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하신 일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누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51-55)
녹취자: 박문옥
예수님이 말구유에 오셨고 그리고 일생동안을 착한 삶을 사시고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고 그리고 부활하시고 다시 사셔서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특별히 지상생애를 보면서 예수님은 한 없이 연약하신 분으로 오셔서 그렇게 연약한 자들을 끌어안으시고 사랑하셨다는 사실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 그때에 예수님은 당신 자신 안에서 두 가지 극단적인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는 가난하고 비참한 자들을 부하게 하시고 높이시는가 하면 부유하고 그리고 힘 있는 자들을 내리치셔서 흩어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언하길 ‘이 아이가 사람들의 흥함과 폐함의 표적이 되리라’ 하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하신 일이 바로 그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을 만나는 사람들마다 교만하고 높고 부해졌던 사람들은 낮아지고 비참해지고 그리고 파멸되는 것들을 겪었고, 그 다음에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낮아지고 겸비하고 비참한 사람들은 주님이 그들을 높이셨습니다.
이것은 이사야서 40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예언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나타나서 그래서 ‘낮은 데는 높이고 높은 데는 낮아지게 하겠다.’라고 하는 왕의 대로를 만드는 작업을 바로 세례요한이 선포로서 대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회개하라는 선포는 교만한 사람의 마음은 깎아서 낮추고 낮고 비천한 사람들의 마음은 높여서 그래서 균일하게 만들어 줌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는 마음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삶을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그 은혜아래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지혜를 삼을 때에는 그렇지 않지만 거기로부터 멀어지게 되면 우리는 극단적이 됩니다. 그래서 말할 수 없이 교만해서 하나님도 안중에 없는 그런 무엄한 삶을 살거나 아니면 하나님은 충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데 스스로 모든 것을 짓밟아 버리고 나는 아무 희망이 없다 그리고 절망해 버리는 것입니다. 근거가 없는 희망, 근거가 없는 절망 두개 사이를 극단적으로 출렁거리면서 오고가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것은 하나의 오늘 우리들이 바라보고 있는 성경의 말씀을 우리에게 응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교만하던 사람은 주님이 낮추시고, 그리고 근거 없는 두려움 속에서 주저앉았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참된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북돋아 주셔서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는 길을 보이시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생활하면서 최고의 자존감을 가질 때가 언제냐 하면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할 때, 사실은 그 안에서 우리는 가장 최상의 자존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신앙을 떠나서 좌절하고 절망할 때에 느끼는 자기 비하의 모습과 회개할 때 그 모습이 너무나 흡사하지만 그러나 완전히 기초자체가 다른 것입니다.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자기 자신의 요구대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모든 사태가 진전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는 자각에서 오는 깊은 좌절이지만, 신앙 안에서 갖는 좌절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면서 느끼는 좌절이고 슬픔이기 때문에 후자의 슬픔과 좌절은 오히려 하나님 한분을 더 앙망하도록 만들어 주는 힘입니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에는 마음에 있는 하나님까지도 지워버리게 하는 절망이기 때문에 그 둘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진실한 절망의 끝은 회개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이지만, 잘못된 절망의 끝은 말하자면은 끝임 없는 자기 파괴와 하나님께 대한 도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바로 이렇게 하나님 바깥에서 세워진 그릇된 희망과 질서, 그리고 말하자면은 그 비전들을 허물어 버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 거룩하신 주님을 의식하고 하나님께 나아오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저앉은 좌절과 슬픔들을 신앙을 통해서 극복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앞에서 낙심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교만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낙심하는 사람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세상에 대해서 담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담대함은 이 세상의 자원을 소유한데서 오는 담대함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자신이 깊이 깨뜨려져서 하나님 한 분을 기업으로 삼으며 살아갈 수 있다 확신 속에서 나오는 담대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서 추구하여야 할 바이고 그래서 우리들이 매일같이 이렇게 주님을 의지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니 성탄에 이런 뜻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올바로 낙심하고 올바르게 희망을 갖는 사람이 될 때에 주님이 오신 뜻에 부합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