨우 그런 것을 위해서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이 여러분을 낳아서 지금까지 길렀습니까? 결코 그것은 신앙에 대한 중대한 오해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하신 것은 여러분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아주 크고 아주 놀랍고 아주 신비롭고 아주 아름다운 아주 가슴 벅찬 그런 계획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계획에 대해서 우리들이 눈뜨고 그 계획에 대해서 감격할 줄 모르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나게 하셨을 때 그때에 가지셨던 하나님이 그때에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살았으면 하고 가지셨던 그 계획과 여러분들이 이렇게 살았으면 하고 가졌던 계획이 너무나 틀립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렇게 못 살게 하신 하나님과 살게 하신 여러분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하나님과 갈등을 일으키면 누가 이기겠습니까? 하나님과 계속 갈등을 일으키면 누가 승리하겠고 누구에게 말하자면 이득이 돌아가겠습니까? 그러니까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을 믿는다, 신앙을 가지고 내가 산다, 그리고 예수님이 나를 십자가의 피로 구원하셨다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우리가 눈을 떠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포기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나와 가지고 에굽에 있었으면 좋았을 걸 결국엔 그 사람들 중 한사람이라도 에굽으로 돌아간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못 돌아갑니다.
나는 예수 믿고 나서 4년 동안은 사람들에게 "예수 믿은 거 후회 한다" 그러고 돌아 다녔습니다. 왜? 직감적으로 이 예수 믿은 것을 취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근데 그것이 나에게는 너무너무 부담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왠지 하나님이 내 인생에 자꾸 간섭 하시는 것. 왠지 내 인생가운데 오셔서 왠지 내가 원하지 않는 길로 내 인생을 이끌지도 모른다는 불안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 왜 불안한 가요? 자기가 살아 있으니까 불안한 예감이 드는 것입니다. 자기가 계속해서 살아있으니까 불안한 예감이 자꾸 드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찬양)
나를 항상 버리고 십자가를 붙드네.
그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을 쫒고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무엇인가를 귀 기울이면서 물어보고 싶어 하지 않고 주님 내가 걸어가고자 하는 이 인생의 멋진 계획에 주님이 언제나 보증서를 써 주시옵소서. 주체는 제가 할 테니, 주님은 후원만 하십시오. 늘 이런 식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인생의 고통과 곤고함이 끊이질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지 않는 것입니다. 순종 하게하는 하나님의 나라와 불순종하게 하는 나의 나라가 심령 속에서 끊임없이 전쟁을 합니다. 나는 내 인생 속에 주인노릇하기 전까지 양보할 수 없고 하나님은 하나님이 다스리기 전까지 양보를 못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에서는 계속 투쟁과 갈등을 합니다. 그러니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우울한 사람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정말 여러분 시인처럼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오! 주여 그만 부으시옵소서. 주님의 은혜가 이제 넘쳐서 쏟아질 것 같사옵니다. 그러면서 사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비롯해서 여러분 주의에 몇 사람이나 있습니까? 우리 열린 교회 식구들은 다 그렇게 살죠? 내가 일주일 없는 사이에 믿음이 왜 그렇게 떨어 졌을까요? 열린 교회 식구들은 다 그렇게 살아야죠? 넘쳐나는 기쁨 속에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속에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근데 계속해서 불순종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계속 싸우려고 하면 하나님이 한참 참으시다가 나중에 하나님이 화나시면 확 허물어 버립니다. 그런 다음 사람들이 말합니다.
(찬양)
손들고 옵니다.
나는 그 찬송이 굉장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전쟁할 때 손들고 옵니다. 손들고 온다는 것은 항복을 의미합니다. 왜 주님 앞에 오면서 손들고 올까요? 고개 떨 구고 옵니다. 그렇게 안하고 손들고 옵니다. 한 이유가 뭘까요? 주님 항복 이옵나이다. 항복에 작대기 하나 더 그으면 행복이 됩니다. 항복을 해야지만 행복이 있는 것입니다. 항복을 안 하고 행복을 찾으려고 하니 올 리가 있습니까? 주님 항복 이옵나이다. 주님 항복 이옵나이다. 잘 들으십시오. 여러분들의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은 여러분의 고통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겸비함에 비례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쌍히 여겨주시는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가롯 유다를 보십시오. 주님을 은 30에 팔고나서 얼마나 괴로워했습니까? 몸부림 쳤습니다. 은 30은 써 보지도 못하고 성전에 던졌습니다.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목매어 죽어서 창자까지 터져 버렸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의 긍휼을 못 얻었습니다.
고통 하는 곳에 주님이 항상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에 비례하느냐? 겸비함입니다. 마음이 낮아져서 주님 항복 이옵나이다. 주님 항복 이옵나이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낮아지는 것에 비례합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소망이 있는 것 같은 죄인들이 오히려 마지막에는 이상하게 소망이 없는 길을 가고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죄인이 이상하게 소망의 길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왜 그럴까요? 그게 바로 인간의 고통이 곧 하나님의 긍휼이 여기시는 근거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그러니까 작은 죄악 속에서도 주님 앞에 겸비하지 않은 사람은 큰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때요? 큰 죄악 주님을 멀리 떠나고 주님의 나라가 내 마음 속에 이루지는 것을 날마다 거부하며 살던 그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마음이 겸비해지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 심령이 정말 크게 가난해지면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넘치는 것입니다.
보세요. 주님은 얼마나 멋있는 분입니까? 도저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가치가 없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떤 사람? 세리와 창기와 죄인 자신들도 자신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가능성이 없다고 포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오셔서 먹고 마시고 그들과 함께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 앞에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더 이상 기도할 제목이 없 사옵나이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 앞에 겸비해지는 일이 크게 일어나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마음에 왕창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됩니까? 그 비참한 삶을 살던 사람들이 주님만을 위해서 살게 됩니다. 제가 집회에 갔습니다. 설교를 첫 시간 하는데 그중에 한 지체가 눈에 확 뛰었습니다. 근데 얼굴 자체가 하나님 나는 최악이옵나이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근데 설교를 안 들으려면 혼자 구석에서 졸든지 하지 코앞에서 안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사람이 200명 가까이 모였는데 그 사람만 눈에 들어 왔습니다. 도저히 못 참겠어서 첫날 저녁은 넘기고 다음날 아침에 또 그랬습니다. 그래서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곤고한 영혼을 안고 살아갑니까? 물었더니 저는 아닌데요.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 그렇게 잠깐 동안 얘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나중에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얘기를 했습니다. 말씀을 듣고 나서 보니까 자기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다음부터 설교를 듣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날 고백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저는 감정이 정리된 것을 영적으로 회복된 것이라고 착각했다는 사실을 그 후에 알게 되었답니다. 그렇습니다. 감정이 정리된 것 누군가를 미워했는데 이제는 밉지 않다는 것입니다 . 감정이 정리됐는데 그것이 영적으로 회복된 것으로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깊이 낮아지고 그리고 심령이 하나님 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기위해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거스르고 있는 나의 나라 내 마음속에 투쟁하고 있는 내 안에 있는 세상의 나라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해야 합니다. 깊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 앞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 가운데 깊은 자유 함 가운데 주님의 이름을 노래하며 그렇게 말 할 수 없는 기쁨 속에 살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 자신을 하나님 앞에 포기한 사람입니다. 나를 항상 버리고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 그 사람들이 자유 함과 은혜와 그리고 기쁨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렇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 깊이 포기하고 그래서 내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그다음에 비로소 내가 살아가는 삶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으로서만 이루어지는데 그 성령은 혼자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임하신 그 성령이 사람들에게 임하시므로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온전하게 이루어질 때 그때 우리는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보세요.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러분이 만나는 여러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안 이루어지니까 사람이 미운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껄끄러운 것입니다. 심지어는 만나는 사람마다 원망 합니다. 자기를 낳아준 부모조차도 원망을 하고 심지어는 자기형제도 오늘 아침 신문에 보면 죽여 버리고 이러면서 자기의 마음속에 이루어진 나라의 표현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대로 나타냅니다.
내 마음에는 세상의 나라가 충만한데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에 없는 공식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심령은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기위해서 막 설치는 사람들의 수고는 언제나 헛된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가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나라는 단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변화된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서 변화된 심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어때요? 나 하나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수많은 나라 사람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전염되어 확장됩니다. 왜 그럴까요? 전에는 그렇게 안 살았는데 막 파괴적이었는데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니까
(찬양)
주님 나 같은 죄인 용서함 받아서 주 앞에 오는 사람 되니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그 하나님이 나를 용서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그리고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신다는 이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깨닫게 되니까 그러니까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니까 그 사람들을 용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왜?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니까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될까요? 사람들의 마음속에 맺혀있던 아픔과 고통을 내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그 사람들을 오히려 그 올무에서 풀어주는 것입니다. 구해줍니다. 분명히 저 사람이 잘못했는데도 풀어줍니다. 용서해 줍니다. 내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 때문에 그 사람이 이제는 미워할 사람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왜?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이 와서 자기를 오히려 용서해주고 마음에 맺힌 것들을 풀어주니까. 그 사람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니까 어떻게 됩니까? 관계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그 관계를 사용해서 도 다른 사람들의 관계를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해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지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의 마음에 있을지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찬양)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결국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그 온전하고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이 온 천하 우주를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는 주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니 사람이 없는 온 세상 우주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합니다. 애야 지구에는 사람이 사니? 달아 너는 결코 부딪치면 아니 되느니라. 그러니까 지금 수십 역년동안 달은 지구주위를 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인격이 없는 온 우주를 다스리는 그 왕이 되시는 것 보다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란의 마음에 오셔서 주인이 되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이 하나님을 마음껏 떠 받 들어드리고 그래서 그 주님의 이름을 한없이 높여드리는 그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의 인생 속에 이루어지기를 하나님은 원하십니다. 내가 이렇게 천천한 목소리로 하는 것은 지금 목이 아파서 그렇습니다. 내가 이렇게 천천한 목소리로 말을 해도 하나님은 이 대목에서 소리치고 싶어 합니다. 맞다 나는 너희 한사람의 인생에 왕이 되는 것이 온천하의 왕이 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럼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앞에 주여 내가 곤고하나이다.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러지 말고 주님이 도움이 강물같이 밀려오는데도 그것을 거절하면서 사는 불순종을 먼저 치워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주님의 큰 성령을 나에게 부어주시옵소서. 성령을 여러분에게 주시려고 해도 그것을 못 들어오게 가로막고 있는 여러분의 불순종을 치울 때야 그 기도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거스르는 것들을 다 내버려두고 성령만 주시옵소서.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기도와 삶이 일치 할 때 그 기도를 받으십니다. 주님 나는 가난하옵나이다. 마음이 가난하옵나이다. 그러면서도 교회 문을 나서면 한 번도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고 주님을 찾지 않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님의 나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살아가고 이름만 그리스도인인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으니까 세상은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 누가회에 설교 가서 손봉호 박사님과 같은 방을 쓰면서 하루를 교재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분의 얘기가 그거였습니다. 김 교수님 우리나라 교회 소망 없습니다. 그분은 윤리 운동을 하니까 교회 구서구석 비리를 더 많이 알 것입니다. 한마디로 잘라서 얘기합니다. 소망이 없다. 왜 소망이 없을 까요? 사람의 마음속에 소망이 없으니까 세상에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큰 목표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세상의 나라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영원한 나라 이 세상과 내세가 함께 걸쳐있는 이 세상으로 끝나지 않는 그 하나님의 나라에 백성으로 우리를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됐을 때 우리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내 동포가 아니라 이제는 아브라함과 어거스틴과 켈빈과 사도바울과 베드로를 비롯한 구름같이 허다한 수많은 믿음의 친구들이 우리의 동포가 된 것입니다. 그런 나라를 위해 살도록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 제대로 살다 죽으면 이다음에 여러분들은 히부리서 11장에 나타난 믿음의 위인들과 같은 자리에 앉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히부리서 11장의 후편을 기록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거룩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잊어버리고 세상 속에서 매몰되어서 살아가는 것은 전혀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수없는 모순과 고통 하는 갈등들을 우리들은 보았습니다. 날마다 부패하는 세상으로 인해서 뜻있는 사람들은 마음 아파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이 더 도덕적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임하지 않는 한 세상은 변화되지 않습니다. 또 변화되어도 거기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변화된 가운데 살뿐이지 변화되어도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오늘은 술을 끊고 착실하게 살아야지 백번 결심한다고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실까요? 하나님에게는 그런 건 별로 의미 없습니다. 믿습니까? 아멘 소리가 그렇게 크면 안 됩니다. 술 먹는 사람이나 아멘 해야지. 여러분 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그랬더니 사랑의 교회 청년들이 큰소리로 아멘 했습니다. 도대체 어디까지 간 걸까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제 예수를 믿고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비로소 그때 눈이 떠지면서 우리가 그렇게 편하게 살았던 이 세상이 사실은 얼마나 살기 고통스러운 세상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도 세상나라 내 마음도 세상나라 그러니까 세상 속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니까 갈등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자녀들의 마음속에서는 잠시 잠간동안은 세상에 나라와 어울려 살 수 있는데 한참 살면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광야 길을 걸어가더라도 고생하면서 가나안을 바라보고 걸어가야지 그놈을 잡아다가 에굽에 갖다놓으면 옛날처럼 고기 가마 곁에서 벽돌이나 굽고 고기나 끊이면서 그 국물 떠먹고 만족하는 삶을 잠시는 살 수 있지만 오래는 못삽니다. 못 살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 그렇게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다가 지옥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거룩한 목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습니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쫒고 자기의 뜻을 버리는 것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나라를 통해서 이제 사람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려고 할 때 사단은 우리를 전적으로 가로막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세력 여러분들이 그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하여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도록 계속 가로 막는 것이 사단의 역사입니다. 늘 방해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너무 곤고한데도 우리 속에 와서 속삭입니다. 괜찮아. 괜찮아. 오늘 한잔 먹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고 잠시 즐기자 그러면 괜찮아 질 거야. 괜찮아지긴 뭐가 괜찮아 집니까? 술 마시고 장구 치며 노래방에서 노래 할 때는 괜찮았는데, 집에 들어와서 술 깨고 나니까 다시 직면합니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다시 떠오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다시 자신의문제가 떠오릅니다. 어떻게 피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어때요 주님의 나라가 자기 속에 임하고 자기를 통해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정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이 아니면 정말 소망이 없다. 그러니까 마음이 지옥과 같다가 심령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고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세상나라를 위해서 충성하던 사람들이 돌변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놀라운 사람들로 변화되기 직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심령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만남으로써 내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가? 깊이 자각하고 그러면서 그 주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인간은 세상은 세상대로 이 세상에 하나님나라가 못 오도록 뻗대고 인간은 인간대로 계속해서 뻗댑니다. 어떻게 뻗댑니까? 가장 비참하면서도 마지막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나가 다 털어먹고 돼지우리에서 똥이나 치우는 신세가 되어서 너무 배가 고프고 먹을 것이 없으니까 돼지우리를 기어 다니면서 뭘 찾았어요? 주염 열매를 찾았습니다. 비참합니까? 안 비참 합니까? 비참한데 우리 같으면 그러기 전에 돈 다 털어 먹고 즉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을 텐데. 그렇게 비참한데도 아버지 집이 생각이 안아는 것입니다. 뭘 찾느라고 아버지 집이 생각이 안 날까요? 그렇죠. 주염 열매 찾느라고 거기서 주염 열매 먹었으면 아버지 집에 갔을까요? 안 갔습니다. 인간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까 제가 얘기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이 인간의 고통에 비례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주염 열매를 못 찾으니까 뭐가 생각났습니까? 아버지 집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이루어진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사람은 세상이 악하다는 것을 보면서 절망하거나 낙심에 빠지지 않습니다. 울면서 기도할지언정 낙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다 이루어 졌으면 우리는 할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 놀라운 감격과 은혜를 부등 켜 안고 이 고통 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 살지 않으므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여주고 소개해서 거기도 하나님이 계절이 오게 해야 할 텐데.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있으면 이 넘치는 하나님의 그 은혜와 내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고백하면서 살겠습니까? 심지어 애인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는데 편지지는 안주고 연필 한 자루 준 것과 똑같습니다. 아마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와이셔츠라도 찢어서 편지를 써서 보낼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똑같은 원리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오게 하고 싶은 너무나 사모하는 그러니까 어떻게 합니까?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이루어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 세상을 보면서 뭐라고 합니까? 보라 희어져 추수 할 곳이 많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이렇게 문제를 많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문제는 곧 나의 소명이옵나이다. 하면서 어때요? 그 마음속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직장에 가서 이루어지지 않은 하나님의 나라가 나를 통해 이루어진 것 때문에 즐거워합니다. 왜 직장을 다녀?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 합니까? 보너스 700%에 월급 얼마, 나는 이런 인생이야 그런 말 예수 믿는 사람들은 안 합니다. 나는 얼마짜리 인생이야. 이런 사람이 최고 바보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너무 비참합니다. 왜 그럴까요? 펌프가 하루 빌려 쓰는데도 80만원 이라는데 나 하루 가서 학교에서 강의를 하면 돈 20 만원도 안 줍니다. 십 만원도 안줍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럼 펌프를 볼 적마다 그런 생각 날것입니다. 엊그제 전봇대 보니까 똥개 같은 거 한 마리 붙여놓고 현상금 300 만원 걸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잊어버리면 300만원 현상금 걸고 찾을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개만도 못하다 그런 생각하며 사는 사란은 바보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이 평가할 수 없는 가치가 있습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잘생기든 못생기든 잘났든 못났든 성령 충만하게 살든 개판처럼 살든 주님은 그냥 여러분 하나 그 자체가 너무 귀합니다. 계속 하나님 떠나서 살아 그럼 우리 같은 사람은 교회를 계속해서 안 나오고 그러면 그렇게 잘해 줬는데도 교회에 안 나와 두고 봐라 잘되는지 두고 봐라 그런 식의 마음 갖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하나님 떠나서 개판 오 분전으로 살고 여기저기 가서 죄짓고 살고 그러다가 아파가지고 통곡하면서도 이상하게 아버지여 또 그렇게는 부르지 않습니다. 기왕 울려면 하나님 앞에 와서 울면 하나님은 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 그럴 것 아닙니까? 근데 그러지 않습니다. 술집에나 가서 울고 골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그럽니다. 죽어버릴까? 그러고 또웁니다. 자기 자신은 굉장히 자기가 불쌍합니다. 하나님은 조금도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나 기다리시는 아버지 앞에 나아가 주여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떠났더니 이렇게 곤고해 졌사옵나이다. 그렇게 고백 할 때 주님께서 그래 네가 그것을 깨닫기까지 너를 삼년이나 기다렸다. 사년이나 기다렸다. 이제 적금 안타도 정신을 차리겠느냐? 그러니까 아멘 근데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하나님께서 손들고 옵니다. 항복했으니까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입니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이루어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구원을 받아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는 세상을 보면서 이루어지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슬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불상하게 생각이 됩니다. 내가 하나님 없이 세상나라에 마음을 가지고 내가 살 때 이렇게 고통 했는데 야 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알고 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쌔고 쌨습니다. 예수님이 뭐라 했습니까? 목자 잃은 양같이 고생하며 유리 하노라. 그러면서 만나가 싫다고 부츠 먹으러 갔다가 나중에는 맹수를 잡으려고 놓은 덫에 걸려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살려달라고" 메에 메에" 그러면서 고통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불쌍합니까? 누구만이 치료 할 수 있습니까? 주님만이 오셔서 건져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 마음속에 오면 그렇게 치유 받고 나니까 세상을 향해서 살 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세상에 나갈 때는 이제는 내 인생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그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이일은 반드시 전쟁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되는데 주님 나를 강한 영적인 군사로 채워주시옵소서. 전에는 다 필요 없었습니다. 진리의 띠나 의의 흉배고 구원의 투구가 다 필요 없었습니다. 그냥 실크드레스 입고 침대에서 뒹굴고 사우나에서 뒹굴며 안마나 받고 싶었는데 이제 마음이 변한 것입니다. 그래서 강한군사로서 무장하면서 그러면서 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주일 교회 와서 예배시간에 진리의 띠와 구원의 투구와 의의 흉배와 복음의 신발과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검을 받아가지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에는 살며시 친구처럼 다가올 때는 친구 같았는데 아 슬프지 너는 혼자야 네 마음을 누가 알아주겠니? 그리고 옆으로 다가 올 때까지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그게 다가와서는 목조르기를 하는 것입니다. 캭캭 그때 비로소 주님 이 사람은 나의 참된 위로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다 분별하면서 말하자면 이제는 예전의 친구들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정말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검을 휘두르면서 시시각각으로 날라 오는 그 유혹의 화살들을 믿음의 방패로 막으면서 그러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군사로서 싸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기쁘고 충만하고 은혜가운데 살면서 비로소 그때 자기의 인생이 지푸라기 같지만 하나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인생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이 성도 한사람이 죽는 것을 귀중하게 보신다고 하신 말씀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떻습니까? 이제는 이 세상을 살면서 기죽지 않습니다. 얼굴 좀 못생기면 어때? 나 같은 못생긴 얼굴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누군가가 미인이라고 인정을 받는 거 아니겠어. 그러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칼과 세상에 있는 가위로 수술을 하지는 않았어도 나는 그래도 주의 성령으로 새롭게 매 주일마다 화장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금과 은은 나 없으나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왜 사느냐고 물을 때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없으면 기껏 고차원적이어 봐야 그냥 웃지요. 거기까지 밖에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면 너희가 왜 사느냐 물으면 한마디로 대답합니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사노라. 명쾌하게 그것도 모르고 사는 너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이냐? 그러면서 우리는 이 어두운 세상을 고통 하는 눈물 골짜기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피리를 불고 마라와 같은 쓰디쓴 고통의 물을 마시며 지나야하는 광야 길과 같은 인생에서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가장 고통스러운 깊은 웅덩이와 고통의 수렁에서 우리는 두 손을 높이 들고 여호와여 나의 잔이 넘치나이다. 내 마음속에 임한 이 하나님의 나라가 땅 끝까지 이루어지이다. 그러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