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성화와 소명
녹취자 : 장미연
오늘 아침에 제가 성경을 읽다 보니까 이 시대를 사는 우리를 정말 찌르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뭐냐하면 히브리서 6장에서 교인들을 가리켜서 늘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부드러운 음식만 먹는 사람들의 신앙의 위험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에 대해서 공부하려고 합니다.
(목사님) 마음에 대해서 평소에 생각해 본적이 있었습니까? 사람들이 마음이 뭐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을 하고 싶어요? 본인이 아는 한도 내에서.
(형제) 제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일 때 마음이라는 걸 많이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는 부분, 감정적으로 느끼는 부분,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받아들일 때 생각하는 부분은 논리적으로, 또 하나는 그에 따라오는 감정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성적으로 받아들이는데 감정적으로 못 받아들일 때도 있고 반대 일 때도 있습니다.
내가 마음 때문에 되게 기뻤던 적이나 고생해봤던 적이 있다? 마음의 실재에 대해서 고민해 본적이 있다? 이러 사람은 손 들어 보세요. 없어요? 그럼 자매가 나오세요.
(목사님) 자기 마음 때문에 깊이 고민해 본적 있어요? 어떤 때에 그렇게 고민했어요? 마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때가 언제에요?
(자매) 말씀을 듣고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과 하나님의 말씀이 다를 때 그럴 때 많이 고민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마음 때문에 고생한 적은 없었어요?
(자매) 굉장히 많습니다.
(목사님) 그럴 때 어땠어요?
(자매) 신앙이 없을 때는 스스로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을 찾아서 그때그때마다 풀었었는데 가식적인 게 아니라 신앙이 들어오고 나서는 마음이 힘들 때는 기도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마음이 자신에 의해서 통제가 잘 되요?
(자매) 100프로 중에 90프로가 통제가 잘 안됩니다.
(목사님) 그럼 어떻게 해야 될까요?
(자매) 제대로 된 기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도를 할 때 마음을 쏟아내는 기도를 한다거나 말씀을 묵상하는 방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방법 밖에는 없더라고요. 다른 방법이 안 되더라고요.
(목사님) 제가 은비 자매에게 질문을 해볼게요. 어떤 마음이 내 맘에 들 때 ‘이건 하나님이 참 기뻐하시는 마음이다’라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지요? 그게 계속 있어요?
(자매) 순간, 순간 지속되지는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아예 없지는 않는 것 같고.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 기뻐하시지 않을까하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 물을 손에 쥔 것처럼 빠져나가는 게 느껴지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해야 되요?
(자매) 물을 손에 쥐면 빠져 나가니깐 계속 물을 퍼야 되겠네요.
(목사님) 하나님이 안 기뻐하시는 마음이 있잖아요. 그런 건 어떻게 처리를 해요?
(자매) 일단 그냥 그렇게 살다가 제가 느끼기에도 주체가 안 될 때는 계속 물을 쥐는 것처럼 분투하는 것 같습니다. 제 마음은 하고 싶지 않은데 해야 된다는 생각들이 드는 행동들을 통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마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책을 읽거나 공부 해본 적 있어요?
(자매) 아니요. 없습니다.
(목사님) 마음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것을 공부해볼 생각은 왜 안했지요?
(자매) 이 책을 통해 앞으로 열심히 공부할 예정입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을 공부하게 됩니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은 매우 초보적인 내용입니다. 그래서 동북아 철학과 서양 철학에서도 사람들은 핵심을 꿰뚫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형이상학적인 이야기와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결국은 그 행복은 자기의 마음에 있다는 것을 꿰뚫었습니다. 이 마음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마음과 몸과의 연관에 대해서 무지하게 많은 고민을 한 것이 지성사입니다. 그런 고민을 한 지성사적인 흔적들이 있는 것이지요. 비근한 예로 유교 있잖아요. 조선시대 유교 말입니다. 나중에 성리학이 들어오면서 정통 유교에서 벗어나게 됐는데 퇴계이황이나 율곡의 책을 읽어보아도 그들이 기본적으로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저녁때까지 자신들이 하는 일중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니까 자연의 세계를 보면서 희미한 흔적들을 읽어내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마음은 다스리는 버릇하면 어느 정도 다스려지고,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놔버리면 거의 완전히 통제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마음은 끊임없이 그걸 바깥으로 표출하면서 행동을 만들어내잖아요. 그러면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지요.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그게 무슨 문제냐?’ 라고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문제는 그렇게 살아서는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기능입니다. 마음이 있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이 있다는 내적인 증거가 됩니다. 두 개가 아주 밀접하게 연결이 됩니다. 어떻게 연결이 되냐 하면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이렇게 있는데 마음은 영혼의 기능(function)입니다. 바깥 세계에 많은 사물들과 정보가 있습니다. 이것들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오는 겁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공부를 좀 하라는 겁니다. 왜냐면 공부는 우리의 삶을 든든하게 해줍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모든 걸 해결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좀 전에 은비자매가 좋은 마음을 지키려고 하는데 마치 물을 뜨는 것처럼 빠져나가니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 푸면 되지 않냐고 얘기를 했는데 손이 아니라 바가지로 푼다면 훨씬 더 낫지 않겠어요? 바가지까지 안 되더라도 봉지로만 물을 퍼도 손보다는 조금씩 새어 나갈 것이고 멀리 가져갈 수는 없겠지만 좀 더 오래 보존되겠지요. 그렇게 해 주는 것들이 공부입니다. 마음에 대한 공부입니다. 저는 한 15년 전쯤 공부에 푹 빠졌었습니다. 그때 기초가 마련됐고 이 책은 사실 그 공부하기 전에 쓴 겁니다. 2002년도쯤에 설교를 냈고 2004년도였는데 그때는 청교도들을 연구하면서 공부했는데 지금은 이거보다 훨씬 더 확장된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돌아가서 외부 사물들이 마음으로 들어올 때에 통과하는 것이) 감각기관입니다. 눈, 코, 입, 귀, 촉각들 모두를 오관이라고 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피부로 접촉하는 오관을 통해서 정보가 들어오는 겁니다.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정보가 들어옵니다. 정보가 들어오면 어떤 것은 그냥 흘러가지만 어떤 것은 마음에 물결을 일으킵니다. 그것은 마음에 물결만 일어나는 건 괜찮은데 어떤 정동(affection)을 준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김태주 시인의 시를 읽었는데 ‘너무 감동이 되더라.’고 하는 것은 중립적입니다. 그런데 출렁거리는 정동이 도덕과 관련 될 때에는 우리의 삶을 매우 심각하게 방향을 바꾸게 만듭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의 도덕적인데 영향을 미칠 때에는 심각한 영향을 우리가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감각 기관들을 통해서 마음에 들어옵니다. 이런 것들이 실려 들어와서 우리의 마음에 정동을 일으킨다는 것 자체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감각기관을 통해서 들어온 것들은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외부의 요소는 감각을 통해 들어오는 사물들의 인상이고 그것을 수납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래서 외적으로는 감각기관이, 내적으로는 마음이 연결되어서 작용하는 것 자체가 우리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개들도 뜨거운 것이나 차가운 것도 알고, 먹기 싫은 것과 좋은 것도 알며, 반가운 사람도 알고, 새끼를 낳아도 으르렁 거리면서 끝까지 새끼를 보호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의미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다 혹은 안 좋다는 것이지 그 의미는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알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 마음에 대한 공부는 필연적으로 영혼에 대한 공부로 우리를 데려 갑니다.
(예화) 요즘은 호흡이 긴 책도 못 읽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책은 아주 짧게 썼습니다. 백 개로 찢어서 썼습니다. 현대 시대의 풍조에 맞추어서. 그러나 참고해야할 것은 그렇게 짧게, 짧게 쓴 것들은 긴 호흡이 전달할 수 있는 사상을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 지순하게 앉아서 우선 책들을 읽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스마트폰, 모바일 폰을 안 쓸 수는 없으니까 꼭 필요한 것만 사용하고 될 수 있으면 멀리 해야 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안 좋은 문화들을 섭취하게 되고 세속적인 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하면서 우리의 삶을 망가뜨립니다. 그런 것들을 절대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텔레비전이나 영상들을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책하고 있는 시간을 많이 늘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이 마음이 왜 그렇게 문제냐 하면 영혼이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직접 산출하게 하지는 않지만 마음은 그렇다는 말입니다. 영혼의 좋고 나쁜 상태는 마음으로 내려가서 마음을 통해서 행동으로 나옵니다. 마음은 행동 공장입니다. 온갖 재료를 바깥에서 집어넣고 영혼으로부터도 영향을 받고 감각기관을 통해서 영향을 받아서 이 마음이 주체적으로 그것을 해석 합니다. 주체적으로 해석을 할 뿐만 아니라 욕망을 만들어내고 욕망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서 만족을 느끼게 되는데 때로는 그 행동을 하고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들을 산출해내는 겁니다. 문제는 마음이 완전한 중립상태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리반에서 배웠지요? 신앙의 자리가 어디지요? 마음입니다. 죄의 자리는 어디지요? 마음입니다. 이 두 개가 이미 마음 안에서 자락을 깔고 기다리고 있는 거지요. 들어오는 모든 정보들을 이 마음 안에서 주체적으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우리의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판이합니다. 생각 자체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생각이 마음의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고 느끼고 의지를 갖게 하는 모든 일들이 이 마음 안에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책 전체의 요절은 잠언 4장 말씀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너희 마음을 지키라.” “지킨다.”는 말의 히브리어가 전투할 때 요새 같은 것들을 파수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혜자가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사람인데 인생을 살면서 결국은 이 마음이 끊임없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을 인식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세속적인 가르침은 ‘그냥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해. 그걸 쏟아놔. 그게 너의 인생이야.’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이 도덕적인 한계들을 넘어섭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렇게 마음을 자기 원하는 대로 쏟아놓고 나면 정말 행복한가?라고 질문하고 싶습니다. 정말 행복하질 않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보면서 사랑의 중요성을 평가하십니다. 기록해도 좋습니다. “인간의 아름다움은 영혼의 아름다움이고, 한 인간의 가치는 선한 의지의 크기다.” 왜냐하면 마지막으로 행동을 산출하는 것이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지켜라.”고 이야기하고 “마음을 굳게 하라.”고 합니다. 심지어 모세와 예수님은 “마음과 성품과 뜻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음이 제일 먼저 나오는 겁니다. 목숨도 필요 없고 마음이 제일 먼저입니다. 여기서 마음이라는 헬라어는 디아노이아인데 지성입니다. “마음과 뜻과 성품과 목숨을 다해..” 나머지 세 개는 마음에 따라오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이 공과 책을 공부하면서 실질적으로 얻게 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는 우리에게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좋은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드리면서 설교를 듣고 은혜를 많이 받고 나면 이상하게도 없었던 마음이 생겨나고 있었던 마음은 사라지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 마음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마음은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가 사라지고 기도 생활이 약해지게 되면 우리 마음의 밑바탕에 있는 죄와 타락한 본성으로부터 욕망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면서 생각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마음의 한 구석에서 시작되지만 최종적으로 우리의 마음 전체를 지배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자연에서 멀어질수록 인간의 육체는 질병에 가깝고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은혜에서 멀어질수록 죄에 가까운 겁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깊이 변화를 받으면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 마음이 생기지만 그 작용이 끝나면 인간의 마음 밑바닥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죄된 본성과 부패함으로 인해 강퍅한 마음이 생겨납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이 부패한 본성은 남아있고 그것들은 호시탐탐 기회를 찾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주 면밀하진 않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을 해부해서 마음이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예화) 10여 년 전의 일이었는데 한 교인이 수련회에 참석했어요. 이 사람은 일생을 거의 중독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성적인 중독에 살았어요. 아내도 다 알아요. 자기를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어요? 젊은 나이에 수입도 있고 사업도 하니까 빠져든 겁니다. 아내도 다 아는데 어떻게 해결할 길이 없어요. 이 사람이 우리 교회에 와서 은혜를 받고 이 책을 읽었어요. 그러면서 뭐라고 이야기했냐면 “내가 이러한 마음에 관한 공부를 10년 전에만 했어도 내 삶이 이렇게 피폐해지지는 않았을 텐데…” 그 고백을 하는 겁니다.
결국은 지식이 모든 걸 해결해 주진 않지만 싸울 수 있는 기본적인 진지(陣地)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속절없이 마음이 침투당하고 무너져 버리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줍니다. 그 다음에는 열렬한 기도와 말씀의 은혜입니다. 그것 없이는 이 마음을 지키는 게 불가능합니다. 이것으로 서론적인 강의를 마치고 1장에 들어가겠습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대목은 어떤 것입니까? 물론 “마음을 지키라.” 도 우리의 눈길을 끌지만 지켜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 마음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겁니다. 여기에서 생명이라는 건 뭘까요? 우리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사랑의 힘입니다. power of love. 그것이 우리 마음 속에서 솟아나는 겁니다.
(예화) 여러분들 연애 좀 해봤지요? 사랑에 빠지고 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어제 고백을 받고 아침에 일어나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 있는 거예요. 안 그렇다면 그건 사랑에 빠진 게 아닙니다. 마치 흑백 영화가 총천연색으로 바뀌는 듯 살아가게 만듭니다.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갖는 겁니다. 생기를 가져다줍니다. 그것이 생명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유사생명입니다. 진성생명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사랑하지만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 마음이 영원하다는 보장이 있나요? 그러나 그런 유사생명의 사랑도 하나님의 생명으로써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는 하나의 샘플이 되는 겁니다. 모형들이 된다는 것이지요. 사랑이 완전히 세상을 다르게 바꿔놓는 겁니다. 반대로 그 사랑이 사라지면 이 역시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습니다. 제가 청년 1국 시절에 한창 인기를 끌던 듀엣이 있었는데 “스키터 데이비스”(Skeeter Davis)라는 자매였어요. <The End of the World>라는 노래가 인기를 얻었는데 “why does the sun go on shining? why do the stars glow above?” “왜 태양은 불타오르는가? 별들은 왜 빛나는가?” 사랑은 끝났는데 어제와 똑같은 세상을 보면서 놀라는 겁니다. 그 세상은 이미 살아있는 세상이 아니에요. 생명이 없는 겁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된다고 믿어라. 젊음은 가능성이다.”라는 말들은 다 개소리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대부분은 우리 마음먹은 대로 안 됩니다. 더러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되기만 하는 사람들을 가끔 봅니다. 상당 부분은 조작이라 여겨지고요, 그 사이 사이에 링크가 끊어지는 곳에는 수많은 실패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끊어지는 곳 없이 연결되는 자라면 수천 명의 하나입니다. 그 헤아릴 수 없는 젊은이들이 공을 차는데 손흥민은 딱 하나잖아요. 그냥 그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십시오. 무라카미 하루키가 얘기했듯이 절망도 안하고 희망도 안 갖고 현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야기지만 우리는 또 다릅니다. 현실은 그렇게 받아들이되 희망을 현실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다차원적인 생각입니다.
1. 성경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로 꼽는 인간의 기관은 마음입니다. 성경이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쓴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언약백성들에게 쓴 것입니다. 아주 통찰력 있게 인간의 자연 본성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의 특별한 본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적용될 수 있는 것을 쓴 것입니다. 성경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성화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성화가 무엇입니까? 구원받은 우리를 하나님이 순결하게 하시는 것인데 성화되는 것만큼 우리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삽니다. 그것이 시작되는 곳이 마음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우리는 속사람과 겉사람으로 이루어져있어요.
(예화) 겉사람, 곧 육체의 경우 여자는 약 23세, 남자는 약 25세가 되면 육체로서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일에 있어서 절정을 이룹니다. 물론 개인차는 있지만 거기를 향하여 올라가다가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겁니다. 여성들이든 남성들이든 이것을 계속 유지하려고 피나게 육체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과자나 먹으면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을 때 그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을 합니다. 여성들도 다른 사람들이 뒹굴며 수다나 떨 때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을 합니다. 더 이상 운동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보이는 자매들이 체육관에 와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운동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육체의 젊음을 조금 더 길게 유지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도저히 안 되면 보톡스부터 시작해서 얼굴을 조작해서라도 관리를 하는데 그렇게 하면 약간 오래가게 할 수는 있지만 신경 안 쓰면 그 젊음의 정도가 쑥 떨어지는 거예요. 육체의 젊음은 그렇게 가는 거지만, 영혼은 늙지 않습니다. 자연적 생물학적 나이에 의해 늙지 않습니다.
영혼의 상태는 세월과 상관없이 그가 어떤 환경 속에서 무엇에 영향을 받으며 사느냐에 따라서 수시로 변하고, 그 영혼이 투영된 마음 역시 수시로 변합니다. 성도의 마음은 영혼의 상태가 마음에 투영이 되는 겁니다. 영혼은 보이지 않지만 마음은 어느 정도 보이고 행동은 눈으로 다 보입니다. 행동을 역추적해가면 마음의 상태가 나타나고 마음의 상태를 추적하면 하나님과의 관계와 자신의 영혼의 상태가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 그리고 뱀과 선악과가 여기 그려져 있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한국 사람이었으면 절대로 사과를 먼저 안 먹고 뱀을 먼저 먹었을 거라고요. 하튼 유혹자의 의해서 선악과를 따먹게 되고 죄가 유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구원받음으로 중생하게 되고 성화되어 갑니다. 죄가 유입된 것도 중생하고 성화되는 이 모든 일들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 마음이 지금 회색하고 섞여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고 은혜를 받으면서 다시 하나님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일생은 마음이 좌우하는 겁니다. 우리는 여기 서 있고 수많은 환경이 우리를 때리고 지나갑니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흔적을 남깁니다. 그 지나가는 것들에게도 우리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예를 들면 꺼칠꺼칠한 돌멩이에 물체가 부딪힌다고 생각해보세요. 물체가 강도가 어떠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동일한 강도라면 부딪히는 물체도 가루를 돌멩이에게 남길 것이고, 돌멩이 역시 부딪히는 물체에 그 가루를 남길 것입니다. 결국 일생을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마음이 묻어진 채로 내보내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을 해서 굉장히 어려운 환경을 만나기도 합니다. 너무 까다로운 배우자를 만나서 마음 고생하는 우리 집사람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잘 버텨냅니다. 살아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꽤 괜찮은 사람을 만났는데도 못 버텨냅니다. 소위 현대인들이 얘기하는 멘탈 이야기가 그래서 나옵니다. 유리멘탈 말입니다. 유리멘탈을 간직한 사람은 이런 까다로운 사람을 몇 달을 살아줄 수는 있어도 몇 십 년을 살아줄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면 자신의 이 멘탈은 현실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것을 키워야 합니다. 세상은 내 마음대로 조작할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시련과 고난 모든 것들을 겪어야 합니다. 이때에 마음이 어떻게 변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2. 인간의 마음의 상태는 타락 전, 타락 후, 중생 후의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각 상태에서 인간의 마음은 지·정·의 측면에서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봅시다.
인간의 영혼에 대표적인 세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 지성입니다. 지성은 이해의 작용과 오성의 작용으로 나누어집니다. 오성이라고 하는 것은 데카르트를 기점으로 해서 데카르트 이전과 이후의 오성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데카르트 이후의 오성의 의미는 그냥 감각이라고 보면 됩니다. 사물을 볼 때에 마음에 팍 팍 찍히는 거 있잖습니까? 그것은 논리적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거든요. 이런 것을 오성이라고 하는데, 데카르트 이전까지는 오성은 이성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수납하는 영혼의 능력이라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자면 ‘왜 우리가 착한 일을 해야 되냐? 나는 신의 존재도 안 믿고 내세도 안 믿지만 인간에게는 법칙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어서 악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고 선한 사람은 상을 받고 복을 받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는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반대의 사례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습니다. 나쁜 짓 하면서 잘 먹고 잘 살다 죽은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 것들이 오성의 작용으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그 다음은 이해의 작용인 이성입니다. 이성은 기본적으로 인과관계(causality)를 파악합니다. 인과관계가 이성의 기본입니다. 원인과 결과들의 연속이 이어지면서 법칙의 줄을 그으면서 과학적인 사실을 종합하면 아직 발생하지 않았는데 현재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과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게 됩니다.
(예화) 호흡하는 것을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화공약품이 노출되어서 살면 혈액암에 걸리기 아주 십상입니다. 우리교회 집사님 한 분이 혈액암에 걸리셨는데 도무지 걸릴 이유가 없는데도 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다른 건 기억이 안 나는데 젊은 시절에 컨테이너 박스 속에서 문을 잠그고 가구를 칠한 일을 3-4년 동안 하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게 유력한 원인입니다. 아무리 마스크를 쓰고 작업을 해도 소용이 없잖습니까? 호흡기로 스며들잖아요. 그런 것들이 원인과 결과를 추론하는 이성의 작용입니다.
둘째, 정서입니다. 정서는 호불호로 나타납니다. 어떤 것을 볼 때 중립적인 것도 물론 있습니다. “여기 인테리어가 어떠냐?” 그럴 때 “so so”라고 할 수도 있으나 “너무 좋고 편안해”라고 할 수도 있고, “난 싫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호불호가 우리 정서 작용의 기본입니다. 중심축을 가질 때도 있지만 그러나 어느 쪽으로든지 아주 쉽게 기울어지는 것이 정서의 작용입니다.
셋째, 의지입니다. 의지는 두 가지인데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하는 힘과 하기 싫은 일을 저항하며 선택하지 않는 힘입니다. 인간에게는 기억을 불러오는 회상의 능력이 있고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들도 똑같이 마음의 영향을 줍니다. 그 결과, 오관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 정보들, 기억을 통해 불러일으켜지는 회상이나 상상 등 이 모든 작용들이 함께 어우러지면서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고 두드립니다. 양철판 같은 것이 쳐져 있고 그 위로 소나기가 쏟아지면 두두둑 소리가 납니다. 이처럼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수없는 소리를 일으키면서 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런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자기가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주체성을 갖는다고 하는 것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일에 있어서 기본입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우리 주변의 환경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고, 그것들은 수많은 정동들을 우리 마음에서 불러내기 때문입니다.
타락 전의 창조의 상태, 범죄한 후의 타락한 상태, 중생한 후의 구원받은 상태가 있습니다. 이 상태에 따라 지정의는 아주 복잡한 양상을 나타냅니다. 타락 전에는 완전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의 계시에 대해 무지하지 않습니다. 타락 후에는 계시에 대해서 우둔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이 무지를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도무지 알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육신적이고 감각적인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예민해져서 많이 알고 싶은데 영적이고 신령한 것들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교만하여 심지어는 하나님 없다고까지 고백을 합니다. 중생한 후에는 하나님의 성품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서는 인간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이 지식이 확장되기도 하고 지성이 발달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 겁니다.
그 다음 정서로 들어가면 타락 전엔 악하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그런데 타락한 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분노 같은 것들을 모두 경험하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무디어져 있어서 하나님이 매우 진노할만한 일을 하면서도 끄떡없고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해주시는데도 그 사랑을 못 느끼는 겁니다. 그릇된 자기 사랑에 사로잡히는 겁니다. 자기중심으로 모든 만물을 생각하고 자기를 척도로 삼는 겁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 자기가 만물의 척도인 겁니다. 중생한 후에는 하나님의 정서가 지배하게 됩니다. 단, 은혜를 받을 때만 그렇습니다. 이 모든 바탕에는 잔존하는 부패한 경향성이 깔려 있는 겁니다.
그 다음 의지는 타락 전에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되었습니다. 죄를 이기지 못하는 의지의 무기력이 없었습니다. 타락한 후에는 철저히 자기중심적이고 죄에 굴복하게 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의지가 되는 겁니다. 중생한 후에는 의지가 하나님 앞에 굴복하게 됩니다. 어거스틴이 신국론에서 이렇게 인간의 상태를 나누었습니다. 타락 전에는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 타락 후에는 죄를 안 지을 수 없는 상태, 중생 후에는 죄를 안 지을 수 있는 상태, 천국에 간 다음에는 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 4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죽는 날까지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깨달음으로 지성을 채우고, 하나님의 정서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고, 하나님의 뜻에 우리 의지가 굴복하여 사는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행복을 못 느낄 때는 어떤 때입니까? 지성이 잘못됐을 때가 그렇습니까? 영혼이 망가졌을 때가 그랬습니까? 영혼이 망가지면 하나님의 성품보다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더 많은 겁니다. 하나님의 정서보다는 타락한 정서를 따라가게 되고 하나님의 뜻 보다는 내 뜻을 성취하기 위해 더 급급한 생활을 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운 상태가 됩니다.
(예화) 청년들 만나서 개인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영적으로 허우적거리면서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머리가 정돈이 안 되어 있습니다. 너무 가엾은 것은 10대 때도 그랬는데 40대가 되었는데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저절로 안 바뀝니다. 우리가 전자제품 하나를 사용해도 사용 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면 돈 주고 산 그 제품의 모든 기능을 다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인생사용설명서는 보지 않습니까? 신학은 인생사용 설명서입니다. 열심히 공부합시다.
3. 신자의 성화를 이루어야하는 두 가지 영역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신자의 가장 큰 소명은 성화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그것을 주도하시지만 순종하는 신자의 분투를 사용하셔서 그 일을 이루시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이것을 거룩함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낸 여호와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 지어다.” 죄 가운데 헤매던 우리가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하는 마음으로 천국까지 이르게 되는 겁니다. 이 성화는 성령님이 주도하시지만 신자의 순종을 사용하셔서 주도해 나가시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예화) 우리가 매일, 매일 만나는 수많은 고난, 시련 혹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같은 것들을 신앙으로 해석해서 그것들이 주는 항구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어차피 풍랑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잔잔한 때도 있고 잘되는 때도 있지만 바닥으로 내려가서 죽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이렇게 흘러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기쁨과 희망과 절망 등 현실에 나를 모두 다 실어버리고 그것이 인생의 전부다라고 하면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하려면 기본적으로 안정되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조폭들입니다. 도둑질하고 돈 가방 하나 훔쳐서 나누는데 회의하던 도중 보스가 야구방망이를 들고 나타나서 회의하는 자들의 뒤통수를 때려 두개골을 박살을 내는 겁니다. 대부라는 영화에 다 나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불안정한 삶을 살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현실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금수저 물고 태어나서 금수저 남편 만나고 금수저 처갓집 만나서 금슬 좋게 금수저처럼 살다가 금수저 자식들을 낳아서 요동하지 않는 삶을 살면 안정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설사 환경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그러한 지루한 생활에 만족을 안 할 겁니다. 그래서 인간이 끊임없이 고난의 길을 걷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A이라는 상황을 통해서 이게 함구적인 의미가 뭔지 A’를 찾아내고 B라는 상황에서 B’를 찾아내고 C라는 상황에서 C’를 찾아냅니다. 이렇게 해서 연결을 짓습니다. 내 인생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때로는 완전히 내 인생인 것처럼 살지 말고 남의 인생인 것처럼 살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내 인생에서 발 빼기’라고 표현하는데 길어야 100년, 짧으면 6,70년의 인생길에 일이 잘 될 때도 내 인생에서 한 번 발을 빼서 ‘이렇게 좋은 것들이 나에게 있는데 이것이 영원한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일이 잘 안되었을 때에도 발을 빼보고 남의 인생인 것처럼 한 번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삶의 의미를 찾게 만듭니다. 그 일이 내게 주는 항구적인 의미가 무엇인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옛날에 철학을 하던 사람들이 목표하던 바 였습니다. 신학은 이 철학에 대한 정답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세상의 모든 철학에서 틀린 것은 다 빼고 맞는 것만을 짠 엑기스가 성경이 된다는 것 말입니다. 이렇게 믿고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4. 신자가 성화를 이루어야 하는 두 가지 영역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성품과 인격에 대한 온전함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온전함입니다. 내일 설교할 내용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세상과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겁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은 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바로 자기를 사랑합니다. 사랑의 방식은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데도 아주 무기력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 심리가 뭐냐 하면 자기를 사랑하기는 하는데 세상과의 관계에서 자기를 만족할 것을 얻고자하는 욕심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돈이면 껌벅 죽고 명예면 껌벅 죽는다고, 외모가 아주 아름다운 여자에게 모든 남성들이 혹 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런 미인에게도 돌 같은 남자가 많습니다. 그렇게 세상 사랑에 무기력한 것 같은데도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랑의 방식이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은혜 안에서 성화되어가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때에 일어나는 제일 큰 변화가 성품의 변화입니다. 사람의 성질이 변하는 겁니다. 품성이 변하는 겁니다. 그 품성이 사랑의 품성으로 변화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선한 일을 위해 창조하셨다고 했고 선한 일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하나님을 섬기는 겁니다. 그러한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품과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성경을 주신 목적입니다.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는 인격의 변화이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하려 함”이라는 생활의 변화입니다. 이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람직하게 유지하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안 됩니다. 나는 이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깨달았어요.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인생 살기가 참 편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바보같이 생각을 하는 겁니다.
(예화) 우리 딸이 그런 얘길 하더라고요. 태어나자마자 “넌 참 예쁘다. 우리 이쁜이”라고 불렀습니다. 나중에 우리 딸이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엄마 말이 진짜인줄 알았잖아.”고 하면서 알고 보니까 자기는 전혀 예쁘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에 깨달았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았느냐가 성품과 인격에 영향을 주는 겁니다. 이 두 가지를 만족스럽게 할 때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면 1차적인 수혜자가 자기 자신입니다. 설교시간에 얘기했지만 약 열흘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에 푹 빠져서 지냈는데 이제는 그의 소설이 뻔한 내용인 듯 합니다. 한 두 권정도만 더 읽고 4월 즈음에 무라카미의 책을 가지고 여러분과 만남을 가질까 합니다. 그의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정말 눈물 났던 것이 이것인데, 내가 회심하지 못했을 때의 모습이 바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람들인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모두 죽는 겁니다. 그게 더 슬픈 겁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됩니까?
성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성품이 변화되고 섬기는 삶이 변화되고 그래서 자신이 행복하고 세상과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입니다. 두 개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내가 행복한 것만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광을 돌린 것만큼 나는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제가 눈물로 권하는데 젊음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너무 아깝습니다. 그리고 좀 더 젊은 나이에 확고하게 인생의 좌표를 설정하고 확신 있게 길을 걸어가십시오. 만약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가보십시오. 찢기고 꾸겨진 상태에서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앙의 길을 걸어가야겠다고 깨닫게 될 것입니다.
5. 신자는 무엇 때문에 변화된 영혼의 은혜로운 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합니까?
구원받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부르심이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행복하고 그를 만나는 사람도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예화) 요즘은 덜 이야기하는데 한때 젊은이들에게 “너네 할 일 없이 그러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임용고시 봐서 교사가 되라. 안 되면 학원선생이라도 되라. 그렇게 해서 돈 벌 생각하지 말고 학생들을 너무 불쌍히 여기면서 품에 안아주는 사람이 되라.”고 권면했더랬습니다. 그러면 하늘에서 상급이 많을 겁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너무 방황을 많이 합니다. 우리가 참된 신자가 되는 것은 우리를 향한 최고의 부르심이고 그 안에 행복이 있습니다. 영혼이 변화되면 그 변화된 영혼의 상태는 마음으로 투영이 됩니다. 이 마음 안에서 우리는 세계와 만나고 자신과 만나고 이웃과 만납니다. 우리 인생을 바꾸는 것은 알프스의 풍경이나 -물론 알프스는 아름답지만- 로키산맥도 멋있지만, 그렇게 아름다운 세계의 풍경이 우리의 인생을 바꿔놓지는 않습니다. 겨울에 우리 집사람을 한 번 데리고 설악산에 갔더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겁니다. 차를 타고 설악산을 지나오는데 너무 예뻐서 우리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우리 인생을 바꿔놓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은 대부분 사람입니다. 사람이 우리의 인생을 바꿔 놓습니다. 선생님의 한 마디에 말씀에, 선한 친구의 조언이 내 마음을 바꿉니다. 잘 살았던 삶과 못 살았던 삶을 한 번 비교해보시면 잘 아실 겁니다. 스쳐지나가면서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분 때문에 빛을 받으면서 올바른 삶을 살게 되는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로 인해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사람은 다 외롭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는 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좀처럼 마음을 안 열어 줍니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따뜻하게 밥이라도 같이 먹으면서 선생질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그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몇 마디만 하면 되잖아요. ‘정말?’ ‘대박’ ‘헐’ 이렇게 몇 마디만 반복하면서 공감해주면 모든 걸 꺼내서 주고 싶어하는 존재가 현대인입니다. 그런 마음을 김남준 같은 방탄소년단들이 훔쳐갔던 것입니다. 옛날에는 “김남준”하고 인터넷에 치면 내가 일등으로 나오고 걔는 저기 구석에 나왔는데 이제는 아닙니다. 어느 날 인터넷에 들어가서 쳤는데 “김남준 너무 갖고 싶어.” 저는 “헐..”했습니다. 어느 놈이 나를 갖고 싶대나 궁금해서 들어가 보니까 내가 아니고 18살 방탄소년단 김남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기가 막히게 사람의 마음을 훔치는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살면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일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는 겁니다. 그것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겠어요? 완전히 도탄에 빠져서 죽을 것 같은 사람들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워요? 우리 교회 자매가 기도를 하는데 -지하실 교회시절 이야기임- 옛날에 교회에서 만난 선배 언니가 생각이 났다고 합니다. 그땐 핸드폰도 없던 시대니까 전화기로 달려가서 전화를 했답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 언니가 막 울더랍니다. ‘나 지금 한 손에 면도칼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가 전화벨이 울려서 나온거야.’ 동맥을 끊고 죽어버리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25년 전 보다 훨씬 더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남에 대해서 거의 관심을 안 가지고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생명의 근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지탱하기에도 거의 탈진상태인겁니다. 그것은 이 속에서 뭔가 생명이 없는 겁니다. 그것을 반성하면서 이런 상태로 내가 인생을 계속 살 수 없다고 자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에베소서의 말씀처럼 “우리를 택하사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려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완벽한 삶을 살아낼 수는 없겠지만 넘어지면 넘어진 곳에서 다시 하나님 의지하고 하나님 붙들면서 살 수는 있잖습니까? 그리고 교회는 바로 그것을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여러분들은 순장입니다. 여러 명의 영혼이 여러분들에게 달렸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이야기가 있는데 구역장으로 처음 세워진 분의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다른 교회에서 오신 장로님인데 12명의 구역원을 배정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안 나오는 겁니다. 2주 동안을 열심히 심방해서 4명이 모였고, 모인 사람들이 같이 쭉 심방을 하면서 나머지 사람들을 다 찾아냈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라워요? 우리는 그냥 포기하잖습니까? 여러분도 그러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기 때문에라도, 순원들의 영혼을 생각해서라도 여러분들은 은혜 충만한 삶을 살면서 마음을 지켜야 되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