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지켜야 할 마음-부드러운 마음
녹취자 : 오희열
제4장입니다. 지켜야 할 마음. 버려야 할 마음은 굳은 마음이고 지켜야 할 마음은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지켜야 할 마음이 깨끗한 마음이 아니라 왜 부드러운 마음입니까? 성경은 마음의 청결함에 대해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언약 백성들의 마음의 특징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표현합니다. 더러워질 수도 있고 잘못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터치하며 그것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 수용적인 마음, 이것이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1.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부서져 본 적이 없는 완전히 굳은 마음을 가리킵니다. 이들의 마음이 굳어진 이유 네 가지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각각의 특징을 말해봅시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마음입니다. 예술작품처럼 표현했는데 돌멩이를 모아놓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예민함, 민감함은 있으나 세상과 속된 것들에 대한 민감함만을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첫째, 영적인 어두움이 마음이 굳어진 이유입니다. 영혼의 어두움, 흑암, 이 속에서 인간의 마음은 굳어집니다. 부드러운 마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통하는 것인데 영혼의 어두움 속에서는 하나님과 통할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는 사단의 지배, 세 번째는 허물과 죄로 인한 영적인 죽음입니다. 그리고 완악함. 이것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로 고집하는 것입니다.
첫째, 영적인 어두움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4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무지함과 마음이 굳어짐으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났도다.” 크게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는 총명이 어두워졌다. 이것이 영적인 것이라면 두 번째인 무지함은 지적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음이 굳어짐은 마음에 관한 것입니다. 이 결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것입니다. 생명은 그 자체가 사랑이고 힘입니다.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죄가 눈을 가림으로 자신이 죄인 됨을 알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사단의 지배 때문입니다. 성경에 근거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여기의 묘사를 따르면, 마귀가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바깥으로부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비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사단의 지배로 인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적대적이고 죄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내가 굳어진 것은 사단의 지배 때문이 아니냐? 그렇다면 그 책임은 사단이 져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데 사단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 때도 우리의 마음의 동의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그것을 사단에게 핑계 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성령도 준비된 마음에 오시고 마귀의 세력도 준비된 마음에 다가가서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허물과 죄로 인한 죽음. 에베소서 2장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여기서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생명에서 멀어졌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이 없는 그 결과가 이 죽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장 40절에서는 “눈을 멀게 하시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그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함이라 하였음이더라.” 이것을 “심판적 완고함”이라고 합니다. 한 사람의 악이 끝까지 갔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내리시는 심판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다’가 아니라 ‘완고하게 되도록 하나님이 놔두시는 것’입니다. 그때 인간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항상 잘 지키면서 이런 완고함에 이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올라오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당을 밟으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런데 가슴 아픈 것은 이 마당을 밟은 사람들 중에서 어떤 사람은 그렇게 생애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화되었는데 아주 놀라울 정도로 마음이 굳어져서 신앙의 길을 버리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도 또렷하게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우리가 행한 대로 모두 갚으실 것이지만 굉장히 슬픈 일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설교했듯이 하나님의 은혜에 달궈졌던 마음이 식을 때, 마치 달궈졌던 쇠가 식을 때 더 굳어지는 것처럼 그런 결과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해야 합니다.
2. 존 오웬은 신자의 마음을 완고함이 남은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각주 85번을 읽어보고 전적인 굳어짐과 부분적인 굳어짐의 차이가 무엇인지 설명해 봅시다.
존 오웬은 마음을 설명하면서 전적인 굳어짐(Total hardness), 이것은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으로서의 굳어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 굳어진 마음이 되도록 굳어진 것은 신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고 불신자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구원받은 자녀인데도 죽을 때까지 굳어진 마음으로 살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구원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그런 식으로 인생을 살 때 행복할 수 있을지 반문할 수 있습니다. 전적인 굳어짐은 불신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고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도 굳어질 수도 있는데 이것은 신자와 불신자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수한 경우이고, 일반적으로는 신자의 경우에는 완고함이 남아있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이것은 성화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3.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부드러운 마음과 굳은 마음을 각각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그것을 통해 알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굳은 마음은 히브리말로 “레브 하에벤”이라고 읽습니다. “에벤”은 “돌멩이”입니다. “에벤에셀”은 “도움의 돌”입니다. “하”는 정관사 the 이고 “레브”는 “마음, 생각, 지성”, 즉 지각하는 모든 기능을 가리킵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그 돌멩이의 마음”입니다. 이 돌멩이의 마음을 제거하고 하나님이 다른 것을 주시는데 “레브 바사르”입니다. “바사르”는 살입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할 때의 “살”입니다. 고기 중에서 뼈가 섞이지 않은 살코기만 떼어낸 것을 “바사르”라고 합니다. 은유적인 의미로 우리의 육신 전체를 뜻하기도 합니다. “살코기의 마음”입니다. 굉장히 부드럽습니다. 우둔 같은 것은 좀 질기겠지만 안심 같은 것들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돌멩이의 마음을 제거하고 살코기의 마음을 줄 것이며” 인데 이것을 부드러운 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표현한 것이 더 직설적입니다. “돌멩이의 마음을 제거하고 살코기의 마음을 줄 것이며”, 아주 부드러운 마음이 은혜 받은 언약백성의 마음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말씀의 검이 있다고 하더라도 돌멩이를 찌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인간의 마음과 아주 놀라운 화합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존 오웬이 자신의 성화론에서 남긴 잊지 말아야 할 명언이 있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의 성화를 위해서 일하는데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일하시지 우리 없이 우리 바깥에서 일하시지 않는다.” 말씀의 검이 있어도 이 돌멩이를 찌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 능력이 있다 없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마음에 말씀으로 역사하시는 방식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런 살코기는 한방에 찌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굳은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받는 영향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리처드 십스 라는 영국의 청교도인데 칼빈이 죽고 나서 얼마 안 되어 태어난 사람이고 존 오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앞 세대입니다. 이 사람은 천국의 의사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섬세한 필치로 인간의 성화, 마음에 대해 써 내려간 탁월할 성경학자인 동시에 심리에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영국의 경험주의적 청교도의 전통을 아주 잘 보여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상한 갈대(The bruised Reeds)”는 세기에 애독되었던 책입니다. 지금도 우리 도서관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Tender, soft and melting heart”, “연하고 부드럽고 녹아내리는 마음.” 버터를 팬에 올려놓고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는 것처럼 “그런 마음은 하나님의 참된 자녀의 초자연적인 경향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정말 성령을 모신, 성령이 그 안에 함께 하시는 초자연적인, 신령한 경향성이 그 마음에 있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마음이 녹는 것이 꼭 하나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러 갔을 때 가나안 원주민의 마음이 물같이 녹아내렸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 때문에 녹아내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두려움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려움과 공포 때문에 마음이 녹아 내리는 것은 불신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의 강함이 있고 거친 것이 있는데 부드러워지고 강한 것이 있는데 연하여지고 딱딱한 것이 있는데 녹아내리는 것은 뭔가 또다른 천상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이 본질이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찬양) 예수 예수 예수 내 맘을 녹이셨네
요즘 신앙의 문제는, 이런 비밀을 모르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꺾는다고 할 때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꺾는 것입니다. 원수가 좋아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고 내게 고통을 주었던 사람을 용서하는 것은 내 마음을 녹이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녹는 정체는, “하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부은 바 됨이니”라고 로마서에서 말씀했는데, 나는 나대로 생각이 있고 뜻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부은 바 됩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완전한 사랑으로 넘칠 때 두 마음은 한마음이 됩니다. 그래서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없습니다.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나 헌신 같은 것이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희생 자체를 자기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식을 키우면서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널 어떻게 길렀는데…” 뭘 어떻게 기릅니까? 밥 먹여 기르지 않았습니까?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이 교회를 어떻게 섬겼는데…” 이런 말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려고 교회를 섬긴 것입니까? 이런 것은 모두 하나님과 자신의 마음이 떨어져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모든 섭섭함과 자기에게 주어지지 않은 보상, 서운한 마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것은 희생이 아닙니다. 고통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그 사람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희생이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의라는 것, 자기 의를 내세우는 것은 사랑의 일치에서 멀어짐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최후의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그렇게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자기가 선한 일을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선한 일을 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이 선한 일을 행하지 않은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자신이 선한 것을 기억하지 않지만 악한 사람은 자신이 행한 악은 기억하지 못하고 선은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렷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그것이 또렷하게 남을수록 자신은 피해자라는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됩니다. 뭘 바랍니까? 그냥 한 사람으로 태어나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았으면 자식들에게 마음을 실어서 “내가 너를 위해서 희생하고 수고한 것이 나에게 참 행복이었다.” 하고 끝나는 것입니다. 자기의 엄마 아빠도 자신에게 그렇게 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자기의 부모에게는 잘 못한다고 해도 자기 자식들에게는 또 잘 할 것입니다. 그렇게 세대는 흘러가고 인생은 끝나는 것입니다. 교회를 만나서 무슨 희생을 그렇게 했다고 기억합니까? 그렇게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고 교회를 사랑하고 자기가 섬기고 헌신한 것은 자신의 행복입니다. 그것으로 끝나야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나에게 대가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불평하는 것은 교회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 해 보십시오. “참된 사랑에는 희생이 없다.” 참된 사랑에는 갚을 것도 없고 받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사랑 잔소리였습니다.
4. 부드러운 마음이 될 때 주어지는 마음의 변화 중 한 가지는 하나님의 생각에 예민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방법 두 가지는 무엇입니까?
하나님 당신의 생각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것은 계시 된 성경의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도 이런 말을 합니다. “그걸 말로 해야 아니? 이심전심이지.” 그런가 하면 요새는 또 뭐라고 합니까? “말을 하지 않으면 절대 알아듣지 못한다. 말을 하라.”고 합니다. 말을 하라고 하는 것은 언어를 통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전달하는 것이고, 이심전심은 서로 사랑할 때 그 마음에는 아주 놀랍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필요를 압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의 필요에 대해서 민감하게 됩니다. 필요에 대해서 전혀 감각이 없는 것은, 정말 사랑이 깊다면 그럴 수 없습니다. 무엇이 필요한데 그것이 없이 불편하고 고통 받으면 사는 것을 보는 것이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의 본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계시 된 말씀이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심으로 신자들에게 적용되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함께 전달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에 전달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일치된 마음을 갖게 되고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여기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자의 마음과 계시된 말씀이 있습니다. 인간은 마음에 없는 말을 종종 하지 않습니까? 수없이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 생활에서 좀 필요한 처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전도사 생활을 하면서 담임 목사님을 따라 심방 다닐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이, 마음에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심방을 갔는데 코를 줄줄 흘리며 씩씩한 남자아이처럼 생겼는데 여자아이였습니다. 목사님께서 번쩍 안아주고 볼을 비비면서 “아유, 넌 진짜 예쁘다!”하시는데, 저는 속으로 ‘저건 팩트가 아닌데? 하나님의 사람이 진실해야지 왜 저렇게 할까?’ 생각했습니다. 정말 오래도록 그것을 못했습니다. 지금도 잘 못합니다. 그래도 세월이 좀 지나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밥을 먹었는데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너무 맛있다고 하시고 집에 가셔서 설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못했습니다. 맛이 없으면 그냥 가만히 있습니다. 맛이 있으면 맛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오지 않은 말씀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그 말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말을 하실 수밖에 없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엄마의 마음을 모릅니다. 그런데 군대에 가서 일주일 훈련을 받고 눈물이 나는데 엄마에게 편지가 옵니다. 그때는 맞춤법만 아는 게 아니라 그 속에 담겨진 엄마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군대 가기 전에는 맨날 “저놈의 자식이 군대도 안가고 저러고 있다.”고 성질을 부렸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계시 된 말씀과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역사로 인간에게 전달되고 여기에 대해서 예민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는 신자의 마음입니다.
5. 성경이 ‘가난한 마음’으로 표현하는 부드러운 마음은 신자가 어떠한 상태에 있음을 가리킵니까?
마태복음 5장에 “가난한 마음”이 나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푸토코스”라는 단어입니다. “파산선고 받은”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될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신자는 하나님의 마음에 쉽게 영향을 받는 정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식이 하나 있습니다. “신령한 은혜는 거룩하고 풍부한 정서를 가져온다.” 눈물 한방울을 흘리지 않던 사람이 예수의 십자가의 사랑을 알고 화장을 유지할 수 없는 눈물이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런가 하면 우울하게 살던 사람이 기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신령한 은혜는 거룩한 정서를 가져옵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밭은 인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을 심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정서를 가득 가지고 있는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도 기뻐하고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도 미워하게 되고 하나님이 마음 아파하시는 것에 대해서 자신도 아파하게 되는 희로애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은 사람의 마음은 굉장히 역동적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맛이 나는 것입니다.
6. 하나님의 의지 앞에 자기를 쉽게 꺾는 마음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렇게 마음이 하얗게 되었다가 회색으로 되었다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시 변하고 있는데 이런 가운데 하나님을 거슬렀던 강력한 의지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다시 조정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의지에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힘은 사랑의 힘입니다. 의지를 사랑으로 바꾸어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가 하는 역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성에 역사해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놓지만 은혜는 의지에 역사해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바꿔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넓은 의미에서 보면 인간의 마음에, 더 깊이 보면 인간의 영혼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작용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은혜 때문에 완고했던 의지를 꺾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