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의 꽃, 회심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행 20:21)
녹취자: 백지영
어쩌면 순교의 길이 될지도 모르는 예루살렘 행을 앞두고 그는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유언과 같은 설교를 남겼습니다. 그는 당대의 최고의 지성인이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났습니다. 기독교신학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전체의 약 절반에 해당하는 성경을 저술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시아에서의 사역을 회고한 모습은 우리의 귀를 의심하게 합니다.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이것이 바로 그의 아시아에서의 사역의 회고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고난을 당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만약에 그가 유대인들의 입맛을 맞추어 주었다면, 이방인들이 듣기 좋아하는 내용으로 설교를 하였다면 그는 그렇게 쓰라린 고난을 당한 아픈 기억을 간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자신이 아시아에서 펼쳤던 사역의 근본적인 핵심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를 오늘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전한 것이라.” 이것은 신학적으로 회심, 컨벌젼(conversion)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등졌던 인간이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 심각한 죄인인지를 절실하게 깨닫고 통절히 회개하고 그 비참 속에서 건져주실 유일한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온전히 믿는 것, 이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저는 2월 달에 영국의 키더민스터의 목회자들의 초청을 받아 강의와 말씀을 전하러 갔습니다. 약 120명 정도의 교회 지도자들이 모였고 저는 거기서 ‘부활의 세 번째 지평’이라는 강의를 하였습니다. 저는 의아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나같이 한국에 있는 목회자를 불러 청교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까? 알다시피 키더민스터는 리차드백스터의 교구였습니다. 추방령에 의해서 쫓겨나 강단을 잃게 될 때까지 그는 거기서 충성스럽게 사역을 감당하였고, 부임할 때에 가정예배를 드리는 수가 2, 3가정밖에 안됐는데 임무를 마치고 그 직에서 물러날 때에는 교구 주민 거의가 가정예배를 드렸고 한두 가정 정도만 가정예배를 드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의 유명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죄와 비참에 빠져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자신의 일꾼들을 보내어 이 복음을 선포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매우 슬픕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귀를 막고 목을 뻣뻣하게 하고 강퍅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후일 우리가 탄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여러분이 우리의 설교를 진지하게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우리 하나님께 보고하여야 할 것입니다. 아 그때 우리 눈에서는 눈물이 샘솟듯 할 것입니다.” 이 고백은 17세기 키더민스터에서 목회했던 ‘참 목자상’의 저자인 리차드백스터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을 향해 외친 목회자로서의 탄식어린 눈물입니다.
50년 전에 저는 회심하지 않았지만 주일학교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한국교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때에도 교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제가 가 본 교회의 항상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회개를 외치는 목사님의 아주 절박한 부르짖음 그리고 그 설교를 듣고 난 후에 뜨겁게 회개하며 기도하던 성도들, 이 모습이 적어도 제가 다니던 교회에는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길게 따지면 50년, 짧게 따지면 약 20내지 30년 어간에 조국교회에서 모종의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회심에 대한 강조가 사라진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회심이라고 하는 것은 회개와 믿음으로 이루어집니다. 구원서정으로 본다면 중생이 먼저 있고 그 뒤이어 중생의 결과로서 회심이 나타나게 됩니다. 회심은 구원에 이르는 좁은 의미의 일회적 회심과 이 회심의 경험이 새롭게 반복되는 넓은 의미의 회심이 있습니다. 첫 번째 회심을 통해서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게 되고 존 오웬의 표현에 의하면 하늘의 문이 열리고 천국의 샘이 터지는 경험입니다. 이 회심을 통해서 영광과 은혜, 죄, 거룩함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오웬 뿐 아니라 조나단 에드워즈가 자신의 신학에서도 강조한 바입니다. 기회가 닿으면 조나단 에드워즈의 전집에 있는 '본 어게인'(born again)이라는 제목의 글을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철저하게 이 사람이 중생하고 회심하지 않으면 구원 얻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가지고 목회했습니다. 넓은 의미의 회심은 그러한 회심의 경험이 은혜 안에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 신자의 삶이란 최초의 회심으로 신앙에 입문하고 반복되는 회심으로 이 은혜의 경험을 갱신하면서 하나님께 헌신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회심에 대한 강조가 없는 것은 오늘날 소명감이 흐릿한 학생들이 신학교에 들어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신학과 목회 선교를 펼쳤습니다. 그 중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었습니다. 구약의 다트 엘로임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호세아 선지자에 의하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그의 율법대로 살아가게 하는 총체적인 원동력이었습니다. 그것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호세아 4장에서 “너희가 지식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제사장의 나라가 되지 못하게 하리라.”고 준엄하게 선고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신약으로 넘어오면서 기독론적인 전환을 이룹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중보자가 등장하는데, 그리스도 예수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이 구속의 사건을 보여주심으로 하나님에 이르는 지식에 도달하게끔 만들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란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아뜨리뷰뜨리오’ 속성과 ‘모드소페란디’ 속성의 시행방식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고 그 하나님의 성품이 우리 인류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를 신약에 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다트 엘로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기독론적인 전환을 거쳐서 사도 바울의 신학적인 작업을 통해서 ‘그노시스 크리스투’,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전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을 무엇이 바꾸어 놓았습니까? 다메색으로 가기까지 그는 유대주의의 확신에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그는 이제까지 예수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서 나무에 매달려 죽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신학적인 혼란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면 하나님이 부활시키셨을 리가 없고 하나님이 다시 살리실 사람이면 하나님이 저주하실 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혼란 속에서 잠시 어두움이 지나가자 그는 구약 속에서 그 오랜 세월동안 계시되어온 위대한 신학을 하나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대속의 교리였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었다는 명제도 사실이고 그를 하나남이 살리셨다는 것도 사실이었으니, 이는 그가 죽은 것이 우리 인류의 죄를 위해 자신의 죄가 아닌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저주는 진실한 것이었고, 오히려 그렇게 기꺼이 인류를 위해 하나님의 자녀 될 사람들을 위해 저주를 받고 순종하셨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정을 받아 하나님이 살려 내셨다는 것입니다. 그 신학적인 사실을 개달으면서 캄캄하게 어두운 이 하늘이 찢어지며 찬란한 진리의 빛이 사도 바울의 지성 속에 벼락이 맞는 것처럼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십자가의 한 의미에 붙들려서 일생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자기가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구원의 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는 사실을 굳게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불로 지진 것처럼 그의 마음에 새겨져서 자신의 정체성을 ‘둘로스 크리스투’,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우리말 성경에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번역되고 킹 제임스 버전을 비롯한 많은 책들에 서번트(savant)라고 번역된 것은 전적인 오역입니다. 슬레이브(slave)입니다. 이것은 킹 제임스 버전이 번역될 때에 슬레이브, 노예 제도에 대한 열등감이 그 슬레이브라는 단어를 서번트로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서번트는 신분은 낮아도 출퇴근하는 서번트도 있고 연봉을 받는 서번트도 있었습니다. 노예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짓밟히면서 그냥 비천한 노예로, 소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그리스도의 노예라고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그 동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주인 것을 믿은 그 확실한 신앙 때문에 붙잡혔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누구에게 설교하든지 최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회개하고 그리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된다는 이 진실한 회심의 교리를 눈물로 설교한 적이 언제인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한 10년째 우리 교회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는데 많은 대학원생들이 옵니다. 하루는 숙제를 내주었는데, 너희들이 돌보고 있는 영혼들을 이 주간 여유를 줄 테니까 샅샅이 면담을 하고 몇 명이나 구원을 받았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비슷한 결과였는데 그중에 한 학생은 충격적이었습니다. 4, 5, 6학년 학생을 담당하고 있는 초등부전도사였습니다. 2주에 걸쳐서 아이들을 만나보았고, 못 만난 학생들은 선생님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자기가 돌보고 있는 45명 가운데 목회자의 양심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는 학생 수는 5명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충격을 받은 얼굴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회심의 양상이 비록 다양하지만 뚜렷한 회심의 증거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 정통기독교의 역사의 맥들이 이어져 왔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회심을 경험하며 기독교 신학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이후로 테루트알니아누스나 이런 교부들도 기독교에 대해서 유사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터툴리안은 말하기를 자신은 회개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는 비록 몬타누스주의자로 일생을 마쳤지만 순교하기 위해 안달을 하며 산 사람이었습니다. 이후로 기독교 역사뿐만 아니라 서양사상으로 나아가는 위대한 수문을 열었던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마니교교도였습니다. 그러다 그는 마니교의 철학과 플라톤 그리고 이 복음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다가 어느 순간에 회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그 유명한 어거스틴의 회심사건이었습니다. 그는 알리삐우스 옆을 비껴가서 슬픔이 가득 찰 때에 좋은 친구는 외로움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시작했고, 고백록에서의 그의 고백에 의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가 내 마음에서 올려졌고 내 눈에서는 회개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두운 중세시대에서 정통신앙을 회복시켰던 마르틴 루터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에르프르트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수도사생활을 하였지만 구원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스타우피치같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러나 결정적인 체험은 피텐베르그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공부할 때 그때에 그가 거기서 복음의 영광을 체험합니다. 그게 유명한 탑의 경험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언어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드디어 칠흑 같은 어둠이 걷히고 복음의 찬란한 천국의 빛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매였습니다. 보름스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을 때 "주여 내가 여기 서 있나이다. 달리는 어쩔 수 없나이다."라고 "히얼 아이 스탠드"(Here I stand.) 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그 중심이 무엇이 있었겠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그리고 그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 이외에 그를 사로잡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뒤를 이어 개혁주의의 초석을 놓았던 탁월한 제네바의 목회자인 칼빈은 처음에는 이런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 반감을 가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극도로 자신의 간증을 절제하고 있는 이 사람 조차도 시편 주석에서 자신에게 임하였던 복음의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그 경험 이후로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에 붙잡힌 사람이 되었습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원래 알미니우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숲을 산책하다가 어떤 영광을 경험합니다. 그리고는 엎드려 강물과 같은 눈물을 쏟으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발견하고 온 땅과 만물 위에 자기를 이 비참에서 구원할 분이 그리스도 예수밖에 없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급격하게 칼빈주의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 경험의 핵심 역시 디모데전서 1장 17절에 나오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경험이었습니다. 존 오웬은 옥스퍼드학생시절 위대한 설교자 캘러미의 설교를 듣기 위해 그의 예배당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 위대한 설교자는 출타 중이었고 이름도 알 수 없는 무명의 설교자가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때 그는 너희의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기 시작했고 젊고 똑똑한 존 오웬은 거기서 주님을 깊이 만나고 일평생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처하는 개혁파 정통주의 신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얼마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감화가 탁월했는지 그의 전집 중 1권은 기독론 안에 창조론과 신론까지 집어넣을 정도로 그렇게 그리스도 예수의 인격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의미에 붙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평생 자기를 그리스도 복음의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 우리와 신학적인 입장이 다른 칼 바르트조차도 당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던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인간의 감정과 경험에 있다고 주장했던 슐라이마허의 견해를 거부하고 기독교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돌이킴이고 그 돌이킴의 주체가 곧 그리스도 예수라고 선언함으로 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것 이외에는 아무 희망이 없다는 복음에 대한 진정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경험이 강조되지 않는 속에서 교회를 다니고 사역을 하고 이 사역을 해도 이것의 가장 중심점이 무엇인가 알지 못합니다. 사도 바울이 지금 환란과 핍박이 기다린다는 성령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했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한 번의 설교로 목숨과 함께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던 그 내적인 필연성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증거하기위해 그는 한 번의 설교를 한 번의 목숨과 바꾸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이 변화무쌍한 시대, 상대주의가 보편화 되어 있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지 목회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미래에 대해서 전망을 해 봅니다. 기독교 인구는 20년 안에 절반 정도로 줄어들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 말입니다. 그리고 아마 현대인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연구하고 변신하는 교회들은 필요에 의해서 살아남을 것입니다. 그런 대표적인 성공의 사례를 조엘 오스틴 같은 설교자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또 살아남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는 바로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해서 궁극적인 답을 주는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는 곳입니다.
제가 15살 때 정확하게 말하면 14살 2개월이 되던 날 교회를 가고 있었습니다. 주일이었습니다. 교회를 가다가 논둑에 엎드려져 풀 섶에 얼굴을 묻고 그 추운 겨울에 통곡을 하면서 울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물론 가난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난 때문에 울지 않았습니다. 14년 2개월 된 어린 아이가 통곡을 하면서 풀을 움켜쥐고 펑펑 울었던 이유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이 세상은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기어 다닐 때부터 교회 다녔지만 교회는 이런 답을 내게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한참 기운이 빠질 정도로 통곡을 하고 난 후 주먹으로 두 눈물을 씻으며 소년은 일어섰고 결심했습니다. 일생을 무신론자로 살기로 말입니다.
바로 이렇게 절박하게 인생에 걸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지혜가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들려주는 교회는 20년 후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교회가 수만 명이 모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교회가 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확언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분명히 거기에는 사람이 모일 것이고 그리고 진지한 태도로 인간과 자기, 그리고 하나님과 세계에 관한 총체적인 지혜의 증언을 듣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설교를 했더니 교회에서 집사님, 권사님이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이야 어린나이에도 워낙 영특하셨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우리 애는 핸드폰 가지고 게임만 합니다.” 그래서 바로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사는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 음란 문화에 빠진 아이들, 그것이 바로 자신이 고민은 되지만 고민의 요체가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데서 오는 방향 없음이 아이들을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만들고, 그래서 그런 오락과 게임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제가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설교자의 직무는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해서 그 아이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이고 그리고 왜 이 세계는 존재하고 그리고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자각을 갖게 만들어주어서 자신이 자기의 인생의 진정한 주체가 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간의 참된 주체성의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구원받아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말씀에 의해 감화를 받기 전까지 우리가 살았던 인생은 남의 인생이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사상가 G. K. 체스터턴이 자기의 책 속에서 말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것은 하나님만 대답하실 수 있는 문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의하지 않고는 이 세상에 나를 비롯한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설교를 마치면서 외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네 가지입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십시오. 깊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다 옛날에 지난 이야기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신대원 다닐 때 방학 끝나면 무조건 일주일 금식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는 게 아니라 한 학기 동안 묶은 때를 닦아내는 것입니다. 조용히 산속에 가서 일주일 금식하면서 여름에는 여름성경학교를 위해 겨울에는 한 해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 앞에 닦아내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그냥 돌려보내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복음,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자기의 살을 찢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깊이 만나십시오. 저는 소명 받을 때도 주님을 만났지만 30대 중반에 주님을 깊이 만나면서 신학의 모든 분과들이 어떻게 통합되는 지를 경험했고, 40대 후반 50대를 바로 앞두고 있을 때 주님을 깊이 만나고 어느 날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이 어떻게 거미줄처럼 연결이 되며 우리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지를 한눈에 배웠습니다. 모든 핵심은 예수를 만나는 데 있습니다. 깊이 주님을 만나십시오. 두 번째 죽도록 공부하심시오. 공부하지 않는 것은 소명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진리에 관한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로 공부해야 할 것이냐? 신학대학원 다니던 시절에 생명에 심각한 위협을 느낄 지경까지 공부하십시오. 세 번째, 열렬히 기도하십시오. 마지막 네 번째, 신실하십시오. 정의가 아니면 하지 마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대쪽 같은 선비의 정신을 기르라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