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결하게 하신 그리스도와 그 열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사 53:10)
녹취자 : 조원정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허물을 짊어지시게 된 이유를 이사야 53장 10절 상반절은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10절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 받기를 원하사, 왜 하나님이 아들에게 상함을 당하기 원하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속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인류와 모든 만물을 구속하시는 방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고난 받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구속이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성부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시행하시고 성령하나님이 그 속죄를 인간에게 적용하심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원 받는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속건제를 드려야 하는 두 가지 경우는 무엇입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속건 제물로 자신을 드리신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간이 하나님께 입힌 손해에 대한 배상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제사가 다섯 개의 대표적인 것이 있는데 번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라면 소제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고 화목제는 하나님과 백성들의 화목을 구하는 것이고 화목의 결과를 인간들이 누리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이스라엘 백성의공동체적인 죄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속건제는 배상이 필요한 죄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인데 첫째는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서 범죄 했을 때인데 성물은 하나님의 성전의 물건들입니다. 이웃의 물건이나 소유에 대해 범죄 했을 때, 이것이 속건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성물에 대해 범죄 했을 때 이웃의 물건이나 소유에 대해 범죄 했을 때 이것이 모두 배상이 필요한 죄입니다.
하나님이 인간들에게 살게 하시는 중요한 윤리 가운데 하나가 남의 물건이나 남의 소유를 존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것을 위배 하였을 때에는 그것에 대한 배상을 하게 되는데 이것을 용서를 빌면서 드리는 제사가 속건제입니다.
레위기 5장 15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성물에 대해 부지 중 범죄 하였으면 여호와께 속건제를 드리되 내가 지정한 가치를 따라 성소의 세겔로 몇 세겔 은에 상당한 흠 없는 숯 양을 양떼 중에 끌어다가 속건제로 드려, 속건제라고 하는 것은 배상이 필요한 죄에 대해 용서를 비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헌제자가 불법으로 훼손한 것에 대해 배상을 맞추는 것에 초점이 두어 있습니다. 왜 굳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성경이 속건제로 표현했는가 하면 우리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은 것은 곧 하나님의 소유에 대한 범죄이고 그것을 인간이 배상해야 하는데 인간이 자기를 타락시키고 또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망가트린 데에 대해서 배상을 할 수 없습니다. 그 배상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대신 해서 배상을 해 준 것입니다. 그러한 메시아의 역할을 여기에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속건제물이라는 표현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우리의 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함
그리스도의 대속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범한 우리의 잘못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 대속의 은혜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거룩이 아니고 거룩함입니다. 사람들이 헷갈리는데 거룩은 형용사입니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거룩한 이라고 써서 그렇지 원래 거룩 생활 하면 거룩한 생활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자꾸 명사라고 착각을 합니다. 거룩함입니다. 거룩한 삶입니다. 오늘 아침에 설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셔서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당신에게 사랑을 받는 것처럼 이웃을 사랑하고 자연의 모든 만물들을 선의로 대하면서 사랑의 사회로 이루어가기로 원하셨습니다. 이런 식의 어마어마한 환경의 파괴, 이런 것들은 인간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들의 사회가 각박하고 미움과 원망, 잔인함, 이런 것들로 가득 찬 것은 인간이 지정하신 자리가 아닙니다. 인간에게 지정하신 자리를 떠나는 순간 하나님의 거룩함을 범한 것이다. 창조세계에 있는 인간들에게 부여하신 거룩함, 그것을 떠난 것이고 그 잘못에 대한 보상이, 정확하게 말하면 배상인데 이것은 인간 자신이 잘못했지만 인간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대속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것이 거룩한 삶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때 인간은 거룩함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타락을 하면서 인간은 거룩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다시 구속하십니다. 창조와 타락, 구속, 구속이 마지막에 종말에 가서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되어서 이 모든 것이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다시 회복하시고 완성하시는 이것이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입니다. 인간이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합니다. 그것에 대한 배상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그렇게 구원 받은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렇게 됩니다. 창조되고 타락하고 타락한 사람을 구속해서 다시 하나님을 향해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마지막에 완성으로 나아가는 것이니까 이것도 역시 똑같이 창조, 타락, 구속, 완성, 여기에서 거룩한 삶으로 살아가는데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으로 사람들이 사랑하고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만물을 선의로 대하고 이렇게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거룩한 생활을 해 나가는 것입니다. 거룩한 생활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삶 전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동기에서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슨 영웅적인 삶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면서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거룩한 삶입니다. 세상은 거룩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빛나게 되어 있고 그것이 사상으로만 빛날 뿐만 아니라 윤리로도 빛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이 세상에 두신 목적을 실현해 나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소유를 범함
그리스도의 대속은 하나님의 소유인 인간 자신과 세상을 더럽힘으로써 하나님께 손해를 입힌 우리의 허물에 대해 사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지정된 참된 행복은 무엇이며 그리스도인이 이웃과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입니까?
오늘 아침에 설교에 나온 내용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인간은 또한 자기 이웃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신 이유이고 그 구속받은 인간이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삶의 방향성입니다. 우리 자신이 이렇게 있는데 이렇게 해서 죄로 말미암아 인간이 타락하게 됩니다. 인간의 고유한 창조의 영광이 사라집니다. 흔적만 남습니다.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 땅을 저주하시고 이 세계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본래의 완전성을 잃어버립니다.
우리들이 여행을 가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 있어서는 보지 못하는 자연과 문화를 접하기 위해서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서 음식을 먹고 쉬고 노래 부르고 하는 이 모든 과정 자체가 자기와는 다른 문화와 접촉하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우리들이 여행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여행을 가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보고 우리들이 접하지 못한 문화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우리에게는 없는 장점 때문에 우리들이 감탄하게 된다면 본래의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자연의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하고 자연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의 대부분도 사라졌고 남아 있는 영광도 인간이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도 인간에게 이런 경치의 아름다움이 감탄을 불러일으키고 감격하게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타락 이전의 세상은 우리가 만약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일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인간에 의해서 모두 상실 되었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하나님께 입힌 손해입니다. 하나님께만 손해를 입혔을 뿐만 아니라 인간자신에게도 손해가 되어서 이것들을 누리게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구원해 주신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화목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사명은 다른 사람들을 다시 화목하게 하고 사람들 사이에 다시 화목을 이루게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 부분이 하나님의 현재적인 신분이라면 이것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 해야 할 사명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속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루신 그리스도 예수의 구속에 감격하면서 다시 이 사랑은 사람을 사랑하게 하고 하나님이 주신 자연 만물들을 아끼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자연을 아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우리 후손을 위해서 단순히 이익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서 자연이 이런 식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더욱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환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선의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여전히 어둠 속에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데 하나님과 불화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안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사람들을 먼저 하나님과 화목 시키고 사람들 사이에 화목을 이루게 하고 이 사람들이 자연 만물들을 선의로 대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자신만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하게 만들어 주는 그것이 하나님께로 화목을 입은 자의 사명입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고 다시 이웃과 세상이 마땅히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자리로 돌아가고 환경과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던 본래 상태에 가까이 감으로써 이 세상이 진정으로 회복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뜻입니다. 특히 죄인이 돌이켜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이 거룩함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사명을 받은 사람들이 바로 이미 그리스도를 통해 화목을 이룬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사명으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4.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속한 것들에 집착하며 우울하게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답을 두 가지로 제시하는데 삶의 목표가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은 목표를 따라 갈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회심은 했는데 지식의 현저한 부족으로 삶의 목표가 바뀌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을 못 받은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혹시 회심을 했다 하더라도 현저하게 지식이 부족하면 자기가 구원은 받았지만 어떻게 변화된 삶의 목표를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이 생기지 않습니다. 은혜에서 미끄러지게 되고 다시 세상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삶의 목표가 바뀌었지만 무엇이 올바른 삶인가를 다 아는데 그 목표대로 살아갈 힘이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것은 끊임없이 자신이 힘이 없음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못가는 것입니다. 아침 설교대로 설명을 한다면 이 두 가지 경우는 모두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으나 이것을 누리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안에 진정으로 바꾸어진 삶의 목표를 가지고 있지만 그 목표를 따라 살아갈 힘이 없는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올바르게 아는 것은 그 진리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할 때 진리는 우리에게 사랑하는 것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들이 설명하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동시에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을 향한 우리의 인생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3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은 사람은 삶의 목표가 분명히 정해져서 이렇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고 거룩함을 갈망하면서 인생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고 걸어가야 하지 말지를 성경이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갈 길을 지도 받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겠고 쓰러지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에서 오는 고난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이 거룩함을 향한 우리의 인생입니다. 구원 받은 사람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렇게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신비한 방법으로 그에게 은혜를 주셔서 말씀대로 걸어갈 수 있게끔 우리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5. 하나님의 것에 대한 인식과 거룩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하나님을 인식하면 거룩함에 대한 갈망이 생겨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십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회심을 경험하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생깁니다. 죄에 대한 인식의 깊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인식의 깊이와 같습니다. 그렇게 될 때 이사람 마음속에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살려고 하는 갈망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9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내 소유가 되겠고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이것이 성경 전체의 요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한 구절이고 이렇게 하나님께 사랑받는 소유가 되는 것을 중심으로 구약이 신약이 펼쳐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라. 여기에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 되신다. 두 번째는 너희도 거룩할지라. 즉, 하나님의 구원 받는 백성들의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 당신 자신을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의 문학적인 표현으로써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특별한 가족 관계 같은 사랑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독점적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따라 선택된 백성들도 거룩해 지는 것, 이게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별된 태도입니다.
6.이사야 53장 10절 하반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성취되었습니까?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이렇게 성경이 말합니다. 그의 영혼이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의 영혼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범죄를 위한 속건 제물로 드리면 씨를 보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씨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 말로 제라라고 하는 것인데 단일 명사가 아니라 집합 명사입니다. 많은 열매들, 많은 씨들, 많은 후손들을 보게 된다고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그 죽으심은 수많은 사람들을 예수 사랑하게 만들어서 예수의 구속의 열매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의 날은 길 것이요,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이렇게 구원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마지막에 모두 이것들이 모아져서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무엇입니까? 이 세계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경륜의 핵심부에 바로 인간의 구속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이바지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모든 사람을 구원하셔서 그리스도의 씨가 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