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2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4 )
녹취자:문미경
이미 말씀드린바와 같이 오늘부터 꽤 여러 주에 걸쳐서 주기도문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들이 긴 주기도문을 듣기 전에 우리가 먼저 이 주기도문에 대해 정리를 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신약성경의 모든 부분의 이야기가 중요하지만 이 주기도문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이 주기도문을 여러분들이 깊이 이해하게 되면 우리가 무엇을 기도해야 될 것인가를 알아서 우리의 기도생활이 성경에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하나는 기도는 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나태하게 사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기도생활이 부지런할 수가 없습니다. 살아가는 삶이 세속적인 사람들이 기도는 거룩하게 드린다..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사람은 언제나 살아가는 것만큼만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만큼만 살아갈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주기도문을 보면서 양재동에서 강해설교를 한 학기 동안 했는데 다 못하고 삼분의 이정도만 하고 끝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저는 이 주기도문을 보면서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 이 주기도문만 잘 들으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들이 기독교 신앙이 다시 잡힐 겁니다. 여러분, 기초가 잘못 놓인 신앙은 아무리 쌓아 올려 봐야 나중에 충격적으로 무너질 일 밖에 없습니다. 왜 사람들이 신앙이 제법 있는 줄 알았는데 자기도 놀랄 정도로 자기의 신앙이 이 험한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되는 그런 비극을 경험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기초가 튼튼치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반석이 집을 짓는 것 같으려니와 그렇지 못한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 같아서.. 큰 물이 날 때에 무너짐이 심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생애는 이 주기도문에 농축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신 것은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제자들이 부탁했기 때문에 마지못해서 즉석에서 이런 궁리를 짜내서 우리에게 이런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주님이 평생 기도해 오신 그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기도를 잘 해부하면 주님이 어떻게 사셨는지도 알 수 있고 뭘 믿으셨는지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 사람이 이 주기도문을 들으면서 신앙의 기초가 새롭게 잡히는 것을 봤습니다. 여러분들이 깊이 집중하시고 이 주기도문을 잘 듣고 그리고 신앙의 기초를 다시 잡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에서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셨는데 이 주기도문이 성경을 보면 두 개가 나옵니다. 누가복음의 하나 11장에 나오고 마태복음 6장에 나옵니다. 왜 두 개가 나왔느냐하면, 어떤 사람들은 누가 복음에 있는 것을 마태복음으로 옮겨서 실을 때 다듬어서 실었다..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에 있는 것을 누가복음에 옮겨 심었다..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두 번 가르쳐주셨다.. 라고도 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내용도 대동소이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두 번 가르쳐 주셨나 한번 가르쳐주셨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가 있다..’ 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그리스도께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그리스도께서 한곳에서 기도하시다가 온 이후에 제자들의 요청에 의해서 가르쳐준 것은 누가복음 11장에 있고 여기는 산상수훈을 가르쳐주신 가운데 우리에게 기도에 대해서 꽤 길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주기도문은 성경자체 안에는 주기도문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것이다..’라고 해서 주기도문이라고 그러는 건데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것은 오늘 우리들이 하는 것처럼 생각 없이 예배 끝날 때나 모임 끝날 때나 마지막 끝나는 순서가 적절하지 못할 때는 주기도문으로 마칩시다..하는데 그러한 일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걸 그대로 사람들이 달달달달 외우는 그 일을 위해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고, 기도의 패턴, 기도의 형태가 그런 형태로 기도해야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말씀을 우리들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주님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해라..하신 그 기도의 틀을 따라서 우리가 하는 기도생활 하고 틀을 맞춰보면 아마 여러분은 엄청나게 우리가 하는 기도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시는 기도와 차이가 난다고 하는 사실을 보면 여러분들은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하게 되느냐 그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왜 우리의 기도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렇게 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와 차이가 많이 나냐고 하면 우선 사람들은 기도에 있어서만큼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에 별로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하나님과 단순히 그저 마음먹은 대로 대화를 나누면 되는 것이지 굳이 무슨 형태를 따라가야 될 이유가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 때문인 겁니다. 또 하나는 그렇게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대로 하고 싶어도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를 천천히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어떤 걸 발견할 수 있냐고 하면 이런 기도를 할 때에 이상하게 신이 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얘기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들이 우리에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고 내 마음이 이 기도를 쫓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한 이야깁니다.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는데 우리 마음이 왜 쫓아가지 못할까요? 만약에 쫓아가지 못한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주님이 비현실적인 기도를 가르쳐주신 것일까요?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가 너무 수준이 높은 것일까요?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네 라고 대답할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주님은 이것을 누구에게 가르쳐주셨는지 우리는 주목을 해야 합니다. 산상에 올라서, 팔복산에 올라서 그래서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예수살렘과 대가불리와 갈릴리에서 병 고침을 받고자 와서 병 고침을 받았고 그 병 고침을 받고 더욱더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 모인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비범한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다. 평범하게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며 살아가는 사람들.. 오늘 우리처럼 직장 다니고 때로는 병나고 때로는 사업하고 혹은 장사하고 혹은 공부하고 아이들을 기르고 그리고..이러한 평범한 일 속에 묻혀서 사는 갈릴리와 예루살렘과 대가불리와 그리고 모든 원근각자에 흩어져 살아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자 따르는 그런 평범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기도였다라고 하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기도가 우리의 마음에 뜨겁게 와 닿지 않는 이유가 무엇 때문입니까? 이것을 쉽게 얘기하면 우리의 기도가 변화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신앙이 근본적인 변화를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기도에 대한 교훈뿐만 아니라 모든 교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고 복음 안에서 참되게 변화되게 되면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이 기도가 가장 훌륭한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 속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부흥을 경험하게 되면 그 사람 마음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깊이 외우지 못한다 할지라도 자기가 평소 올리는 기도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가 너무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 같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으면 기도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물론 열심히 기도할 순 있고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이 게을러질 수도 있고..그리고 금식을 할 수도 있고 철야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간구의 제목,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온 목적,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에 내가 하나님께 대해서 거는 기대..이러한 것들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내면 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무슨 말씀하시다가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줄 아십니까? 이방인처럼 너희들은 중언부언 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자기의 우상이 들을 줄 생각하느니라..그러나 너희에게 있어야할 것을 하나님은 아시니라..있어야 할 것을..필요를 이야기하다가..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삶의 필요를 이야기 하는 가운데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방인들의 기도와는 틀려야 된다..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서론을 더 하고 싶지만 너무 길게 하면 여러분들이 지루하실까봐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제일먼저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제일먼저 가르쳐주신 것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에 대해서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라고 부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흔히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면 아주 어린 아이 때는 하늘 높은 곳에 계시다고 말합니다. 그러다 아이가 좀 더 자라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물으면 교회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좀 더 성숙해지면 하나님은 어디계시냐 물으면 내 안에 계시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께서도 하나님이 어디 계신가에 대해서 말할 때 아주 다양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지니 천국은 너희 가운데에 있느니라..’ 천국은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다스리고 있는 통치입니다. 천국이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서 다스리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주님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에 대해서 말하셨습니다. 때로 주님은 성전을 향하여 맹세하지 말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구약에 성도들은 한결 같이 성소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많은 여러 곳에 계신 하나님을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실 때에는 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굉장히 이상하지 않습니까?
시편 115편에 보면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하심이다라고 말했지만 역대기2장에 가면 하늘과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말할 때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 하늘은 단순히 보이는 푸른 하늘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여주는 바는 먼저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분이다..라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세상에 잇는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님이 있다 없다를 자기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있다라고 믿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있는 것 같이 살아가고 그래서 주일날 나와서 예배드리고 어떤 사람들은 없는 것 같이 생각되고 없다고 믿기 때문에 자기만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그분의 입을 빌어서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것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다수결 투표를 하고 만장일치로 하나님이 안계시다고 가편 투표를 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시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 땅에 있는 백성들이 말하기를 이 땅의 임금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매인 것을 풀고 얽매인 것을 끊자하나 하늘에 계신 이가 우스심이라.. 세상의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살아계시지 않다고 말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시고 그리고 그 하나님은 존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인생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든지간에 그가 누구든지 간에 성령이 접근하면 성경이 제일 먼저 묻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는 것입니다. 당신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하면 그러면 그건 접어놓고 그 다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그럴 때 성경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것을 당신은 믿고 있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아멘이라고 할 수 없으면 그다음에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태도입니다. 기독교는 우리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인정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것을 인정해야지만 그다음에 성경은 그 사람과 인생을 이야기할 가치가 갖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살아있는가 없는가 하는 이런 회의주의적인 사고가 유행하는 시기에 단적으로 간단하게 잘라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계시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이 계시다라고 하는 사실보다도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때 팔복산에 올랐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중에도 아무도 하나님이 살아계시다 라는 사실을 하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입니까? 성경은 오늘 말하기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하늘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로부터 인간은 언제나 하늘을 쳐다볼 때에 겸비했었습니다. ‘천지의 유유함을 생각하니 홀로 외로워져 눈물만 흘리노라.’ 당나라 시인 진자항이라 지은 시입니다. 외로운 벌판에 마주나온 하늘을 바라보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이 얼마나 외소하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너희는 하나님을 생각할 적마다 하늘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뭐 하나님을 뒷집 친구처럼 여기면서 살아가는 세대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르니까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할길 그저 함께 놀고 어울릴 수 있는 친구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을 읽어보십시오. 성경은 결코 하나님은 우리와 같이 놀아주고 우리와 함께 뒹굴고 우리와 함께 농담이나 하고 그럴 수 있는 분이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그러면 왜 그런 신앙이 널리 펴져있게 된 겁니까?
왜 그런 일들이 생겨나게 됩니까? 그건 성경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습게 여기는 이 세상의 풍조가 교회로 들어오고 텔레비전을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소재를 가지고 코미디하는 게 나옵니다. 전부다 신성 모독죄입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예화) 옛날에 국방부장관으로 지냈던 김성은 집사..라는 그분이 간증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었는데 아주 신선했습니다. 그분이 하루는 비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비원 숲속에서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랍니다. 이렇게 보니까 하필이면 자기네 교회 집사님이었습니다. 새벽에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더랍니다. 나중에 끝나고 새벽에 만나서 이야기했는데 왜 그렇게 울면서 기도를 하느냐 물었더니, 남편이 하도 못살게 핍박해서..이젠 도저히 베길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뭘 도와주면 되겠느냐 했더니 ..그 여자 집사님이 우리 남편을 만나서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해달라고 하더랍니다. 김성은 집사님은 자신도 신앙생활을 옳게 못하고 흔들흔들 하며 살고 있던 터라 당신같이 신앙이 좋아하는 사람말도 안 믿는데 나같이 옳게 안 믿는 사람 말을 듣겠는냐..했더니 여자 집사님은 장관이 아닙니까? 우리아빠는 높은 사람이라면 사죽을 못사는 사람인데 교회집사 얘기는 안 들어도 장관이 불러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아마 믿을지 모른다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등 떠밀려서 그럼 내가 한번 저녁을 살 테니까 여자집사님에게 남편을 데리고 나오라고 했습니다. 자기 말에 의하면 매주 오십만원씩 헌금을 했다고 하고 또한 장관을 지내셨으니 돈이 좀 많았겠습니까. 자기에게 예수 잘 믿는 영적인 권위가 없으니까 기를 죽이려고 아주 최고급 호텔로 그것도 특실에다가 불렀습니다. 집사 남편은 부인이 자신과 함께 교회를 다니던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아무개씨가 있는데 이분이 당신을 저녁을 초대했다고 하니까 예상대로 좋아하며 저녁초대에 응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나서 저녁을 잘 먹고 있는데 이 장관은 예수를 믿으라고 얘기해야 하는데 양심에 걸려가지고..도저히 말이 안나오더랍니다. 예수를 믿으십시오 라고 얘기하려하면 마음속에서 너는? 너나 잘믿어라..?라고 하는 것만 같아서 도저히 걸려서 얘기가 안 나오는 겁니다. 물론 집사 남편은 높은 사람 앞에 앉았으니 어쩔 줄 몰라하는 태도로 있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게 되자, 장관은 용기를 다해 예수 좀 믿어보라고 딱 한마디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렇게 고분고분하던 그 사람이 예수 믿으라는 그 말에는 폭포수같이 쏟아지며 예수를 안 믿는지에 대해서 얘기를 하는데 청산유수더랍니다. 그러면서 자기는 할 말을 잃어버려 어찌할바를 모르다가 마지막까지 코너에 몰려서 할 말이 없게 되었는데...그때 뭐라 그랬냐 하면..성령이 주신 말씀인 것 같았는데... ‘이보게 젊은 양반, 그러지 말고 우선 성경을 읽어보게...’라고 했답니다. 근데 자기는 성경을 안 읽어봤답니다. 그리고 다시 성경을 읽고 다시 만나서 얘기해보자..했더니 그 사람이 그 말에는 반격을 못하고 ‘좋습니다. 제가 열심히 성경을 읽고 오겠습니다..’하더랍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고 와서 여기저기 물어보면 할 말이 없을 것이니 마침 몸이 아파서 휴직을 하고 있던 터라 구약성경을 찬찬히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읽으면서 심령의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내가 알고 있던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겁니다. 구약을 넘겨보니까 제일먼저 우렁찬 오케스트라 연주가 들리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느니라. 그러면서 하나님이 죽 나오는데 백성들이 반역하니까 하나님이 단숨에 쓸어버리고 왕이 잘못하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걷어 가시고 주님 앞에 불순종하니까 불순종한 사람을 하나님의 은혜의 재단에서 쏟아져 나온 불길에 삼키여서 죽여 버리고...끔찍한 하나님의 주권을 행하시는 놀라운 역사들이 나오더랍니다. 그러면서 그가 깊이 두려워 떨면서 목사님한테 찾아가서 구약을 읽어보니까 그 하나님 어찌 이렇게 무서운 하나님입니까. 라고 물었더니 목사님께서 ‘집사님 잘하셨습니다. 그러면 신약을 읽어보십시오.’하더랍니다. 그래서 신약을 읽어보면서 그 하나님이 얼마나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다고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와 함께 어울리고 놀고 그럴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계실 때 변화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산에서 형체가 변화되시는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눈이 부실 정도로 희어진 그러한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보며 놀랐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그리스도께서 변화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된 모습을 이 땅에 드러내실 때에 그 모습이 어떻겠느냐..는 것입니다. 안 보일 때는 무슨 말이든 다 합니다. 임금도 욕하는데..그러나 그 앞에서는 어떻게 됩니까? 꼼짝도 못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그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거룩한 분이시고 존귀하신 분인지 안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는 겁니다. 밖에 나가서 한번 힘차게 뛰어올라보십시오 일 미터를 뛰는 사람 많지 않습니다. 영원히 닿을 수 없는 하늘 저 너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겁니다. 인간의 지성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나 그것은 마치 하늘에 있는 구름을 잡고자 깡충거리는 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사람의 철학과 사상으로 하나님을 알고자하나 그것은 멀리 보이는 달을 붙잡기 위해 사다리를 놓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는 겁니다. 도저히 하나님은 만질 수 없는 곳에 우리가 감히 키를 댈 수 없는 그곳에 그렇게 초월을 할 수밖에 없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퀴즈를 냈다고 합시다. 하나님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말로 이 땅에 재림하게 되면 우린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 주님이 오신다고 했는데 정말 오셨네..오늘 오셨네?’ 그럴 수 있습니까? 모든 사람은 충격 받을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기도하기 전에 먼저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방인의 기도와 틀린 점이었습니다. 이방인은 기도하러 나올 때 무엇을 주목합니까? 돈이 필요한 사람은 돈을 주목하겠고 양식이 필요한사람은 양식을 생각하며 신 앞에 나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기 위해 나온 사람은 하나님 자신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주목한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의 얻을 곳을 구하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성품에 주목하고 이방인의 구함은 얻고자 함을 위함이나 기독교신앙은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관계를 주목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하늘에 계시다라고 하는 이 말은 인간을 완전히 초월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화) 오늘밤 내일 밤 모레밤 19일까지 목성과 혜성이 부딪힌답니다.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고 많은 과학자들이 그 부딪히는 장면을 생생하게 찍기 위해서..출장을 나왔다고 합니다. 돌아다니는 유성의 덩어리가 잘못되어가지고 부딪히는데 이런 장엄한 우주쇼는 천년의 한 번 정도 볼 수 있답니다. 그중에 제일 부딪히는 것 중에 큰 게 지름이 1.6 키로미터나 되는 커다란 흙덩어리라고 합니다. 그것이 목성하고 부딪힌답니다. 부딪히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는데 그 폭발 시에 나타나는 폭발력이 히로시마에서 터졌던 원자폭탄의 십 만개 정도가 동시에 터지는 효과와 같다고 합니다. 상상도 할 수 없답니다. 그 큰 게 일초동안에 초속 삼십 몇 킬로로 달린다고 합니다. 그 속도로 날아가서 부딪힌다는 건데 엄청난 충격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렇게 그것을 바라보면서 모든 사람이 감탄해야하는 어마어마한 광경도 우주전체에 비하면 운동장에서 티끌이 조약돌과 부딪히는 그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엄청난 세상과 우주를 하나님이 홀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나라를 여행한 에드윈 엘드린, 마이클 콜린즈, 닐 암스트롱..세 사람이 달에 가서 착륙하고 시편 121편을 새겨놓고 왔습니다. 여러분, 우주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 분이신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옛날에 인도를 한번 보여줬던 적이 있습니다. 절벽이 4키로 미터나 되는데 그 절벽을 깎아가지고 조각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두 가지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는 인간적으로 볼 때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대단한가. 두 번째는 그 사람이 얼마나 허무한 사람들인가. 그 수백 년에 걸쳐서 4키로가 넘는 그 절벽을 깨져서 말하자면 우상을 새겨 넣어서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찬란한 조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우리들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우주를 보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위대하고 그렇게 크신 하나님, 모든 것을 뛰어넘어 초월해계신 하나님, 인간들 속에 오셔서 우리들과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이 되기 이전에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기 전에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여 주님은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나이다.’ 라고 인정해야 하고 겸비해져야만 합니다. 그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한 하나님이고 내가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가 그것을 하나님 앞에 인정하고 겸비해져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을 동시에 죽음으로 부르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의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그 전쟁을 그치고 평화를 가져오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 높이 계신 그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은 시편이 말하는 것과 같이 하늘 높은 곳에 계서서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하십니다. 누구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씀 속에서 누구도 하나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이 세상에 하나님을 믿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감찰하고 계신 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무엇 때문에 즐거워하고 무엇 때문에 신나는지 주님은 다 헤아려 하실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지 아니면 그렇지 못하는지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크고 위대한 일뿐만 아니라 지극히 작고 지극히 사소한 일까지도 모두 알고계시고 이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도 그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떻습니까? 세상은 세상대로 악을 행하고 잘못된 일을 행하면 벌을 받고 심판을 받는 규칙이 세상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심판을 하시는 겁니다. 누구도 하나님의 통치를 벗어날 자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 앞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하는 이 신앙이 무엇인가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하늘높이 계시고 인간은 그 땅 아래 있는데 그 땅 아래 살아가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인간들은 연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잘 알 수 없을 텐데 그 연약한 인간들이 또 죄로 물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모든 눈이 다 깨진 겁니다. 바로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대로 있으나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신앙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시고 우리의 경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다스리시고 그리고 우리가 영광을 돌려야 할 분이시란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고 있습니까? 그렇게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그리고 하나님을 알고도 감사할 수 없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먼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나님만이 우리의 경배를 받으셔야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누가 이 일을 하셨습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겁니다. 믿습니까?
이 세상에 있는 종교들은 욕심을 억제하고 수도를 하고 고행을 하고 자기가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죄인들이 그대로 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신 겁니다. 그리고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깨우쳐 주십니다. ‘얘야...하늘에는 내가 있단다. 내가 너희의 아버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면서 기독교 신앙이 시작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라고 하는 사실은 또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신앙이 무엇인지를 계시해 주십니다. 이게 다 어디로부터 온 말씀입니까? 하늘로부터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인간이 어떻게 그 땅에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월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따르며 순종하며 이렇게 70년 80년 죽어가야 할 인생들이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가..하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늘의 음성으로 기억해주시는 겁니다.
따라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기 첫 번째 말씀에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라고 말할 때 이 세상에 인간들의 모든 성향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데가불리와 예루살렘과 갈리리에서 온 사람들은 모두 무슨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들이었습니까? 하늘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습니까? 땅의 문제로 고민하던 사람들이었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어찌하여야 이 질병이 나을까 어찌하여야 이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날까? 이것을 생각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하늘을 향하고 있습니까 땅에 향해 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녀들도 대부분 이 땅의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가 나느냐 하면 껍데기는 기독교 신앙인데 나오는 내용은 전부다 이방인의 신에게 나아가는 그것을 그대로 가져 나아오는 것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는 게 무엇이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런 일인가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누구인가를 알고 하나님과 우리가 아버지의 자녀의 관계라는 사실을 알고 그 관계를 붙들며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이런 것들이 신앙의 초점이 되지 않고, 세상에서 우상에게 빌면서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그렇게 돈 내고 간구합니다. 대학 입시철만 되어보십시오. 나는 그때만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지극히 회의적입니다. 그리고 그때만 열심히 나옵니다. 가서 돈을 내고 삼천 번을 절해야한다고 하는데... 그 다음엔 나와서 허리가 아파가지고 병원에 입원하는 겁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이방 종교들이 갖고 있는 신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너무나 유사하지 않습니까? 마치 너무나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도 할 수 없이 들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절대 오해입니다. 안 되는 기도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안 됩니다. 자녀들이 여러분에게 칼을 달라고 하고 독약을 달라하는데 울고 몸부림친다고 줍니까? 그게 부모의 성품입니다. 이런 것들이 전부다 잘못된 것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하는 대부분의 기도들이 천국에선 전부다 잡동사니 우편물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뜯어도 안 보시는 기도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구시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어떻게 됐는지 알고 그것을 붙잡으며 살아가시는..그러면서 그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 무엇인가를 하는지 보여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의 동행하는 삶에 무엇인가 하는 것, 주님이 우리들에게 얼마나 우리들이 빠질 위험이, 이런 종류의 위험이 얼마나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 주님이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신 겁니다.
(예화) 부잣집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잘 자랐습니다.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크면서 점점 철이 들기 시작하면 시작할수록 아이가 영악해지면 되겠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아버지가 죽으면 저 유산은 전부다 내꺼다..’ 그런 마음을 갖는데 지혜로워 져서야 되겠습니까? 오히려 나이가 들고 성숙해질수록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가 더 긴밀해지고, 그 아버지의 집에서 인자한 아버지와 바른 길로 이끄는 부모 밑에서 자라게 된 그러한 것들을 인하여서 감사하고 기뻐하는 그런 인격적인 관계가 되어야 하지 않겠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간증이 많이 갖고 있다하여도 간증의 수준이 새마을 성공 수준을 못 벗어나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바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늘에 속한 모든 부요함, 예수그리스도께서 주기도문의 첫 번째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 라고 하는 것.
실제로 우리는 ‘하늘에 계신은’ 늘 대충 넘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깊이 주목하고. 그다음에 우린 아버지를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높이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우리의 삶에 대해 말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하늘 높이 계시고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무도 그 통치를 벗어날 자가 없고 그리고 하나님은 신앙의 모든 출발을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계시로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신앙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지만 그러나 우리의 사랑은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하늘에 있습니다. 위를 바라보며 살 것을 우리게에 가르쳐 주는 겁니다. 사도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얻었으면 땅에 것을 바라보지 말고 위에 것을 사모하라.’ 위의 나라를 사모하고 위에 것을 바라보며 살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겁니다.
그러니까 이 주기도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여..라고 이렇게 말하면서 우리는 세상에 붙은 욕심을 헛된 줄 알고 버리네...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의 목표 자체가 기도할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가 죄 많은 이 세상에 있지 아니하고 저 하늘나라에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건 다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우연이란 말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 뒤에 있습니다. 어떠한 훌륭한 일들을 결단을 하기 전에는 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기초가 이 신앙 속에서 마련되어있습니다. 실패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누적되어온 결과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하늘에 계신 그렇게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라고 하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겁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이 대목을 생각할 때 정말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들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이 죄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부패한 세상에서 소금으로 어두운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이 원동력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그 은혜를 힘입어서 살아가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험악한 세상을 이길 힘이 하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이 세상에 있는 것들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수 없고,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주는 그 은혜와 하나님께로부터 부어주는 그 은총 없이는 우리들이 조금 더 이 어두운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받으며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일날 이처럼 하나님 앞에 모이는 것은 주님께 징벌을 받을까봐 두려워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고백을 하는 겁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없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그 신령한 은혜 그것이 아니면 우리가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 고백을 하고 그 은혜를 힘입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나오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이 말씀을 기억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만물위에 초월해 계신 분입니다. 나라들 떠들고 이방들 요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이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도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는 이런 죄 많은 세상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하늘에 계셔서 비록 아무 말씀 없이 바라보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행한 대로 우리의 인생에 갚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늘 이렇게 하나님은 지극히 위대하시고 그때 비로소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인간인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교만함은 어디서 우러나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룻강아지가 호랑이 앞에 재주부리며 까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호랑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이 교만하고 하나님을 거스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예수 안 믿으려고 하는 모든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면 그들은 감히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겁니다.
보십시오.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간에 우리들은 지난 한 주간 동안도 하늘로부터 임하는 그 은혜와 하늘로부터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누구신가 하는 것을 먼저 주목하게 하시고 싶었던 이유인겁니다. 먼저 이번 한주동안 깊이 묵상하십시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분이고 하나님은 위대하고 거룩한 분이고 나는 지극히 비차하고 연약한 인생에 불과함을 고백하며 깊이 하나님 앞에 복음을 묵상하십시다. 그때 하나님이 그 아버지라는 사실이 얼마나 위대한 신앙의 감격을 불러일으키는 하나님의 말씀인가 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사는 날 동안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관계를 가지며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소유하며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 내리는 그 힘을 덧입어서 어두운 세상을 초라하지만 능력 있게, 무명한자와 같으나 그러나 사실은 유명하게, 패한 자 같으나 사실은 이긴 자처럼 그렇게 살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께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