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계획과 하나님의 성취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녹취자 : 장주은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자기가 좋아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 좋아하는 바를 따라서 앞으로 자신의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가질 것입니다. 어디 그것이 자기 개인적이기만 하겠습니까? 우리 개인의 행복은 다른 사람의 상태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가족이나 혹은 교회, 나라, 이웃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그러한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바람직한 상태에 있지 않으면 자신이 곧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모두 이 나라가 이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이런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이렇게 되어야 할 텐데, 내가 다니는 교회는 이러이러한 교회였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나름대로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생각이 없이 인생을 사는 것일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좋은 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을 받고 하나님께로부터 소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고 한편으로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히 대망하지만 그러나 이 현실이 현실 속에 그 나라가 실현되도록 이바지하며 사는 것도 우리의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초월적인 성격만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인 성격도 함께 강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려고 하고 불편하거나 때로는 고통을 받아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올바른 삶을 살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혜와 빛으로 우리가 올바른 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는 생활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하지만 그것이 곧 자기를 인도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많은 신앙의 갈등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모든 일이 잘 된다면 아마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행복이고 보람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늘 말씀드리지만 우리의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될 때보다는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훨씬 더 많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 현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서 내 마음대로 안돼도 그 속에서 뭔가 보람과 가치를 찾으며 자신의 인생도 발전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삶의 질도 개선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성숙한 삶입니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폭력을 행사하고 언어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말의 폭행을 가하고 그런 식으로 사는 삶은 미성숙한 삶이고 그런 사람이 건설하려고 하는 사회는 별 볼일 없는 사회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건설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회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사람이 누리고 있는 삶의 질이 그렇게 변변하다면 그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목매는 사회도 별로 그렇게 기대할만한 사회가 아니라고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혜자는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다, 라고 말합니다. 우리같이 하층민으로서 이리저리 치이고 세상만사 내 뜻 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에 익숙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이 이런 고백을 하면 큰 감동이 안 됩니다. 그런데 지혜자는 왕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정권을 손에 쥐고 한 나라의 권력을 쥐락펴락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왕의 명령은 지엄하여 그것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으로 데려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 모든 권력과 영광을 소유한 사람이었는데도 계획할지라도 그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그 고백은 우리에게 서늘하게 다가오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지혜자가 이 잠언을 쓰기까지 깨달은 바는 결국은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다,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의 걸음을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옳고 좋은 길만 걸어온 사람도 없지만 옳고 좋은 길을 걸을 때조차도 언제나 자신이 선택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어떤 때는 그 길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이 상황이 그 길을 걷게 해서 걸어가다 보니까 세월이 흘러 지나보고 나니 하나님의 인도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모순과 긍정은 우리가 이렇게 편을 가를 수 있는 방식으로 아주 선명하게 기계적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들이 이해하고 형언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 속에서 작용하면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만듭니다.
어떤 부인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굉장히 독실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새벽기도도 나오고 열심히 교회생활을 하기에 당신은 어디서 온 누구입니까 했더니 나는 전혀 신앙과는 상관없고 시집은 유교집안이고 친정은 불교집안이었는데 예수를 믿게 되었노라고 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놀라운 결심을 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얼마나 이 유교 집안에 제사가 많은지 며느리인 자기가 등골이 빠지겠더랍니다. 이것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피할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봤더니 제사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종교가 기독교였습니다. 그래서 내가 만약에 기독교에 귀의해서 그 신앙과 신념 때문에 제사를 안지내겠다고 한다면 내가 가정을 파탄 나게 하지 않으면서도 명분이 서겠구나 해서 교회에 나왔고, 교회에 와서 헌금을 해라, 저녁때 나와라, 오후에 나와라, 주일예배에 나와라, 그런 것이 힘들 때마다 자기가 일 년에 수도 없이 제사를 지내면서 얼마나 힘들고 동서들과 마음이 상했는지를 생각하며 그래도 교회에 나오는 것이 그것보다는 덜 힘들다고 생각하며 이겼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가 그 여자를 선교했습니다. 결국은 그 사람이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나님이 정말 전도한 사람 없이 자기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렇게 예수 믿게 만들었다는 간증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방법은 다양한 것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들은 뭔가 자기의 가는 길에 어려움이 생기고 갈등이 생기면 마음이 상하고 원망과 독설을 퍼붓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지혜 있는 사람들은 내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어디론가 나를 데려가신다, 가끔 두렵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러나 믿음으로 그 길을 걸어가면 내가 미처 몰랐던 하나님의 뜻도 내게 보여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성숙한 삶입니다.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라는 사실입니다. 자기의 언약백성들이 때로는 오류에 빠지거나 혹은 판단에 혼란을 겪어도 결국 마지막에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래서 그 주님의 뜻을 따르면서 살도록 우리를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믿음을 우리가 가지고 살면서 우리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도 나의 인생을 올바르게 하는데 하나님이 사용하시고 때로는 힘들어 보이는 갈등과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의 찬란한 빛을 우리에게 비춰주셔서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들이 굳게 신뢰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기 계셔서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시고 우리고 변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변하지만 주님은 항상 미쁘시고 신실하셔서 우리를 변함없이 당신의 뜻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올 한해도 주님의 인도를 받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