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장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
녹취자: 이경순
여기에서 제5장의 그리스도와 지체 그리고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우리가 배운 내용을 한번 쭉 회상을 해보면 1장에서는 사랑 삼위하나님의 교통에 대해서 다뤄봤고 2장에서는 교회가 삼위교통의 모상이라는 것 3장에서는 사랑과 교제 4장에서는 사랑과 일치를 공부 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제5장인데 그리스도와 지체 중에서 지난시간에 머리와 몸을 공부했고 이 시간에는 불완전한 혼합인 교회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일 분단 1. 고백자 참 신자와 거짓신자 1번을 큰소리로 읽읍시다. 제가 읽습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마 13:24-30) 여러분들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13:31-42)) 아멘.
이러면 이제 고백자 참 신자와 아까 우리가 성경에서본 내용은 바로 이렇게 밭에 씨를 뿌리는데 거기에 가라지도 섞여 있어서 진짜 곡식과 가라지가 자란다는 것입니다. 농사지을 때 우리가 피라고 그럽니다. 그것들을 일부러 일삼아서 논 사이를 다니며 뽑아냅니다. 또 천국은 바다에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은데 그물을 치는 그 물에 먹을 수 있는 좋은 물고기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온갖 고기들이 한꺼번에 잡힙니다. 거기서 어부들에게 소용이 될 수 있는 고기는 거두고 그렇지 않은 것은 내어버린다. 이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지상에 있는 교회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나님이 교회에 참된 신앙의 고백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지막에 하나님이 정리하신다. 그 뜻입니다.
그러면 고백자 참 신자와 거짓신자 2분단이 한번 읽어 봅시다. 노아의 방주에 불결한 짐승까지 태우게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자 이렇게 노아의 방주를 만들고 그리고 땅에 있는 많은 동물들을 실었습니다. 그 종 자체를 보존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정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이 있는데 부정한 것들은 다 물에 빠져 죽게 내버려 두시고 정한 동물만 실으시면 될 텐데 그렇지 않고 부정한 것들도 쌍으로 싣고 정한 것들도 쌍으로 싣습니다. 그래서 서로 교배를 해서 종자들이 계속 번식을 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 나면 부정한 것을 두심으로서 정결의 개념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돼지가 부정 하다고 할 때 뭐가 부정한 것입니까? 절대적으로 그 물건을 보면서 정결한 짐승에 비해서 열등하다거나 그런 식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돼지니까 그리고 소는 소니까 그리고 중국 사람들이 지금 현재 돼지를 사억 마리를 기르고 있답니다. 그러니까 인구 3.5인당 한 마리씩 돼지를 기르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중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는 돼지고기입니다. 돼지를 생산하고 유통하고 가공하고 하는데 종사하는 사람이 일 억 명이랍니다. 중국인구 15명 가운데 한명은 돼지고기를 생업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돼지고기가 일반화 되어있습니다. 그게 절대적인 의미에서 돼지고기가 소고기 보다 나쁘다 부정하다 몸에 해롭다 건강학은 그런 식으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럼 이것은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일부로 우리를 귀찮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순종하나하는 것을 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섭생학적인 문제들도 물고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사실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금하신 모든 짐승들을 하나도 안 먹으면 완벽하게 건강할 수 있느냐 우리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섭생학적인 고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것을 정결한 것 속에 섞어두시므로 정결의 가치를 알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그 정결함과 부정한 것 사이에 구분을 지으면서 자신의 도덕생활과 종교생활을 성찰하게하시기 위해서 이러한 의식의 배려를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두움이 없으면 빛의 고마움을 알 수가 없고, 가난하고 고통받아보지 않으면 풍족하고 편안한 것의 의미를 모릅니다. 인생이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인생사가 자기 원하는 대로만 되어 가면 정말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입니다. 일이 꼬이고 잘 안됩니다. 그런데서 인생은 묘미를 느끼는 것입니다. 단 그렇기 위해서는 그 인생을 쫄지 않고 살아가는 어떤 힘이 우리 안에서 계속 있어야지만 그게 가능해집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것들을 두심으로서 정결한 것들을 선택하기 위해서 이렇게 노아 방주의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넣어 두십니다. 이것도 하나의 교회 론의 훌륭한 예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하게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신자들을 보면서 도전을 받고 감동도 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잘못살고 하나님 앞에 패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또 우리들이 경고를 삼으면서 아 나는 저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자각을 갖게 하니까 선을 하나님이 선하게 쓰시고 때로는 선하게 쓰셔서 인간의 지혜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유익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들이 눈을 뜨면 세상을 포용하는 힘이 훨씬 더 커지는 것입니다.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합니다. 그런데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존재한다는 것과 살아간다. 라고 하는 것을 제가 여러분들에게 평소 하던 말로 하면 ‘살아있는 한 살아가야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가야합니다. 그런데 이 두 현실 사이 즉, 살아 있다고 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현실입니다. 그런데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당위입니다. 마땅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 사이의 격차가 적을수록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격차가 너무 심하면 이 갈등이 너무 커집니다. 그런데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그럴 때 인간은 근거도 없이 자신의 존재와 세계에 대해서 앙심을 품게 됩니다. 특정한 대상도 없는데 앙심을 품게 됩니다. 그래서 인생의 문제가 해결이 안 되고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다 라고 하는 것은 결국 살아가야 한다는 현실을 의미하기 때문에 현실은 우리에게 살아가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데 모든 것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들을 어떻게 포용하면서 인생을 사느냐 하는 것이 지혜고 그것을 기독교신앙에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것입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오늘 청년들 특강이라서 이 정도에서 예고편을 하겠습니다.
그담에 3번입니다. 고백자 겉으로 신앙을 고백하는데 그 고백자 속에는 참 신자와 거짓신자가 있습니다. 3분단 읽어보겠습니다. 불신자는 보편교회의 거룩함을 해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이 자체가 불신자는 제외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자기가 해롭게 해도 그는 이미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교회의 거룩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정확하게 진짜 교회와 가짜 교회를 나누지를 못합니다. 가짜를 보면서도 진짜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단에서 저렇게 문제를 막 일으키면 사람들은 싸잡아서 기독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개독교’라고 놀립니다.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서 우리들이 알아야 될 것은 참된 교회는 가시적인 교회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이 교회가 아니다 교회 속에는 신천지에서 몰래 들어온 사람도 있고 아는 사람하고 연을 맺어서 돈이나 빌려볼까 하고 오는 사람도 있고 대통령이 어느 교회 다닌다고 그러면 눈도장 찍으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말로는 신앙을 고백한다고 해도 그들은 참된 고백자가 아니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교회에 속한 지체는 아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교회에 속해 있지만 그 교회는 참된 교회와 이렇게 이게 참된 교회라면 거짓된 교회가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삼켜버리면 안되겠지 뭐가 그래도 남아야 됩니다. 이게 눈에 보이는 교회가 빨간 교회라면 속에 있는 이 하얀 교회가 눈에 보이는 교회가 이렇게 있는데 이 눈에 보이는 교회 중에서 더 적은 것이 이게 참된 교회입니다. 그러면 결국은 거짓된 신자는 이렇게 참된 교회가 아닌 데에 속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참된 교회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참된 교회는 어떤 사람들로 이루어지냐면 중생을 통해서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사람들의 연합이 참된 교회고 참된 예수의 몸입니다. 지상교회의 불신자들은 눈에 보이는 가견적 혹은 가시적 교회에는 속해 있지만 참된 교회 혹은 불가시적 교회의 진정한 회원은 아닙니다. 그래서 교회에는 그 사람들이 섞여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때로는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거나 악이 행해질 때 그것을 공정하게 보면 그게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위치나 장소가 그 사람의 본질을 바꿔놓을 수 있습니까? 불가능한 것입니다. 마음에 독을 품은 악인을 옷을 다른 것을 입히고 선한 사람들의 모임 안에 둔다고 해서 그 사람이 선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나무는 그 나무일뿐입니다. 아무리 버드나무가 밤나무사이에 심겨져 있어도 그것은 버드나무고 밤나무는 밤나무입니다. 사람의 본질을 바꾸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담배피고 술 마시고 까불다가 단정하게하고 교회에 나와서 말끔하게 앉아 있으면 이게 완전히 골수 예수쟁이가 된 것처럼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거기다가 교회에 헌금이라도 좀 하고 사람들에게 뭐라도 잘 사주면 그 사람이 아주 매우 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엄청난 기대를 실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놓고 보면 교회 안에는 사실상 배교자도 있고 사실상 불신자도 있고 사실상은 그냥 유사하게 그리스도인 닮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온갖 악들이 터져 나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의사가 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들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환자가 어디 아파서 갔는데 눈물을 뚝뚝 흘려드릴 정도라면 목사가 되어야지 그 사람은 의사가 되면 안 됩니다. 오히려 냉정하게 해야 합니다.
2014년도에 한림대병원에서 편도선 수술을 했습니다. 선생님이 보더니 어마어마하게 크기 때문에 염증이 계속 생겨서 잘라내야 된답니다. 무지무지하게 크답니다. 의사가 나보고 20년 동안 처음 보았다고 할 정도 이었습니다. 잘라냈는데 아주 가벼운 수술처럼 얘기합니다. 아주 간단하답니다. 그래서 수술을 했는데 죽을 뻔 했습니다. 엄청나게 크게 도려냈는데 오죽했으면 제가 말씀 준비하러 갈 때 가방에다가 진통제 주사기를 넣어가지고 가서 혼자 뒹굴면서 진통제를 맞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한 달쯤 지난다음에 선생님 찾아가서 “선생님. 내 수술 쉽다고 하더니 나 8키로 빠졌어요!” 했더니 선생님이 하는 말이 여의사인데 “아니 그거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누구나 다 8키로 에서 10키로 빠집니다.” 왜 그럽니까? 완전히 얄미울 정도로 나의 병이 그에게는 객관적입니다. 그런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교회의 아픔을 볼 때에도 목사의 마음과 의사의 마음이 같이 작용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 둘 중에 하나로 갑니다. 목사의 마음에 대해서 선악의 분별은 없이 함께 울고 한풀이를 하거나 두 번째는 완전히 냉정해서 자기하고는 아무상관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칼을 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다 나쁜 것이고 두 개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선생님들이 자기 가족들을 잘 수술을 안 한답니다. 왜냐하면 그게 객관적으로 모르겠습니다. 의사선생들이 알겠지만 조그만 것을 이야기하겠지만 머리를 갈라버린다던지 배를 뒤집는다든지 하는 이런 것들은 대게 다른 사람을 시킨다고 의사선생님 몇 분이 나에게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만큼 객관적으로 보는 태도가 필요 한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목사의 마음과 의사의 마음을 겸하여서 교회문제를 보는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가지고 뒤집힌 것처럼 펄펄 떨거나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났는데도 냉정하게 대하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다 진정한 기독교적인 영성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순결과 지혜를 함께 가진 사람들이 되어야 됩니다.
다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교회가 받는 불이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싸움질들을 합니다. 뿔이 나서 싸움질을 합니다. 결국은 이 사람들은 이 중심에 하나님 사랑이 완전히 사라져서 완전히 영혼이 바닥을 친 것입니다. 이렇게 쌈질을 하면서 이 난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침체기에 빠져서 교회를 자꾸 분열을 시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 사랑하면서 이 짓하다가 다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연약한 자들을 돌보면서 굳건하게 주님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한 그림들을 교회가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가 이런 게 없는 교회가 있을 수 있느냐 이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세상 사람들이 여기까지는 참교회가 아니다 라고 이렇게 갈라내면서 볼 수 있는 안목이 이 사람들에게는 없고 원래 예수를 믿었다고 고백을 한다고 해서 한 번에 성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자기 인식이 이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는 그렇게 못살면서 돌을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의 앙심을 품는 것입니다. 어떤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서 앙심을 품는데 이것도 자기 인생에 대해서 쪼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결국은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봅니다. 그러면 이게 진정한 교회에 속했든지 안 속했든지 그것은 상관없이 모둔 것을 다 싸잡아서 교회는 그들에게 평가를 받으면서 이 세상에서 교회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교회에서 모든 사람이 오는 것을 우리가 막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세례를 줄때에는 그 사람이 참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을 최대한 분별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고백자 참 신자와 거짓신자 4번째 문제입니다. 1분단 읽어보십시오. 자 여기서 이렇게 은혜가 떨어져서 싸움질을 합니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함께 돌팔매질 하고 욕하고 두 사람 중 자기이익이 되는 사람 편에 서서 분쟁을 부채질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될 때 이것이 비록 참 신자들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일단 이것이 교회 안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아픔으로 보고 이것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완전함 때문에 고통 받는 지상교회를 바라보게 되고 교회에 남아있는 연약함이 자신의 연약함임을 알게 되고 교회와 스스로의 온전함을 위해 헌신함으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토투스 크리스투스(Totus Christus)’ 교리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라틴어로 ‘토투스’는 ‘올(all), 호울(whole)’ 그런 뜻입니다. ‘크리스투스’는 당연히 ‘크라이스트(christ)’입니다. 그러면 모든 그리스도 전체적인 그리스도 모두 그리스도 이런 뜻이 됩니다. 그래서 ‘토투스 크리스투스’를 영어로 옮길 때에는 ‘호울 크라이스트(whole christ)’라고 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하면 단어로 ‘모두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이냐면 ‘신자는 완벽하게 참 신자와 거짓신자들을 인간의 눈으로 분별해 낼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가시적 교회에 들어온 모두를 그들이 신앙이 없다, 혹은 잘못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이 판명되지 않는 한 그 모두를 그리스도 몸으로 사랑해야 한다.’ 라고 하는 것이 ‘토투스 크리스투스 교리’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토투스 크리스투스’는 라틴어로 ‘더 호울 크라이스트(the whole christ)’ ‘전부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모두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 이 말은 ‘인간이 교회 안에 있는 회원을 완벽하게 참 신자와 불신자로 구별해낼 수 없다. 그들이 어떤 사건을 통해서 자신들이 잘못된 신앙을 가졌거나 그리스도 교회의 회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지 않는 한 일단은 그들을 모두 그리스도의 몸으로 여기고 돌보고 사랑하는 것’을 ‘토투스 크리스투스’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보이는 교회를 사랑함 토투스 크리스투스의 교리가 성경적이라고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양들이 있고 그런데 예수님에게는 또 다른 양들이 있는데 우리밖에 있는 양들입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는 이 둘 다를 같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울타리를 참 교회 울타리라고 보면 아직 이 울타리에 들어오지 못한 이 양도 예수님에게는 사랑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들을 사랑하고 돌봐야한다고 하는 것이 토투스 크리스투스교리의 근거입니다. 외형적 교회에 속한 교인을 그래도 사랑해야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아직 회심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양 일수 있기 때문에 두 번째는 선택 받지 않은 자라할지라도 우리가 이미 먼저 받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들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들이 선택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우리가 끝까지 섬겨봐야지 아는 것이지 미리 앞에 놓고 이 사람은 불택자라고 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토투스 크리스투스의 교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