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9-14)
녹취자: 조은경
오늘 주님 앞에 드리는 네 번째 기도입니다. 네 번째 기도는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는 기도입니다. 같이 한번 따라해 봅시다.
이것이 주기도문에 기도 가운데 네 번째 기도가 되고 있습니다. 이 네 번째 기도는 앞에 나온 세 개의 기도하고는 많이 틀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나온 세 개의 기도는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어떻게 보면은 우리하고는 좀 동떨어진 하나님만을 위한 기도처럼 생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네 번째 기도는 그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매우 실제적이고 늘 우리의 삶에 부딪히는 그 기도의 제목을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우선 이것이 네 번째 기도제목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들이 먼저 주목을 해야겠습니다. 무슨뜻이냐 하면 이 네 번째 기도가 앞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한 세 가지 기도제목 뒤에 나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할 사람들인 것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에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는 이 기도는 기도의 의미를 이번주와 다음주에 걸쳐서 상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만 우선 이 기도는 먼저 앞에 나온 세 가지 기도의 종속되는 기도가 되야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행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와 이 땅에서 하나님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임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우선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는 이 기도는 먼저 이 기도를 할 때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와 대조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피조물과는 구별되어서 그래서 하늘 높이 계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우리가 받는 모든 좋은 은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의 원천이 되시지만 우리는 단지 그분이 주시니까 겨우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예화)지난주간에 우리 전도사님들 하고 용인으로 교역자 수련회를 갔습니다. 전국을 다 다녀보지 않았으니까 모르겠습니다마는 올해도 풍년 같습니다. 가물어서 땅이 갈라지고 물을 퍼내고 난리를 했는데 가을철이 됐는데 제가 본 들녘은 전부다 황금물결을 치면서 이제 곡식들이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누런빛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약하고 그리고 인간이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는 지난여름에 가뭄을 통해 목격을 했습니다. 일본이 얼마나 과학이 발달된 나라이고 세계에서 둘째 셋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그런 강대국인데도 비가 안 오니까 공장을 돌릴 물이 없어서 우리나라에 배를 갖고 와서 우리나라 수돗물, 좋지 않기로 유명한 그 수돗물을 수입을 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하는 그 기도가 바로 우리는 그 기도의 본 뜻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기도를 주님이 우리에게 하라고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거셨던 기대가 무엇이겠느냐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무슨뜻인지 아십니까? 이런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처음 조상 아담과 하와가 유혹을 받을 때 뱀이 뭐라고 한 말에 현혹이 되었습니까? 너희가 이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뱀으로부터 받았던 유혹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바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고 싶어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후손들은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서 살아가면서 그 같은 조상들의 생각이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이었는지를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부탁하셨던 이 주기도문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그렇게 너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기도할 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다 그것이 아니라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거셨던 기대가 무엇이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루에 세끼씩 한 그릇씩 밥을 먹어야 산다라고 하는 사실을 압니다. 그리고 지금은 여러분들이 반팔을 입고 있는 분들이 많지만 석 달이 지나면 아무도 예배시간에 반팔입고 나오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겨울에는 겨울대로 옷을 입어야지 삽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아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그러시냐. 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기도를 당신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드리도록 그렇게 부탁하셨던 지시하셨던 명하셨던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명하셨던 이유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기도를 통해서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여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도록.
그렇게 따진다면 여러분들, 우리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요새 거의 기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먹고 살아갑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은 이때는 먹는 문제가 너무나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에 그때는 그렇게 기도했지만 지금은 이 기도를 드릴필요가 있겠는가? 반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함으로 우리들이 이 기도를 통해서 첫째는 우리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인생인가 하는 것을 늘 깨닫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한조각의 빵. 한모금의 물, 한 잔의 우유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라는 사실을 이 주기도문의 네 번째 기도를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간절히 드릴 때 우리들은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
나 이제 생명있음은 주님의 은사요
오늘은 내가 살아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첫 번째 주기도문의 입구에 들어올 때 마다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이신지를 깨닫습니다. 두 번째 문에, 세 번째를 거쳐 네 번째 문에 들어설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인생인가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진심으로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라고 하는 이 기도를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결코 교만해질 수 없습니다.
(예화) 우리는 부요하고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한 삼십년 전만해도 우리는 그렇게 부유한 시대를 살지 못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저녁이 되어서 굴뚝에 연기가 올라야 되는데 오르지 않는 집이 양식이 떨어진 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도 사람들은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면서 얼마나 한조각의 빵 그리고 먹고 마시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인가 하는 것을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그렇게 많은 재물과 부요한 시대 속에서 훨씬 더 하나님을 잊어버릴 위험이 많은 사람들이라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주님은 이 기도를 하셨을까요, 안하셨을까요? 주님 자신도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 입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리고 이 세상을 하나님과 함께 지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님의 아들이 오늘도 빈들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간절한 음성으로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풍족하고 내일에 먹을 것에 대한 염려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때로는 염려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기도 하지만 때로는 염려가 없고 편안한 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더 멀어지도록 만들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어린아이에게, 우리들이 양육하고 있는 어린아이에게 아침식탁을 예비하며 “얘야 오늘 이 아침식탁을 누가 주었지?”라고 물을 때 “하늘에 계신우리 아버지가” 대답할 수 있는 아이가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물어봐야 될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하찮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 가운데 풍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이전에 배고프고 그래서 먹고사는 일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얼마나 감사하였는지를 사람들은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화) 저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 교회 다닐 때 가끔 가난한 성도의 집이지만은 가서 식탁을 공개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새까만 김치에 보리가 많이 섞인 밥 한 그릇 밖에 없었지만은 그리고 상도 꼭 귀퉁이가 부서진 것 거기에 때가 까맣게 낀 그런 상. 경건한 성도들은 하찮은 그 보리밥과 시커먼 김치 하나를 놓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우리가 과연 이런 음식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개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들입니까? 그러며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이 식탁에서 밥을 짓이기고 그리고 그 식탁에 감사할줄 모르는 마음을 갖는 것은 바로 가정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이것 없이는 살수 없다는 것. 이것 없이는 살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이 연약한 인간이라는 사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마음과 생각으로 매일 식탁을 대하게되면 우리는 세 번의 식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번 펼쳐진 아침과 점심과 저녁의 식탁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우리들이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느냐는 것입니다.
(예화) 오래전의 그림입니다만 은 머리가 하얀 노인네가 피죽 한 그릇과 딱딱하게 굳은 빵 하나를 옆에 놓고 낡은 성경위에 안경을 벗어놓고 그리고 눈을 감고 손을 모으고 식탁위에서 기도하는 그림을 여러분들은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말로 할 수 없는 이 은혜를 잊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알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로 하여금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이 기도를 절박하게 드릴 때마다 우리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연약하고 일용할 양식이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구하지 않을 수 없는 인생이라면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영적인 삶과 우리의 다른 삶의 영역에서는 얼마나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인가 하는 것을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깨닫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위대한 하나님에 비해서 오늘도 하루의 양식을 하나님이 주셔야만 살아갈 수 있겠다고 하나님 앞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우리의 모습 속에서 그분은 과연 하늘에 계신 위대한 하나님이며 우리는 이 땅에 있는 비천한 인생들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이 주기도문 네 번째 기도를 우리에게 하라고 가르쳐주셨던 이유입니다.
주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월이 한 이천년 정도 흐르고 나면 이처럼 고소득이 되어서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 거의 염려하지 않고 오늘도 돈만 가지면 슈퍼에 가서 농협 쌀을 사다가 밥 끓여먹고 언제든지 가서 삼사천원 오육천원, 돈 많으면 이만원, 삼만원만 내면은 훌륭한 음식을 먹고 하루를 배부르게 지낼 수 있는 시절이 올 것이라는 사실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 부유한 시대에도 이 기도의 제목은 녹슬지 않고 우리 앞에 다가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흐르고 지금은 우리는 한없이 부유한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기도는 네 번째 이 기도는 녹슬지도 않고 이 기도를 해야 할 필요성은 쇠하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우리의 마음 가운데 깊이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일용할 것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용할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거지뭐.’ 아닙니다. 믿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힘이 없으나 하나님만이 나를 도우실수 있다라고 믿는 그 믿음이 너무나 크므로 염려하지 않는 것이 있고, 두 번째는 말로는 주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은 그러나 주님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나를 의뢰함으로 갖게 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주님이 빈들에서나 그 장막 안에서 아버지 앞에 네 번째 기도를 드리셨을 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을 때 예수그리스도는 꼭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기도를 뜨겁고 열렬히 눈물을 흘리며 하시다가 네 번째 기도에서만 슬쩍 건너뛰고 혹은 가볍게 기도하셨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같은 기도의 영과 똑같은 기도의 열정으로 이 네 번째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루만이라도 주께서 막으시고 우리에게 양식이 미치지 못하게 하신다면 인생들은 즉시 이것 없이 살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저도 아직 그런 것을 못하고 있습니다. 개혁이 되고 생각이 더 깊어져야 된다 생각합니다.
(예화) 나는 어느 집안의 간증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큰 감명이었습니다. 내용을 다 기억할 수는 없는데 그중에서 감명을 받았던 건 이것입니다. 너무너무 고생을 많이 하고 그래서 끼니가 간데없어서 자살을 하려고 몇 번을 연탄불을 피워서 방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던 그런 집안이었습니다. 옛날에는 그게 자살방법으로는 아주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다 몸부림을 치면서 살았더니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말하자면 그 집안이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집안이 살만하게 되었다 생각이 되어서 그 부모가 소고기를 사다가 국을 끓여서 식구들에게 나눠줬는데 아이들이 그 고기의 맛을 잊어버렸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 오래되어서. 그러면서 그 하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아서 자신들이 거의 끼니를 이을 수 없는 그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주님을 믿고 그리고 새롭게 하나님이 축복해 주셔서 가난을 딛고 일어선 날을 기념을 해서 그날에는 온 식구들이 장롱 속에서 그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에 입었던 그 옷을 입고 그리고 그때 먹던 음식을 가지고 와서 일 년에 한 번씩 그 지나간 역사를 얘기해줍니다. 아들에게 손자에게. 쉽게 얘기하면 유월절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월절을 하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 자손들이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물으면 너희는 대답해줘라. 어떻게? 애굽에서 우리는 유리하던 아람족속으로서 애굽땅에서 종살이를 하다가 433년이 되는 그때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우리를 그 큰 능력으로 구원하셔서 우리가 도저히 애굽 사람의 압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는데 이와 같이 어린양이 우리를 위하여 죽고 그 피를 우리의 문 인방과 설주에 바르자 어둠의 사자, 죽음의 사자들이 우리는 지나가고 애굽의 모든 바로의 첫태생으로부터 시작해서 짐승의 처음 난 새끼까지 치시기로 우리가 거기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느니라 그것을 회상시켜주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일이 꼭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러나 요즘 자라나는 부요하고 어린세대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거나 듣는 것을 제일 싫어합니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일용할 양식이 하나님께서 온다는 사실을 결핍의 시절만큼 절감하는 때가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주님이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처럼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이렇게 부요한 시대가 올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이 이 세상에서 아무리 부유해진다고 할지라도 이기도. 쇠하지 않는 이 기도. 그리고 필요성이 빛바래지 않는 이 기도를 하나님 앞에 늘 드려야 된다. 이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주 없이 살수 있다하는 교만에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원리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 있어서 주 없이 살수 없사옵니다. 고백하지 않는 사람들은 큰일 속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그 신앙의 간절함도 점점점점 작은 데서부터 자라가고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불신앙도 자기의 삶의 작은 부분에서부터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는 그 불신앙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결정적인 인생의 시기에 주님을 찾는다.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은 사소하고 작은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중하게 여기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을 산 사람들이 아니면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의 뜻을 구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매일 일용할 양식, 매일매일 공급되는 일용할 식탁을 대하면서 이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인생들이라고 하는 것은 것을 깊이 깨닫고 깊이 하나님 앞에 인정하며 그리고 늘 그것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는 삶이 우리의 몸에 베이고 우리의 삶에 베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교만할 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누차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목자와 같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들을 돌보아 주셨으니 그들이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 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셨습니다. 단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일용할 양식을 구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구하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주님의 생애를 생각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자기의 섬김의 많은 부분들을 굶주린 자들을 위해서 섬기셨습니다. 벳세다 광양에서 오병이어의 물고기로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21장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도 갈릴리 바닷가에서 그들에게 조반을 먹이셨습니다. 세상에 계실 때에는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언제나 일용한 양식으로 사셨습니다. 그분 주위에는 가난한 사람도 있었지만 부유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낮고 천한 사람도 있었지만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왕족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일용할 양식으로 사셨습니다.
우리에게 매일의 양식을 구하는 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또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그토록 불안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고통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여러해 동안 먹고 마실 것을 쌓아두려고 애를 쓰기 때문에 사람들은 매일매일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이미 쌓아둔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가르쳐주신 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이 세상에서 원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있는 이유가 세상에 있는 것들을 많이 먹고 마시고 누리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이 전혀 아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며 그 뜻이 이루어지며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이 존귀의 여김을 받는 그 일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때나 안 믿을 때나 우리는 똑같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잘 믿을 때나 잘 믿지 않을 때나 눈뜨고 보면 우리는 똑같은 세상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수를 잘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직장을 그만두고 신학교를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예수를 믿을 때나 안 믿을 때나 좋은 신앙의 생활을 할 때나 나쁜 생활을 할 때나 조금도 변한 것이 없지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때 우리 앞에 있는 세상을 똑같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 신앙의 삶의 이유는 완전히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일용할 양식들이 아닌, 몇년 몇십년 심지어는 자손들이 먹을 것까지도 예비하려고 애를 쓰는 그런 삶은 기독교인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유산을 자손에게 물려준다든지 결혼할 때 분에 넘치는 여건을 갖추어서 자녀들을 시집장가 보내는 일은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로 하여금 있을 처소와 그리고 건강이 있으면 그 다음에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신앙을 가지고 일용할 양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살아가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그래서 우리는 부자도 없지만 그렇게 권합니다. 여러분 재산이 많으면 마지막 때에는 일용할 양식을 쓰고 남으면 내가 하나님 앞에 바치고 간다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사십시요. 그리고 자녀들에게는 있을 거처와 그리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 수 있는 건강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좋은 신앙을 물려줘서 그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불안한 삶을 살 정도가 되는 빚을 물려준다든지 그래선 안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건강한 육체와 신앙을 가지고 일용한 양식을 구하면서 그렇게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을 의뢰하도록 그렇게 만들어주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부모들이 이러한 삶을 살지 못하니까 자녀들이 타락하는 것입니다.
(예화) 압구정동 나는 한번도 거기가 어딘지 가보지 못했는데 술집 종업원들이 자기네들도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왜그러냐면 대학생같이 생긴 사람들이 들어와서 술을 먹는데 매일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아무리 작게 잡아도 한달에 천만원을 될 것 같은데 자기네 집에서만 먹는 술값이. 그런데 그 돈이 어디서 나는지 자기네들은 모르겠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모든 타락의 기반을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기도하며 사는데 의외로 주님이 재산을 주셔서 그것들이 불어나면 마지막에 자기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과 함께 처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쓰도록 이 세상에 남겨두고 가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리석은 부자를 비유로 드셨습니다. 오늘밤에 하나님이 그 생명을 취하실텐데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하는 생각을 전혀 못하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의 건강과 그의 재물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종말에 대한 인식이 흐려진 가운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에게 주님은 물으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물으시기 전에 그렇게 일용할 양식이 아니라 몇년. 일평생 먹을 곡식들을 준비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마지막에 자신에게 한말은 무엇이었습니까? 여러 해 쓸 곡식이 창고에 가득 쌓였으니 내 영혼아 먹고 마시자. 이 부자는 어리석은 사람이었습니다. 영혼이 그런 것 때문에 즐거워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영혼은 그렇게 이 세상에 있는 양식으로는 즐거움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없이는 이 영혼의 즐거움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것이 뉘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오늘 성경은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그러나 이 일용할 양식은 단지 먹을 음식만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문학적으로 직유법입니다. 그래서 펜은 칼보다 강하다 그러면은 그 펜은 펜촉하고 칼하고 싸우면 펜촉이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 글로써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무력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지배하는 사람들보다 힘이 강하고 영향력이 크다 그런 뜻입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그냥 한그릇의 밥이나 국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죠?
(예화) 르완다의 난민들을 우리도 도와야 합니다.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자꾸 죽어가니까 옥수수로 죽을 쒀서 그 죽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데 그렇게 나누어 주는것 가지고는 그것을 먹어도 배불리 먹어도 말하자면 영양실조를 극복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까? 일용할 양식으로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다가 영양제를 막 타가지고 그렇게 먹는데 그것은 일용할 양식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에 건강하고 그리고 균형 잡힌 삶을 살수 있을 정도로 그렇게 말하자면은 준비된 식탁. 그것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렇죠? 그러니까 그것은 획일적으로 잴 수 없습니다. 그렇죠?
우리가 낭비하면서 한 끼 식사에 지나치게 많을 정도의 돈을 소비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한 끼 식사를 통해서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공급받을 수 있는 것. 일용할 양식입니다. 또 우리가 입는 옷. 한 벌에 분명히 똑같은 옷이라도 우리가 입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사람들로부터 우리 때문에 초라한 느낌을 받지 않고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의 몸을 보호하고 하는 이런 옷은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렇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써 최소한의 문화적인 삶을 누리면서 사는 것도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유익을 위해서 책을 사보는 것도 일용할 양식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러나 마르틴 루터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일용할 양식이지만 이 일용할 양식 속에는 귀금속이나 사치품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려는 예수님의 기도 속에서 우리는 또한 이 기도의 한계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앞에 드려진 세 개의 장엄한 기도에 종속되어서 행여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공급되어지지 아니함으로 그래서 우리가 굶주려서 죽는다든지 아니면 일용할 양식이 충분치 않음으로 말미암아 과도히 우리의 마음을 먹고 사는 일에 빼앗긴다든지 혹은 일용할 양식이 충분치 않아서 우리가 건강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뜻과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는 그런 세상이 우리 가운데 오게 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일에 방해를 받는 일들이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는 그러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서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위해서 기도해야하고 우리자신도 그렇게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매일매일 건강한 삶 속에서 이 세상에 잠언의 기자가 말한 대로 너무나 물질이 부유하므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거나 너무 없어서 그래서 주님을 찾을 여유를 잃어버리는 물론 우리는 아무리 결핍할지라도 그냥 굶어죽어 갈지라도 도무지 그런 것들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도무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래서 그럴수록 더 하나님을 장엄하게 구하면서 사는 그런 성자와 같은 삶을 살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나님의 앞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교육의 기회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교육의 기회를 얻기 위해 기도해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늘 나아가며 일용할 양식을 하나님께서 우리의 노동을 통해 공급해주시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는 날마다 주님 없이 살수 없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살아간다라고 하는 것을 매일 매일의 식탁 속에서.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필수적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 금식을 해보면 알지요? 하루만 금식하고 오면 생각나는게 먹는거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도 먹는 거에 생각의 지배를 받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금식하면 종이 갖다놓고 엎드려서 먹고 싶은 목록을 갖다가 다 씁니다.
(예화) 친구 목사들하고 같이 몇년전에 그땐 목사가 아니었지만 기도하러갔는데 닷새동안에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마지막 날 그 어느 목사가 그랬습니다. 그땐 전도사였지.. 우리 서울 내려가면 몇 주 있다가 같이 한번 기도원에 올라오자고. 왜? 그때는 우리 금식하지 말고 올라와서 저 매점에서 파는 오뎅도 사먹고 새우깡도 먹고 저 공짜로 주는 밥도 먹고, 우리 그러면서 정말 먹으면서 기도를 우리 한번 해보자고.
얼마나 먹고 마시는 것의 결핍이 무서운가 하는 것을 우리는 거의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겸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그렇게 가르쳐야 합니다. 식탁을 대할 때 경건하게 대하도록. 하나님 앞에 이 식탁을 마주할 때 그 식탁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도록. 그렇게 우리는 교육하며 우리자신이 그런 태도로 하나님 앞에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인생들이고 이 썩어지면은 사라질 가죽과 껍질에 둘러싸인 이 육신도 속히 사라지는 이 육신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인생들인데 하물며 우리의 영적인 삶, 그리고 이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온전히 살아가는 삶을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없는 인생들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전 확신합니다. 우리가 이 네 번째 기도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갈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그것을 깊이 심어주십시오. 그래서 그들이 식탁을 대할 때마다 부모님이 죽고 사라진 다음에도 그 식탁을 대할 때마다 경건한 부모와 그리고 하나님을 떠올려야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이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한없이 겸비해야 될 존재를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그렇게 깊이 기도하고 그래서 주님이 주셨던 이 기도를 깊이 이해하고 예수님처럼 그렇게 일평생을 기도함으로 이 식탁을 통해 주님 임재해 계시는 것과 그리고 우리 인생이 우리의 영혼뿐만 아니라 우리의 육신도 철저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라고 하는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