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을 보시고 은혜주시는 하나님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행 10:45-46)
이 문맥은 바로 최초의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부어지는 놀라운 집회입니다. 고넬료의 집안에서 이루어지는 부흥회였습니다. 만은 그러나 이 부흥회는 아주 선교적으로 볼 때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그런 사건이었습니다. 고넬료 집안에 있었던 사건을 오늘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베드로와 고넬료가 만나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성령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오는데 이것이 바로 2장에서 오순절 때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때에 내렸던 것과 방불한 그러한 성령 주심이 있었다. 이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제 그 이야기를 오늘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여기서 우리가 첫째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외모로 사람을 취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서 집회를 여시고 외모를 보시고 그 하나님의 은혜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넬료를 비롯한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있어 소외된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며 살기를 원했고 또 그렇게 산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유대인들에게 놀라운 성령 부어주심과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고 아브라함 후손이기 때문에 이런 놀라운 축복을 받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베드로와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성령 부어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하필이면 여기서 할례 받은 신자라고 표현을 했겠습니까? 유대인들이 이렇게 표현한 이야기는 이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안에서 설교할 때까지 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유대주의와 율법의 선입견들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은혜를 허락하실 때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고 그리고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일행들이 함께 따라와서 그리고 말씀을 전하게 되었을 때 그 일은 먼저 고넬료가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정중하게 당신을 초빙한다고 정중하게 말하는 것으로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성령님께서 베드로에게도 그 사람들이 너희에게 올 텐데 너는 아무소리 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쫓아가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쫓아갔고 일행들도 같이 쫓아갔습니다. 그렇게 일행들이 베드로와 함께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 때 그들은 마음속으로 얼마나 우월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겠어요. 아 뭐 이방인들이 은혜를 받겠다고 그러면서 들어갔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들어가자마자 고넬료와 그 집 사람들은 나와서 엎드려서 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광경에서 그들은 베드로와 일행이 된 것뿐만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사실자체에 대해서 얼마나 뻐기는 마음이 생기겠습니다. 복음을 먼저 받았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높이시는구나!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베드로는 설교했고 그 고넬료의 식구들은 베드로를 통해 증거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이 내리시는데 기분 나쁘게 그래도 정도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든지 아니면 몇 사람 비기고 지나가던지 그래야 되는 데 동일하게 오순절 때에 받은 그러한 성령의 은혜를 이방인들에게도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자기들도 받고 거기 모여 있는 이방인들도 함께 받고 그러면서 교회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과 모든 할례나 무할례나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 한 성령 안에서 한 교회가 되어 질 것을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꺼번에 묶어놓고 동시에 체험하도록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그 사건이 충격적 이였겠는가? 한번 보십시오. 함께 간 유대인들에게 그 이방인들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사람들 자기들 앞에 엎드려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절을 할 정도의 마음을 가진 그런 사람들이었지만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이 은혜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집회에 임하는 여러분들의 중심은 어떠십니까? ‘열린 교회는 눈만 뜨면 열리는 게 집회니까 뭐 요번에 못 먹으면 두 달 있다 1월 달에 집회 하는데’ 혹시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집회야 뭐 별건가 사람도 그 사람 말도 뭐 똑같은 거 똑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 한 번 더 드리는 거지.’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실 때 중심을 보시면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실 때에는 때로는 예기치 못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덜렁덜렁 쫓아왔다가 확 말씀을 받고 변화되는 사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아주 특이한 경우이고 대부분은 하나님께로 은혜를 받을 사람과 못 받을 사람들이 이미 집회하기 전에 한주 전에 한 달 전에 마음을 준비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앞에 그 시간을 깊이 기다리고 사모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그 중심을 보면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착실한 사람에게만 은혜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불량한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십니다. 의인에게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로 물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주십니다. 승리하고 잘 사는 자녀들에게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실패하고 패배한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주십니다. 깨뜨려진 사람들에게도 은혜를 주십니다. 무엇을 보시고 그에 살아가는 겉모습이라 아니라 진정한 그의 속사랑을 보시고 그 속의 중심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외모로 취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을 깊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저희가 집회를 많이 하기는 했습니다. 금년 같은 경우에는 네 번을 했습니다. 이번까지 하면 그렇게 부흥회 많이 하는 교회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어느 교회에 3년이 되었는데도 부흥회를 못했다는 교회도 있고 6년 만에 처음 한다는 교회도 있고 일 년에 한번 한다는 교회도 있습니다. 말씀드리지만은 부흥회를 하는 목표는 부흥회가 필요 없는 교회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진정으로 성숙한 그런데 그 집회를 하면서 오래 동안 경험한 사실 하나는 무엇이냐면 정말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한번 집회 때나 무엇 때나 신앙생활 해 오셨으니까 집회나 예배나 무엇이든지 기도원에 가던 뭘 하든지 뭔가 여러분들이 깊은 은혜를 받고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크게 새로워지는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에게 인생을 움직이는 집회가 있었습니까? 삶을 뒤바꿔 놓은 집회가 있습니까?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언제였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꼭 우리 교회가 아니더라도 언제 여러분들이 한번 하나님을 만나고 삶이 변화되고 인생의 좌표가 바뀌고 은혜를 깊이 체험한 집회가 언제였습니까?
그때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습니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은 충격이 아닙니다. 언제든지 우리들이 깨닫는 것은 평번한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여러분들이 인생이 하나님 앞에 어느 한 집회에 참석하고 그 하나님을 만나는 걸로 말미암아 변화를 경험하였다고 말하지만 그러나 여러분 그 집회를 통하여 여러분들 변화를 받았다고 하지만은 그러나 그 집회를 통해서 여러분들이 이전에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서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평범한 얘기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처음 내가 이런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서도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구나?’ 복잡하게 돌아가는 일상적인 일들 속에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 그저 한 세상사의 사건이나 일과처럼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들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 깊이 깨닫게 되는 것 그런 일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이 생애가 인생이 바뀌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때에 하나님은 여러분들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기전에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그 놀라운 은혜를 주실 때에 먼저 여러분들이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놀라운 변화의 역사들이 일어났다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지금 마음이 어디로 가 계십니까? 주님이 오늘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실 때 혹시 그 말이 여러분들에게 소망이 됩니까? 아니면 부담이 되고 있습니까?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말씀하실 때 그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그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담이 되고 있습니까? 여러분 말씀에 만성되어 가도 있지 않습니까? 반복되는 예배생활에 만성이 되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두운 날이 되어서 예배드릴 수 없고 그리고 우리들이 진리를 접할 수 없게 될 때 여러분 우리가 흘려버린 수많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을 얼마나 우리들이 후회하겠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간절히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을 잊어버립니다. 다시 말해서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 매달릴수록 죄 밖에 보이는 것이 없고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죄를 주목해서는 하나님 앞에 영적인 회복과 은혜를 경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죄를 바라보는 자가 생명을 얻으리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자가 생명을 얻으리라 말씀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들이 죄를 부인하거나 죄를 모른다고 말하거나 죄는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죄를 주목하면서 우리는 오히려 그 죄 때문에 큰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과 자비를 필요로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 더 큰 하나님의 자비 나보다 의로운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긍휼과는 비교도 안 되는 더 큰 긍휼함 나 보다 더 경건하게 살고 나 보다 훌륭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것보다 더 뛰어나고 탁월한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과 오래 참으시는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나에게 나타나고 내 인생 속에 부어진바 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내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두 눈을 고정시키고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니라 중심을 보시면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누가복음 18장에 나타나 있던 죄 많고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성전에서 소외되었던 세리를 생각합니다.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와 임재의 기대가 있는 성전에 올라갔을 때 직감적으로 이곳은 거룩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거룩한 곳에 서자 그는 즉시 자기가 얼마나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정말 죄인이로다. 도대체 나만큼 죄인인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아 내가 저 옆에 있는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하루에 두 번 금식한 적도 없고 나는 이제껏 까지 인생에 해온 일 아라고는 동족들의 피를 빨아먹고 자기의 민족의 등쳐서 로마에 아부하면 먹고산 것 밖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저 바리새인은 얼마나 좋을까?’ 그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기도를 이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앞에 온통 드러나는 것은 처절할 정도로 무너지는 자신의 모습 죄로 얼룩지고 하나님을 향한 무관심속에 살아왔던 나날들 그것이 그 거룩한 성전에서 발견한 자신의 실존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그 이 세리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절망하면 할수록 오직 한 가지 밖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온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요 나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은혜 베푸는 것은 부당한 일이옵나이다. 그러나 하나님 내가 살아있기 위해서는 그것이 필요하니 그러니 내가 그 부당한 일을 한번 해 주시옵소서 왜냐하면 그것이 생사 간에 나에게 유익이라는 희망이기 때문이옵나이다.” 감히 그 당시에는 손을 들고 하늘 우러러 기도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기도의 습관이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우러러 볼 면목이 없었습니다. ‘벼룩이도 낯이 있지 어떻게 내가 이렇게 살고 하나님이 계신 거룩한 보좌를 눈을 들어 바라 볼 수 있겠는가? 내가 도대체 한 일이라고는 무엇이 있는가?’ 그는 깊이 절망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모습에 깊이 절망하고 죄의식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됩니다. ‘에이. 막 살아 버리든가. 어떡하겠어. 몰라. 막 가자.’ 그러나 여러분 그런다고 해서 우리의 죄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무엇인가하면 자기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죄인임을 느꼈을 때 뭐가 필요합니까? 그것보다 더 큰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가 있으면 해결이 되잖습니까? 내가 지금 빚에 몰리고 있습니다.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뭐만 있으면 됩니다. 빚보다 더 많은 돈이 있으면 난 자유를 얻을 수 있잖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왜 이런 집회를 여시는가? 여러분 내가 말하는데 나는 제법 훌륭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오지 마십시오. 올 필요 없습니다. 가서 그 모습 그대로 잘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이런 집회를 여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목자 잃은 양까지 유리하고 고생하는 주님이 내게 주신 은혜도 알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도 알지만 그러나 그렇게 살아갈 힘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집회를 여서서 당신의 사랑을 보이시고 싶어 하십니다.
“나는 네가 내 자녀답게 살 때에만 내가 너를 자녀로 생각한 것이 아니다. 네가 어디에 있든지 다른 사람들이 네 모습을 보며 무엇이라고 말하든지 심지어는 너의 양심이 너를 향해 무엇이라고 소리치든지 너는 내가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 이를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집회를 여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찌 일 년에 네 번에만 그런 일이 필요하겠습니까? 눈을 들어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의 삶을 들여다보시고 여러분들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새롭게 해 주시기 아니하시면 여러분들은 아무런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교회에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교회를 향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자비와 사랑을 베풀지 아니하시면 인간들이 모여서 무엇을 계획하고 우리가 미래를 향해 무엇을 꿈꾸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우리가 사는 이것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찬양)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나는 알 수 없도다
하나님이 다시 한 번 이런 기회를 통해서 “애야. 네가 사는 것은 너의 힘과 능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인 내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서 아낌없이 베푸는 그 은혜 때문에 네가 사는 것이란다. 이제껏 네가 살아온 것도 주님의 은혜요. 또 장차 네가 살아갈 것도 주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니 생사 간에 주님이 나만을 바로보아야 하는 것이니라.”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를 집회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오셨든지 그 집회는 하나님 앞에 여러분들의 삶을 중간 결산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야 남한테 빚 준 일도 없고 꿔다 쓴 일도 없어 충격 받은 일이 없지만 지각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발표가 일어났습니다. 그게 그 이 유명한 사채동결조치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빚 꿔다 쓴 사람은 일정기간동안 안 갚아도 된다. 돈 꿔준 사람은 일정기간 못 받는다.’ 라고 동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때 기뻐하던 사람은 누구였겠습니까? 빚진 사람은 어느 정도 기뻤을까? 째졌겠지 않습니까? 빚 동냥 받아보셨습니까? 이것은 피를 말리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자살을 하겠습니까? 빚 때문에 추석이 되어서 종업원들에게 돈을 줘야 되는데 수표가 부도가 나 돈이 안 들어오는 것입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자살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얼마나 괴로우면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이 수표를 부도를 내셔 가지고 빚쟁이들이 맨날 몰려오는데 어렸을 때에 정말 그런 꼴 보지 않고 자랄 수 있도록 우리는 좀 잘해야 됩니다. 사람들이 마구 와서 술 퍼 먹고 그 다음에는 그 술병으로 양복장 유리창을 다 때려 부수는 것입니다. 며칠에 한 번씩 와서 초토화 하고 가는 것입니다. 그 때마다 여기저기 유리조각이 티고 피가 나고 그게 지금도 그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어요. 빚 동냥이 옆에서 보는 애들도 그러니 본인은 얼마나 피를 말리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딱 조치가 나왔으니 ‘안 갚아도 된다. 누구든지 달라도 쫓아다닌 놈 잡아넣는다.’ 공표가 나온 것입니다 빚 꿔다 쓴 사람들이 얼마나 아마 신문을 붙들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집회를 여시고 중간 결산 하시는 어떻게 살아왔던지 ‘이번 집회에 나와라.’ 그게 무엇입니까? ‘네가 그렇게 많은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게 뭐냐? 나와라. 나하고 다시 얘기를 하자 죄가 있다면 내가 용서 해줄 것이고 기도의 영이 말랐다면 내가 다시 부어줄 것이며 은혜가 부족하다면 다시 부어 줄 것이고 깨닫지 못했다면 내 삶을 깨닫게 할 것이다. 내 사랑이 모자라면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이번에 의심할 수 없게끔 내가 너에게 보여 주마.’ 기쁩니까, 안 기쁩니까? 그 정도 밖에 안 되십니까? 기쁩니까, 안 기쁩니까? 하나님께서는 집회를 열어놓으시고 그 집회를 통해서 각 사람들에게 그렇게 놀라운 은혜를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너무 주시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그런 마음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가끔가다 보면 그렇게 믿는 게 아닌데 답답해가지고 얘기를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 보면 머리를 열어 빼가지고 넣어주고 싶은데 불가능하잖습니까? 하나님의 마음이 그런 마음입니다.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너희에게 은혜주어서 내 자녀다운 삶 살기를 갈망하는지 너희가 아느냐?’ 주님이 그거 주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 갈망이 너무너무 커서 우리 같은 죄인들 불러 은혜를 베푸시는가? 죄가 너무 많습니다. 여러분들 속에 있는 모든 문제들이 많아서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오기에는 너무나 많은 걸림돌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용기를 가지십시오.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용서하셔서 목사로 삼으시고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하시려고 부르고 계시는데 여러분 바로 우리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살아있는 교재입니다. ‘우리 목사님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 나 같은 죄인도 부르셔서 우리들을 정말로 새롭게 하시고 은혜를 베풀 것이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되는 것입니다. 늘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 앞에 우리들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가 어떻게 이 교회를 이어갈 수 있겠으며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시고 하나님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당신의 참된 사람과 은혜를 보이시니까 우리들이 이 만큼 살아서 주님을 찬송하고 실패했다가는 다시 일어나고 하나님을 떠났다가도 다시 뉘우치면 돌아와서 주님의 은혜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라고 하는 깊은 마음의 결심을 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이 모든 일들을 중심을 보시면서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 지킬 만한 모든 것보다도 여러분의 마음을 지키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지키는데 실패했던 제물은 돈을 벌면 만회할 수 있습니다. 잃어 버렸던 건강도 어떻게 회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친구들도 다시 얻게 되는 기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잃어버린 마음을 곧바로 찾지 아니하면 우리들의 마음이 돌과 같이 굳어져서 이전에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잘 못 살아왔던 그런 삶으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이 집회에는 우리를 이제껏 까지 살아오게 해 주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축제의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만남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부르짖는 비명소리만 있었던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가져다준 은혜와 축복 때문에 웃고 노래하고 먹고 마시는 일들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제것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온 여러분, 이 집회는 나 같이 쓸모없는 죄인을 불러서 주님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도구로 삼으셔서 이제껏 까지 나를 인도하고 지켜 오신 그 하나님의 놀라운 위상을 ‘만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 가시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나를 향해 그동안 베푸신 그 크고 놀라운 은혜를 우리들이 마음껏 하나님 앞에 찬양하면서 다시 한 번 하나님과 맺은 약속을 갱신하고 그리고 우리가 실패가운데 진흙탕을 지나는 것 같은 죄악과 어두운 곳에서 살아왔다할지라도 그 모습 그래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임마누엘 샘에서 씻고 가슴시린 감동을 간직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하나님께서 집회에 우리를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이번 집회에는 오라고 억지고 이야기 안 하겠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위해서 이 집회가 열립니까?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어떻게 살아왔던지 간에 지금 주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보시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이 은혜를 받고 유대인들에게 부어졌던 오순절의 성령강림과 방불함의 놀라운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었던 이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장기간동안 기도와 구제의 마음을 쓰며 하나님 나라의 시련을 고대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 되기를 사모하였으며 그 나라 안에서 맛보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다스림에 목말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였지만 그들의 삶은 이방인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성령을 부어주실지 말지 그들은 확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확실히 아는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비록 외모는 이방인이지만 이스라엘의 할례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이방인인 무할례자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백성이라고 하는 사실을 가슴 깊은 곳에 불과 같이 단 쇠로 지져진 화인과 같이 지져졌던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빌어먹고 살 힘이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숨 쉬고 살아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진노를 받아서 산산조각이 났어야 할 인생들이 용서받고 하나님을 찬송하게끔 이 자리에 주신 것도 주님은혜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일곱 명이 여기서 개척교회 시작해서 여기까지 하나님의 많은 간증을 남기시면서 우리들을 이끌어 오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죽지 않고 살아서 주님의 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오늘 이렇게 설교하는 이 목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처지가 어떠하고 우리가 놓여 있는 삶의 자리가 어떠하고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이 그 무엇이고 우리의 신앙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모든 삶을 그리고 우리를 얽어매고 있은 한계와 속박 속에서 우리를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그 은혜주심에 소망을 고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훌륭한 집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방인들의 그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오순절에 받았던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내렸던 성령의 은혜와 방불한 은혜를 그들에게 내려주셨습니다. 외모도 아니고 그들이 행한 선한 일도 아니고 그들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며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 우리의 영혼은 시들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없이 우리의 인생은 메마른 들판 그리고 뜨거운 태양 볕이 내리쬐는 것 같은 사막 길을 걸아 가는 것 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부지런히 애쓰고 달려가지만 먼지 나는 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신앙생활이 곧 교회생활인 것처럼 이어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오늘도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싶어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예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부요하고 얼마나 광대한 지를 보여주셨고 그리스도 없이 살아가는 하나님을 등진 신앙생활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힘을 주신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너 없이 살 수 있어도 너는 나 없이 살 수 없는 존재다. 목자 잃은 양같이 이리저리 유리하며 울부짖는 맹수의 음성을 들으며 불안한 나날을 지내면서 어쩌다가 풀밭사이에서 발견한 연잎에 풀을 뜯어먹는 삶을 가리켜서 행복한 삶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의 그 놀라운 구원의 공로를 남김없이 다 받으며 그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죄의 동결이 아니라 사채동결은 언젠가 다시 갚았습니다. 죄의 동결이 아니라 용서를 위해서 우리의 판단이 아니라 우리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줄 뿐 아니라 우리에게 그 세계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중심을 보시면서 우리의 집회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동안에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언제든지 당신에게 은혜를 베풀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가난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집회에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 주님은 그 이방인들에게 부어주셨던 동일한 은혜를 오늘 우리들에게도 부어주시기를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일주일 집회를 남겨놓고 여러분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아무리 봐도 현수막 하나 붙은 것 이외에는 아무리 봐도 집회 일주일을 남겨놓은 교회처럼 보이지를 않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새롭게 각오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바쁠 때 바쁜 일을 잠시 멈추십시오. 몸이 아프고 열이 41도까지 올라가니까 스케줄 다 짜져 있는데도 차에 실려서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빈사상태의 영혼을 가지고 계신 여러분 계속 무리하시다가는 정말 크게 입원하십니다.
주여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셔서 고침 받고 새로운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회를 놓치면 병이 깊어지는 것처럼 은혜 주실만한 때에 은혜를 거절하는 것은 죄의 병이 깊이 뿌리박히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와 더불어서 시름하면서도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아야 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 앞에서 떨치고 일어나는 삶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준비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은 시간을 정하고 집회에 은혜받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여러분 가까우신 분들은 교회당에 와서 퇴근시간에 누구 안 만나고 회식 안하면 어디 덧납니까? 와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주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메마른 저의 심령에 단비를 내리시고 식어진 저의 가슴에 불을 지피시며 메마른 저의 눈에 눈물이 흐르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더 간절하신 분은 금식하십시오. 아침을 금식하시면서 밥 먹을 시간 아무 방해 받지 않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십시오. 혹은 점심시간 저녁시간 혹은 일주일 혹은 사흘 혹은 하루 정하고 하나님만을 앙망하기 위해서 육체의 정욕을 끊고 마음의 생각을 다스리기 위해 금식하는 일은 지극히 권장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앞에 주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았고 지금도 그 은혜 없이는 살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사는 것 이외에는 참된 희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누어지고 갈려진 그 마음을 금식으로 다스리십시오.
하나님 언제나 네 앞에 여리고 성처럼 버티고 서 있는 네 삶의 문제들을 어떻게 해 주시옵소서 주여 제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옵니다. 하나님 앞에 호소하면서 매달려보십시오 그러면 금방 있는 여러분 속에 있는 그 마음 제가 압니다. 겉으로는 목회자 말 안 듣고 여러분 마음대로 살아보려고 애쓰지만 그러나 여러분들 속에는 그 착한 마음이 있습니다. 직감적으로 ‘내가 하나님 없이 살수 없다.’ 라고 하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 없이 내 인생이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그 직감 그리고 어떡하든지 지금은 그렇게 못살 때가 많지만 그러나 지금도 내 마음과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그렇게 한 세상을 불꽃처럼 살았던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에 그 진실한 바램들이 여러분들 안에 다 있습니다. 그것을 하님이 제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때 그렇게 기도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나와서 엎드려서 기도해 하나님 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아주 깊은 곳에 있는 그 목메는 바람을 사람을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세상에 사람들은 모르고 인간들은 이해할 수 없어도 주님은 깊은 그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영혼 깊은 곳에서 피 흘리게 울부짖는 그 소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 것만으로는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고 내 소망은 정말 주님을 위해서 한번 어두운 세상에 불꽃처럼 살아서 들을 때에 내 마음을 그렇게 움직이고 그리고 나에게 그렇게 살고 싶어 하는 소원을 불어넣어주었던 그 장본인들과 같은 인생을 살아서 이 무지하고 어두운 땅에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나로 말미암아 구원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들이 드러난다면 고난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을 것 같은 착한 마음 여러분 그것이 숨 쉬고 하나님 앞에 직접 부르짖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의 나태한 마음을 찢고 그리고 교만한 마음들을 째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의지하며 살아보려고 하는 그 하나님 앞에 잘못된 자아에서 비롯된 생각들에 그 모든 것들을 한번 뜯어버리시고 여러분 속에 있는 정말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소원 여러분 속에서 깊이 소리치고 여러분들의 그 영혼이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마음을 열고 나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 앞에 매달리기 위해서 금식하는 일을 전 여러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마음을 고정시키고 하나님 앞에 깊이 매달리면서 하나님이 내게 주셨던 그 마음과 생각대로 살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은 그렇게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입은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는 그 깊은 마음이 다윗을 하나님 앞에 세워주었습니다. 여러분 죄는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단지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 없이는 살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밖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다시시작하시 못하는 사람들은 죄 때문에 다시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외에는 내게 진정한 소망이 없다고 하는 간절한 하나님을 향한 바램 그것의 결핍 때문에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추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미 옛날 나의 죄의 망령들이 살아나서 오늘 사랑하는 나의 뒷덜미를 사로잡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일들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들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죄에게 추격당하기 위해서 보냄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의를 추구하며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전에 모든 잘못에 추격 받으며 살도록 부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변화 받은 우리를 향해 주시는 구원의 가치와 목표를 향하여 살기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세운사람인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은 그 사람의 깊은 중심을 보시며 이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집회 임하기 일주일전에 마음 어떠십니까? 이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우리는 새롭게 하나님 앞에 해야 되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은 영혼들이 변화되고 구원을 몰랐던 영혼들이 구원 받을 뿐 아니라 계속되는 무능력과 무지의 얽어 매이는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위로부터 부어지는 새로운 능력과 은혜 죄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용서 무력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능력 무지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지혜 미움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 냉담함을 능가하는 하나님의 불같은 열정이 우리에게 부어지는 일들이 없이 우리가 정말 하나님 앞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말합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합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이외에는 그 어떤 도움도 모두 의지하지 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리새인과 같은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고 그 기도가 울려 퍼지는 순순한 영혼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우리에게 감출 것이 없습니다. 내 모습이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삶의 모습이 어떠한지 사람 앞에서는 숨길 이유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이것보다 더 큰 긍휼과 은혜가 주님의 손안에 예비 되어 있음을 믿고 하나님 앞에 일주일동안 사모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며 철야하며 생활을 간단하게 하며 육신의 즐거움을 멀리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