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회심집회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 3:1-5).
오늘 성경에 보면 관원인 한 바리새인인 니고데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밤중에 찾아와서 ‘당신은 정말 하나님께서 오신 선생님이십니다. 당신이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찬양했더니 예수님은 그이야기에는 전혀 관심도 없이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네가 아무리 나를 칭찬하고 찬송해도 그런다고 네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네가 정말 구원받기 위해서는 거듭나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의 영혼은 처음부터 죽은 상태로 태어나요. 증거가 있는데 선한 일은 교육을 필요로 하지만 악한 일은 교육할 필요가 없어요. 이것을 보더라도 인간은 악하게 태어난 죽은 영혼의 상태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그 영혼을 하나님을 향하여 새롭게 살리시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시는 이 놀라운 거듭남이 없으면 누구든지 죽은 영혼으로 태어나서 산몸으로 살다가 죽는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을 칭찬하는 이 바리새인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너의 영혼의 거듭남의 문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거듭난 세계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데 이는 마치 병아리가 부화하는 것과 같아요. 목사님이 어렸을 때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에 동네에 부화장이 있었어요. 달걀을 따뜻한 곳에 쭉 깔아놓고 온도를 맞춰주면 한 20일정도 지나면 병아리들이 그 속에서 생겨요. 그리고 이제 그것들이 나올 때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제일 먼저 계란에서 소리가 들려요. 톡 톡 톡 하는 소리가 들려요. 속에서 다 만들어진 병아리가 주둥이로 껍질을 때리는 것이에요. 그러다가 껍질이 깨져요. 그러면 물기에 젖은 병아리가 쑥하고 나와요. 그런데 모든 병아리의 공통점이 있는데 나온 다음에 한참동안 제자리에 서서 두리번거려요. 사실 알속에 들어있을 때에도 의식은 다 있잖아요. 그런데 그 알속에 있었을 때의 의식이라는 것은 하얀 껍질밖에는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깨고 튀어나오니까 알속에서는 도저히 상상도 못했던 모든 것이 다 처음 보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마치 무슨 커다란 충격을 받은 사람이 멍해지는 것처럼 눈을 껌뻑 껌뻑여요. 그러다가 한걸음씩, 한걸음씩 옮기다가 무엇을 밟으면 깜짝 놀라는 것이에요.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요.
그러니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알속에 들어있는 병아리에게 바깥에 있는 세상을 설명해줄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 알속에 있는 병아리가 밖에 있는 세계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을 한들 그것을 알아들을 수가 있겠느냐는 것이에요. 그것이 바로 영혼의 거듭남은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고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런 영혼의 거듭남이 우리의 의식의 세계 속에서 느껴지는데 그 느껴지는 게 회심으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러면 그 회심이라는 것은 뭐냐 하면 한편으로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자기의 죄에 대해서 진심으로 잘못했다고 회개하는 것과 그렇게 잘못한 자기를 구원해주실 분이 오직 예수님 한분이라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믿는 것이에요. 그래서 죄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이에요. 이 처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가리켜서 구원에 이르는 회심이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여러분처럼 모두 다 인간으로 성장한 사람들은 누구든지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그는 결코 거듭났다고 말할 수 없고 이렇게 회개하고 믿어서 거듭나지 않는다면 누구도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에요.
그러면 회심을 했을 때 회심한 후에 참된 신자가 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것보다는 만약에 우리가 참으로 구원받지 못했다면 어떤 상태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자신의 구원의 여부를 판단하는 쉬운 길이 될 것이에요. 우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참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교회에 출석하는 것,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난 것, 혹은 마음으로 내가 기독교를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것, 이런 것은 구원의 증거일수도 없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 될 수도 없는 것이에요. 물론 교회를 다니면서 아직 회심을 안했어도 출석하고 있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유익을 누려요. 우선 섭리적으로 여러분들이 믿는 사람들이 함께 있는 환경 속에 있게 된 것이에요. 그러면 비록 자기의 마음속에 참된 신앙이 없어도 함께 신앙을 인정하는 사람들 속에 있으니까 자신도 모르니까 신앙에 대해서 우호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유익을 누리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그런 마음이 끝까지 발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아는 것이죠. 또 하나는 여러분들이 이렇게 비록 거듭나지 않았어도 교회를 다니고 있으면 목회적인 유익을 누려요. 여러분들이 불신자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면 주일날 교회에 안 나와도 왜 교회에 안 나가느냐고 꾸짖을 엄마, 아빠도 없고 귀찮게 전화해서 왜 교회에 안 나왔느냐고 물어볼 사람도 심방을 올 사람도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들이 이렇게 교회에 있으니까 이러한 목회적인 유익을 누리게 되는 것이죠. 그러나 이러한 모든 유익들은 여러분들이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해서 신앙을 가지려고 할 때에는 여러분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는 환경이지만 여러분들이 예수를 제대로 믿지 않으려고 하면 여러분들에게는 괴로운 환경이고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이렇게 누린 유익들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죠.
목사님이 청년으로 교회에 있던 시대의 이야기인데 2층에 교회가 있었어요. 그래서 청년들이 여러분만한 학생들이 전도를 아주 열심히 했어요. 특히 토요일, 주일에는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애들을 전도하고 어른도 전도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인데 그 교회 바로 아래 1층에 쌀가게가 있었어요. 예배를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쌀가게 주인이 올라왔어요. 막 야단을 치는 것이에요. 그런 일이 종종 있거든요. 애들이 너무 시끄럽게 떠든다든지 말썽을 부린다든지 그러면 다른데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교회의 욕을 하거든요. 그러더니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막 화를 내더니 나중에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게 좋아?’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이 그랬거든요. ‘예.’ 그랬더니 ‘그러면 인간들이 그러면 되겠어? 니들이 여기 이 교회에 온지가 2년이 넘었는데 그렇게 예수를 믿는 것이 좋으면 나한테 와서 믿어보라고 그래야지! 나한테는 한 번도 와보란 말을 안 하고 말이지…….’ 나쁜 놈들이라고 소리를 막질렀어요. 그때서야 우리가 마음으로 깊이 후회를 하고 그리고 그 다음날 내려가서 복음을 전했더니 이 아저씨가 너무 기뻐하면서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뭐에요? 그런 사람들은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목회적인 유익을 못 누리거나 덜 누린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들은 매일 매일 이런 복음의 말씀을 듣잖아요? 그러면 그것이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경우에는 커다란 도움이 되지만 그런 가르침을 받고도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면 그러면 그것은 여러분들에게 곧바로 책임을 묻는 것이에요. ‘그렇게 많이 복음을 들려주고 예수를 믿게 만들어 주었는데 너희는 왜 참된 신앙을 갖지 아니하였느냐?’ 이렇게 주님이 물으시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책임을 질 수 있겠어요?
그래서 나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여러분만한 나이 때에 목사님은 인생에 대해서 괴로울 정도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작년에도 내가 간증을 했지만 너무 괴로웠어요.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가장 괴로운 것이 오늘 하루를 인간으로서 살아가야한다는 것, 사람으로 살아가야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길가에 있는 풀포기들이 부러웠고 벌레들이 부러웠어요. 내가 그냥 저런 벌레라면, 돌멩이라면 말 못하는 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이제 여러분들은 성인이 다 되었어요. 그러면 여러분들이 왜 이렇게 교회에 계속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서 명백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들이 기독교의 구원 교리를 생각하여야할 이유에요.
그러면 오늘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의 참 모습을 비취는 거울을 여러분들에게 제공하겠어요. 이 거울을 보면서 여러분들이 과연 나는 회심하고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니면 겉모습으로는 교회에 나오고 있지만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적이 없는 사실상의 불신자인가? 지금 죽으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진노아래 있는 자식인가? 하는 것을 비춰보기 바랍니다. 구원의 문제는 영혼과 일차적으로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버선목을 보여주듯이 그렇게 보여줄 수는 없어요. 그러나 감기에 걸리면 열이 나고 기침이 나고 춥고 뼈마디가 쑤시는 증상이 나타남으로써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 몸에 감기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처럼 다음의 징후, 회심치 않은 자의 징후를 보면서 여러분들은 자신이 여기에 해당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회심치 않은 자의 본성의 성향은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신앙을 가진 회심자의 그것과 현저히 달라요. 우선 제일 먼저 가치판단이 자기중심적이에요. 그래서 아직 진실로 자기의 죄를 십자가 앞에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주님이시라는 신앙을 갖지 못했을 때에 그때에 본성의 뚜렷한 특징이 가치를 판단함에 있어서 자기중심적이라는 뜻이에요. 그러면 그것은 무슨 뜻이냐 하면 자기가 그 모든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자기가 좋은 사람들은 선한 사람이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괜찮은 것이고,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나쁜 것이고, 자기에게 좋지 않은 사람들은 악한 사람이라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것이에요. 우리들은 죄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에 흔히 돈을 훔친다거나 다른 사람을 죽인다거나 욕을 한다거나 혹은 성적인 죄를 범한다는 것들을 우리들이 죄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은 죄에요. 그래서 나라에서도 그런 잘못들을 법으로 다스리고 그를 징벌해서 같은 죄를 저질러서 사회를 어지럽히지 못하게 만들어요. 그러나 그것도 근본적인 것은 아니에요. 근본적인 것은 뭐냐 하면 자기를 이 온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최고의 가치가 자기가 행복하게 되는 것이고 자기에게 좋은 것을 하면서 사는 이것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에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다른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이 나쁘다고 믿지만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고 고통을 주고 불행하게 만들어요. 이유는 무엇 때문이냐 하면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죄에요. 그래서 아직 교회에 다녀도 회심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가치 판단이 자기중심적이에요. 최종적인 권위는 자기가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을 어떻게 판단하실까 그런 것을 그렇게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회심치 않은 사람의 첫 번째 뚜렷한 증거에요.
두 번째는 뭐냐 하면 신령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신령한 것의 반대는 감각적인 것이죠. 크기와 모양이 있고 색깔과 빛깔 형체 등등이 있어서 우리의 모든 몸의 감각으로 정보들이 들어와요. 그래서 못생긴 사람을 쳐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우울해도 예쁜 사람을 쳐다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지요? 어느 여학생이 여러분들에게 같이 사귀자는 쪽지를 보냈는데 온 전교생이 혐오하는 용모의 자매가 보냈다면 기쁘겠어요? 아마 그날 하루 종일 우울할 것이에요. 그런데 막 석고를 깎아놓은 것 같이 예쁜 자매가 그렇게 편지를 보냈으면 얼마가 가슴이 뛰겠어요. 그렇죠? 그러면 눈으로 들어오는 모든 기준에 의해서 좋고 아름답고 이런 모든 감각적인 것들은 아주 예민해요. 그래서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이에요. 친구가 좋은 핸드폰을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또 가지고 싶잖아요. 내가 얼마 전에 심방을 갔더니 심방한 형제가 교회를 다니다가 최근에 은혜를 받고 회심을 했어요. 그런데 나를 붙들더니 핸드폰가게를 차렸어요. ‘아이 폰을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공짜거든요. 구원이외에는 공짜를 싫어해요. 요즘에는 나도 좀 타락했는데 옛날에는 주유소에 가서 사은품을 주면 하나도 안 받았어요. ‘기름이나 잘 넣어라.’ 그랬어요. 그래도 기름이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휴지도 달라고 그러고 생수도 달라고 그러는데……. 아무튼 ‘나는 공짜는 싫다. 필요하면 내가 돈을 내고 하마. 그리고 나는 워낙 사용료를 많이 내기 때문에 정액제로 걸어놓으면 그냥 하나 준다고 그러더라.’ 그러니까 굉장히 우울해하는 표정이에요. 그래서 ‘알았어. 그러면 내가 그대한테 할게.’ 그랬더니 아이 폰 하나를 32기가짜리를 개통해주었어요. 그것을 가졌는데 이것이 애물단지에요. 너무 복잡해요. 그래서 쓰지를 못하고 들고 다니니까 우리 아들이 보더니 ‘아빠 그것 쓰기 불편하세요?’ ‘아유 너무 정신이 없고 다른 것 공부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이것까지 배우려고 하니까 머리가 아프다.’ 그러니까 ‘아이 그러면 저를 주시면 돼요.’ 그게 다 뭐냐 하면 견물생심이에요. 자꾸 욕심이 생겨나는 거예요. 그런 쪽으로는 욕심이 막 자기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생겨나는 것이에요. 남이 좋은 핸드폰을 가지면 갖고 싶고 그 다음에 남이 예쁜 여자 친구를 사귀면 자기는 더 예쁜 여자를 사귀고 싶고 그 다음에 남이 새로운 가방이라도 사면 자기는 더 좋은 것을 사고 싶고 막 이렇게 욕망이 발전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공통점이 뭐냐 하면 모두 이 세상에 있는 것,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이에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그런 간절한 사랑은 잘 안 나오는 것이에요.
그런데 거듭나지 않았어도 그렇게 세속적이고 물질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있어요? 없어요? 나는 여러분만 했을 때에 집이 굉장히 가난했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고등학교 학생부에 보면 결석을 무지 많이 한 것으로 되어 있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학교는 갔는데 그땐 등록금을 안내면 출석을 안 불러줬어요. 정말 치사했죠? 그래서 막 50일 60일씩 결석한 것으로 되어있어요. 다 거짓말이에요. 그렇게 학교를 안간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때도 나는 돈에 대해서 관심이 없었어요. 여러분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예지를 갖고 싶었어요. 예지……. 그래서 이 세상의 불행과 고통 말할 수 없는 행복한 일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길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정말 갖고 싶었어요. 그때가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때였어요. 그리고 그런 간절한 바람 때문에 사실은 많은 책을 읽은 것이에요. 여러분들을 목사님이 정말 시간이 있고 여러분들이 원하면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이렇게 독서토론으로 만나면 참 좋겠어요. 이렇게 앉아서 이것만(컴퓨터) 하는데 그것 집어치워야 해요. 그게 사람을 다 바보 만드는 것이에요. 책을 읽고 사색을 해야 해요. 그런 것에 대한 예지를 그래서 헤르만 헤세의 지성과 사랑을 거의 외우다시피 읽었어요. 그렇게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을 거듭나지 못했는데도 가지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것은 지적인 것이지 신령한 것은 아니에요. 신령한 것은 뭐냐 하면 하늘나라에 속한 물질적인 것이 아닌 영적인 것이에요. 그러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신령한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 이유는 뭐냐 하면 신령한 것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본 적이 없어요. 신령한 것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본적이 없어요.
(찬양)
주님을 송축하리. 내 입술 주를 찬양 나의 눈 보기 원하네! 주님 얼굴 주님의 음성 듣기를 진심으로 원합니다. 주여…….
그래서 같은 고등학생들인데도 어느 학생은 이 찬송을 가슴에 두 손을 포개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면서 이 찬송을 부르는가하면 어떤 학생들은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비웃는 것이에요. 그 차이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사람은 회심하고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영혼을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신령한 세계의 아름다움을 본 것이에요. 목사님이 여러분만할 때 ‘1953년 3월 4일생’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지요? 어느 맹인 가수가 이렇게 노래해요. ‘내 눈에 보이던 아름다운 세상 잊을 수가 없어. 가엾은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 그러니까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누구냐 하면 낳을 때부터 소경된 사람들은 덜 고통스러워요. 그런데 또렷하게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소경으로 살아가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것이에요.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마음의 눈이 있어서 보게 되는 것이에요. 그 아름다움을 알기 때문에 계속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이에요. 그것이 뭐냐 하면 하나님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쁨이에요. ‘하나님이 그런 분이셨구나! 아! 하나님이 그렇게 놀라우신 분이었구나! 나 같은 인간이 하나님께 무슨 관심거리나 되나? 하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주님을 알기 전부터 내가 그분을 믿기 전부터 주님은 나를 알고 계셨고 사랑하셨구나! 아 주님이 그런 성품을 가지신 분이셨구나!’ 그렇게 깨닫게 될 때에 그 확실성은 여기에 있는 컵 뚜껑을 손에 들고 있는 것보다도 더 확실하게 내 지식이 되는 것이에요. 그런 신령한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이 그의 마음을 끌기 때문에 그래서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데 이게 회심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것이에요.
여러분만한 청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절반으로 딱 쪼개지더라고요. 설교를 했는데 절반은 의자에서 내려와서 막 엉엉 울면서 회개를 해요. 나머지는 싸늘하게 앉아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에요. 그런데 한 덩어리가 되어서 몰려다니던 형제자매들이 있었어요. 회심하지 않은 아이들의 대표적인 본보기에요. 주일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교회에서 뭉쳐요. 그래서 새벽에 깜깜할 때에 북악산을 올라가는 것이에요. 새벽에 거기에 올라가서 라면을 끊여먹고 내려와요. 왜 집에 있는 라면을 두고 새벽에 그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끊여먹고 오는지 나는 아직까지도 불가사의해요. 그러고 내려와서 예배는 잠깐 드리고 온통 가서 농구하고 축구하고 하루 종일 주일날은 노는 날이에요. 신앙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그 중에서 제일 중심적으로 사고를 치던 우두머리가 이상하게 공부한다고 절에 들어갔어요. 그러더니 일 년 후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자기가 왕초노릇하고 데리고 놀던 애들이 전부 다 예수님을 만난 것이에요. 가서 옛날처럼 바람을 잡으려고 하니까 다 친구들이 자기를 동물 보듯이 보는 것이에요. 그때에 무슨 느낌이었느냐고 그랬더니 ‘무서웠어요.’ 왜 무서울까요? ‘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그것이에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가장 구원받지 못한 형제, 자매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가 무엇이냐 하면 참으로 여러분들이 신앙을 갖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에요. 그러면 회개할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에요.
세 번째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없어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왜 이런 것이 있잖아요? 왜 이렇게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기도도 안하고 제멋대로 살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 이런 마음이 들잖아요. ‘예수님이라면 지금 나의 상황에서 나처럼 과연 행동하셨을까?’ 이런 마음이 들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자신에게 느껴져서 자기는 하나님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내안에서 생각하시고 걱정하시고 마음아파하시는 것이 느껴질 때에 회개가 나오는 것이에요. 그런데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없어요. 더욱이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에는 의지를 하나님께 굴복시키지 않아요. 그래서 회심한 사람들의 특징은 자기 꺾임이에요. 내가 너무나 이렇게 하고 싶은데 오늘 설교를 들었더니 혹은 성경을 읽었더니 혹은 큐티를 했더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이 아니에요. 그때 나는 너무 힘들어도 내 의지를 꺾고 ‘나는 너무 하고 싶지만 하나님이 그러지 말라고 하시니까 내가 이것을 접겠습니다.’ 하는 것이 회심한 사람들은 된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회심하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로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서 꺾지를 않아요. 결국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말을 할 때는 기독교인이라고 고백을 하고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고 또 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왠지 일주일 내내 마음의 부담이 있고 찝찝하지만 그러나 실제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은 안중에 두지 않고 생활해요. 그러나 회심하고 거듭난 사람은 너무 기쁜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요.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셨구나.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시는구나.’ 또 믿음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에 회심한 사람들은 너무 기뻐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도록 도와 주셨구나!’ 불행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에게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는데 이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을 거야!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징계하시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잘못한 것이 없어도 이런 징계를 당하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통해서 나를 더 좋게 해주시려고 나를 인도하시려고 이런 어려움들을 주시는 것일 거야!’ 이렇게 자기 삶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하나님과 연관시켜서 해석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사람을 신앙적인 삶으로 이끄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 자신은 이 거울 앞에서 회심한 신자입니까? 아니면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그분이 죽은 그 십자가의 고난이 나의 죄 때문에 당하신 하나님의 큰 형벌이라는 사실이 여러분들에게 믿어집니까? 아니면 믿어지지 않습니까?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항해요. 대항하는 방법이 많이 있는데 정면으로 맞장을 뜨듯이 ‘하나님 네가 뭐야?’ 하고 이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합당하게 대해드리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쳐주어도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고 무시해버리는 것이에요.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으로 하나님의 생각을 덮어버리는 것이에요. 이게 반항하는 것이에요. 때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이나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너 지금 그렇게 하면 안 돼! 너 지금 잘못된 일을 하는 거야!’ 라고 가르쳐주어도 ‘뭐 어때 내 마음이지!’ 이런 태도로 노골적으로 대항하는 것이에요.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대항하는 동안에 마음은 점점 딱딱해지고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마음의 자세들도 흐트러지고 사라지는 것이에요.
그러면 회심치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대항하고 덤벼드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의 생각이 자기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것이에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지 죄인들의 생각이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나는 여러분들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욕망이 많이 있을 텐데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면 불행하게 될까요? 행복하게 될까요? 반드시 불행하게 되지요. 그랬더니 어떤 사람이 마지막에 행복하게 해달라고 그러면 안 됩니까? 그것 말고……. 불행하게 되지요. 그러면 똑같이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생각은 A라는 방향으로 가는데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혹은 우러러보는 선배나 이런 사람들이 그 사람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길을 보여주면서 그리로 가라고 이끄는 것이에요. 그래서 때로는 그리로 가지 않을 때에는 야단을 치고 꾸지람을 하고 심하게 안 되면 매를 때려서라도 그길로 가게 하는 것이에요.
몇 년 전에 우리교회 집사님들이 모두 모여서 장로님과 몇 분이 모여서 애들 공부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얘기했어요. 그중에 어떤 분이 그랬어요. ‘자식들이 죽어라하고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하지요?’ 물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끝까지 안하려면 할 수 없습니다.’ 그중의 어느 한분이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안 합니다. 애들이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애들이 있으면 그것은 변종입니다. 그때는 다 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그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면 나중에 부모에게 고마워합니다.’ 그분은 서울대를 나온 사람이었어요. 인간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면 그러면 사람이 망가져요. 그런데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하나님의 생각에 대드는 사람들이 바로 회심치 않은 사람들이에요.
또 하나 있어요. 하나님께 대항하는 이유는 뭐냐 하면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이 못하게 하시니까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아름답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성경을 읽으면 족쇄를 채우는 것처럼 힘든 것이에요. 하지 말라는 것은 왜 그렇게 많고 하라는 것마다 쉬운 것을 하라는 것은 없어요. 다 하기 힘든 것 즉 ‘원수를 용서해라. 너를 핍박하는 자를 사랑하고 기도해주어라. 그리고 네 겉옷과 속옷도 벗어서 추운사람에게 주어라. 원수가 너보고 조금만 같이 가달라고하면 더 멀리 가주어라. 친구를 위해서는 목숨을 버려라.’ 이렇게 너무 부담스러운 명령만 계속 내리는 것이에요. 그래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이에요. 그러면 이제 길은 둘이겠지요. 이런 처지에서 아 그렇게 우리가 죄인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으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앙으로 되돌아가서 구원을 얻든지 아니면 끝까지 이렇게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타이르고 책망하셔도 부인하고 거절하고 하나님 앞에 반항하면서 회심하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잖아요.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들이 잊지 말아야 될 것은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에요. 자, 예를 들어봅시다. 자,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며 살았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무서워서 핍박을 받을까봐 복음을 전하지 못할 때 피 흘리기까지 박해를 받으면서 예수의 복음을 전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저만 사랑해서 자기만을 위하는 이기심으로 살았는데 이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날마다 포기하면서 가난한 자를 섬기고 병든 자를 위해 봉사하면서 희생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자기를 온전히 헌신해서 자기에게 있는 지식을 어두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리고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위해 돕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치료하고 그리고 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주며 헌신적으로 살다가 죽었어요.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다른 모든 악한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한다면 여러분들은 동의할 수 있겠어요? 나라를 위해서 40여명의 젊은이들이 배에서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배에서 폭탄이 터져서 모두 죽었어요. 이미 돌아가셨지만 나라에서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고 매일 매일 신문과 방송에 발표를 해요. 그런데 만약에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지들이 재수가 없어서 죽었지!’ 하고 물속에 처박혀 있는 사람들을 찾으러 가지도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동의할 수 있겠어요? 누가 나라를 위해서 그렇게 자기의 목숨을 버려서 위급한 때에 국가를 지키려고 하겠어요? 6.25전쟁이 난지 60년이 되어 가는데 지금도 최근에까지도 미국은 한강밑바닥을 뒤지면서 60년 전에 죽은 전우의 시체의 뼈를 찾으러 다녔다고요.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다. 지구 끝까지 가더라도 우리의 용사들을 찾아온다는 것이 미국의 신념이에요.
그러면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동의할 수 없지요. 그러면 그렇게 산 사람들이 있고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하나님이 똑같이 대우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 질문에도 여러분들을 답을 해야 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교회를 다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는데 여러분들에게는 교회를 다닐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가졌어요. 선생님들이 눈물로 기도해주었고 그리고 목회자들이 참으로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죄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를 가르쳐주었어요. 그리고 교회에 나오기 싫을 때에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심방하고 돌보아서 데리고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었어요. 그렇게 많은 기회를 제공받은 사람들이 그렇게 긴 세월동안 나는 믿지 않겠노라고 그리고 나는 죄인이 아니라고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었건 말았건 나는 상관이 없다고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사람과 하나님을 잘 믿으며 살아간 사람들을 동등하게 취급한다면 그것은 여러분도 동의해서는 안 되지요. 그래요? 안 그래요? 동의할 수 없잖아요. 사람이 논리적이어야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끊임없이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복음 앞에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엄중하게 다루시는 것이에요. 두 가지 방법으로 다루셔요. 첫째는 뭐냐 하면 이 세상에서 다루셔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여러분들이 거듭남이 없이 참다운 회심이 없이 교회를 다니면 언젠가는 여러분들은 교회를 떠나게 되요. 떠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로 교회에 남아서 끊임없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함으로 본인과 지체들과 목회자들에게 고통을 주어요. 그래서 죄를 더 쌓아가는 것이에요. 그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죠.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평화에 있어요. 그래서 주님을 만나고 기뻐하고 그 사랑 안에서 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 이런 기쁨을 추호도 알지 못해요.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지금도 불러서 마음을 두드리며 예수를 믿도록, 참 신앙을 갖도록, 네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나님이 끊임없이 부르셔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거절해요.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막보는 것이에요. 그렇게 살면서 태양을 등지고 걸어가면 자기가 멈추든지 뛰든지 뒹굴든지 항상 자기 앞에 그림자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기는커녕 끊임없는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이죠.
또 하나의 방법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것이에요. 이 세상의 일을 가지고 모두 다 공평하다고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죽음 이후의 세상을 준비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커다란 심판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자신의 죄에 대해서 형벌을 받도록 만드시는 것이에요.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에요. 회심치 않고 살아가면 이 세상에는 우리를 불행하게 할 수 있는 수많은 요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아직은 여러분들이 거의 비슷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잘 몰라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보면 이제 비로소 깨닫게 되요. 어떤 친구는 부유했기 때문에 불행해져요. 어떤 친구는 너무 가난했기 때문에 불행해져요. 어떤 친구는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불행해지는가 하면 어떤 친구는 배움의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해져요. 그렇게 끊임없이 인간은 불행해지는 것이에요. 그때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신앙이에요. 여러분들은 자기의 불행에 대해서 너무 부모의 핑계를 많이 대요. 가정이 불우해서 혹은 가정에 부모들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등등……. 그런데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에 붙들리게 되면 그런 모든 것들을 넘어서요. 그것이 바로 신앙의 힘이고 은혜의 힘이에요.
목사님이 여러 해 전에 호주를 갔었어요. 여러 차례 갔었는데 거기에 목사님 부부 한분이 계셔요. 목사님이 젊은 시절에 아내와 함께 유학을 하려고 호주에 왔어요. 그러다가 주님을 만나서 목회자가 되셨어요. 그런데 사모님이 여러 가지로 어쨌든 어려운 환경을 겪으면서 굉장히 마음이 불안하신 분이 되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우울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분이셨어요. 그러니까 자녀들이 엄마가 막 화도 내고 때로는 막 펑펑 울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잘 컨트롤이 안 되는 것이 우울증의 특징이잖아요. 그런데 틀림없이 그런 환경 속에서 살면 자녀들이 굉장히 어둡고 불행해지지 않겠어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런데 그 사모님이 자기 딸이 어떻게 주님을 만나서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간증해주는데 너무나 감동을 받았어요. 자기가 분을 너무나 못 이겨서 소리를 지르고 막 딸한테 야단을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부르르 끊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다가 딸이 와서 그런대요. 엄마를 꼭 안아주면서……. ‘엄마 너무 힘들지! 내가 안아줄게!’ 그리고 엄마를 토닥거려준대요. 그리고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엄마 이렇게 힘들 때는 목욕을 하니까 참 좋더라. 엄마 내가 목욕시켜줄게.’ 그러면서 욕조에 물을 가득 받고 엄마를 모시고 가서 목욕을 시켜준다는 것이에요. 그리고는 다시 옷을 입혀서 침대에 가서 엄마를 자기 품에 앉고 재워준대요. 나는 그 딸이 한 삼십 세쯤 된 줄 알았어요. 19살이래요. 한참 예민한 나이에요.
(찬양)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구주 예수를 믿으니 온 세상 이기네!
참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역사에요. 목사님은 여러분만할 때에 참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았거든요. 그런데 스물한 살에 회개하고 주님을 딱 만나고 나니까 내 인생에 왜 그렇게 불행하고 아픈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모든 의문이 한 번에 풀리더라고요. 왜냐하면 그 모든 일들 하나하나가 이 세상에서 주님의 품으로 건너오는 징검다리였어요.
(찬양)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그러면서 나를 내 인생에 고통스럽고 아팠던 모든 일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감사의 조건이 되었어요. 아! 그렇게 내 인생에 일어난 아프고 쓰라린 일 하나하나가 징검다리가 되어서 그런 일들이 없었더라면 절대로 주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을 사람이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셔서 부르시는구나! 그런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어요. 참된 신앙은 그냥 교회에 다닐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 어떻게 참된 진리를 찾으려고 애를 썼는지 그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는 그런 경험들을 많이 이해할 때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찾아가는 길에 도움이 될 것이에요. 그래서 나는 톨스토이를 읽으면서 회심을 준비했어요. 이 세상의 수많은 책들을 읽었는데 기쁘고 신나는 때는 있었지만 평안해지는 때는 없었어요. 그런데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지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 참회록의 마지막에서 톨스토이는 ‘나는 높은 구름위에 있습니다. 기둥들은 땅 아래로 뻗어있고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내가 서있는 그곳이 견고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것은 신앙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제사를 통해 보여주고 선지자를 보내어서 말로 들려주어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주어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성품도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최고의 한 방법을 준비하셨는데 자기의 외아들을 사람의 몸을 입혀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이었어요. 그래서 믿음으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감각으로라도 하나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래서 믿음을 갖는데 도움에 되게 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그분이 사람의 몸을 입고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낮고 천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느냐고 물을 필요가 없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 섬기시다가 마지막에 우리 대신 형벌을 받기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는지를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게끔 그렇게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세상에 내려오신 것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반항하고 주님을 불신하고 하나님 대신 자기를 사랑하며 지은 모든 죄 때문에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것을 믿는 사람들마다 구원해주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죽은 영혼은 살리고 떨어져 나와 있었던 영혼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접붙이셔서 그래서 하나의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서 예수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에요.
지난해에 신학대학원을 다니는 전도사님들이 와서 마당에서 목사님과 같이 월요일마다 한 학기동안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어느 한 학생이 그런 이야기를 해요. ‘목사님! 옛날에는 마음에 욕망이 밀려오거나 악한 생각이 밀려오면 정신이 혼미했었는데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나니 힘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도 여전히 나쁜 생각 악한 욕망은 일어납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것은 예전에는 그것이 굉장히 큰 힘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조용히
(찬양)
머리에 가시면류관 어이해 쓰셨는가?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마음에서 사라집니다. 그게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는 없어요.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그런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에게 공급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말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생명이에요. 그래서 불행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것 때문에 주님을 더 의지하고 유혹에 흔들릴 때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을 생각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사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면서 날마다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에요. 지금 17, 18 그리고 19살의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인생보다는 훨씬 더 거칠어요. 여러분들은 지금 포구에 있는 것이에요. 목사님은 바다에 나와 있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인생을 고해라고 불렀어요.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것이에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단호하게 말할 수 있어요. 주님 없이는 살 수 없어요. 그리고 만약에 산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이 여러분들을 위해 죽으신 그 고난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자녀라 일컬어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이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모두 오늘 이 밤에 여러분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는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열정이 아니라 진지하게 나는 누구이고 예수님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까? 깊이 생각하며 구원에 이르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