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뜻이 이루어지이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下)
녹취자 : 박은희B
오늘은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세 번째 기도에 대해서 오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시간에 걸쳐서 우리들은 “나라이 임하옵시며”에 대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결국은 제일 먼저 성령이 오셔서 죄인들의 마음을 녹이시고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참회하게 되어서 개인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올 때 그 사람이 가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함께 하게 된다 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이냐 하면 궁극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본분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시대건 교회가 교회자신을 위해서 존재하게 될 때 그때에는 언제나 비극이 왔습니다. 교회는 결코 교회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완성시키실 때 교회라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하고 양육하는 이 수단도 이제 끝납니다. 다 정리되고 끝납니다. 그럼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얼마나 그 하나님 앞에 올바르고 성공했는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얼마나 기여 하고 있는가? 그래서 교회는 이것이 철저한 교회의 존재 이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가운데 꽃필 수 있다면 교회는 얼마든지 그 고상한 목표를 위해서 사라지고 없어져야 될 마치 씨앗을 심으면 그 속이 다 썩으면서 싹이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썩어서 없어져야할 그런 존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좀 더 그리스도인들로서 좀 더 큰 뜻을 가지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의 신앙의 가장 큰 실패는 뭐냐 하면 내가 오늘 구원받은 것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인도하시는 것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하는 것들에 대한 연결이 우리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구원을 받은 그 다음에는 박수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찬송을 하고 은혜를 받고 그럴 때는 좋았는데 그 다음에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지만 정말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하고 계속해서 기쁨의 삶을 살 수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들은 도전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바로 무엇 때문이냐 하면 우리들이 구원을 받은 것과 그리고 어떻게 우리의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우리들을 천국으로 들어가는 티켓 한 장을 주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지푸라기와 같고 형편없는 인생들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구원하신 데에는 우리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계획이 깃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큰 계획이 깃들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계획의 눈을 뜨고 그 계획과 함께 기뻐하는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이내믹하게 사는 거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서 역사해주시는 그런 해결자 하나님으로 바라보다가 결국은 우리의 신앙이 불만족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그 실질적인 문제를 오늘 이 세 번째 기도가 우리에게 조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번시간에 다하면 하고 못하면 다음시간에 하겠습니다.
자 보겠습니다. 같이 한번 따라서 읽어볼까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는 이 말속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뭐냐 하면 뜻이 있다는 것 그 뜻은 말할 필요도 없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하늘에서는 이루어지고 땅에서는 그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묘하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있는데 하늘에서는 이미 그 뜻이 다 이루어지는데 땅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두 번째 기도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먼저 말씀을 드려야 되겠습니다.
첫 번째 기도는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그 다음에 “나라이 임하옵시며” 세 번째 기도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된다는 예수님의 기도가 필요했던 것은 어땠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세상 속에서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일들이 언제나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 주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 주님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것도 마찬가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 기도는 현실적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가 이 세상을 향하여 원하시는 뜻과 계획들이 완전하게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까? 안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까? 잘 안 이루어져가고 어떤 장애에 자꾸 부딪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금방 이런 질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왜 이 세상에서 당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을 행하시지 못하시고 그 하나님의 뜻이 자꾸 이렇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장애가 되는 일들이 왜 이렇게 일어나게 될까?’ 근데 이것은 하나님이 전능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능하시지 않고 그 뜻을 이 땅에 다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뜻이 못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뜻이 이 세상에 이루어지는데 있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이것이 기도의 제목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지 지난시간에 잠깐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습니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믿으면 ‘아멘’ 하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 모두가 성령 충만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믿습니까? 믿습니까? 그런데 실제로 우리들이 성령 충만한 삶을 못 살 때도 많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결국은 하나님께서 여러분들로 하여금 그런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방식이 뭐냐 하면 인격적인 승복입니다. 신앙에 있어서 이 요소는 엄청 중요한 것입니다. 인격적인 승복, 그러니까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공갈치시거나 협박을 하거나 위협을 해가지고 마음에도 없는 복종을 받아내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은 인격적인 승복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옵니까?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는 끝까지 주님을 믿지 않으려고 막 이러는데 갑자기 우지끈하면서 우리의 인격과 자아가 다 부서지고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점령하십니까? 그렇지를 않습니다.
(찬양)
주 예수 대문밖에 기다려 섰으나 단단히 잠가두니 못 들어 오시네
나주를 믿노라고 그 이름 부르나 문 굳게 닫아두니 한없는 내 죄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기억하십시오. 어디 가서 누가 공갈치거든 믿지 마십시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의 인격적인 승복입니다. 인격적인 승복. 주님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말입니다.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면서 한없이 기다리십니다. 어느 한순간에 주 없이 살수 없는 주 없이 살아가는 이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연약하고 그런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주님 앞에 승복하고 그리고 그 주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강물과 같이 밀려 들어오셔서 우리를 지배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은 이렇게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순종이 바뀌어서 순종으로, 인간의 반역함이 바뀌어서 참회와 뉘우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자복함으로 주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 이런 마음을 바뀌어 질 때 까지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는 늘 하나님을 향한 오해와 혹은 무지로 말미암아서 불순종이 고개를 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이 기도를 깊이 들어가기 전에 우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기도를 당신의 기도의 세 번째 기도제목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는 깊은 도전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틀립니까? 우리의 기도라고 하는 것은 대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필요 없으면 하나님을 안 찾고 그렇죠? 우리가 뭔가 주님을 필요로 할 때 그 때 우리 주님을 찾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인간과 같은 마음으로 우리자신을 대하신다면 우리를 참 주님은 “단번에 염치도 좋다” 그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여러분들이 어떤 동기로든지 동기 그 자체보다 마음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고 주님 앞에 기울어지고 하나님을 찾는 것을 인해서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지를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언제나 만연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죄는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 주십니다. 때로는 원수들이 공격을 해 와가지고 나라가 백척간두에 서게 하시고 때로는 내리던 비가 그치게 하심으로 곡식이 메마르고 먹을 것이 없게 하시고 큰 재앙을 만나게 하시고 그럽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들이 어떤 동기에서 무엇 때문에 나를 찾는 가 그것보다는 지금 그들의 마음이 가난해져서 주님을 갈망하고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간절히 원하는 이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도 이와 같은 신앙의 원리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말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언제나 우리는 문제의 해결을 찾아다니는 사람 같습니다. 그렇죠?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 필요할 때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렇죠?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할 때
(찬양)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가진 것 모두다 주께 드리오니 나를 받으옵소서
하는 사람들 많습니까? 적습니까? 거의 없습니다. 있어도 매우 소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주님과의 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기도생활에 대해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고 우리가 필요할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주님은 어찌하든지 우리기도 때문에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신다. 맞습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우리 가까이 계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그 문제를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기도에서 보니까 예수님의 기도는 이런 식으로 당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신의 인생의 필요한 어떤 뜻, 당신의 뜻들이 아버지의 힘과 능력을 빙자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기도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이루어졌던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나이다. 내 인생을 통해서도 아버지의 계획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하나이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관점이 지금 다른 곳에 가있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흔히 믿습니다! 를 많이 합니다. 믿습니다! 신앙생활에서 만병통치약같이 쓰여 지고 있는 것은 믿습니다! 입니다. 믿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어도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믿어도 안 되는 일이 많습니다.
성경이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믿고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이룬 줄 알라” 그때에 믿으면 되리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마치 우리가 믿음만을 가지고 있으면 그 믿음의 족쇄로 하나님의 발목을 채워서 우리가 어디로든지 그 하나님을 끌고 다닐 수 있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시 반복합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를 이야기 하고 하나님은 믿음을 굉장히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생활에 있어서 ‘확실히 믿는다.’라고 하는 이 말이 마치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발에 족쇄를 채워서 우리가 원하는 대로 그 하나님을 끌고 다니면서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그 하나님을 통해서 우리의 계획을 이룰 수 있다는 그런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버리십시오. 꿈을 깨십시오. 일치감치 이런 신앙의 상식들은 포기를 하라 이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 마음속에 어떤 열망이 불타고 있느냐 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그 사람이 믿습니다!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또 실지로 말만 믿습니다가 아니라 진짜로 믿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마음속에 어떤 열망이 있느냐 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믿사오니 하느냐 이 이야기입니다. 그 열망이 이제 여러분 금방 눈치 챘겠습니다. 어떤 열망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원하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그러면서 믿사오니 하는 나의 믿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여 지길 원하는 열망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너무나 많은 우리나라 교회의 성도들이 실패하고 넘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불순종이나 나의 기도하지 않음과 나의 완전한 순종에 이르지 못하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성취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믿사오니’ 그것이 위대한 능력과 역사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먼저 도전을 받고 눈을 떠야 됩니다. 그러면 기도가 바뀝니다. 그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간절한 기도의 제목이 당신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영광을 받거나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거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그리고 새 교훈을 가지고 종교적인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느냐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고민 아니었습니다.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어떡하면 내 힘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해 낼까?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원래 원하는 뜻이 아니셨습니다. 그럼 뭡니까? “두루마리의 나를 향하여 기록된 뜻들을 이루기 위하여 내가 왔나이다.” 시편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오신 것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뜻이 이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죄로부터 용서받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 아버지의 뜻이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을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했습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죄 있는 사람이 죄를 용서하는 표징으로 받는 것인데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나아와서 “나에게 세례를 달라” 이렇게 부탁을 하니까 세례요한이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마땅한데 자기가 어떻게 세례를 줄 수 있겠습니까? 펄쩍 뛰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마땅하니라.” “우리가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당신은 비록 죄 없는 몸이었지만 그러나 오셔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당신이 자기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있는 이 많은 구원받아야 할 백성들과 정말 낮아지셔서 하나 되길 원하셨습니다. 그 하나 된 가운데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 속에서 하나 된 구세주로서 그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쭉 들쳐보면 주님이 늘 자주하시던 말씀 가운데 이 말씀이 있습니다. “기록된바” “기록된바” “성경에 일렀으되 그리하면 어찌 성경이 응 하겠느뇨 이는 성경이 응한 것이라” 주님은 끊임없이 제자들에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이 자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인해서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을 인해서 즐거워 하셨습니다. 이게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가 아니라 우선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서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삶에 대해서.
여러분 되게 답답합니다. 그게 뭐냐 하면 이렇게 근본적으로 복음을 보고 인생을 보는 관점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언제까지 하나님을 붙들고 매달려서 내가 예수 당신을 믿어주었다는 그 이유 하나를 미끼로 삼아서 언제나 여러분 믿습니다! 그 하나 가지고 하나님의 발에 족쇄를 채워가지고 여러분 원하는 곳으로 그 하나님을 끌고 다니면서 그 하나님으로 하여금 여러분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시게끔 그렇게 재촉하는 그러한 종류의 삶을 언제까지 우리가 계속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그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근데 뭐가 바뀐 게 있습니까? 옛날에는 내 방법과 수단과 재주와 재능을 의지해서 돈 벌고 잘 먹고 잘 살고 명예와 부귀와 권세를 얻고 위기에 부딪히면 내 머리를 굴려가면서 자기 방법대로 해결하면서 살았습니다. 근데 그게 이제는 하나님으로 바뀐 것 밖에 없습니다. 어떻습니까? 이제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안 믿던 때와 비교해서 조금도 인생의 가치는 바뀐 것이 없습니다.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라든가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라든가 사람을 평가하는 판단이라든가 자기의 인생의 성공을 대는 모든 척도들은 하나도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언제까지나 자기의 투정을 따라서 역사해 주시길 원하면서 그리고 그렇게 역사해 주시면 주님을 섬기고 그렇게 역사해 주시지 않으면 주님을 버리고 떠나고 하는 삶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무지하고 불행한 일인 것입니까? 여러분 삼척동자에게 물어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시겠습니까?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겠습니까? 신앙생활에서 느끼는 모든 갈등이 그것 하나로 집약이 되는 것입니다. 뭡니까?
(찬양)
나를 항상 버리고 십자가를 붙드네
갈등이 없습니다. 무슨 갈등이 있습니까? 나를 다 버리고 그리스도를 붙들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가 내 인생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으며 주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무슨 갈등이 있겠습니까? 모든 갈등은 어디서 생겨나는 것입니까? 이게 아닌 줄 알면서도 그것을 고집하는 것입니다. 주님 이것은 꼭 해주셔야 되겠사옵나이다. 어떻게 개기면서 떼써보면 하나님이 질 때도 있겠지. 그러나 한 두 번은 통할 때가 있습디다. 그러나 상습적이 되면 하나님께서 좋게 안보십니다.
이런 것들을 원리화 할 수는 없지만 대개 신앙을 맨 처음 가질 때 초기에는 우리 수준대로 놀아서 그런지 기도를 참 잘 들어주시는 것 같습니다. 자매님, 교회 다니셨겠지만 말입니다. 이게 새롭게 하나님을 믿으려고 결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간절히 한 두 개의 기도제목으로 기도를 합니다. 주님이 참 기도를 잘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바뀌기를 원합니다. 뭐라고. 악 주님 내 인생은 이것이옵나이다. 젊은 사람은 특히 이것 잘하지 ‘아아 이거 아니면 나는 차라리 죽는 게 나아 아아 이거 못되면 나 인생 끝내고 말거야’ 그러죠? 그런 걸 세상에서 박력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장 멍청하다 그렇게 부릅니다. ‘아 이게 아니면 안 돼. 나는 이게 되면 되고 아니면 내 인생 끝나는 거야’ 세상에서는 이걸 멋있고 박력 있다고 그럽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서는 가장 고상하게 멍청하다고 그럽니다. 맨 처음에는 ‘주여 이것 이옵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몇 번은 박자를 맞춰 주실 수도 있습니다. 왜? 처음서부터 그러면 아예 안 믿을 테니까. ‘야 어휴 봐 주는 거지’ 수준대로 놀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정말 얼마나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수준대로 놀아 드리는 겁니다. 그러다가 두 번 세 번 다 안 되고 그다음에 어떻게 돼야 됩니까? 주여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옵나이다.
(찬양)
나를 항상 버리고 십자가를 붙드네
그러면서 주님의 뜻이 내 인생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한없는 영광이옵나이다. 왜 아멘을 안 합니까?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우리가 바뀌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막 강요가 아니라 말입니다. 진심으로 내 뜻은 사라져도 내 인생을 통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 그것이 내마음속에 한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환영하고 즐거워하면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런 삶으로 새롭게 나아가길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갈등, 갈등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의 씨름을 그치세요. 맡기세요. 주님은 우리들이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완전히 맡기고 우리의 인생을 향해서 가장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여러분들이 잘 알겠습니까? 제가 잘 알겠습니까? 참, 말이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알겠습니까? 하나님이 잘 알겠습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신앙의 갈등은 우리가 우리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멋대로 구획을 정해놓고 주님은 이렇게 역사하셔야 되옵나이다. 그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은 자기는 그 구획을 그어놓으면서 이렇게 이루어주시면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을 받을까 찬란한 생각들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는 얼마나 불쾌한 것입니까? 주님의 내 인생을 향한 계획이 어찌되옵나이까?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주여 저를 국을 끓이시든지 죽을 쑤시든지 볶음을 하시든지 주여 맘대로 하시옵소서. 이것을 주님이 원하시지 주님 꼭 이렇게 설계도대로 역사를 해주시든지 아니면 우리 관계를 청산합시다. 하나님께서 그것 원하시겠습니까? 그게 하나님을 얼마나 마음 아프게 해드리는 건가 하는 것을 깨달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두 버리셨습니다. 모두 버리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그와 동등 되이 여김을 받을 것으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보십시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자기의 뜻은 다 포기했습니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홀로 즐거워 하셨습니다. 무엇 때문에? “주 뜻 이뤄지리다” 주님의 뜻이 당신의 이 고난을 통해 멸시와 천대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인해서 그러니까 마지막에 어떻게 죽으셨습니까?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다 이루었다” 얼마나 멋있는지 “다 이루었도다. 모두 이루어졌도다.” 뭐가 이루어졌습니까? 내 야망을 모두 성취 하였도다? 아닙니다. 주님의 뜻이 모두 이루어졌도다.
우리는 말입니다. 이점에 있어서 우리는 깊이 우리의 이 입이 말하자면 사시화 되었습니다. 사팔뜨기 비슷하게 돼가지고 물건이 이렇게 똑바로 세워져도 똑바로 볼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빨리 청산해야지만 소모적인 신앙생활을 안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결코 뭐 이렇게 세상에서 혼자 잘살다가 몸에 병이나 걸렸을 때 “손들고 옵니다.” 그러면 신앙 아닙니다. 잘하다가 사업 쫄딱 망하고 그렇게 해가지고 이제 위기에 처하고 가족들이 병들고 그리고 전부다 커다란 환란을 만나가지고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 그때 한 번씩 부르라고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다름없이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인생의 목표와 가치가 정말 변화되는 놀라운 역사를 우리들이 말하자면 경험하고 그 속에서 우리들이 살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으면서도 그렇게 우울하게 살아가는 그 궁극적인 원인이 결국은 뭐냐 하면 내 뜻을 포기를 못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그리고 내 인생의 그 마지막 조종간을 자기가 쥐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주님을 내 구주로 모신다는 것은 그분께 사실은 내 인생을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배타보셨습니까? 배. 부응 그러고 가지 않습니까? 이 배가 수많은 사람들이 배 밑창에 누워서 자고 먹고 술 마시고 춤추고 떠듭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의 생명이 누구에게 달려있습니까? 이 선장 한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한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님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원하시는 것은 배 밑창을 내어드리거나 갑판을 내어드리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조종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그리고 주님이 그렇게 우리의 인생을 이끌어 가시는 속에서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인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인해서 한없이 즐거워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그런 삶을 살기를 하나님께서 고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들은 하나 굉장히 중요한 의문이 하나 풀렸습니다. 그것이 뭡니까? 왜 우리들이 오늘날 이렇게 주님이 가장 이 주님의 기도제목은 간절한 기도의 순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기도의 순서입니다. 근데 이 세 가지가 다 우리마음에 잘 와 닿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심령의 부흥을 경험하게 되면 이 기도의 제목이 와 닿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기도가 우리의 마음에 와 닿지 않는 중요한 원인이 결국 어디에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입니까?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불순종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죠?
주님 앞에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이 자기의 뜻을 버리고 그리고 주님의 뜻이 우리가운데 내 인생 속에서 우리 교회 속에서 나라 속에서 가정 속에서 이 세상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이 정말 간절하고 사모하는 갈망이 되는 것,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입니다.
찬송 한 장을 부르고 조금 더 하겠습니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431장입니다.
(찬양)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 하시고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아멘
18세기에 말입니다. 뭐가 유행 했냐하면 성경점치기라는 것이 유행을 했습니다. 근데 그게 상당히 경건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유행했다는 것이 이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보면 그런 것들은 다 잘못된 것입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뭐냐 하면 성경을 탁 펼치고 찍어서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내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게 유행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뭐냐 하면 ‘주님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오늘 장사를 개업을 할까요? 폐업을 할까요?’ 그리고 펼쳐서 딱 찍는 것이란 말입니다.
어느 형제가 자매를 좋아했는데 주님 제가 이 자매하고 결혼을 하길 원하시는지 안하시는지를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간절히 한 다음에 열흘을 금식 기도 한 다음에 성경을 눈을 감고 찾아서 탁 찍고 찾아보니까 뭐가 나오나 하면 “이에 유다가 나가서 목매어 죽으니라” 그래서 다시 이틀을 기도한 다음에 이건 아마 실수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탁 찍었더니 그다음 성경구절에 뭐있냐 하면 “너는 뭘 망설이느냐 속히 행하라” 세 번째 다시 또 찍었더니 그다음에는 “네가 어찌하여 의심 하느뇨” 이런 것들은 전부다 다 주술적인 그런 태도들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그런 식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계획을 알리시고 그러시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을 원합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뜻이 무엇인가를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사람을 찾아가서 과일도 사가지고 가고, 고기도 사가지고 가고, 심지어는 돈 봉투도 갖고 가서 내가 이런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 나를 위해서 기도를 해 봐 달라 그럽니다. 이런 것들은 오죽 답답하면 그러겠습니까만 그러나 이런 것들은 전부다 다 ‘비극적인 신앙생활이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여러분들의 인생을 향한 계획과 목표가 무엇인지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알려주시기를 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운데 모두들 미래에 대해서 우리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도 있지만 그러나 살짝이라도 한번 10년 뒤에 내가 어떻게 변했을까를 보기를 원하는 그런 호기심들이 우리 여러분들에게 다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보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인생의 목표와 그리고 삶의 이유자체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여러분의 소망과 희망이 되는 그런 사람으로 여러분 자신이 변해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많은 사람들, 예수를 믿은 사람이라도 모두 자기의 아집과 자기의 인생을 향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모든 갈등과 고통은 거기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내 인생 자체를 향한 계획을 고집하고 그것을 가지고 있는 한은 하나님이 나를 향한 그 원대하고 크신 계획과 그 뜻에 대해서 우리들은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되어서 이제는 내 인생이 나 하나의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기여하고 영원을 잇대어 살아가는 나의 인생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이런 삶들이 계속해서 불가능해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이 이런 불순종의 고리들을 속히 끊어버리는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이렇게 사람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 말입니다 이 요만한 자기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 새끼손가락 이만큼 잘라내는 것처럼 그렇게 힘들어 합니다. 그게 바로 인간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깃들어 있냐하면 이 세상에 모든 사람과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내가 내 인생에 대해서 설계하고 계획하고 있는 그 내 뜻을 성취하고 이루어 가는데 종교도 기여해야 되고 다른 사람들도 기여해야 되고 부모도 거기에 기여해야 되고 자기의 가족들과 형제들도 자기에게 기여해야 된다라고 하는 자기중심적인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취되지 않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깨지고 형제들을 미워하게 되고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고 자기가 태어난 그 말하자면 환경에 대해서 말하자면 고통스러운 말하자면 후회해봐야 소용없는 그런 후회를 하게 됩니다.
아까 부른 찬송 있지 않습니까?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그 기도였죠? 찬송가. 그 찬송가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 먼저 우리가 나의 뜻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그 불순종이 얼마나 하나님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고 그리고 나 중심으로 살아가는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불순종인가 하는 것을 먼저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깊이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는 길이고 또 우리 안에 그렇게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하셨던 것과 같은 동일한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니까 먼저 우리가 우리의 뜻대로 우리의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그리고 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하나님을 삼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것인가 하는 것을 맡기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하는 일들이 먼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깊이 참회하게 될 때 그때에 자기의 계획과 자기의 뜻을 모두 하나님 앞에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모두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비로소 우리의 마음속에, 자기의 계획과 뜻을 포기할 때 그다음에 우리의 마음속에 밀려오는 것은 뭐냐 하면 평안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책임져 주시리라고 하는 그런 확신이 우리 인생가운데 강하게 붙잡힌바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위로와 힘과 평화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참된 회심,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지 못하고 주님이 내 마음에 깨닫게 해주시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을 거스르며 불순종하는 것을 아주 우습게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삶들은 우습게 생각을 하고 주님이 내 뜻에 맞춰서 해주시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하나님을 향해서 극도의 원망과 심지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건 전부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악한 변화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마지막 결국은 한을 품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향해 아무리 많은 원망을 품고 한을 품어도 하나님은 그런 것 가지고 무서워하시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들이 깊이 깨닫고 그런데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은혜를 받게 되면 그러면 뭘 깨닫게 되느냐 하면 그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아가는 자신의 불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옳지 못한 삶인가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에 그것이 큰 슬픔으로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게 마음의 쓴 뿌리고 그것이 마음의 고통입니다. 거기서 계속해서 쓴물이 나옵니다. 그 불순종의 뿌리에서 한없이 쓴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소생할 기력을 잃어버리면서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러나 깊이 그 뿌리를 제거하는 길은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님께 불순종하면서 살고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거역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가 옳지 않은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깊이 참회하게 될 때 우리는 제일 먼저 발견하게 되는 것이 뭐냐 하면 우리의 자신의 죄악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회개의 눈물로 씻긴 심령이 아니면 자기가운데 들어와 앉아있는 그 뿌리 깊은 불순종의 죄악들을 못 보는 것입니다. 참회의 눈물로 씻긴 심령이 아니면 자기 속에 들어와 앉아있는 말하자면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들에게 그 뿌리 둥치가 더 큽니다. 그것을 기억을 해야 됩니다. 더 큽니다. 더 크고 아주 완고하게 뿌리가 박혀있습니다. 그것이 회개의 눈물로 씻어진 심령의 안목이 아니면 그것이 얼마나 내가 불순종의 삶이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있는가 하는 것을 봅니다. 그것을 통해가지고 우리는 내 인생을 향해 이루어지길 원하는 하나님의 계획들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끊임없이 그것을 못 이루어지게 하면서 또 한편으로 기도할 때는 주님, 주님 뜻대로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삶의 변화가 없는 기도, 기도가 없는 삶의 변화, 둘 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삶을 고치면 기도가 능력이 있어지고 기도가 능력이 있어지면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과 그리고 우리 속에 이루어지길 그렇게 원하고 사모해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들은 깊이 자신을 돌아보며 이런 불순종의 뿌리들을 잘라 버릴 수 있는 깊은 결단이 요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할 때 그 때에 그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곧 우리의 인생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갈등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지금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내게 만족이 안 되고 주님의 뜻대로 이끌어갈수록 나는 지금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계속 생기는 거고 하나님은 내 인생을 삼천포로 끌고 가실 것인가 그런 생각이 계속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떠합니까? 내가 변화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내 뜻으로 붙들고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동행하는 삶을 산다면 주님이 내 인생을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면 이룰수록 어떠합니까? 내 인생은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성취와 기쁨과 그 뜻이 이루어지는 도구로 내 인생이 쓰여 진다는 사실에 대해서 한없이 감격하며 기뻐하며 하나님을 자랑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오늘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사모함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관점에 차이가 나는지 여러분 느껴지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운데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당연하게. 당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 원래 그런 곳이니까 야 그만큼만 믿어도 잘 믿는 거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간절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져야 되옵나이다.’ 할 때 그때 목표는 어느 정도였습니까? 뜻이 어떻게? 하늘에 이루어진 것같이. 하나님이 계신 하늘에는 아버지의 뜻을 출납해서 그 뜻이 이루어지게 만드는 수종드는 천사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죄악도 거기에는 없습니다. 어떠한 불순종도 거기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그대로 하늘나라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취를 이 세상에서 기대하시고 기도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커다란 야무진 꿈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꿈을 꾸셨습니다. 그런 꿈을 꾸셨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암시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까? 이 세상이 죄와 슬픔과 하나님을 향한 배반이 가득 찬 세상이지만 인간들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에 임하고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면서 살고 그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자기의 죄악과 불순종을 끊임없이 포기하면 이 세상에서도 거의 천국이 이루어질 수가 그렇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야, 이런 비밀을 몰랐죠? 얼마나 놀라운 것입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주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을 숙명적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죠? 그렇죠? ‘세상에는 원래 안 믿는 사람이 많게 마련이야. 우리 가족 중에도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있지만 원래 다 그렇기 마련이야. 내가 성령 충만하지 못하지만 뭐 사람 다 이렇게 살아가잖아’ 우리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불순종과 우리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흥이 일어나던 시기에 보면 말입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와 방불한 교회의 모습이 다시 일어납니다. 어떠합니까? 죄 많이 지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사랑으로 용납이 되어 지고 그리고 고통 하는 사람들을 풀어주고 그리고 시름에 쌓인 자들을 위로하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목적을 심어주고 그리고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자기의 가진 귀한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말하자면 이러한 사랑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 그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주님이 여러분들을 예수 믿게 만드실 때 그 목표는 무엇이었냐 하면 하나님 일단 믿게 만들고 여기서 하나님하고 계속 힘들게 줄다리기 하다가 마지막에 막차타고 천국에 어떻게 달랑 올라가 가지고 가죽 벙거지라도 쓰면서 생명나무 물가에서 과일이라도 한 조각 먹는 그런 삶을 위해서 여러분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이 이러한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서 고통 하는 이 세상에 여러분들이 아니면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오게 하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하지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통한 하나님께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가 전하므로 여러분들이 은혜를 받고 변화를 받고 심령에 천국이 이루어지고 여러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사람들을 용서하고 진리로 사람들을 품어주고 세워주고 붙들어주며 자기의 뜻을 그 말씀 앞에 포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붙들며 살아갈 때 그 때에 이세상은 어떠합니까? 죄 많고 고통이 가득 찬 이 세상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천국과 같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런 일들을 위해서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가장 잘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합니까? 구원하고자 그렇게 천국과 같이 이루어진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고 아버지의 원하는 뜻은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그랬습니다. 뜻이 단수입니다.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그리고 그들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단순합니다. 그 계획이 우리가운데 그 나라가 이루어지고 우리가운데 그 뜻이 이루어지면 그 뜻이 이루어진 우리를 통해서 또한 다른 곳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사람의 불순종은 엄청난 파멸을 가져옵니다. 한사람의 순종은 위대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우리들을 걸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도대체 뭐냐? 여러분들은 그렇게 물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것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첫째 뭐냐 하면 우리들이 먼저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뜻에 대해서 관심을 안 갖는데 어떻게 그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의 사고 속에 자리 잡혀 있는 것은 이상하게 성경에 안 나와 있는 것만 궁금하게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 내가 몇 살에 시집을 갈 것인가? 50대 때에는 내가 재산을 얼마나 모을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전업을 하려 그러는데 이것이 옳은 것인가? 취업을 하려고 그러는데 이 직장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가? 아들딸은 둘만 낳고 끝낼 것인가? 그냥 계속 날것인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성경에 잘 안 나와 있는 것만 궁금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묻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대개 그런 걸 궁금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기도를 해도 대부분 응답받을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것들을 궁금하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보다도 그것보다도 더 급한 것은 뭐냐 하면 이미 기록된 것, 이미 기록되어 있는 것, 물어볼 필요도 없고 기도할 필요도 없는 것, 주님, 돈을 얻기 위해서 이 사람을 죽여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그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여기 하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근데 그럼 기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분명한 것이 여기 수없이 많은데 이것은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대한민국 헌법이 한 발이 넘습니다. 법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지 무슨 일을 하면 국가가 나를 기뻐할까 그것은 두 번째 문제입니다. 우선 말입니다. 범법자가 되지 않는 최소한의 도덕적인 삶을 사는 것이 국가의 일차적이 목표입니다. 형법 민법 상법 다 어기고 수없는 전과 되어서 지명수배를 받으며 돌아다니면서 도망치면서 산에 가서 쓰레기 하나 줍는 게 그게 대단하겠습니까? 근데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런 식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비유가 적절합니다. 국가내란 음모죄, 국가 원수 살해기도 죄, 반공법, 보안법 다 어기고 그리고 막 지명수배 일곱 건 여덟 건 되어가지고 도망 다니는 사람이 오늘은 갸륵하게 샛강을 청소해야 된다 그러면서 가가지고 비닐봉지를 줍고 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보면 여러분 얼마나 보면 우스꽝스럽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어때요? 그런 우스꽝스러운 삶을 우리들이 나라에 대해서 사는 것처럼 우리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그런 식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왜 그게 그렇게 궁금합니까? 정말 주님의 나라를 사랑하고 그 뜻이 이루어지길 원한다면 이미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 이것, 모르면 어때요? 잘못 사는 것 아닙니까? 이미 기록되어있는 분명한 뜻, 그것 더 이상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을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희롱하는 것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끝난 이야기입니다. 이럴 경우에는 도적질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기도하면 시험이 옵니다.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 “아멘” 하면 됩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해 볼 필요가 없습니다. 가끔 명백한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기도를 해보겠답니다. 그래 내가 그럽니다. “기도하지 말라. 성경에 다 나와 있으니까 기도할 필요가 없다. 약속을 찾아봐라” 그리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결단해서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사람들의 진솔한 삶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해서 이게 그러니까 어때요? 지금 한 가지를 지적했지만 결국은 전부다 다 연결이 되지 않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성경말씀을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 구체적인 이유를 핵심으로 이야기한다면 결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굳이 찾으면서 공부하고 탐구해야 될 필요를 못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명백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은 하나님을 위한 모든 열심을 전부다 빗나간 열심입니다. 빗나간 열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우리만이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속에서도 입증되는 것입니다. 시인들이 은혜를 받았을 때는 언제나 그 말씀으로 삽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사모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때요? 불순종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의 율법 책이 발견되면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서 다 불속에다가 집어넣었습니다.
여러분 언제까지 우리가 우리의 인생의 장단에 하나님께서 굿거리장난이나 맞춰주시는 분으로 그분을 대우하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것을 재빨리 포기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가장 행복하게 예수를 믿을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반복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의 장단을 맞춰주시는 분, 내가 필요할 때 만나주시고 내가 원할 때 나에게 나타나주시는 그런 분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그 하나님의 무궁하신 은혜와 한없는 자비하심으로 긍휼을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즐거우나 괴로우나 주님의 뜻을 내 인생을 통해서 이룰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앙에서 궁금하게 여기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누구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 다 나와 있습니다. 근데 모릅니다. 왜 그래요? 탐구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사랑하지 않고 탐구하지 않는 것입니까? 내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이 열심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렇게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이미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전폭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기록되지 않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에 대해서 알기를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길로 넘어졌는가 하는 것을 보게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싫어하시는 사람이 누구냐 하면 호기심을 가지고 당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경외심을 가지고 자기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원합니다.
(찬양)
여호와의 친밀한 사랑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으며.
하나님은 호기심이 아니라 경외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사람 그런 마음으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가야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말씀을 부지런히 사랑하며 그 뜻대로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그것가지고 충분치가 않습니다. 충분치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되지 않으면 나머지는 전부다 내가 맘대로 할 수 있느냐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도록 힘쓰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의무입니다.
근데 이것은 먼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성취하며 살려는 그 말하자면 경건한 노력이 토양이 먼저 주어져야 됩니다. 그다음에 어떠합니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요?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를 사립학교 보낼까 공립학교 보낼까? 하나님의 뜻이 있어요? 없어요? 대답을 못합니까? 있어요? 없어요? 상관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없어요? 그럼요.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예수만 믿고 돈만 잘 벌면 아무한테 시집가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까? 예? 아닙니다. 거기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도 불순종하면 그것도 똑 같이 불순종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뜻을 찾기 위해서 열심을 내지 않는 사람은 두 번 범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저한테 그런 얘기를 합니다. “전도사님 저는 이사 갈 때도 꼭 응답을 받고 갑니다.”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의 인생가운데 얼마나 세밀하게 미치는 지에 대해서 말하셨습니다. 뭐라고 말하셨습니까? “공중에 나는 새를 보라 참새두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 250원밖에 안하는 것입니다. 화폐가치로 치면. 근데 그 참새도 날아다닌 것도 하나님의 계획에 있고 떨어지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사실을 어디서 알 수 있냐 하면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고 성령에 아주 민감한 삶을 살면 순간순간 내가 여기서 이런 사람과 만나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이런 계획을 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슬퍼하신다는 것을 즉각 즉각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예민한 영적인 상태에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 순간순간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모르고 자기 맘대로 이리 돌아다니고 저리 돌아다니고 막 자기의 인생을 이렇게 뒤집어엎고 저렇게 뒤집어엎고 하나님이 그런 것들을 교만하다고 그러십니다. 교만하다고. 세상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이장사하다 두드려 엎고 저장사하고 저장사하다 두드려 엎고 하는 사람들 수단좋은 사람들이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을 교만하다고 그러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미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 세부적인데 까지도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과 기대를 가지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마음과 이것으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그럼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냐하면 ‘야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기계적일까? 왜 우리는 그렇게 답답하게 목 졸려서 어떻게 사나? 아니 내가 가고 싶으면 가는 것이고 말고 싶으면 마는 거지 아니 그런가 하나하나 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니 야 그거 질식해서 어떻게 사나?’ 그거 질식한다는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하면 자기 속에 자기의 뜻대로 살고 싶어 하는 방종된 마음 때문에 그것이 질식으로 느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동행해주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언제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도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죠? 그것이 하나님이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동행해 주신 것이 예수님에게 구속이 되었습니까? 속박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오히려 함께 계시므로 우리는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믿습니까? 주가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시면 우리는 속박 받는 것입니다. 속박 받는 것입니다. 주 홀로 우리를 내버려두면
여러분 지금 종이 없지만은 11시 되면 우리마음속에서 종이 치잖습니까? 열린교회 종이 땡그랑 땡그랑 10시 반이면 초종치기 시작합니다. 땡그랑 땡그랑 ‘아하, 교회 갈 마음이 안 난다. 심사가 괴롭고 고통스러워. 제칠까’ 그럽니다. 제칠까 하고 생각을 하니까 열린교회 설교자도 생각이 나고 전도사님도 생각이 나고 ‘야, 안가면 또 전화가 오던지 심방을 오던지 하겠지 어휴 죽으나 사나 가서 얼굴이나 디밀자’ 그러고 오는 것 그게 속박 같죠? 속박입니까? 내버려두면 그래서 아무데도 자기가 교회 찾아가지 않아도 누구도 원하는 사람이 없고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유 같죠? 세상에 나가봐요. 금방 나가자마자 죄의 사슬이 여러분들을 속박합니다. 어떤 게 진정한 의미의 속박입니까? 그래 그 찬송이 참 기가 막힌 것입니다. “주의 사랑의 줄로 나를 굳게 잡아매소서!” 왜? 주께서 나를 속박하심으로서 나는, 우리는 참된 자유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길 사모해야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하면 박력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모두 물어봐도 기도해봅시다. 뭐 뭐 어떻게 되지 않습니까? 글쎄 뭐 하나님이 하시지 않겠습니까? 박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박력이 떨어지는 것은 괜찮아. 그건 박력이 아니라 인간적인 혈기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아하, 인간적인 혈기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 보면 얼마나 측은합니까? 막 이러다가 마지막에 가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니까 세 번이나 부르니까 나중에는 주눅이 들어가지고 “제가 주님 사랑하는 것 아시잖아요?” 베드로가 언제 그런 얘기 했어요? 인간의 혈기가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매가리가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사람이 정말 멋있는 사람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하나님이 강하게 해주신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용기를 낼 때 혈기의 용기가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신적인 용기에 불타는 사람들이 되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말하자면 죽으라하자하는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이게 우리의 몸에 체질에 배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 그 뜻이 아니면 내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몸에 밴 사람들이 돼야 됩니다. 직장을 하나 옮기든 결혼을 하든 심지어는 물건을 하나사든 아니면 우리가 사업을 옮기든 교회를 옮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개 신적인 확신을 가지고 교회를 온 사람들은 신적인 확신을 가지고서야 교회를 떠납니다. 근데 흘러 온 사람들은 흘러서 갑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쉽게 교회에 오는 것도 늘 경계해야 됩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결단하면서 그래서 우리교회 등록을 재촉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깊이 결단하면서 인격적으로 하나님 앞에 결단하는 그런 순간들의 여유를 교회는 주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 신적인 확신으로 여기에 서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제 마음속에도 그렇습니다. 교회 하다가 보면 힘들 때도 있고 그러고 답답할 때도 있고 세상에 이게 뭔가 그럴 때도 있잖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되요? 회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작년에 하나님이 의심할 여지없이 해라! 아니 뭐 내가 하겠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이 해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내가 여기 서있다 그러니까 거기에서 할 수 없이 이제 코 꿴 것입니다. 나는 이제는 꼼짝없습니다. 코 꿰었습니다. 나는 뭐 내 인생의 계획은 모두 다 포기한 것입니다. 전에는 뭐 유학을 갈 기회도 있었고 날라 갈 기회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어느 큰 교회에서 오라고 하면 내가 날라 갈 기회가 없을까 별 꿈을 다 꾸었는데 이제는 12월 12일 12. 12사태와 종치고 다 막 내린 것입니다. 이제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타나셔서 야 그거 취소다 해방이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이제 끝난 것입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심령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것 입니다.이 하나님의 뜻을 붙들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면서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삶을 그럼 어떻게 대우해 주십니까? 한없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눈을 들어 사면을 둘러봐도 모두 당신을 빙자하고 복음을 빙자해서 잘 먹고 잘살겠다는 사람뿐이지 당신의 뜻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는 사람이 없는데 열린교회 와서 딱 보니까 “나를 항상 버리고 십자가를 붙들 때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러면서 매 순간순간을 주님의 뜻을 이루어지기를 사모하며 걸어가는 그 사람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 사람 특별히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행하셨습니다. 매 동행하십니다. 늘 동행하십니다. 왜?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는데 아낌없이 자신의 인생을 드리면서 사니까 하나님이 그 인생을 너무너무 기뻐하고 좋아하십니다.
내가 여러분, 퀴즈하나 낼께 아마 알아 맞혀 보십시오. 여러분이 우리나라 대통령이 됐다고 칩시다. 누구를 각료로 쓰겠습니까? 누구를 쓰겠어요? 네? 누구를 쓰겠어요? 똑똑한 사람 똑똑한 사람 잘립디다. 청렴한 사람 청렴한 사람도 잘립디다. 누구를 쓰겠어요? 가장 그 대통령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뜻이 나라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 아니겠어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계십니다. 정말 우리들이 오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 오늘부로 정말 내 인생에 있어서 이러이러한 일들이 나의 뜻으로 내가 자행자지 하면서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 내 뜻을 버립니다. 주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것이 정말 저에게 기쁨이옵나이다. 할 때 하나님에게는 그것이 충격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아하 기쁘다 내가 바로 그런 인격적인 결단을 내릴 때까지 내가 문밖에서 너를 두드려 기다렸노라 이제 너와 함께 가자”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이끄시고 하나님의 아름답고 찬란한 인생으로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말입니다. 이런 식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딱 하나가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내 인생을 하나님이 주관하시면 혹시라도 하나님이 내가 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내 인생을 이끌어 가면 어떻게 하실까? 그런 불안이 우리 인생에 늘 남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도를 해도 언제나 내가 이 뜻을 구하기 위해서 기도를 했다 그것을 스스로 위로를 삼기 위해서 기도하는 거지 주님 제가 깊이 기도할 테니까 제가 불순종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주님 오셔서 내 불순종을 꺾어 당신의 뜻을 채우시옵소서. 이렇게 기도 하느냐 얘기입니다. 그렇죠? 제 말 맞지요? 그렇죠? 왜 고개들은 숙입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게 죄인들 속에 깃들어있는 교묘한 것입니다.
그럼 설교자는 어떻게 아냐? 다 경험했으니까. 그런데 보십시오. 제가 말입니다. 제가 내 인생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안 쓰겠다고 신학을 안 하겠다고 이것은 하나의 비근한 예가 되겠습니다만 그렇게 몸부림치면서 하나님하고 투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중에 건강까지 손대셨습니다. 죽음에 까지 몰아갔습니다. 결국 내가 다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 다 포기할 때 그때는 진짜 포기했습니다. 엄청 많이 울었습니다. 그게 뭐냐 하면 ‘마지막 남은 것은 이제 하나님 앞에 다 드립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위해서 헌신된 삶을 살아야겠다. 그런 거 없고 그냥 나는 이제 포기했다 나는 이제 막차 탔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맘먹기는 내 이제 포기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아마 당신 쓰고 싶은 대로 쓸 텐데 저기 어디 섬에 구석에 갔다가 아마 집어던져서 그 섬사람들하고 같이 복음 전하면서 그러다가 아마 죽게 하시거나 아니면 뭐 전도지나 들고 어디 후줄근하게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후줄근하게 그렇게 살게 하실 거다’ 그런 생각 막 각오했습니다. 각오했고 근데 지금 와가지고 하나님이 내게 물으시는 게 그겁니다. “네가 네 뜻을 버리고 나의 뜻을 따름으로 말미암아 손해난 것 있으면 얘기해 봐라” 이것입니다.
손해난 것 없습니다. I shall not be in want. 내게 부족한 것이 없사옵니다. 하나님을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 뜻을 부족한 것이 없사옵니다. 하나님을 고백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자기 뜻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I shall not be in want. 내게 부족한 것이 없 사옵나이다. 고백을 못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다고 다고 다고 모자라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 원망하면서 사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렇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 앞에 우리 한번 깊이 결단합시다. 그리고 신앙의 한번 우리 전기를 맞이해야 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뭔가 이렇게 하나님을 얼러 드리는 것 같은 그런 신앙의 생활을 포기하고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원하는 것이 너라고 하는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 선뜻 내어드릴 수 있는 이런 결단이 이루어져야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이 정말 새롭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할렐루야!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